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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기 - 추락의 7가지 원인

한국의 위기 - 추락의 7가지 원인

공병호



위협받는 자유시장경제

익명의 다수로 이루어진 한 사회가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번영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실 자유시장경제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내일 좀더 나은 생활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완전한 자유시장경제를 구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이를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면 된다.
이상사회 구현이라는 높은 꿈을 좇기 보다는 구체적인 악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리해야 할 부분을 정의하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사회 구석구석을 고쳐나가면 된다. 그러나 이렇듯 당연한 말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인과 자본주의의 만남은 기적 같은 우연이었다. 같은 민족이면서 다른 체제를 선택했던 북한이 오늘날 겪고 있는 가난과 비참함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 될 수도 있었다. 이 정도 인간적인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운 일일 수밖에 없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서독의 부흥을 두고 "종전 후 독일이 그 결정적 순간에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한 자연스러운 능력을 지닐 수 있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행운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한반도 남쪽이 해방이라는 결정적 순간에 자유시장경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당시는 별다른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다. 체제의 선택은 여전히 중요하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주의 혹은 유사 사회주의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이 깊은 고뇌 없이 좌향좌로 체제를 변질시켜 나간다면, '번영의 길'이 아니라 '예종(隸從)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독일의 역사를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역사로부터 충분히 배웠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정확하다는 독일인들은 결국 나치 제도를 만들고 가난으로 돌진해 버렸다. 독일까지 갈 것 없이 가까이에는 극도의 비참을 겪고 있는 북한이 있다.
'제3의 길'이나 '중도 노선' 같은 단어는 정치인들에게 매력적이다. 좌건 우건 극단으로 비추어지면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중도나 제3의 길 같은 슬로건은 또 하나의 정부 간섭주의를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가부장적인 권위를 갖고 이런저런 일에 개입하는 한 제도의 사회주의화 즉 유사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빈곤으로 바로 연결된다.
나누어 가질 것이 없을 때는 저마다 자기 앞가림에 급급하지만, 부가 축적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라는 다수결의 원칙으로 타인의 부를 '강탈'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아던 셀든의 [민주주의의 딜레마]는 한국 사회에 대단히 시사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수의 폭정을 뜻한다. 조직화된 그룹들은 조직화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고, 혹은 기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정부로부터 편익을 얻어낸다. 더욱 잘못된 점은 조직화된 사람들이 단기적인 이익을 강탈함으로써 모두에게 관련된 장기적 이익을 방해하도록 부추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동의를 얻은 입법이 본격화되어 '약탈'이 시작되면 창조적인 소수에 의한 자본 투자는 매우 위축될 것이다. 자본을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에게 보다 효율적이 도구와 기계를 제공해 근로자 1인당 자본장비율을 높인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생산량과 효율성을 높이면 임금이 인상되어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투자가 위축되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궁금한 것은,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이미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를 비난하고 체제의 변질을 꾀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주의 이념에 매료되는지,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원시 본능의 부활

자유시장경제는 인류 역사상 극히 짧은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다.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에 비유하면 시장경제는 불과 3분을 차지할 뿐이다. 나머지 23시간 57분 동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해 온 것이다. 바로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나누어 갖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체제에서 자원 배분을 담당하는 사람은 국왕이나 부족장, 혹은 전제군주였다. 필자와 김정호 박사가 공동으로 집필한 [갈등하는 본능]의 내용을 인용한다.

인류의 진화 역사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풍요와 안전의 시대는 마지막 3분에 불과하다. 그 3분은 너무나 짧다. 23시간 57분 동안 난공불락으로 만들어져버린 유전자구조가 현대의 3분 동안에 바뀔 수는 없다. 구석기의 인류와 현대인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변화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원시 시대에 만들어진 본능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러나 원시 본능을 탈피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은 늘 많은 에너지의 소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전반에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이 그토록 빠르게 대중들의 마음속을 파고들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특별한 배움이나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더욱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체제가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라는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들의 마음속에 화려하게 포장된 사회주의 정책들은 대중들의 심금을 울리고 갈채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체주의 정부개입주의의 뿌리에는 제3의 특별한 현자가 존재하고 그의 계획이나 지시 혹은 명령에 의해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란 깊은 믿음이 존재한다. 인간이 생물학적 진화를 멈춘 지는 오래되었다. 인간이 새로운 제도와 관습 그리고 관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화적 진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이성의 힘을 이용해 익히고, 배우고, 깨우치지 않으면 자본주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기업가로서 시장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사람조차 타인을 이용하고 자기 이익에 지나치게 충실히 살아가는 장사꾼들을 보면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 시장경제가 가진 순기능을 꼼꼼히 다져보지 않으면 장사치와 거래로 이루어진 자본주의를 결코 이해하거나 수용할 수 없다.
원시 본능은 여전히 인간의 심성에 뿌리 깊이 남아 있으며 언제든 분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성과 교육의 힘으로 시장경제의 작동 원리와 편익을 자각하지 않고, 폐해를 줄이는 방법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구하지 않으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원시 본능으로의 회귀한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갈등하는 본능]을 다시 한 번 인용해 본다.

시장과 교환은 우리 사회의 골격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거대하다. 그런 거대한 사회는 시장이라는 끈으로 엮여 있다. 수천만 또는 수억의 사람들과 서로 누군지 모르면서도 분업과 교육, 즉 시장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시장은 상업주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원시 사회의 원리는 정반대이다. 그것은 자급자족적인 사회였다. 나와 나의 가족이 필요로 하는 만큼만 생산해서 먹어치우면 그뿐이다. 자급자족을 하는 한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사회는 불필요하며 또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또 사회 규모가 작았기에 사회생활은 모두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교환도 냉정한 시장교환이 아니라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인간은 현재와 같은 현대 인류가 되기 수백만 년 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생활해 왔다. 두뇌의 생물학적 구조가 그런 생활에 적응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인간의 많은 두뇌활동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미한 자동반응을 되풀이하곤 한다.
거대한 사회와 분업, 시장, 상업주의는 서로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것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가능해졌다. 또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도 그것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상업주의를 어지간히도 싫어한다. 이것은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본능적 반응일 것이다.

현대인들 역시 소규모 사회에 대해 강한 향수와 미련을 가고 있다. 그런 향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참담한 결과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시 본능은 여전히 우리 심성 속에서 호시탐탐 부활을 노리고 있다. [진화냐 창조냐]에서 민경국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시인들은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집단주의자였다. 따라서 연대규범이 압도적인 도덕 시스템이었다. 지도자 또는 수령은 누가 얼마만큼 받을 것인가를 결정했다. 나누어 먹기식 원리가 존재했다. 선물행위도 존재했다. 침팬지 군단과 같이 사적 소유권 규칙도 작용했다. 교환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교환은 오늘날과 같은 비인적 내지 익명의 교환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의 교환이었다.
이상과 같이 지배와 복종의 원리를 주축으로 하는 원시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메커니즘은 인적(personal)인 것이었다. 사적 영역과 공공영역의 구분이 전혀 없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갖는 삶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룹 규모가 그룹의 존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하이에크의 진화적 선별 기준인 인구의 규모는 이 원시 사회의 진화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회 속에서 3백만 년 내지 4백만 년 동안 살았다. 이러한 삶을 지배하던 규범 시스템은 이러한 삶에 적응되었고, 또한 이와 같이 오랜 기간 동안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지배했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 속에 깊이 고착되었고, 따라서 아직도 오늘날의 인간들의 감정 속에 정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이에크는 이러한 감정을 타고난 본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성의 힘이 부족하고 감성에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원시 본능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문명화된 나라라 하더라도 역사의 어느 기간은 사회주의화를 실험할 때가 있다. 바로 원시 본능이 집단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때이다. 시장경제와 관련된 지적 인프라가 척박한 이 땅에서 우리는 원시 본능의 화려한 부활을 목격하고 있다.

'완벽한' 세계를 꿈꾸는 조급한 이상주의

인간이란 결코 현 상태에 만족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토록 원했던 것이라도 일단 손에 넣으면 감사는커녕 시큰둥해지곤 한다. 많은 종교와 고전들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론 건강한 욕심과 야망을 갖고 현 상황에 끝없이 불만족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인간의 특성은 자본주의에 대한 끝없는 불평과 불만을 낳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소규모 부족을 벗어나면, 시장경제 이외에 생존할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체제를 강렬히 염원하게 된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생각처럼 우아할 수는 없다. 그곳에는 번잡함과 혼란스러움, 불평등과 비열함 등 온갖 종류의 악행들이 널려 있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세상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더럽기만 하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을 벗어나 완벽한 세계를 꿈꾼다.
그 같은 동경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상상의 세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대개 단번에 모든 것을 일소하는 '싹쓸이'의 모습을 띠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개량이나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이상향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성향은 결코 시장경제와 함께 할 수 없다.
자본주의를 채택했기 때문에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 체제에 감사하기보다는 상대적인 불평등에 불만을 터뜨리기 쉽다. 원하는 조건이 만족되지 못하면 그 원인인 제도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
부란 천부적인 권리가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체제 변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비롯해 보통 사람들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 고민하고, 문제 해결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리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뿌리 깊은 전통

자본주의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기 때문에 실용을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반면 사회주의는 명분과 함께한다. 실용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직접 행동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나타낸다. 명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행동보다는 토론이나 담론을 즐기는 편이다.
한국인은 본래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었을까? 실용을 중시했을까. 명분을 중시했을까. 조선 시대의 한국인이 우리 모습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 모습에서 어느 정도 추축해 볼 수는 있다.
원산지 중국과 수입국 한국이 주자학을 어떻게 대했는지 살펴보자. 조선은 민생과 상관없는 제사와 기일 따위를 두고 피비린내 나는 당쟁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필요하기도 했겠지만 한국인의 원형에 부합하기 때문에 주자학이 승했던 것은 아닐까. 주자학에 의해 조선은 더욱 화려한 명분을 꽃피울 수 있었다.
[중국인의 상술]을 쓴 강효백 교수는, 주자학의 창시자 주희(朱熹)를 최고의 사표로 삼으며 주자가훈(朱子家訓)을 평생의 교과서로 삼는 안후이 상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안후이 상인들 가운데 사업가로 큰 족적을 남기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강효백 고수에 의하면, 안후이 상인들은 눈부시게 성장하다가 어느 순간 급속히 몰락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자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벌어 잘 살기 바라는 대다수 중국 상인들에 비해 안후이 상인들은 중국 내에서도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유상(儒商)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안후이 상인은 주자학의 종법주의와 소농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돈을 조금 벌면 만족하고, 더 이상 재투자를 하려 하지 않는다. 사업을 더 이상 확장하지 않는 것을 마치 상도와 상덕으로 여긴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거부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가슴 한쪽에는 상인을 천시하는 자기비하와 자기학대 의식이 웅크리고 있다. (중략)
안후이 상인은 돈깨나 모았다고 생각되면 곧장 부나방처럼 관직의 길로 나섰다. 이웃 저장이나 광둥 상인들처럼 상업만을 인생의 유일한 생업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번 돈으로 관직을 사든지 의연금이나 기부금을 많이 바쳐 조정의 환심을 사는 데 몰두했다.

주자학을 신봉했던 조선과 중국의 안후이 상인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최고의 경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일은 충분히 값지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 업에 일가를 이루거나 조금만 이름이 알려지면 바로 정치행을 택한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기보다는 ‘감 놔라, 배 놔라’를 외치는 사람들이 날로 늘고 있다.
주자학은 여전히 한국인의 의식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실천보다 말이 무성하고, 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쿠바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났지만, 그보다 훨씬 발전된 교조주의와 명분주의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북한을 봐도 알 수 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500년 조선은 머리 아픈 망건과 기타 망하기 좋은 것뿐이요, 주자학으로 주자 이상으로 발달시킨 결과는 손가락 하나 안 놀리고 주둥이만 가게 하여 민족의 원기를 소진해 버리는 남는 것은 편협한 당파 싸움과 의뢰심뿐이다.
오늘날 보아도 요새 일부 청년들이 제정신을 잃고 러시아로 조국을 삼아 레닌을 국부로 삼아서, 어제까지 민족혁명은 두 번 피 흘릴 운동이니 대번에 사회주의 혁명을 한다고 떠들던 자들이 레닌의 말 한마디에 돌연히 민족혁명이야말로 그들의 진면목인 것처럼 들고 나오지 않는가.
주자님의 방귀까지 향기롭게 여기던 부류들 모양으로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게 되니 한심한 일이다. 나는 반드시 주자를 옳다고도 아니하고 마르크스를 그르다고도 아니한다. 내가 청년 제군에게 바라는 것은 자기를 잊지 말란 말이다. 우리의 역사적 이상, 우리의 민족성, 우리의 환경에 맞는 나라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밤낮 저를 잃고 남만 높여서 남의 발뒤꿈치를 따르는 것으로 장한 체를 말라는 것이다. 제 뇌로, 제 정신으로 생각하란 말이다.

빈약한 개인주의의 전통

한국 역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존재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기서 개인주의란 ‘인류를 구성하는 우선 요소가 사회적 집단(국가, 계급 등)이 아니라 개인(분리할 수 없고 서로 환원되지 않으며 실제로 홀로 느끼고 행동하며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신념에 기초한다.’
개인주의란 개인이 자율적 능력과 독립적 자질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한 개인의 자유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것이다. 반면 공동체주의는 개인을 국가나 조직의 구성 요소나 수단 혹은 도구로 여긴다.
서구 문화에서 개인주의가 하나의 지배적인 특징으로 등장하는 시점은 중세가 끝나는 17~18세기 무렵이다. 서구 문명이 사유재산을 가진 시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의 씨앗은 이미 뿌려져 있었다. 반면 동양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臣民)이 오랜 세월 면면히 존재했다.
개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사회적 협력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충실하게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타인의 이익에도 기여할 수 있게 된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개인주의는 사회적 협력을 꾀하고 복잡한 사회관계를 강화시키는 철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프르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예종의 길]에서 개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리가 말하는 개인주의, 즉 사회주의나 그 밖의 모든 집단주의 형태와 대립되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무관한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주의란 어떤 것인가? 개인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개인의 의견과 취향은 그의 고유한 것임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자신의 개인적 재능과 성향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중략) 모든 개인주의 철학이 기초하는 근본적 사실은 정해진 한계 안에서 개인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자유롭게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점에서 개인의 목적은 절대적이고 타인의 권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을 자신의 목적에 대한 최종적 심판관으로 인정한다는 것, 가능한 개인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그 자신의 생각이어야 한다는 것, 바로 이런 것이 개인주의의 본질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는 집단주의적 색채가 곳곳에 배어 있다. 타인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성에 바탕을 두고 다른 의견을 비판하기보다는 폭력적 언어로 타인을 비방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게 일어난다. 때로는 집단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 특정인을 ‘왕따’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얼마 전 어느 국책 은행원의 아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습관적으로 폭탄주를 강요하는 상사로부터 남편을 보호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연말을 맞아 직급이 높은 사람이 권하는 술 때문에 남편이 간이 상해가는 것을 보면 그대로 있을 수가 없다. 상사가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나쁘면 나쁘다고 권하는 술까지는 충분히 이해하나 2차 3차 계속 몰고 다니며 새벽까지 남편을 붙잡고 있을 필요까지 있을까. 직급이 높은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주는 술을 받아 마시고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는 심정이 너무 괴롭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조직에서 상사와 부하는 엄밀한 의미에서 계약관계에 있다. 부하란 봉건군주 시대의 신하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상사의 영향력은 업무와 관련된 범위에 제한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사나 선배가 부하와 후배의 사적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예사롭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삶을 통해 개인주의를 실천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하다.
피터 드러커는 [단절의 시대]에서 이에 대해 명쾌하게 지적했다. 그의 지적은 시장경제에서 지켜져야 할 일종의 도덕률로 받아들여진다.

조직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첫 번째 법칙은 그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능한 한 제한하는 것이다. 조직이 사회에 미치는 다른 모든 영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와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직 협의의 정의를 통해서, 그리고 엄밀한 해석을 통해서 제한된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특히 종업원에게 ‘충성심’을 요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정당화될 수도 없다. 조직과 그 구성원 사이의 관계는 법률상 다른 어떤 계약보다도 협의로 해석되어야만 하는 고용계약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조직과 그 구성원 사이에 애정.감사.우정.경의.신뢰 등이 없어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가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부수적인 것들이며, 또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획득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부분들이 정리되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나 고용인 모두 서로 무리한 요구를 하곤 한다. 조직이나 단체도 자신의 고유한 업무를 벗어나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다 보면 조정을 위해 비용이 많이 들게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그런 상황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집단 폭력 보도를 접할 때마다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이 든 세대는 왜곡된 시대 상황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세대에서조차 건강한 개인주의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신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대 의대 교지인 [호의령]의 편집장 최성웅 씨는 올해 신입생이 들어온 뒤로 문화적 충격을 겪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선배가 후배에게 강제로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시게 하던 집단 음주문화가 후배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씨가 신입생이던 2001년만해도 선배들은 “선배의 키스는 후배의 원샷(선배의 컵에 입만 대도 후배들은 잔을 비워야 한다)”이라며 반강제로 술을 먹었다. 요즘 후배들은 “더 이상 못 먹겠는데요”라며 당차게 거절한다.
최씨는 며칠 전 서울 안암역 주변 소주방에서 교지 편집을 끝내고 뒤풀이 자리를 마련했다. 매운탕, 파전과 함께 ‘삼배주’가 돌았다. 소주잔 사이사이에 젓가락을 받쳐 3층으로 쌓은 뒤 술을 채우고 한 사람이 맨 윗 잔부터 차례로 단숨에 마시는 주법. 요즘 대학가에 유행이다. 최씨가 먼지 시법을 보였다. 그러나 후배들은 최씨를 따르지 않았다. 일부는 소주잔에 물을 따라 마시는 등 자신의 주량에 맞춰 술을 들이켰다. 술을 못 하는 여학생들은 쌀로 만든 음료로 대신 하게 했다. 이날 7명이 마신 소주는 다섯 병이 전부였다. 최씨가 입학 직후 ‘사발식(냉면 사발에 막걸리를 채우고 단숨에 들이켜는 것)’만 세 번 치러야 했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 [중앙일보] 2004. 4. 24

이 기사를 읽으면서 우선 내가 대학을 다닐 대의 음주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관행을 누구든 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은 세대는 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개인주의가 중요한가?
시정경제는 개인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삶의 방식이 자리 잡지 않는다면, 집단적 의사결정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집단적 의사결정의 피해에 이미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자기 철학의 부재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념 체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익혀가는 과정은 저마다 다르다. 부모나 친인척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학교 교육이나 책을 통해 서서히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기도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가?’ 같은 질문들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다 보면 곧 생활철학과 만나게 된다.
내 경우는 아버지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연근해 어업을 했던 기업가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어린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내가 배운 것은 인간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것, 자신의 행복과 불행의 원인을 제도나 타인에게서 찾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에게 배웠듯 나 역시 아이들에게 홀로 서기를 가르치기 위해 무척 노력한다. 직접적인 말로써, 보여지는 행동으로써, 독서를 권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를 독려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의 자서전에서도 비슷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자조정신이 대처의 철학의 바탕이라는 이야기였다. 훗날 ‘대처 혁명’으로 대표되는 영국의 개혁도 대처의 이러한 삶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느 분야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을 때면, 그들 삶의 철학이 언제 형성되는지 그 대목을 유심히 보게 된다. 그리고 부모와의 만남이 그 어떤 만남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한 사람이 인생의 처음 20여 년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 부모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를 빼고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홀로 서기의 당위성을 배웠지만 20대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연약한 상태였다. 탄탄한 신념이나 믿음 체계로 굳어지기 위해 독서 등 또 다른 과정이 필요했다. 내 경우엔 20대에 읽은 하이에크와 미제스 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전적 자유주의 대가들의 서적을 통해 막연했던 생활철학이 신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류의 글을 읽는 것이 대학생의 특권인 양 여겨지던 시대에 대학을 다녔지만 그다지 탐닉하지 않았던 건 아마도 부모의 영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가정을 통해서든 책을 통해서든 철학을 정립할 시간을 갖지 못하면 본능이 요구하는 가치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의 보모들은 지금 어떤 철학을 갖고 있을까. [조선일보]와 갤럽, 한국소비자연구학회가 실시한 ‘국민 이념 성향 조사’를 보면 사람들이 가난의 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흥미로운 결과가 나와 있다. 빈곤이 사회 제도 탓이라고 답한 경우는 2002년 39%였는데 2004년에는 53%까지 늘어난다. 반대로, 개인의 능력 부족 탓이라고 답한 경우는 2002년의 30%와 거의 같은 31% 선을 유지하고 있다.
5%라는 상당수는 직장이나 가정에서 자신의 논리를 확대재생산 하고 있지 않을까. 만일 그가 아버지라면 은연중 자식들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할 것이며, 기자나 방송인이라면 말이나 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피력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청소년기나 대학생활을 통해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올바른 철학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점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보다는 그렇지 않은 시각의 책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미국 대학생들이 가장 즐겨 읽는 책 가운데 하나는 [아틀라스]라는 소설이다. 대단히 급진적인 보수 측 주장을 담고 있는 소설로, 놀랍게도 정부와 노동조합에 대항해 기업가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공장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아틀라스]는 미국 대학생의 필독서 10권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으며 그 밖에 이 책의 저자 아인 랜드가 집필한 저서들은 세월을 뛰어넘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은 신문이나 방송을 보더라도 진보 진영의 논객들이 훨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진보 진영의 논리는 단선적이면서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반대 의견보다 대중에 대한 호소력이 크다. 특히 오늘날처럼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진 상태에서는 진보진영이 논리를 확대재생산해 나가기가 무척 용이하다. 미디어는 젊은 층은 물론 입장이 명확하지 않은 회색 지대의 사람들을 진보 진영으로 흡수하는 데 앞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여전히 건재한 마르크스주의

잘 알고 지내는 한 친구는 한때 열렬한 학생운동가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6개월간 바깥출입도 않은 채 폭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유토피아가 사라지는 동시에 삶의 의미도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사업가로 변신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제 마르크스주의란 그에게 젊었던 한때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버릴 수 있었던 건 자영업자로서 ‘시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와의 완전한 결별이란 쉽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갖추는 젊은 시절에 심취했던 사상과 세계관을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연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거나 찬양하지는 않지만 그들 중 다수는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있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언론에 전해지는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 사용하는 용어들을 보면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만나게 되는 방송인.기자.출판인.회사원 중에도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던 경험이 잇는 40대 전후의 인물이 많다. 정치적으로 워낙 암울한 때 대학을 다녔던 터라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만큼 한국은 특수한 환경에 있었다. 젊은 날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세대들은 이제 중년이 되어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칼 포퍼는 일찍이 이렇게 지적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변명자들은 자신들이 기득권의 이름으로 진보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운동들은 곧 온갖 기득권들을 대변하게 된다는 위험을 안고 있으며 그런 기득권에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지적인 것도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마르크스의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질타한 지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복거일 시는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이 건재한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선 마르크스주의의 변명자들이 자신들의 지적 기득권을 지키기에 분주하다. 자신들이 많은 투자를 해서 얻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지적 재산을 버리는 대신.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것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실패한 것은 현실 사회주의이지 이론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퇴로를 발명해 냈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좌파 지식인들은 몰락한 사회주의를 보면서도 진솔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론 사회주의가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기만 한다면 멋진 세상이 펼쳐지리라고 여전히 믿는 것일까.

시장경제 경험이 적은 한국

월급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 소득을 벌어본 경험은 매우 소중하다. 사업가로 입신한 사람들은 처음으로 상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본 경험을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으로 기록하게 마련이다.
자기 사업을 치열하게 꾸러가다 보면 별다른 이론을 배우지 않아도 현실주의자가 된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엉뚱하게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모든 분야에서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주의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자신의 이익이 달려 있는 생업 현장에서는 현실주의자로, 책임을 짊어져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상주의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생업의 현장에서조차 제대로 된 경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의 판단이 이윤이나 손실로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식인이나 언론인, 관료나 정치가 가운데 상당수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예를 들어 지식인들을 살펴보자. 지식인은 세상살이의 현장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난 곳에서 살아왔다. 그들이 늘 고민하는 세계는 살아 숨쉬는 인간들의 세상이라기보다는 관념이나 이성의 세계이다. 그들은 이상주의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현장을 직시하고 삶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이를 하나하나 고쳐가기보다 단번에 현장을 바꾸는 일에 훨씬 매력을 느낀다. 자신들의 이상향에 맞춰 현실을 철저히 개조해야 한다고 강렬히 느낀다.
지식인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큰 조직에 몸담은 회사원들을 보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공급한 대가로 살아가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조직에 속한 경우는 시장의 규율이 아니라 조직의 규율을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조직은 여러 면에서 매우 다르다. 시장은 스스로 조직되고 스스로 규제되며 스스로 유지되는 자발적 질서를 이룬다. 반면 조직은 의도적인 배열의 결과로 인위적 질서가 만들어진다. 자발적 질서(시장) 대 인위적 질서(조직)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자발적 질서 속에서는 공동의 목표가 존재할 수 없는데 반해 인위적 질서 속에는 공동의 단일 목표가 존재한다. 자발적 질서는 할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자발적 질서는 열린 사회의 특징을 갖지만 인위적 질서는 닫힌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
현대인들 상당수가 조직에서 조직으로 이동할 뿐 자기 사업을 직접 꾸러본 경험이 엇다. 학교라는 조직을 졸업하면 곧바로 회사라는 조직으로 옮겨간다. 제대로 교육을 받는다 해도 경험의 한계 때문에, 즉 조직의 규율에 익숙한 나머지 수많은 익명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래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하이에크는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다.

오늘날 서구 사회에서는 대규모 조직들의 구성원으로서 자라나는 인간들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개방된 대규모 사회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시장의 규율들이 그들에게 낯선 것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시장경제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시장경제가 기초하고 있는 규율들에 의해 생성되는 결과들을 불합리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빈번히 시장경제에서 사악한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자의적인 구조만을 보고 있다.
그 결과 오랫동안 억압되었던 원시적인 본능이 또다시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정의로운 분배에 대한 요구 및 누구에게나 그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을 할당해 주는 조직화된 권력에 대한 요구는 정확히 이러한 원시적 본능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격세유전이다. 의도적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형성하고자 하는 예언자, 도덕철학자 및 구성주의자들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바로 이러한 감정에 의존하고 있다.

하이에크의 분석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상황이다.
국민의 53%가 가난은 제도의 잘못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같은 조사를 보면 ‘세금을 더 걷어서라도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견해가 2002년 31.9%에서 2004년 42.8%로 늘었다. 이 같은 추세의 원인을 사회의 양극화에서 찾는 사람도 잇다. 1993~2002년 사이 임금을 기준으로 상위 30%와 하위 30%의 직종에선 일자리가 각각 200만 개, 119만 개 늘어났다. 그러나 중간층 40%의 직종은 27만 개 증가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중간층이 함몰하면서 상화 양 끝만 솟아오른 기형적 구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이 정체되고 세계화가 급속해지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정의로운 분배를 실천할 수 있는 조직화된 권력에 대한 욕구도 점점 커질 것이다. 그것은 정치 지형도 변모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좀더 분배 위주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고 성장 동인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축소지향형 악순환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심리에는 ‘이웃이 잘살기 때문에 내가 못산다’는 생각이 깔리게 된다. 그러니 ‘있는 자에게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은 언제든 제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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