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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83회 – 겸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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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노동자들이 거대한 함성을 지르면서 일어날 때 그들의 주요한 구호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다. 중증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서 버스에 쇠사슬을 묶으면 외쳤던 구호는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였다. 사람이지만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살아왔던 이들이 스스로 사람임을 선언하는 순간 세상은 요동쳤다. 대중은 그렇게 사회와 역사의 주체로 나오는 것이다.
투쟁은 활동가가 아니라 대중이 중심이 됐을 때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끝임 없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대중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대한 대중의 능동적 힘 속에서 민주노조를 경험했던 현대중공업 조돈희는 대중이 주체가 되는 현장평의회운동을 누누이 강조한다.
“내가 집중한 것은 현장조직운동이 선진활동가들만의 투사집단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자발적으로 현장에서 투쟁하면서 그들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되게 하는... 현장권력이라는 것이 ‘현장에서 우리가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현장의 투쟁을 경험했던 이런 동지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서 현장에서 자기 문제를 스스로 투쟁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나는 정치라고 보니까... 그 운동을 현장조직운동을 통해서 확대하려고 했던 것이고...”
- 현대중공업 조돈희
대중의 열망이 대중 스스로의 힘을 만들지 못하고 간부의 열정으로만 드러나면 그 열망과 열정은 곧 현실에 묻히고 만다. 2000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다양한 투쟁 속에서 현장을 장악했던 풀무원 춘천공장은 이런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미련스럽게 했던 것 같고... 열정이 있었던 거 같아요. 몸이 부서져라하고... 민원에 대한 부분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어요. 복지문제, 개인문제, 임금 등 1년에 해결한 것만 200건 가까이 될 정도로... 거기다가 교통사고가 나도 위원장을 찾을 정도였는데... 그게 세월이 가면서는 별로 바람직한 게 못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초기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져서 신바람은 나고, 어깨에 힘은 주고, 자신감은 있었지만, 막상 그런 것을 쳐나갈려고 하니 쳐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어요. 간부들 선동교육 시키려면 얼굴이 하얘졌다 노래졌다 이런 상황이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자판기 노조처럼 된 현실이었고, 날이 가면 갈수록 부하가 커지고...”
- 풀무원 박엄선
대중을 주체화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모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대구인권운동연대는 그렇게 빈곤대중을 조직하고 있다.
“파산학교는 상담중심으로 하는 건데... 지금 회원들이 400명 정도 됐지만 고정적으로 모이는 인원은 40~50명 고정돼 있어요. 왔던 사람들이 안 오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오기도 하고... 이런 과정이 반복 되는데... 오는 사람들은 너무 급해서 오는 거고, 저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생각해요. 그리고 면책 받고 나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대부분 그럴 거다고 봐요. 이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정말 대중인데... 우리는 대중들한테 문제의식을 환기하고, 문제의식을 부여해주려고 할 따름이지...
저는 ‘다섯 명 중의 한 명, 열 명 중의 한 명이라도 이런 것을 자기문제화 해서 할 수 있으면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거고... 그래서 제가 주요하게 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사업이 있어요.
하나는 상조회인데... 상조회는 불가피하다고 봐요. 상조회가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 이 성격을 건너뛰고 대중투쟁 한다는 것은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불가피하지만 이 성격이 운동으로서 올곧게 자리매김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주말농장모임을 올 봄에 하거든요. 다른 형제들한테 못했던 얘기들도 이런 자리에서는 편하게 하죠. 그런 점에서 이게 양날의 칼이 되는 거죠. 자칫 잘못하면, 면책 받고 나서 뒤도 돌아보기 싫은, 기억하고 쉽지 않은 과거가 될 수 있는 거고... 잘만 되면 ‘내가 새출발을 하는데 있어서 이처럼 편한 공간이 없다’는 애정이 있을 수 있고... 그런 것이 혼재돼 있다는 거죠.
또 하나는 자기과제가 명확하게 제출해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면책 이후의 사회적 차별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대부분 파산은 면책될 건데, ‘면책되고 나서 어떠한 존재조건이 될 거냐’에 대한 인식교육을 하는 거... 특수기록코드가 7년 동안 은행연합회에 남아요. 그거는 법적인 근거가 없어요. 그리고 면책 이후에 신용등급 10등급 됩니다. 보통 신용불량자가 6등급부터 9등급 사이거든요. 그리고 서울보증보험에서 취업보증을 안 서줘요. 이런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 자기과제를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계속 환기시키면서 면책 이후의 사회적 차별에 어떻게 함께 갈 거냐를 고민해요.”
- 대구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일단 조직으로 묶인 대중은 조직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믿게 되고, 활동가들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랬을 때 활동가들이 일상 활동 속에서 어떤 자세로 대중을 만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다. 대중의 불만을 대신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문제를 느끼고 함께 처리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나는 현장에서 간부 생활 많이 하면서 뭘 느꼈냐 하면은... 예를 들면, 작업환경측정 하러 현장에 들어간다 말야. 측정장비 차라고 그러면 조합원들이 ‘안 그래도 정신없이 많이 차고 귀찮은데 또 장비까지 차라고 한다’고 그런다 말야. 그런데 채워주면 채워주는 데로 가만히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발전이 없어. 그런 사람들은 회사편이지... 채우면 ‘김 부장, 이거 하면 뭐하는데? 발전도 없이 현장에 변화도 없는데 이거 뭐 할라꼬 자꾸 하노?’ 이런 사람이, 일반사람은 딱 들을 때, ‘저 새끼 우리 편 아니구나’ 이렇게 할지 몰라도 그런 사람을 꾸준히 대하라고... ‘형님 맞습니다. 맞는데, 현실이 이래 이래 돼서 노동조합이 한계점이 이렇고 이런 겁니다. 이랬을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몇 번을 만나서 현장에 가서 인사하고 ‘이거는 여기 있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그러면 아닌 겁니다. 그런 건 가르쳐 주셔야 됩니다. 나는 부서가 여기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 잘 모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현장모니터 요원이 되는 거야.
또 노동재해를 당해갖고 상담을 하러왔어. 해결사 역할을 해버리면, 그 사람은 고맙다는 것은 느끼지만 노동조합을 자판기로 생각해버리는 거야. 신세진 거로 끝나버려. 이 사람들한테 거만해서도 안 돼. ‘형님, 모르는 거는 죄가 아닙니다. 요거는 부서에 가서 이렇게 하십시오’하고... 2단계까지 가르쳐 주면 이 사람들이 헷갈려서 몰라요. 그렇게 자꾸 다니면 조합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을 갖고 이 사람이 쭉쭉쭉 해 봐요. 해보다 보면 맞아 들어가거든. 노동부나, 회사지정 병원이나, 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이나 똑같이 한편이라는 거를 느끼고 분노를 느껴.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이 투사가 되는 거야. 집회에 안 나오던 사람이 집회에 나와서 끝나고 나면 내한테 와서 눈사진 찍으러 와. 거기서 활동가를 키워나가는 거거든.”
- 대우조선노조 전 위원장 김정곤
대중은 자기 자신이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의미 있는 존재임을 느낄 때 자신을 신뢰한다. 그런 자신감이 자신을 주체로 만들고, 주위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3중 4중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은 그들의 주체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저 결혼이민자들한테 우리 문화만 강요를 했지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농민회나 이런 행사 때 몇 번 주장을 했는데 받아들이지를 않으니까 나도 깝깝하죠. 부스 하나만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그들의 음식도 만들고, 그 나라 민속무용도 보여주고... 그러면서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인식시켜줘야 되는데 안하는 거예요.
저는 애들도 모아가지고 엄마들이 직접 그 나라 말과 문화를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들이 웃기는 게, 엄마에 대한 공경심이 없어요. 일단은 엄마가 한국말을 모르잖아요. 잘 모르니까 표현이 안 되고, 집에서도 남편들이 무시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도 무시를 해요.
장수에 있는 민들레 학교를 이현선씨가 운영을 하시는데... 거기는 어떻게 하냐하면 베트남이면 베트남, 일본이면 일본, 이렇게 아이들을 모아서 엄마가 공부를 시켜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엄마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거예요.”
- 부안 이주여성 한글교실 김영표
대중의 주체화는 투쟁 속에서 급속히 이뤄진다. 철저하게 대중을 신뢰하고 대중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과정만 보장된다면 대중은 철저한 자기규율과 책임성을 갖는다. 7년간 비리재단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였던 에바다학교 교사들과 학생들은 투쟁공동체였던 해아래집에서 이런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결혼하시지 않은 여선생님 세 분이 상주하고, 저는 그 앞에 집 얻어서 살고 그랬어요. 운영은 굉장히 자율적으로 했어요. 자율적이라는 것이 말로만 자율이 아니고, 실제 애들 중심으로 자기들이 다 의논을 하고, 교사들은 옆에서 조언하는 부분을 담당을 하고... 그러다보니까 애들이 어떤 일이 생기면 자기들 스스로 결정할 줄 알고, 거기에 책임질 줄 알고...
우리가 투쟁하는 동안에는 주말이나 휴일에 거의 빈틈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하는데, 오는 사람들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애들이 너무 밝게 지낸다’는 거예요.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면 사회복지시설 애들은 일반적으로 싫어해요. 와서 사진 찍고, 먹을 거 조금 내놓고는 온갖 생색 다 내고, 교회에서 오면 나와서 기도해야 되고...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오면 피곤한 애들은 자도록 내버려 둬요.”
- 에바다학교 권오일
대중 스스로 책임성 있는 결정을 하는 기풍이 만들어지면 그 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양업체인 디젤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두원정공에서는 노동조합이 구조조정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현장라인을 바꿔내고 물량을 조절하는 불가능을 이뤄졌다.
“라인을 바꾸는 것은 회장이 직접 지시해서 하는 것이었는데, 노동자들이 라인을 직접 바꾼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것을 바꾼다 하니까 현장에서는 ‘설마 가능하겠냐’하면서 굉장히 놀랬죠. 실천단과 현장개선위원들이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라인 재배치에 대해서 계속 토론을 벌였어요. 조합원 속에서 라인을 펴는 것에 대해서 반대가 많았지만 개선위원들을 중심으로 라인을 바꾸는 이유를 설명하고 라인 변경에 따르는 문제를 토론했어요.
그렇게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라인이 실제 바뀌고 나니까 조합원들이 좋아해요. 바뀌기 전에는 갇혀 있다는 느낌이 많았고, 소음이나 분진이 작업하는 가운데로 모였는데, 1자로 펴지니까 뻥 뚫린 느낌이 들어서 시원하잖아요. 그전에는 구조조정이 계속되면서 현장 여유인력이 계속 생기고, 매출이 줄어들면서 또 여유인력이 생기고 그랬는데, 라인이 펴지니까 오히려 인원이 더 필요해지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서 매출에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여유인력 문제나 작업 특근 축소 등의 문제를 라인을 펴면서 다 흡수했던 거예요.
......
현장에서 라인별로 실천단이 중심이 돼서 ‘우리가 너무 힘들게 일한다. 물량을 좀 낮춰야 하니 않냐’ 그러면서 물량을 낮춰요. 그런 것이 전체 라인으로 확산되죠. 그러면서 700개 생산하던 라인을 300~400개로 줄여요. 매출이 떨어지는 만큼 물량을 낮추면서 자연스럽게 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왔던 거죠. 또 현장에서 필요하다가 싶으면 실천단과 함께 판단해서 자유롭게 분임토론을 해요. 그렇게 되니까 조․반장 권력이 완전히 무력화 되서 서로 조․반장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 두원정공 이기만
대중을 주체화 하는 것은 투쟁의 중심이 서는 것에서 나아가 대중 스스로 보편적 권리의식을 느껴가는 과정이다. 2007년 50대 남성노동자 6명과 함께 단협투쟁을 벌였던 대구 성서공단노조의 박찬희는 이런 과정이 무수한 토론이 필요한 과정임을 얘기한다.
“우리 아저씨들은 이 회사에서 20년씩 일 했는 기능공들이예요. 나름 기능공인데 10년 동안 월급이 한 번도 안 올랐는 기라. IMF 전에 한 번 오르고, 그 후로 한 번도 안 올랐는 기라. 있던 상여금도 없어져뿔고. 그러니카네 실질적으로 임금 삭감 됐잖아요. 최저임금 받는 이주노동자나 아줌마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해마다 쬐끔 쬐끔씩 올라온 거야. 그러다보니까 나름 기능공인 이 아저씨들 하고 그 사람들 하고 별 차이가 안 나는 거예요. ‘정말 우리는 10년 동안 헛살았구나’ 이게 가슴에 사무쳐서 노동조합도 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런데 ‘우리가 단 여섯 명 뿐이지만, 성서공단노조의 취지는 이러이러 하기 때문에 여섯 명만을 위한 단협을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이 사업장 전체의 다른 노동자들한테도 적용되는 단협을 요구하고, 그 다음 이 단협이 우리 성서공단에 있는 다른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쟁점이 될 수 있는 거를 해야지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거를 일치 볼 때까지 시간이 참 많이 걸렸어요. 투쟁하기까지 10개월 정도가 걸렸거든요. 이 10개월의 과정 동안에도 그 내용이 100%는 안 돼요. 100%는 안 되지만 투쟁할 수 있는 만큼 조금 조금씩...
그러면서 했던 것이 ‘최저임금 위반하는 걸 우리가 나서서 합시다’ 그러니까 ‘뭐, 아줌마들 노조에 들어오지도 않고... 내 노조 들어갔다 하니카네 도로 모르는 척 하고... 현장에서 뭐 얘기했다하면 쪼로록 회사 쫓아가 일러바치는데... 뭐 할라꼬 우리가 하노?’ 그래요. ‘그게 아니고 예. 우리가 지금은 그렇게 갈라져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진짜 이기는 거는 노동조합에 같이 가입해서 같이 하는 게 이기는 거 아입니꺼?’ 이 얘기가 일치되기가 어려웠어요.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있단 말이에요. ‘누구 누구 누구 불법체륜데, 출입국 가가 신고해 버리자. 출입국 가가 신고하면 사장 벌금내제?’ 그러는 거예요. 사장을 응징하고 싶은데 우리 힘이 미약하니 편법으로 생각한다는 게 이주노동자를 이용해서 사장 좀 타격주면 안 되겠냐는 거예요.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 좋자고 이주노동자를 희생 삼아서는 안 된다’ 그래요. 또 다르게 미운 거예요. ‘우리는 투쟁하자고 이카는데, 저거는 잔업 다하고 철야까지 다 해가 월급 우리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 이래가 되나? 뭐 할라고 우리가 가들 봐줘야 하노? 불법인데 저거 나라 보내 뿔믄 되지’그러고... ‘그런 방법 쓰지 말고 정당당당한 우리 방법 써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같이 근로조건이 향상되어 질 수 있도록 하는 기 우리가 노조 하는 이유 아닙니까?’ 이렇게 계속 해야 돼요. 조금만 옆으로 벋어나면 바로 다른 버전으로 또 얘기해요.”
- 대구성서공단노조 박찬희
급속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기존의 조직방식만을 고집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세대와 어떻게 대화하고 주체화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 들어오는 활동가들 보면 우리 세대처럼 운동의 경험을 가져본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시민운동에 대해서 대충알기는 하고, 자기 권리에는 되게 익숙하기는 한데...
요즘 시민운동 사람들 모이면 하는 얘기가 뭐냐 하면... 자기 전망과 조직의 전망을 어떻게 결합시킬 거냐를 주요하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잘못 이해되면 자기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거예요. 나는 사무처장 입장에서 지금 싸워야 될 일도 많고 그런데, 자기 해보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이 얘기는 거꾸로 하면, 자기가 잘할 수 있고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운동을 해야 자기도 행복한 거죠. 이런 게 맞는 건데, 현실적으로 그걸 받쳐주질 못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걸 가지고 얘기를 하면 고민이 되는 거지... 여전히 고민이에요. 그게 제일 어려워요.
그런데 나는 그거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옛날에는 그야말로 헌신과 희생이었거든요. 물론 그 가운데서 보람과 기쁨과 행복은 있겠죠. 아무리 그래도 재미없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자기도 이롭고, 자기가 이로움으로 인해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게 운동이다’는 거죠.”
- 제주참여환경연대 고유기
대중의 주체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는 대중 밖의 지도자는 아닐 것이다. 대중 속에 있는 활동가는 어떤 위치와 역할 속에서 함께 동등한 주체로 변화돼야할까?
“노동운동을 어떻게 사회변혁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죠. 현 시기에서 노동운동으로서의 역할이 뭐냐? 예를 들어 공공노조다 그러면 공공노조에 있는 여성조합원들은 여성운동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주요한 역할이에요. 맨날 위원장이 하라는 대로 집회가라면 집회가고 이런 게 아니고, 자기운동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주체화과정 아니냐는 거죠.
그것도 노동운동 동지들 스스로만 판단하라고 하면 못해요. 다른 여타의 활동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면서 여성주의나 노동운동의 남성중심적 문화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고... 이런 것들이 새여정(새날을 여는 정치연대) 안에서 활동가들의 스펙트럼이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교차되는 측면이 있죠.
아무래도 그것을 하나의 안으로 만들고 노선을 만들 때는 굉장히 힘들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그렇게 훈련돼야지 해요. 그렇게 훈련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새로운 주체가 안 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서 대중들한테 새로운 주체가 되라고 요구하는 거는 말도 안 되는 거죠.”
- 전북 새날을 여는 정치연대 김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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