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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

소중한 것
  
장혜경 노동자의 힘 회원  



3년 전 늦은 나이에 딸아이를 낳은 후 달라진 게 많다. 집안 생활은 완전히 딸아이 중심으로 바뀌었고, 정신적·육체적 에너지의 절반 이상은 육아에 쏟고 있다(아니 쏟을 수밖에 없다). 출산 전과 다르게 아기(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중요한 변화는 또 있는데, 그건 세상을, 운동을 바라보는 눈이 좀 바뀐 것이다.

난 아이를 낳고 나서야 처음으로 '한 인간은 모두 너무나 소중한 존재구나'란 걸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낀 것 같다. 학교시절에 배운 '천부인권' 어쩌구가 예전에는 그냥 '당위'로 다가왔다면, 이제는 당위가 아닌 절절한 현실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사회 구조와 모순을 분석하면서 운동에 접근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접근방법(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억압, 제약, 파괴하는 사회구조와 권력,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을 가지게 되었다. 즉 이전에 나에게 운동이란 이론적이고 거시적인 것에서만 출발한 것 같은데, 이제는 '한 개인의 소중한 삶'이라는 보다 현실적이고 미시적인 것에서부터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육아휴직 중 읽은 충격적인 한 신문기사는 나에게 '육아의 기본은 무엇인가'와 더불어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 사이의 관계맺음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었다. 그 충격적인 신문기사의 대강은 이러하다.

"로마의 어떤 황제(어떤 황제인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가 아이들의 언어발달을 실험하기 위해 일군의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격리시켜 실험을 했다. 보육자들은 아기들에게 전혀 말도 걸지 않고 안아주지도 않은 상태에서 젖만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아기들이 모두 죽었다."

사람에게, 특히 유아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순히 의식주만 해결해준다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고 성장할 수 없음을 실험 결과는 말해준 것이다. 이 기사를 읽고 나는 '육아의 기본은 사랑과 보살핌, 상호작용'이란 이미 알려진 대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며, 나아가 모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제도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다 자란 사람들에게야 유아들같이 사랑과 보살핌이 죽음과 삶을 가르는 절대적 조건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관계에서 사랑과 보살핌, 이해와 배려는 생존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삶을 '삶답게'하는, 굉장히 중요한 무엇이 될 듯 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동사회를 그리고 우리 조직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활동가들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동지 한 명 한 명을 참다운 삶(운동)의 주체로 서게 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유로(또는 의도치 않게) 대상화하거나 차별하거나 배제시키는 모습은 없는가? 그로 인해 어려운 조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개인에게 위축감과 상처를 안겨주고 있지는 않은가?
운동하는 동지들 서로에 대한 상호 이해와 존중, 배려하는 관계형성, 조직 문화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나 역시 아직 생각만 갖고 있을 뿐 몸은 제대로 따라오고 있지 못한 형편이지만. 그러나 야만성과 폭압성을 더해 가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나가야 할 우리들을 지탱해 줄 '근저'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먼저 깨어서 실천하는 우리가 서로 사람다운 관계를 형성해 나갈 때, 우리가 염원하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주체화도, 자유로운 개인들의 해방공동체도 실현가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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