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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간선언,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애인 인간선언,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승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현실과 두 개의 투쟁

최근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그 신체적 특징으로 인
해 '저비용 고이윤'에 적합하지 않고, 노동력의 사회적 평균으로부터 벗어나
는 장애인의 현실은 참담한 지경이었다. 사회의 모든 시설과 구조가 노동력의
비장애인을 모델로 하는 '평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상태에서 장애인은 교육
과 노동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차도 영위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왔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수용되어 극악
한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어왔고, 수용시설에 수용되지 않더라도 적절한 이동수
단을 비롯한 생활환경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평생을 집안에서만 보내
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어쩔 수 없이 격
리되어 비참한 생을 감수하는 것'을 그들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인간 생활과 관련된 모든 영역-노동, 교육, 여성, 복지
등등-은 장애인 투쟁의 주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에바다
시설비리 척결 및 정상화를 위한 투쟁'과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은 장애인
들이 그들에게 구조적으로 강요되어왔던 '숙명적 격리'를 거부하고 한국 사회
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다른 모든 문제들을 사회에 정면으
로 제기하는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두 투쟁은 장애
인 투쟁의 그 어떤 쟁점보다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두 투쟁의 현황과 실천적 함의들

에바다 시설비리 척결과 정상화를 위한 투쟁
올해 11월27일로 투쟁 6주기를 맞는 '에바다 시설비리 척결과 정상화를 위한
투쟁'은 에바다 복지재단의 이사회를 민주적으로 개편한 이후부터는 '에바다
정상화'에 중심이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민주적으로 개편된 이사회는 올해
초 구 비리재단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던 농아원장과 농아학교장을 비롯한 주
요 운영진을 전면 개편하였다. 그러나 구 재단측 인사들은 이러한 이사회의 결
정을 무시한 채 농아원과 농아학교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이사회에 의해 선임
된 운영진과 그 동안 투쟁에 앞장서왔던 농아학교 교사들의 농아원 출입을 폭
력을 동원해 방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농아원생들을 사주하여 해 아
래집에 거주하고 있는 농아들과 교사들에게 테러에 가까운 수준의 폭력만행을
자행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여 지난 7월15일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는 불
법으로 시설을 점거하고 정상화를 방해하는 구 재단 잔당들을 몰아내기 위해
농아원 진입투쟁을 일주일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비록 현장장악은 이루지 못
했지만 구 재단 잔당과 평택시청, 평택경찰과 같은 비호세력에 대해 강력한 압
박을 가하는데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투쟁의 결과 민주적 이사회 구성이
후 소강상태를 보이던 '에바다 정상화 투쟁'에 대한 운동진영의 집중을 이끌
어 내기도 하였다.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연대회의'는 진입투쟁의 이러한 성
과를 이어가고 투쟁의 새로운 돌파구를 형성하기 위해 현재 해아래집에 지역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7월15일의 이러한 시도이후 이사회는 에바다
복지재단 산하 3개 시설 중 하나인 에바다 복지관에 대해 구 재단에 의해 선임
되어 전횡을 일삼던 복지관장을 해임하였고, 이사회에 의해 선임된 신임 관장
이 복지관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향후 농아원과 농아학교의 정
상화를 위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
작년 1월 오이도역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참사 이후 1년 넘게 진행되어
온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 역시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특히 지난 5월 발산역
에서 또 한 명의 중증 장애인이 장애인용 휠체어 리프트(경사형 리프트)를 이
용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한 이후 7월부터 이를 쟁점으로 본격적인 투쟁을 계속
해온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는 8월12일부터 9월19일까지 국가인
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무려 39일간의 단식농성을 진행한 끝에 지난 1년 간 투쟁
을 총괄할 만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물론 서울시의 발산역 참사에 대한
구체적인 사과를 받아내진 못했으나 포괄적인 수위에서 서울시의 사과를 받았
으며,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와 '내년 중반까지 시
내버스 노선에 저상버스 도입, 그리고 이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 추진본부 구
성'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서울시는 9월18일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
한 저상버스 도입 추진위원회 구성' 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동권 연대가 요
구했던 발산역 참사에 대한 공개사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장애인이 대중교통
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없어 겪어야 했던 불편함과 불의의 사고
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하며..'라는 문장으로 대신하였으며, 이 보도자료
를 통해 위와 같은 계획들을 밝히고 있다.
}}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 외에도 장애인 이동권 쟁취 투쟁은 지난 1년여간에
걸친 꾸준한 선전전 및 서명전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
을 광범위하게 확산시켜냈으며 그 결과 현재까지 약 30여만 명의 시민들이 서
명운동에 동참하고 있으며 단식농성 기간 동안 한국 사회의 수많은 단체들의
지지방문과 지지입장 표명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장애인 이동권 연대는 향후 서울시의 약속들을 구체
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해 서울시를 강제해내는 투쟁과 함께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구체적 입법을 위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두 투쟁의 실천적 함의
위의 두 투쟁은 그 현 상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기술한 바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 외에도 우리에게 몇 가지 실천적 함의를 던져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장애
인 투쟁 자체와 관련하여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체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에
게 있어서의 실천적 함의이다.
먼저 장애인 투쟁 자체와 관련해서 첫째,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 동안 '숙명적인 격리'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는 비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을 만나는 것조차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고 이로
인해 장애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 정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위의 두 투쟁은 기존의 비장애인 중심의 한국 사회에
장애인들의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제기하였고 이것이 단지 '불쌍한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제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
제'임을 인식시킴으로써 장애인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산과 함께 이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장애인 운동에 있어서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위의 두 투쟁의 과정은 기존의 '한국 장애인 단체 총연
맹(한국장총)'으로 총칭되는 보수적 장애인 단체들과 두 투쟁의 주체들간의 차
별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과정이 되었다. 또한 과거와는 다르게 투쟁의 과정에
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각 단체들과의 강력한 연대를 통해 꾸준히 성과를
축적해오면서 전체 장애인 운동진영에서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음으로 이 두 투쟁이 전체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제시하는 실천적 함의들
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이 두 투쟁은 그 동안 자본의 신자유주의 축적전략 속
에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만연했던 무기력한 패배주의에 대한 '신선한 반
성'을 제시한다. 그들의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 있음
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처절하고 끈질기게 투쟁하고 그 투쟁을 통해 자기 운동
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두 투쟁의 모습은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 만연한 패
배주의적 흐름에 대해 '신선한 반성'을 제공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두 번
째로 이 두 투쟁은 한국 사회의 계급구조를 포장하고 있는 각종 부르주아 이데
올로기의 허구를 폭로한다. 특히 에바다 투쟁의 현장은 부르주아들에 의해 '절
대이성' 또는 '절대 선(善)'의 화신으로 교육되고 선전되던 부르주아 법질서
가 파탄 나는 현장이 되었다. 그 현장에서 썩은 시궁창 냄새보다 더한 악취를
풍기는 비리세력을 비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평택의 모든 부르주아 권력기
관들-대표적으로 평택시와 평택경찰-은 자신들이 옹호해야 할 모든 부르주아
법질서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렸던 것이다. 또한 이동권 투쟁 역시 그 동안 부르
주아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사랑과 봉사 그리고 그 구체적 체현물이라 할 각
종 장애인 대책들의 허구성들을 낱낱이 폭로하는 과정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
째로 이러한 투쟁들은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장애인 운동에 있어서
새로운 흐름으로서 자리잡았다. 그와 함께 전체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위의
두 가지 실천적 함의를 제공하였다. 그럼으로써 전체 계급투쟁의 한 축으로
서 '장애인 투쟁의 발전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두 투쟁이 제시
하는 실천적 함의는 이 두 투쟁들이 민중복지 투쟁의 구체적인 전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자본의 질서에 따르며 또한 그 필요에 적당한 수준에
서 제공되는 복지가 아닌 민중의 질서에 따라 형성되고 민중의 필요에 따라 제
공되는 복지로서 민중복지의 상을 구체화시키고, 쟁취해나가는 구체적인 전형
으로서의 실천적 함의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장애인 투쟁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장애인 투쟁은 이처럼 그 자체에 그리고 전체 민중운동진영에 많은 실천적 함
의들을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도 투쟁을 통한 성과들을 축적해나가면서 새로
운 운동의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 투쟁에 이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으로서 다음의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자 한다.

세 가지 대응방안

첫째, 장애인 투쟁에 결합하고 있는 비장애인 투쟁주체들의 명확한 문제의식
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장애인들이 힘겹게 투쟁하는 것에 대한 안타
까움 때문에 함께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장애인 투쟁
이 전체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해 가지는 의미 또는 민중복지 투쟁에 대해 던지
는 의미들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이 중요하다. 이를 통한 운동적 목표를 가지
고 투쟁에 결합함으로써 비장애인 투쟁주체 스스로가 장애인 투쟁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수적 장애인 단체들과 이들
을 통해 지배계급이 가하는 왜곡된 당사자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대응
할 수 있어야 한다.{{) 왜곡된 당사자주의의 전형은 지난 7월15일 에바다 농아
원 진입투쟁 당시 한국장총이 발표한 성명서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이 성명서를 통해 청각장애인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비리재
단의 폭력을 비호하였다. 또한 한국 시각장애인 협회 역시 이러한 당사자주의
를 앞세워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기도 하다.
}}
둘째, 사회복지 노동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조직화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
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장애인과 일상에서 부딪히는 장애인 복지 시설에 종사하
는 사회복지 노동자의 조직화는 장애인 투쟁에서의 제 쟁점들과 뗄 수 없는 관
계에 있다. 때로는(지배계급에 이용당할 경우) 상호 억압적 기제로 작용하기
도 한다. 따라서 사회복지 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직화를 통해 장애인 투쟁
과의 강력한 연대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상호 억압적 기제로
서가 아니라 상호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는 구조의 형성이 필요하다.
셋째, 앞선 두 방안보다 좀더 실질적으로 장애인 노동권 문제에 대한 적극적
인 투쟁이 요구된다. 노동권의 문제 역시 장애인들의 생계를 위해 시급한 문제
일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권력과 결탁한 보수적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대중
에 대해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노동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전유
함으로서 가능하다는 것을 볼 때 과거 보수적 장애인 단체들과 지배계급에 의
해 형성되고 장애대중들에게 강요된 질서 깨부수고, 왜곡된 당사자주의를 앞세
운 보수적 장애인 단체들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로서 장애인 노동권에 대한 투
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애인 스스로가 주체로 확고하게 조직되어야
한다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장애인이 열등의식과 피동성을 벗고
스스로 나설 때 위의 세 방안도 실질적인 의미를 더해갈 수 있다. 그럼으로써
현재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장애인 투쟁을 계급투쟁의 한 축으로 세워내야 한
다. 또한 민중복지를 향한 투쟁의 한 전형으로서 발전시켜내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논의와 고민을 바탕으로 할 때만이 더욱 강력한
계급투쟁과 이를 통한 이 사회의 변혁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의 힘 회원, 민중복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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