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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세요? (1회)

 

들리세요? (1회)

 

 

1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방송되고 있는 읽는라디오 ‘들리세요?’의 첫방송을 시작합니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저는 성민이라고 합니다.

히히히

오래간만에 방송을 진행하려니 좀 쑥스럽군요.

 

몇 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알고 있고

대부분이 모르는

읽는라디오 ‘내가 우스워 보이냐?’를 진행했었는데

이제 새로운 형태로 다시 방송을 시도해봅니다.

뭐, 기존에 했던 방식에서 크게 달라지는 건 많지 않겠지만

다시 새로운 형태로 진행되는 이 방송에 단 한 분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읽는라디오 ‘들리세요?’에서 들려드리는 첫 번째 노래입니다.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 없이

아름다운 태양 속으로 음표가 되어 나네

향기 나는 연필로 쓴 일기처럼 숨겨두었던 마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어 비가 와도 젖지 않아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 해져야지 뒤뜰에 핀 꽃들처럼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빛의 민트향이면 어떨까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월요일도 화요일도 봄에도

겨울에도 해가 질 무렵에도

비둘기를 안은 아이같이

행복해줘 나를 위해서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랄라라라라~

 

 

2

 

아, 안녕하세요.

에, 저는 성민이님과 이 방송을 같이 진행하게 될 ‘꼬마 인형’입니다.

방송이란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좀 어색하네요.

더군다나 이건 읽는라디오잖아요. 헤헤헤헤

성민이님이 도와준다고 해서 해보기는 해보겠는데...

무슨 얘기 어떻게 해야될지... 좀 그렇습니다.

 

초반부터 너무 횡설수설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아!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3년 전에 자살을 한 ‘꼬마 인형’이라고 합니다.

자살 할 때 나이가 17살이었는데, 지금 나이가 20살 되는 건 아니고...

자살 이유는 여러분이 뉴스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이유고요...

뭐, 암튼 그렇습니다.

아, 성별은 여자입니다. 하하하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까 이런 것도 말씀해드려야겠네요.

 

“이건 뭐야?” 하시는 분계시겠죠?

여러분이 믿는 말든, 뭐... 그렇습니다.

“무조건 나를 믿어라!”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증명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지만...

 

음... 제가 살고 있는 여기는 소위 말하는 구천이라는 곳인데요.

왜 있잖아요, 죽은 사람 중에 한이 많으면 막 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떠돈다는 그런 곳.

그런 덴데요, 여기도 의외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해야 하나요?

암튼, 여기서 몇 년 째 그냥 살아가다가 작년에 성민이님이 진행하는 읽는라디오라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나름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그 방송이 중단 돼버리는 바람에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성민이님에 같이 한 번 방송을 다시 시작해보자고 제안해 오셔서 그냥 덥석 물어버렸죠. 히히히히

 

이런 황당하고 이상한 방송을 하는 이유는요,

음...

그냥, 누군가랑 얘기하고 싶기도 하고

그냥,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싶기도 해서예요.

여기 있으면 많이 외롭거든요.

물론, 살아 있을 때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무인도에 난파해 있을 때 무작정 누군가 읽을 거라는 기대로 사연을 적은 쪽지를 바다에 띄워 보내는 그런 거.

뭐, 그런 비슷한 마음인데...

이 방송은 제가 사연을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바다에 띄워 보낸 사연이 닿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그에게 도움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사연을 듣기라도 해주는 곳.

뭐, 그런 곳이길 바라는 마음이죠.

자기 앞가림도 못해서 17살에 자살한 애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쵸?

 

에고 에고, 이 방송에 대해서 설명하려다보니 말이 좀 길어져 버렸네요.

자, 노래 하나 더 들어볼까요?

김광석이 부릅니다.

‘나의 노래’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자그만 아이의 울음읊음 속에서

마음에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거미줄처럼 얽힌 세상 속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가지처럼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수많은 진리와 양심의 금문자

찬란한 그 빛에는 멀지 않으리

이웃과 벗들의 웃음 속에는

조그만 가락이 울려 나오면

나는 부르리 나의 노래를

나는 부르리 가난한 마음을

 

그러나 그대 모두 귀 기울일 때

노래는 멀리멀리 날아가리

노래는 멀리멀리 날아가리

 

 

3

 

어쩌다 그는

혈액형을 맹신하게 되었을까?

 

어쩌다 그녀는

커피에 소금을 넣어 마시는 취향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다 그는

담뱃갑에마저 자기 이름을 써놓는 버릇을 갖게 되었을까?

 

어쩌다 그녀는

줄무늬 스타킹에 줄무늬 치마, 줄무늬 스커트가

환상적인 매치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버릇, 어떤 취향, 어떤 성격은

그의, 그녀의

스토리를 듣는 순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놀부 이야기에

그가 놀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스토리가 덧붙여졌다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았을지 모른다.

 

이해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김은주씨가 글을 쓰고 김재연씨가 그림을 그린 ‘1cm'라는 책에서 뽑아온 글이었습니다.

이 방송이 이 글과 같은 방송이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방송 말이죠.

 

세월호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요.

그 중에 제 또래들이 많아서 기분이 더 그렇더라고요.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분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강원도 군부대에서는 제대가 얼마 안 남으신 분이 엄청난 일을 벌이시기도 했지요.

제가 왕따를 오랫동안 당해봐서 잘 아는데요, 왕따 당하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거든요.

너무 잰체 하거나, 뭔가 좀 이상하거나, 아주 만만하거나, 뭐, 한마디로 밥맛인 애들이 많이 당하죠.

그런 맛밥인 왕따분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이 되고 싶기도 합니다.

 

귀신이든 사람이든 다 사연이 있잖아요.

그 사연들을 들어드릴게요.

이해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귀를 열고 당신의 얘기를 들을게요.

그냥 그것만 할게요.

 

 

4

 

다시 성민이입니다.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진행하니까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좀 정신이 없으시려나요?

제 입장에서는 혼자만 하다가 같이 진행하는 분이 생겨서 너무 좋은데...

‘꼬마 인형’님이 엄청 귀엽고 이쁘거든요. 낄낄낄낄낄

뭐, 귀신이기는 하지만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차, 이 얘기하려던 거 아닌데...

죄송합니다. 첫 방송이 좀 정신이 없습니다.

 

책 소개 하나 할게요.

얼마 전에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인데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라는 조금 유치한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200쪽 약간 넘을 정도로 부담 없는 두께의 책인데다가

그냥 편하게 자기 얘기하듯이 술술 써내려간 글이라서 쉽게 읽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요.

휴우~

 

초등학교 5학년 때 성폭행을 당한 아이의 얘기입니다.

그 아이는 초경보다 먼저 낙태를 경험하게 되고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포르노에서 볼 수 있는 온갖 형태의 가학적인 섹스를 경험하게 되고요,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까지 성폭행 당해야했고요,

수능시험 전날에는 신혼 분위기 내보려고 호텔 스위트룸까지 따라갔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바닥에 오줌을 싸면서까지 허벌나게 맞기도 했고요,

대학 들어가서 교수한데 어렵게 사실을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했더니 교수가 집에 연락을 하는 바람에 끌려가서 기절할 정도로 맞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9년 동안 지옥을 경험하고 나서 다행히 탈출에 성공한 은수연씨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쓴 책이었습니다.

수연씨를 그렇게 몰아갔던 그 상대는 교회에서 목사로 있었던 아빠였고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끔찍한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아주 생생하게 적어놓았더군요.

아~ 그런 글을 읽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건 아시겠죠?

그런데 수연씨는 참 담담하게 글을 쓰셨더라고요.

초월해서 그런 게 아니라 뼈속까지 인이 박힌 아픔을 꾹 눌러 참으면서 쓰는 글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힘들게 수연씨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수연씨가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 과정을 같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수연씨가 아빠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 정말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 슬픔과, 그 분노와, 그 아픔과, 그 힘겨움과, 그 절절함이 다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수연씨는 마지막에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용서를 한다고 얘기했지만 그 용서는 완벽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쉽게 용서하기 어렵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이 붙들고 있는 그 문을 넘어가야 하기에

용서라는 방식을 통해 발버둥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수연씨의 그 용서가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수연씨가 경험했던 지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저도 만만치 않은 9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 구렁텅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에 묶여 있는 이 끈들을 놓아버려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수연씨가 자신의 경험으로 그 방식들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용서하는 과정이 더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그 과정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 보듬어 안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보면서 다른 이들도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것을

수연씨가 얘기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방송은 그런 수연씨의 얘기를 듣고 시작하게 된 방송입니다.

 

수연씨가 이 방송을 보게 될 일은 없겠지만

저에게 용기를 준 수연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수연씨를 위해 준비한 노래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Gracias a la vida’, 비올레타 파라의 목소리로 듣겠습니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el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el hombre que yo am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oido que en todo su ancho,

graba noche y días, grillos y canarios,

martillos, turbinas, ladridos, chubascos,

y la voz tan tierna de mi bien amad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el sonido y el abecedario,

con él las palabras que pienso y declaro

madre, amigo, hermano,

y luz alumbrando la ruta del alma

del que estoy amand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marcha de mis pies cansados,

con ellos anduve, ciudades y charcos,

 

playas y desiertos, montañas y llanos,

y la casa tuya, tu calle y tu pati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el corazón que agita su marco,

cuando miro el fruto del cerebro humano

cuando miro el bueno tan lejos del malo,

cuando miro el fondo de tus ojos claros.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í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ustedes que es el mismo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io canto.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5.

 

첫 방송이 조금 산만했지요?

다음부터 조금씩 나아질 겁니다.

아! 이 방송은 매주 목요일에 보실 수 있습니다.

성민이와 꼬마인형이 열심히 준비해서 나름 괜찮은 방송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주 목요일에 좀 더 깔끔해진 방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성민이와 꼬마인형의 목소리가 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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