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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공병호



기업가정신은 실종되었는가

지도자는 좋은 시절을 최대한 오래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냉철하고 세심하게 키를 잡아야 한다. 어쨌든 변해버린 뒤에 그것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로 치닫는 로마 제국을 그린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가 가슴에 와 닿는 문장이 있어 인용해 보았다. 현대적 의미로 좋은 시절이란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일까? 돈을 벌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곳을 향해 분출되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시장에서 기회를 읽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며 사업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좋은 시절에 해당할 것이다. 그들이 감수한 위험의 대가로 여러 사람들이 혜택을 나누어 갖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면, 그런 사회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
반대로, 좋지 못한 시절이란 어떤 때일까? 행동한 적도 없고, 행동하고 있지도 않으며, 다만 입으로 선해(善行)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시절이 그런 때일 것이다.
얼마 전 외국인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연구해 온 그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인데, 내게 이렇게 물었다.
"한국 사회는 기업가정신의 상실로 톡톡히 비용을 치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번 사라진 기업가정신을 복원하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은데 이런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여요. 경제성장률 같은 숫자보다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더욱 주목해야 할 텐데."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동감입니다. 그런데 경기가 조금 풀리기라도 하면 소규모 창업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해 활발한 편입니다. 개개인의 기업가정신은 왕성한 편이죠, 직장인들도 기회만 있으면 무엇이든 자기 사업을 해보려고 하거든요, 다만 어느 정도 자본을 갖고 있고 규모 있는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문제지요. 당신이 말하는 기업가정신의 상실이란 여력 있는 사업가나 기업을 두고 하는 소리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엔진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이다. 물질이란 정신과 마음의 산물일 뿐이며, 자본주의를 견인하는 정신과 마음은 일단 가라앉으면 여간해서는 다시 점화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을 일으켜 사람을 고용하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돈을 벌려는 욕구는 상당히 가라앉게 될 것이다. 'making money'를 향한 열정은 여전하겠지만 'making stuff'를 통해 돈을 벌려는 열정은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누구 좋으라고 사업을 하나

바몰 교수의 논문 [기업가 정신 : 생산적, 비생산적 그리고 파괴적]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기업가란 자신의 부와 권력, 명예를 확대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기업가가 목적 달성을 위해 선택한 수단이 사회적인 측면에서 생산물을 추가하느냐 아니냐는 그들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즉 그들의 선택이 사회적 생산에 실질적인 방해가 될지라도, 사적 이익의 추구가 사회적 관점에서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그들이 고심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가정신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슘페터 류의 기업가정신, 즉 혁신과 개선을 통해서 발휘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뇌물이나 부동산 투기처럼 '비생산적인 기업가정신' 역시 엄연히 기업가정신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 사회의 역동성이나 발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기업가정신이 생산적인 분야를 향해 분출될 때 비로소 한 사회의 발전이나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그렇다면 기업가가 생산적인 분야와 비생산적인 분야에 에너지를 안배하는 데는 어떤 요소들이 영향을 미칠까? 바로, 사회가 지불하는 보상 체계이다. 보상 체계에서는 수익률도 주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회적 인정 같은 요소도 중요하다.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보상 체계가 잘 되어 있는 경제는 그렇지 못한 경제보다 훨씬 빠르게 번영과 성장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바몰 교수는 이렇게 부연 설명하고 있다.

어떤 시점과 장소에서 기업가 활동의 내용을 결정하는 요인은 기업가 활동에 대한 보상 체계이다. 활동 A와 B가 있을 때, A를 통해 많은 부를 벌어들이지 못한다거나 사회적인 불명예를 받는다면 기업가는 B에 투입하는 경향을 띤다. 그러나 만약 B가 A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생산이나 복지에 덜 기여한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어려움을 감내할 만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축적한 부를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사람들은 '욕먹어가면서 누구 좋으라고 사업을 하나'라고 자조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 생산적인 활동대신 투기 열풍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반복, 순환될 것이며 돈을 안전한 곳에 넣어둘지는 몰라도 사업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안정 지향적인 성향은 사업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직업 선택에도 나타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의대나 한의대를 최우선으로 친다. 나는 가끔 공급 과잉 때문에 한 집 건너 개인병원이나 한의원이 즐비한 동네는 상상하곤 한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나 공무원도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고시와 자격증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리 사회가 안정에 큰 가치를 두고있다는 의미다.
안정이란, 부를 나누어 갖는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많은 변호사가 있다 해도 그들이 새로운 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들은 존재하는 부를 나누어 갖는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이 위험을 피해 안정을 취하는 쪽으로 간다면 그 사회는 정체를 벗어날 수 없고, 나는 향후 10여 년 간 이런 추세가 계속 되리라고 본다.
위험을 감당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기업 관련 제도를 볼 때 그 순기능과 아울러 역기능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제도의 선진화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런 일련의 조치들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 데 주목하게 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선의로 시작된 정책들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로마의 걸출한 영웅이었던 카이사르는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그 일을 시작한 애초의 동기는 선의였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기업가들은 점점 더 대형 투자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투자 기회의 부족이라는 이유도 있겠으나, 투자 이익은 주주와 함께 나누어도 투자 실패의 책임은 결정권자에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면서 자시의 행동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위험을 감당하려 하겠는가?
현금 중시 경영의 복귀하는 대세를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리스크 회피(risk-aversion) 사회'로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움직임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위험이 없다면 과실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와 리스크를 기꺼이 안으려는 사람들이 현대판 모험가이자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는 무척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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