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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이 응원해주세요

더운 여름을 어떻게들 지내시고 있나요?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한량으로 지내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성민이는 재판 받으러 일산으로 올라왔다가 재판이 연기되는 바람에 다시 내려갑니다.

작년 10월말에 종로경찰서로부터 소환장이 온 열 달째인데도 재판은 진행중입니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차를 끌어내기 위해 밧줄을 몇 번 잡아당긴 것이 전부인 아주 간단한 사건인데도 진행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


처음에는 검찰이 좀 심하다 싶게 저를 갖고 놀았습니다.

일산경찰서에서 첫 조사를 받을 때는 묵비권을 비롯한 저의 기본적 권리를 행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니가 그렇게 잘 났어?’ 하는 식으로 황당한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이 이어졌고, 구가 조사를 한다던 검찰은 연말연초 두 달이 넘도록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 연휴에 제주도에 내려가 있던 저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검찰의 연락을 받고 다시 일산으로 올라왔지만, 검찰은 그후에도 한 달 가량 시간을 끌다가 2월말이 돼서야 조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조사는 30분만에 끝났고, 인텔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젊은 검사는 “지난 일은 잊으시고...”라고 하더군요.

모든 조사를 다 끝내고 나서는 홀가분해서 그런지 몰라도 검사가 좀 안스러워지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갖고 놀아야 법과 권력의 권위가 선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전과가 있는 김성민은 그렇게 다루어야 정신을 차려서 고분고분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대한민국 검찰이 그렇게 만만해보여!”라고 겁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 이유가 어떤 것이었던 구속영장 신청됐을 때 조금 쫄았던 것 하고, 질질 시간 끌면서 짜증났던 것 빼고는 검찰의 의도대로 된 것 같지는 않더군요.


그후 저는 “수 천 명의 성명불상자들과 함께 공모해서”라는 황당한 내용으로 시작해서 특수공용물건손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방교통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공소장을 받았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일로 만들어내는 대한민국 검찰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면서 민변을 통해 변론을 요청하고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실재 밧줄을 잡아당기는 몇 장의 사진을 제외하고는 다른 정황이나 증거도 없는 상황이어서 변호사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김성민을 겁주고, 대단한 뻥뛰기 실력을 발휘했던 검찰은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그들이 내놓은 카드는 증인이었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경기지방경찰청 소속의 사이버담당 경찰이었는데, 그 지리에서 제가 재수 없게 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 경찰의 증언에 의하면 인터넷에 촛불집회 관련한 제 글이 자주 올라와서 확인을 해보니 과거 전과도 있어서 ‘전문적 시위꾼’으로 판단해서 내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작년 6월 어느날 제가 촛불집회에 참석할 것으로 확신한 경찰은 제 집 주위에서 지키고 있다고 미행을 합니다.

“김성민은 집 주변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야산을 넘어 이동한 후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핀 후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 근처에 내렸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순간 얼마나 웃겼는지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습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있는 날은 광화문 일대 교통이 통제되기 때문에 광화문 가는 버스는 연세대까지 밖에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은 촛불집회에 몇 번 참가해봤던 사람들의 상식입니다.

그리고 제가 간첩처럼 넘어갔다는 야산은 정발산공원이라는 곳인데, 아주 야트막한 동네 공원으로 체육시설과 도서관, 문화시설 등이 주위에 많아서 낮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물로 그 공원을 넘어야 지하철역까지 갈수 있고요.

역시 대단한 대한민국 검찰의 지휘를 받는 특출한 대한민국 경찰은 단순 집회참가자를 간첩으로 만들더니, 결국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집회에 참석했는지만을 확인했을 뿐입니다.

제가 어떤 교통수단으로 집회에 참석하는지가 그렇게 궁금했을까요?

집회에 참석한 후에 내가 아주 자세하게 정리해서 인터넷에 올려놓기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아무튼 대단한 대한민국 검찰의 증인으로 나온 특출한 대한민국 경찰은 그것만을 얘기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징역 1년과 벌금 50만원을 구형했습니다.

간첩에게 구형하는 것 치고는 너무 인색한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아주 간단하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재판이 증인도 나오면서 생각보다 길어진 데는 변호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변호사가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검찰에게는 구체적으로 공소 사실을 입증해달라는 것이고, 판사에게는 야간집회 금지에 관한 헌법소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늦춰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적당히 해서 벌금내고 끝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변호사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마다할 필요도 없고, 재판 진행되는 과정도 약간 재미있고 그러더라고요.

7월말에 결심 공판이 예정돼 있었지만 변호사의 요청으로 결심은 연기됐습니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언제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 결심 일정이 잡힐지 아직은 모릅니다.

나중에 벌금으로 내는 돈보다 왔다갔다하는 비행기값이 더 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긴장력을 갖고 저만의 작은 싸움을 할 수 있어서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번 재판을 진행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공안기관이 어떤 수단을 써서 저를 감시하고 통제하려 하더라도 저는 쉽게 감시받고 통제되지 않을 거라는 점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모든 것을 다 공개적으로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사찰을 하고, 미행을 하고, 법으로 겁을 주더라도 저의 모든 것은 그 전에 이미 다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감시당할 것도, 통제당할 것도 없습니다.

아직 용기가 모자라서 공개하지 못하는 저의 욕망에 대한 문제만 빼고 말입니다.

내가 투명하면 할수록 저들은 나를 통제할 수 없을 겁니다.


둘째는 아주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했습니다.

저들은 아주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해서 미행도 하고, 구속영장도 청구하고, 공소장도 정성스럽게 작성하고, 증인도 내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레짐작으로 어떤 식으로 될거다고 미리 판단하고는 적당히 끝내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사와 재판을 해오면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벌금을 내든, 집행유예를 받든, 최악의 경우 구속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저들의 부당함에 맞선 나의 정당함을 옹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고, 큰 일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것이 광화문과 시청에서의 거대한 물결만큼 중요한 나의 소중한 투쟁이었습니다.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고, 나의 투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용산철거민이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투쟁이지만 저의 투쟁을 응원해주세요.


[덧붙여 하는 부탁]

성민이가 조금 후면 비행기 타고 다시 제주도에 내려갑니다. 제주도에 가면 역시나 책 보고, 농사일 조금 도와주고, 어린 조카들이랑 놀아주고 하는 것이 일입니다.

성민이가 워낙 책을 많이 보는데다가 책을 볼 시간도 워낙 많은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마을 도서관에서 가서 다양한 책을 빌려보고는 있는데, 작은 도서관이라서 마음에 드는 책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인터넷을 통해 사서 보기도 하는데, 성민이가 전세금도 다 까먹어서 더 이상 돈이 없습니다.

담배값이나 차비는 부모님에게 타서 쓰고 있기는 한데 책값까지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동지들에게 부탁 하나 합니다.

성민이게 책을 빌려주시거나 사주실 동지가 있으면 대환영입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은 웬만한 거는 거의 다 봤으니까 사양합니다.

저는 사회과학이나 문학만이 아니라 자연과학, 신학, 미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잡다하게 읽는 편입니다.

성민이에게 책을 보내주실 동지들은 아래 주소로 보내주세요.

위문편지도 환영합니다.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954



2009년 8월 5일


일산에서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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