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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해서 그냥 있을 수 없었어요 - 한주연합노조 여성해고자들

 


지난 2월 27일 한주연합노조 소속 일부 조합원들이 복직을 쟁취했다. 그러나 이 희망찬 복직 소식 뒤에는 강제 사직으로 쫓겨난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이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한주를 선택한 사무직 여성노동자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 동안 사무보조업무를 해왔다. 문서수발, 자료작성, 보고서작성 등 각종 사무업무를 비롯해서 ‘구질구질한 심부름’까지 하면서 일 해왔던 이들 여성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어느날 갑자기 1대1 면담을 하면서 “회사경영이 어려우니 나가달라”면서 사직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작년 10월말의 일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황당하기도 했지만 당장의 생계문제에 대한 걱정 등도 앞서는 상황에서 사직서를 작성할 수 없었다. 그런 여성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온갖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가정도 없고,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없는 여직원이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팀장들도 순순히 나갔는데, 시끄럽게 할 생각 말고 조용히 나가라고 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사직서를 쓸 수 없다고 버티니까 업무도 주지 않고, 책상도 치워버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아서 사규를 외우라고 하는 거예요.”

“완전 왕따였어요.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저희랑은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유령 같았어요.”

그렇게 버티던 여성 노동자들은 결국 하나 둘씩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6명의 사무보조 여성 노동자 중 12명이 강제사직을 당했다.
그렇게 쫓겨난 여성노동자들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노무사를 만나게 되었고, 노무사와 함께 법률적 구제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가운데 1월 6일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고, 과장급 남성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주연합노조에 가입해서 남성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저희들이 가만히 있다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니까 거기에 달라붙어서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저희들은 강제로 쫓겨난 후에 너무도 억울해서 그때부터 노무사를 만나고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이 중심으로 결성된 한주연합노조에 무임승차 한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얘기했다. 그렇게 투쟁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것인지 사측은 2월 27일 남성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총무팀으로 복직통보를 해왔다. 그러나 여성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여성 조합원들은 남성 조합원들이 복직한 후에도 매일 같이 출근투쟁을 하면서 복직 요구를 접지 않았다.

“2월 24일부터 출근투쟁을 했어요. 처음에는 머리띠도 매지 못했어요. 모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와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노동조합에서 유인물을 나눠줄 때 잘 받지도 않았거든요. 막상 우리가 이렇게 투쟁을 하다보니까 TV를 봐도 거리를 걷다가도 노동운동에 대한 내용만 눈에 들어와요.”

“요즘은 출근투쟁하면서 들었던 노래들이 자꾸 흥얼거려져요.”

여성 조합원들은 지난 3월 13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구제신청과 관련한 최종심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희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담담하게 그동안 당해왔던 일들을 하나 하나 얘기기하기 시작했는데, 얘기하다 보니까 설움이 복받쳐서 눈물이 나고 말았어요. 제가 울기 시작하니까 같이 있던 언니들이 모두 같이 우는 거예요.”

“회사에서 나온 사람이 우리가 눈물로 정에 호소한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몰라요.”

사측에서 주장하는 것은 자발적 사직이었다는 점과 위로금을 지불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4일 사직서를 썼는데, 사직서는 12월 5일자로 사직한다고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12월 5일까지 회사에 나가려고 하니까 나올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놓고는 한 달 치 임금을 위로금을 줬다고 얘기하는 거죠.”

여성 노동자들은 12명의 강제 사직 해고자 중 7명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하고, 현재는 6명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3월 2일 과장급에서 5명이 추가로 해고 되서 법적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복직된 남성 조합원들도 아직 보직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도 없이 대기상태로 있다고 한다. 복직한 남성 조합원들은 여성 조합원들과 함께 매일 출근 투쟁을 벌이고, 복직 이후 벌어지는 상황에 맞서 법적 대응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한 조합원이 약을 먹고 있었다.

“이렇게 되고 나서 엄청 스트레스에 시달렸거든요. 그러다보니 장염을 앓았어요.”

“저희들이 모두 그래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요.”

“제 몸에서 어디 아프냐를 찾는 것보다 어디가 아프니 않느냐를 찾는 게 빨라요.”

“회사에서 쫓겨나서 넉 달이 넘었거든요. 이제는 실업연금도 끝나가요. 생계문제가 모두 심각한데 방법이 없어요. 그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해요.”

한주 여성 조합원들은 매일 같이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울해협 소속 일부 해고자들이 지원하는 것 말고는 지역의 연대투쟁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SK 아저씨들이 많이 도와줘요. 울해협 아저씨들도 가끔 오고요. 처음부터 지역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투쟁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섭섭한 것은 별로 없어요.”

인터뷰가 진행된 16일은 한주의 창립기념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래서 여성 조합원들은 아침 출근투쟁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는 점심시간부터 저녁까지 비를 맞으면서 한주 정문 앞에서 피켓 시위를 계속 진행했다.

한주 정문 앞에서는 한주노동조합과 한주연합노조, 그리고 회사에서 내붙인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현수막에서부터 한주의 상황을 그래도 보여주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복직된 남성조합원들이 정문으로 나와서 여성조합원들의 투쟁에 함께 했다. 여성 조합원들과 지원을 나온 울해협 소속 해고자들은 남성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도 하면서 전원 복직을 위해 함께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어서 방송차 사이에 간이로 비막이를 치고 자장면을 시켜서 점심을 해결했다. 도랑 옆에 간이로 비막이를 하고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모두들 야유회를 나온 기분이라면서 한껏 흥겨운 분위기였다.
생기 넘치는 20대 중반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렇게 힘겨우면서도 즐겁게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여성 조합원이 자신들이 투쟁하는 이유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억울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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