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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 대우자동차 투쟁

어수선하게 한 해가 시작되더니, 더욱 어수선하게 봄이 다가왔습니다.
21세기의 첫 봄은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격렬한 투쟁, 계엄상황과 같은 부평과 너무도 조용한 언론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빌어먹을 놈의 언론들은 이럴 때는 양비론을 얘기하지도 않습니다. 80년 광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철저한 언론의 침묵과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의 이중주를 정말 잘도 연주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스스로 광주의 수혜자인만큼 그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나 봅니다.
저는 부평에는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투쟁소식과 사진, 동영상 등을 매일 매일 보게 됩니다. 공권력의 살벌한 폭력과 그에 맞선 치열한 투쟁을 보면서 화가 나는게 아니라 울고 싶었습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나날입니다. 정리해고라는 삶의 벼랑끝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전경들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못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합니다. 이럴 때 들려오는 자살 소식이 얼마나 눈물나게 하는지... 너무도 암울한 현실 앞에서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지... 이렇게 현실은 수없이 우리를 폭력과 자살로 몰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현실은 전혀 얘기하지 않는 이 놈들은 폭탄제조사이트와 자살사이트를 마녀로 삼아 엉뚱한 마녀사냥만 합니다.
이럴 때처럼 그 잘난 팬대 굴리면서 진지한 척, 유식한 척, 근엄한 척하는 새끼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가 없습니다. 자칭 노동자의 권익을 주장한다는 한겨레신문의 한 기자라는 새끼가 인터넷에 대우투쟁과 관련한 장황한 글을 썼더군요. 노조를 위한 충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노조가 너무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극단적 대응을 하니 문제가 더 꼬인다' '집회할 때 애들은 제발 대리고 나오지 마라' 이 따위 얘기를 씨부리고 있었습니다.
사람 미치게 만드는데는 이런 새끼들이 정말 뛰어난 제주를 갖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 그렇게 치열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해야만 하는 암울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 따위 얘기는 하지 못합니다. 그런 놈들은 기자라서 오히려 정보나 자료들은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 보다 더 자세히 부평의 상황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도 이 따위 소리를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놈이 생각하기에는 자기가 얘기했던 것처럼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노조는 정리해고를 수용하고, 이후의 현실적인 대응을 해야 하고, 집회할 때 애들을 데리고 나와 볼모로 삼는 것 같은 치사한 짓을 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놈들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서 정리해고가 들어오면 좀 저항하다가 희망퇴직이나 뭐나 하는 걸로 나갈 놈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기 스스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고 싸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놈들은 그 회사에서 짤리더라도 좀 고생되기는 하지만 다른 데서 다른 일자리를 조만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해고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반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따위 얘기를 씨부릴 수 있는 것이고요.
이런 투쟁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죽이고 싶은 것이 이런 기자새끼들입니다. 차라리 본색을 정면으로 드러내놓고 폭력을 휘두르는 놈들이 났습니다. 객관적인 척, 중립적인 척, 멀리 내다보는 척, 노동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비수를 꽂는 놈들이기 때문입니다.
98년 정리해고에 맞서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이후에 정리해고와 무급휴직의 정말 고통스러운 기간을 보냈던 현대자동차 동지들은 이번 대우자동차 동지들의 투쟁이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현재 객관적 조건이 막바로 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서 그렇지 현대자동차 동지들은 누구보다도 대우자동차 투쟁이 자신의 일로 다가옵니다. 과부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한 번 당해본 사람들이 그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라 울산의 다른 사업장도 마찬가지고, 울산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이곳 울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대우자동차 투쟁을 최대한 지지·지원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우자동차에서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김대중 정권을 몰아내는데까지 갈 수 있으리라고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주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우습게 보는 자본과 정권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그런 속에서 우리들의 희망이 자라납니다. 그래야 대우자동차 동지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우자동차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투쟁이 쌓이고, 희망이 쌓여가다보면 우리가 살고 싶은 그런 세상이 꼭 올 것입니다.
오만한 자본과 정권에 맞서 이렇게 격렬한 투쟁이라도 벌일 수 있는 이 나라는 그래도 희망이 남아있는 나라입니다. 무기력한 패배의식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삶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간다는 중요한 삶의 원칙이 살아있으니까요.
이번 대우자동차 투쟁은 이렇게 삶의 문제이고, 희망의 문제입니다. 언제나 그런 투쟁이었지만, 이번 대우자동차 투쟁은 더더욱 삶과 희망의 문제를 중요하게 안겨주는 투쟁입니다. 삶과 희망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안으려는 모든 사람들은 이번 대우자동차 투쟁에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조건과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합니다. 그저 당위적이고 원칙적인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인 얘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역사의 중요한 흐름을 우리는 타고 있는 것입니다.



2001년 3월 2일
울산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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