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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유가려씨가 오빠인 유우성이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전달 받았다는 법정진술로 영화는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백이 어떻게 조작됐는지, 또 그 거짓을 가리기 위해 또 다른 거짓과 조작들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정공법으로 들춰낸다.
피해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뿐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국정원에까지 겁 없이 달려들었다.
다행스럽게 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면서 간첩조작사건의 진실이 일정정도 드러났지만, 가해자들은 여전히 뻔뻔하다.
그 뻔뻔한 가해자들의 얼굴에 또 다시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사과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영화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과거 1970년대 간첩조작사건들도 들춰냈다.
지금의 간첩조작사건과 과거 간첩조작사건에 김기춘이라는 동일인물이 등장한다는 점도 보여줬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결과 이런 끔찍한 일이 다시 부활하고 있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영화였다.
오래간만에 볼 수 있었던 힘있는 다큐멘터리였다.

 

지배자들의 추악한 모습에 화가 나고
삶의 박살난 피해자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야 하는데
이상하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마음이 추웠다.

 

영화는 피해자들과 냉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럼으로서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속에서 피해자들은 그저 등장인물 중 하나로 지나갈 뿐이었다.
반면에 가해자들에게는 집요하게 거리를 좁히려했다.
그들이 계속 밀쳐냈기 때문에 더 다가갈 수 없었지만
그들의 추악한 민낮을 드러내려고 용감하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고통에 천착하지 못하는 응징은 차가운 멸시만 남길뿐이었던 것이다.
가해자들에게서 조금은 떨어져서 피해자들에게 좀 더 다가갔더라면 훨씬 뜨거운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만약 인간적 연민에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이 걱정되었다면
‘어떻게 역사는 후퇴하며 끔찍한 일을 반복했을까?’
‘간첩 하나 조작하는 일이 뭐가 대수라고 그들은 왜 그렇게 목매달았을까?’
차라리 이런 문제에 집중했더라면 그렇게 추운 영화는 아니었을텐데...

 

뜨거운 대중의 민주화 광장이 펼쳐진 요즘
광장이 닫혔을 때의 너무도 차가웠던 기억이 새롬새롬 떠오른다.
투쟁의 현장에 함께하지 않는 방관자의 싸늘함이겠지만
우리를 분노케 하는 저들의 추악함이 아니라
우리를 뜨겁게 하는 내 옆의 간절함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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