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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보내는 편지

최근에 동지들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 언제인지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간만에 연락을 합니다. 올해는 세상도 어수선하고, 제 삶도 많이 게을러지면서 이렇게 가끔 하는 연락도 자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게을러진 삶을 정리해야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아직도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10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가을이 깊어 가는데,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제 삶을 정리해보아야 한다고 생각은 해보지만 생각으로만 그칩니다. 어떻게든 다음 주 내로 제 주변의 어수선한 일부터 정리를 하면서 다시 흐트러지고 게을러진 생활을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오래간만에 여러 사람들에게서 연락들이 오곤 합니다. 몇 일 전에는 거의 잊다시피 하고 지냈던 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제가 기억 저편 깊숙이 묻혀 두고 있었던 인물인데 그 사람은 저를 기억 속에서 꺼내 놓았습니다. 그 전화를 받고 다시 한 번 사람들과의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짧지도 길지도 안은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잊혀지고 합니다. 옛날 앨범이나 일기장을 어쩌다 뒤적이다보면 새삼스럽게 그 사람들이 다가오지만 모두 추억 속의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려들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이 시점에서 양희은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가 나오길래 가사를 받아 써봤습니다.
양희은에게는 사랑이 지나가 버리면 '참 쓸쓸한 일'로 남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저는 아직 이성과의 가슴 떨리는 사랑이나 쓰라린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양희은이 노래하는 것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고 지금도 많은 이들과 만나고 있으면서, 또 지금 이렇게 우리 동지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관계의 소중함을 생각하면 그게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참 쓸쓸한 일'로 남지 안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물론 저는 아직 성인군자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속없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그 앞에서 표정관리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싫어하기는 합니다. 언제부터 그런 좋고 싫음의 기준이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될 수 있는 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친근하게 다가서려고 노력을 해봅니다. (물론 잘 안되지만 ^.^)
제가 특별히 붙임성이 있고 친근함이 강한 성격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나쁜 감정을 갖지 안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려고 노력도 해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 동지들에게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편하게 주절거리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저는 아직 사랑이 참 쓸쓸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설혹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 지난 앨범 속이나 일기장 속의 아련한 기억으로만 떠오를지라도 그게 쓸쓸한 기억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을 계속해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 동지들을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유치한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앞으로 제가 죽을 때까지 이런 유치한 연애편지를 쓸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제가 그동안 많이 게을러지고 동지들에게 연락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런 것도 일이 바빠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 식었기 때문입니다. 이 정신 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바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정신 없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람에게 자주 연락을 하게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챙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로서 그 만남이 끝나고, 혼자 있게되면 그리워지는 사람이 없고 하면서 일과 게으름의 반복으로 이어집니다. 서서히 파편화된 개인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운동도 그렇게 변해갔습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관념적으로나마 가졌던 노동자·민중에 대한 사랑과 노동자·민중을 억누르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서서히 식어버리고 운동이라는 것이 일로만 다가오더군요. 관성에 젖어 문서를 정리하고, 회의를 하고, 투쟁을 합니다. 그런 문서와 회의와 투쟁에서 노동자·민중에 대한 사랑과 자본과 정권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지만 제 스스로가 애정이 식어버린 순간 관성화된 화석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다시 가슴 절절한 사랑을 시작해보려고 노력합니다.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에 폭력으로만 일관하는 자본과 정권에 대해서 머리로서가 아니라 가슴으로 분노하고, 그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형식적으로 집회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처절함을 가슴에 담으려하고, 수없이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어 가는 현실에 유인물 쓸 소재로서가 아니라 그 비참한 죽음에 노여워하고, 기막힌 현실에서 노동하고 힘겹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맥없는 구호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눈물겨워하고, 여성의 억압과 고통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으로서 괴로워하고,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두려운 장애인의 문제에 대해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름발이 세상에 화를 내고...
물론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퍼붓는 식의 화풀이로 되는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랑과 분노가 식어버리고 화석화되어 버린다면 '참 쓸쓸한 일'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제가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현실에 많이 치여 오다보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놓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그만큼 생각이 많아지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놈의 현실에 발목이 잡히는 순간 내가 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이 참 어렵습니다.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책임이 따릅니다. 그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수한 현실과 싸워야 합니다. 그것은 현실에 발목을 잡히는 것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또 사랑이 참 어렵습니다.
참 다행이게도 저는 주위에서 그 어려운 사랑을 잘 해나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결혼해서 어렵지만 잘 살아가는 이들도 많고, 의미 있는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고, 힘든 생활에도 서로를 반갑게 맞아주는 이들도 많고,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투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은 참 행복입니다. 그게 모두 우리 동지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지들에 대한 식었던 사랑을 다시 불사르렵니다.

마무리하려고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정말 유치찬랍입니다. *.*
뭐, 그래도 어떻습니까.
저의 유치찬람함에 애정어린 조롱을 할 동지들은 많겠지만, 모두가 즐겁게 반아 들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일요일 밤 11시 54분입니다.
지금 이 시간 대부분의 동지들은 내일부터 시작될 정신 없는 또 한 주일을 위해서 자고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이제 자야합니다. 이 유치찬란한 메일을 동지들에게 보내고 나서. ^.*
내일 아침 동지들이 출근을 해서든 어디서든 메일을 확인했을 때 매일 갖은 업무메일이나 상업적 메일의 홍수 속에서 반가운 메일의 하나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아니면 슬퍼요 T.T)
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러 가지로 바쁘더라도 깊어 가는 가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삶의 여유입니다.


2001년 10월 21일
울산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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