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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랑 같이 놀기

오늘은 조카랑 놀았던 얘기 해 볼게요.

조카가 둘인데 둘째 동생이 저녁이 되면 어린이집에 맡겼던 조카랑 자주 오기 때문에 둘째 조카랑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태어난 지 20개월이 지나서 약간 뒤뚱거리면서도 잘 걸어 다니고, 발음이 가능한 몇 개 단어들을 통해 여러 가지 의사소통도 가능합니다.

6개월 전에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는 낯설어서 삼촌인 저에게 잘 오지 않았지만, 보름 정도 지나서 얼굴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굴을 익혔다 뿐이지 조카 나름대로의 서열이 있어서 조카가 웬만큼 기분 좋지 않으면 같이 놀기 어렵습니다.

조카의 서열은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삼촌의 순서인데, 이 서열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가구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이집에 갔다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 시간이 보통 저녁 5시 정도 되는데, 할머니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부엌에 있고, 할아버지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쉬고 있고, 삼촌인 저는 제 방에서 책을 보거나 프로야구를 보거나 하는 시간입니다.

조카가 오면 모두가 반가워서 조카에게 달려들지만 조카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자신의 서열을 중심으로 반응을 보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엄마(엄마가 없을 경우 할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채 나머지 사람들이 먹을거리와 장난감 등으로 유혹을 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상태가 좋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잠시 놀아주다가 엄마(또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버립니다. 상황이 이런데 이제 겨우 얼굴을 익히기 시작한 서열 마지막인 삼촌과 함께 한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할머니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부엌에 있는데 어린 손녀가 자꾸 달라붙으면 신경이 쓰이는 상황이고, 할아버지도 조카랑 놀아주려고 노력하지만 피곤한 상태에서 어린 아이랑 노는 것이 쉽지도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삼촌이 조카랑 놀아줘야 하는 것이 맞는데도, 조카가 반기지 않는다는 점과 가장 좋아하는 프로야구가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점과 혼자서 조카랑 노는 것이 힘들다는 점 등이 이유가 돼서 뒤로 빠져있기 일수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양심에 찔리기도 하고, 조카랑 친해지고도 싶어서 조카랑 놀아주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장난감이나 인형으로 유혹해도 아주 잠시 뿐이고, 먹을거리로 달래 봐도 다 먹고 나면 이내 할머니나 할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어린이 프로를 틀어줘도 잠시 관심을 보이다가 시들해져버립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다가 작정을 하고 조카에게 달라붙기로 했습니다. 책은 완전히 치워버리고, 좋아하는 프로야구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조카를 위해서 장난감과 먹을거리와 뽀로로(요즘 가장 인기가 많은 어린이 만화영화입니다) DVD 등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완벽하게 조건을 갖추고는 조카의 반응을 살핍니다. 제가 먼저 뭔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조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지를 살핍니다. 그냥 그렇게 조카를 따라 다니면서 시다바리를 하는 거죠. 그러면 조카의 거부감 없이 조카 주위를 맴돌 수 있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카가 저랑 놀아주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그렇게 친해지기 시작하고 날씨가 좋으면 둘이서 바닷가로 놀러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친한 관계라는 것도 조카가 기분이 좋았을 때 확인되는 것이고, 조카의 엄격한 서열체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서야 저는 조카의 서열체계 밑에서나마 신임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신임이 쌓여가던 8월 초순 동생네 부부가 서울에 있는 가구공장과 가구점들을 돌아보기 위해 사흘 동안 떠날 일이 생겨서 조카를 맡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이 여름 쪽파를 한참 수확해야 하는 때여서 밭일도 많을 때였습니다. 결국 합의를 본 것이 오전 동안 제가 조카를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밭일을 마치고 와서 오후에 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결정은 했지만, 혼자서 조카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운명의 날은 닥쳐와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새벽 6시에 밭으로 나갔습니다. 할머니와 떨어질 때 조카가 약간 칭얼거리기는 했지만 삼촌이 성심성의껏 놀아주고, 어른이 삼촌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조카는 저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조카랑 뒹군다는 것이 힘들더군요. 그렇게 1시간 정도 놀다가 아침을 먹이고는 안방에 데려가서 뽀로로 DVD를 틀어주면 조카는 가만히 앉아서 뽀로로를 보기 시작합니다. 저는 누워서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조카가 신경이 쓰여서 잠을 자지는 못합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도 부스럭 소리만 나도 조카를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다보면 조카도 졸리기 시작하는지 하품을 하기 시작하고, 제가 서툴게 조카를 제우기 시작하고, 조금 칭얼거리다가 잠이 듭니다. 잠든 조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면 새벽부터의 힘겨움이 완전히 날아가 버립니다. 왜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 하는지 몸과 마음으로 이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잠들면 1~2시간 정도는 잠을 자는데 그 시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조카는 잠을 자다가도 가끔씩 실눈을 떠서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고, 만약 사람이 없으면 일어나서 사람을 찾기 때문에 조카 주변을 떠날 수 없습니다. 잠을 자는 조카 옆에서 텔레비전을 켜서 보는 것도 조심스럽고, 책을 본다고 해서 머리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조카랑 같이 잠을 자는 것인데, 그렇게 쏟아지던 잠도 조카가 잠드는 9시가 되면 달아나버리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 시간이 그리 안락하지 않게 지나고 나면 조카는 11시쯤 돼서 깨어나서 다시 놀기를 시작합니다. 그때는 저도 몸이 개운해져 있는 상태여서 재미있게 놀 수 있고, 그러다보면 밭일을 마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조카는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저 역시 제대로 된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조카랑 뒹굴다보니, 약간의 요령이 생기기는 했지만, 정말 힘들더군요. 그냥 1~2기간 같이 놀아주는 것하고는 완전 차원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런 피나는 노력의 결과 조카와 저의 관계는 매우 가까워졌고, 저의 서열도 할아버지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으로 높아졌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기에 내 방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조카가 놀자고 찾아오곤 합니다. 그런 친밀함과 함께 은근한 서열상승을 확인하니까 힘들지만 보람이 있더군요.

하지만 엄마 아빠가 돌아오고, 다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고, 저녁에 잠시 들르는 상태로 돌아가면서 조카는 다시 모든 것을 원래로 돌려놓았습니다. 서열체계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저의 생각은 설익은 생각이었음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지요.

“나중에 엄마 아빠도 없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을 때가 또 생기거든. 자식아! 그때는 이 삼촌이 아쉬울걸.”

그렇게 넉 달이 지나서 저는 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조카가 외롭고 무서울 때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조카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그것은 내가 필요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을 삼키고, 내가 필요할 때가 오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8월 그 즈음 엄마 아빠는 가구점에 나갔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밭에 나가서, 조카가 다시 저에게 맡겨졌습니다. 약간 요령이 생겨서 조카랑 놀다가 9시쯤 해서 아침잠을 재우고 마루에 나와 있었는데, 조카의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을 자다가 옆에 아무도 없어서 깨고는 우는 것이었습니다.

선잠을 깨서 우는 것이 가장 달래기 어렵습니다. 장난감을 줘도, 먹을거리를 줘도, 뽀로로를 틀어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엄마만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엄마에게 데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도 조카의 울음을 멈추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한참을 달래다가 “밭에 가서 할머니 볼래요?”라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발을 신기고 밖으로 나왔더니 울음을 그치더군요. 그렇게 저는 “휴~”하고 한숨을 쉬고는 조카의 손을 잡고 밭으로 향했습니다.

8월의 더위가 한창인 그때 10시만 돼도 날은 뜨겁습니다. 그 뜨거운 기운을 받으면서 어른 걸음으로 10여 분이 걸리는 길을 조카와 둘이서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와 얼마 걷지 않아서 조카가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합니다. 20개월이 되어가고 통통한 편인 조카를 안고 걸어가다 보면 곧 팔이 저려옵니다. 그래서 “조금만 걸어갈래요?”라고 물으면 조카는 매몰차게 머리를 가로 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킹킹 거리면서 마을을 벋어나고, 조심스럽게 차도를 지나면 밭들이 이어진 아스팔트길이 나옵니다. 그때부터는 조카도 약간 기분이 풀렸는지 걸어가자고 하면 잠시 걷다가 곧 안아달라고 합니다.

여름의 햇살은 뜨겁고, 바람은 불지 않고, 밭길이라서 그늘은 없고, 안고 걷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팔은 저려오고... 그렇게 20분을 넘게 걸었을 겁니다. 조카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제 품에 안기거나 손을 꼭 잡고 그 먼 길을 왔습니다.

밭에 도착했더니 둘 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순간 모두가 즐거웠습니다. 조카는 신나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새벽부터 밭일을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조카를 보니까 반가워서 입이 벌어지고, 그런 모습을 보는 저도 즐거웠습니다.

시원하게 물을 마시면서 조카를 봤습니다.

“우리는 동지야!”


조카와 그렇게 친해져가면서 노하우가 쌓여 가다보니까 욕심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간사해서 내가 힘든 것은 요령껏 피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교묘하게 찾게 됩니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조카는 찾아오고, 모두가 조카를 반깁니다.

엄마는 가게 일과 조카 보는 일로 피곤해서 친정집에 와있는 시간만큼은 쉬고 싶어서 침대에 드러눕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이 돌아가면서 조카를 보지만, 잠시 잠시 놀면서 은근히 떠넘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놀아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지요.

저 역시 왔다 갔다 하면서 가끔 조카를 보지만, 프로야구가 막바지 순위경쟁이 치열해지던 때라서 야구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조카는 서열이 높은 엄마와 할머니에게 달려가게 되고, 쉬고 싶은 엄마나 저녁을 준비하는 할머니는 조카랑 제대로 놀아줄 수 없습니다. 가끔 삼촌이 하는 일은 부엌이나 침대에 가서 조카를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때어놓는 일입니다. 그러면 조카는 싫다고 하고, 환심을 사기 위한 저의 노력은 무의미하게 끝나곤 합니다.

조카가 우리 집에서 자게 되는 날은 상황이 바뀝니다. 저녁 8시가 되면 야구도 어느 정도 게임의 흐름이 결정돼서 재미가 없어지고, 조카는 안방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면서 조금씩 하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야 저는 조카랑 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조카는 삼촌이랑 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할머니가 하품하는 조카를 재우려하면, 제가 제우겠다고 나섭니다. 어린 조카가 내 가슴에 폭 안겨서 잠잘 때의 기분이 제일 좋거든요. 할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조카를 억지로 때어내서 어두운 내방으로 데리고 와서는 자장자장 하면서 등을 토닥거려줍니다. 칭얼대던 조카가 조용해지면서 내 품에 폭 안깁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기분이 전해집니다.

그런 이기적 상황이 며칠 동안 이어졌더니 조카는 상황을 판단하고는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삼촌이 다가가면 엄마나 할머니에게 달라붙어서 울어버립니다. 제가 또 때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가 어떤 재롱을 부려도 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삼촌 가버릴까요?”라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많이 서운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서열과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제 편한 데로 대하려고 했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까요.

그 후 욕심을 버리고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조금씩 제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화창한 일요일 오전에 조카가 엄마와 함께 놀러왔습니다.

가게에 나가지 않은 엄마는 지난 밤 조카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면서 잠을 자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밭에 가고 없었고, 할아버지는 발을 다쳐서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고, 서울에서 내려와 있던 막내 이모도 그날은 피곤하다고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아하니 제가 조카랑 놀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막내 이모에게 제 서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성심성의껏 놀아주려고 나섰습니다.

그날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밭에 가서 할머니 볼래요?”라고 물었더니 “예”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발을 신기고 요즘은 잘 쓰지 않는 유모차를 끌고 나와서 조카를 태웠습니다.

화창한 가을 날씨가 완연한 일요일 오전, 조카와 저는 즐겁게 집을 나섰습니다.

조카는 신이 나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조잘대기 시작했고, 그런 조카를 보면서 저도 신이 나서 이런 저런 아양을 떨어댔습니다.

마을을 벗어나고 차도를 지나서 밭길로 접어들었더니 가슴이 정말 시원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군데군데 하얀 구름이 떠 있었고, 햇살은 덥지도 차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로 내리쬐고 있었고, 가을바람이 가볍게 불어오면 길가에 피어있는 억새와 강아지풀들이 살랑거립니다.

저만이 아니라 조카도 즐거워서 이것저것을 가리키면서 “저거 뭐?”(요즘 조카가 처음으로 2음절로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 말입니다)라고 물었고, 저는 물어보는 모든 것에 대해서 성심성의껏 대답을 했습니다.

중간에 강아지풀을 하나 뜯어서 손에 쥐어줬더니 그 자그마한 손으로 강아지풀을 쓰다듬기도 하고, 뺨에 대어보기도 하면서 웃어댔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밭에 도착했더니 할머니가 두 손을 벌려 손녀를 맡았고, 손녀도 뒤뚱거리면서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할머니가 저녁에 묻혀먹겠다면서 나물을 뜯기 시작하니까 손녀는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서 조그만 풀들을 조그만 손으로 하나씩 뜯어서 바구니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놀다가 조카가 하품을 하기 시작했고, 할머니도 일을 해야겠다고 해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조카를 다시 유모차에 싣고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내려오면서도 신이 난 조카는 알 수 없는 말을 혼자서 조잘거렸고, 수시로 “저거 뭐?”라고 묻기를 반복했습니다.

완전히 기분이 들뜬 저는 조카를 좀 더 기분 좋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리막길에서 유모차 손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조카의 얼굴을 마주보기 위해서 유모차 옆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내 손을 떠난 유모차는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옆으로 틀어버렸습니다.

“어~”하는 사이에 유모차는 길 옆 담으로 굴러가 넘어졌고, 그와 동시에 조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저는 얼른 달려가 조카를 안았습니다.

조카의 코끝에서 피가 나고 있었고, 놀란 저는 조카를 껴안고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조카의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들었고, 놀란 제 가슴도 조금씩 진정돼 갔습니다.

한 손으로는 조카를 껴안고, 다른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고 내려오면서 “삼촌이 정말 미안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카는 훌쩍이는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이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몇 번을 더 “정말 미안해요”라고 사과했고, 조카는 그때마다 “예”라고 대답해 줬습니다.

울음을 완전히 그친 조카는 다시 기분이 안정됐고, 집에 와서는 엄마가 약 발라주는 것이 재미있다고 더 발라달라고 하는 판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을 있다가 곧 잠이 들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편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조카의 얼굴은 지도처럼 곳곳의 흉터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런 조카 얼굴을 보면서 “정말 미안해”라고 마음속으로 다시 사과를 했습니다.

그날 이후 조카와 저는 더 친해지지 시작했습니다.

서열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조카는 저를 보면서 자주 웃어주기 시작했고, 가끔 기분이 좋으면 저에게 달려와서 안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조카를 보면서 같이 웃어주기도 하고, 조카를 안아주기도 하면서 “나랑 놀아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마음속으로 얘기합니다.


조카가 크면 지금의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을 오랫동안 기억할 겁니다.

조카는 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원칙을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은 혁명의 원리이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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