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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이라는 자

이 사람,
사람들 사이에서 다정하고 손을 들어 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 죽이는 짓만은 안 된다며, 단호하게 손을 들어 거부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머슴살이 하셨던 부모님 걱정에 학교 다니는 걸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원고지 위를 산책하며, 사람 사는 이야기 오순도순 나누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광주의 절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었기에.
강제징집의 폭력이 날아들었다. 그는 싸웠다. 인간이었기에.
“우리도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서러운 노동자들이 고함을 질렀다.
“노동이, 설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는 싸웠다. 그 스스로 노동자였기에.

짐승의 시대는, 다만 사람이고자 했던 그를 창살에 가뒀다.
1988년, 사랑하는 막내 동생을 읽었다.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살인귀들이 그의 동생을 앗아갔다. 박래전 열사가 그의 동생이다. “창자가 붙어 있다”고 놀림 받을 만큼 다정했던 형제였다.

상처받은 가족들의 모임을 이끌면서 그는 오십여 명 열사의 장례를 치렀다.
재야의 장의사,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고민스러웠다.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빼앗긴 사람들이 그의 눈에 밟혔다.

뛰었다. 부딪혔다. 항의했다. 절규했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서러운 사람들은 여전히 서러웠다. 국가라는 괴물은 서러운 사람들의 편이 아니었다. 괴물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건 여전히, 사람뿐이었다.

그렇게, 이십육 년의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다.

2006년 3월 평택 황새울의 너른 들녘에서 그는 웃었다.
들녘을 파헤치는 국방부의 포크레인 위에 올라, 이 어이없는 지경에 한탄했다.

하하, 이렇게 넓고 예쁜 들녘을 전쟁기지로 만든다고? 에라이 미친 놈들아, 포크레인을 멈춰라, 경찰은 물러가라!

경찰의 방패에 떠밀린 여성이 불섶에 쓰러지고, 할머니들의 허리가 꺾이고, 손목이 부러졌다. 아이들의 꿈이 자라던 대추분교의 정문은 절단기의 이빨에 뚝, 뚝 잘려나갔다. 진흙바닥으로 고꾸라진 서러운 늙은이들의 눈에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놈들, 천벌이 무섭지도 않으냐! 왜 이러느냐, 이놈들아. 왜 우리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하느냐, 이놈들아!”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땅에,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는 안 되다. 이놈들아!”

“자식새끼 논두렁에 빠져 죽는 줄도 모르고 땅만 파고 살아왔는데, 이것이 나라의 보답이냐,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우리는 이제부터 나라도 없다, 이놈들아, 우리를 가만 내버려둬라, 이놈들아, 이놈들아!”

박래군은 말없이 울었다. 포위망을 좁혀오던 결찰이 포크레인 위의 그들을 붙들었다. 매달리려는 자와 끌어내리려는 자의 손들이 거칠게 엉켰다.
박래군은 끌려갔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그를 구속시켰다.

“우리가 실정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실정법으로 인권을 묶을 수는 없다. 부당한 것에 저항하다가 구속된다면 그것이 인권운동가의 운명이다.”

박래군이 입을 뗐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말했다.

그와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바꿨다. 누군가는 청와대로, 누군가는 국회로 달려갔다. 그는 남았다. 바뀐 세상에서 그는 다시 쇠창살 안에 던져졌다. 고작 이것이, 그의 운명인가?

살인귀들이 가두었던 그를, 잘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다시 가두었다. 박래군은 변한 게 없으니, 변심한 종자들은 따로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인권활동가를 감방에 처넣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다만 ‘사람’이고자 했던 그였다. 광주의 흐느낌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고, 고통 받는 이들의 호소를 지나치게 못했던 게 그의 죄라면 죄이다. 세상 변한 줄 모르고, 모두들 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차를 갈아탄 것도 모르고, 여전히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한 것이 죄가 된다면, 그는 죄인이다.
동생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고인이 꿈꾸었던 세상에 한 발 다가가려 했던 것이 죄라면, 그는 죄인이다.

문학청년이었던 그의 첫 소설, 겨우 한 편 뿐인 소설 제목이,
‘땅강아지’다.

땅강아지의 초라한 꿈마저 짓밟는 이 나라가, 대체 제 정신이냐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박.래.군.에.게.자.유.를.!
조.백.기.에.게.자.유.를.!
황.새.울.의.농.민.에.게.땅.을.!
전.투.기.와.탱.크.를.녹.여.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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