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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해 돈을 쓰자

나는 절름발이다. 그러나 화폐는 나에게 24개의 다리를 만들어준다. 따라서 나는 절름발이가 아니다.
나는 사악하고 비열하고 비양심적이고 똑똑하지 못한 인간이지만 화폐는 존경받으며 따라서 화폐의 소유자 또한 존경받는다.
화폐는 지고의 선(善)이며 따라서 그 소유자도 선하다. 그밖에도 화폐는 내가 비열하기 때문에 겪는 곤란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존경할만한 사람으로 가정된다.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화폐는 만물의 현실적인 정신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소유자가 똑똑하지 못한 사람일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소유자는 똑똑한 사람들을 살 수 있다. 똑똑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속마음이 동경하는 모든 것을 화폐를 통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란 사람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나의 화폐는 나의 모든 무능력을 그 정반대의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폐는 성실함을 성실하지 않음으로, 사랑을 미움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덕을 패덕으로, 패덕을 덕으로, 종을 주인으로, 주인을 종으로, 우둔을 총명으로, 총명을 우둔으로 전환시킨다.
화폐는 현존하면 활동하고 있는 가치의 개념으로서 만물을 혼동시키고 전도시키기 때문에, 화폐는 만물의 보편적 혼동이요 전도이며, 따라서 전도된 세계요, 모든 인간적 자연적 질(質)들의 혼동이요 전도이다.

150년 전에 맑스는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을 예리하고 풍자적으로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150년이 지나서 한국의 랩그룹 DJ DOC는 또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당신은 부자, 그 덕에 땅도 사, 돈 남아돈다, 집도 사, 아줌마 옷도 사고 또 사고,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돈의 밑바닥, 얼마나 좋을까.
누군 없는 것도 서러워서 허리띠 꽉꽉 졸라매고 살아가는 판에 누군 여기 펑펑 저기 펑펑 막 써대고 살아가니 얼마나 좋을까. 흥청망청 아무 생각없이 펑펑. 돈 지랄한 인간들이 나라망쳐, 청춘바쳐 몸바쳐 열심히 일한 사람들만 피해봤어. 버림받은 직장, 소외된 가정, 불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있는 놈은 항상 있지, 없는 놈은 항상 없지.
오늘도 어제와 같은 똑같은 하루는 반복돼.

150년 전 유럽의 철학자든, 지금 한국의 랩가수든, 모두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자신들만의 특유의 표현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상하거나 직설적인 지적이 아니더라도 몸서리쳐질 정도로 돈이 지배하는 이 사회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돈 문제 때문에 한숨을 내쉬고 수없이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마주한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부모님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세상은 나를 점점 부모님과 같은 삶으로 몰아넣기만 했습니다.
우리의 자식들이 다시 우리를 보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의 처참함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처참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이 악물고 달려들기고 하고, 내 운명이 그러려니 하고 체념하면서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힘겨움에 아등바등 살아가기도 하고, 나는 이렇게 살아도 우리 자식들만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면서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돈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니까 하루하루를 주어진 데로 살아가기도 하고, 돈이 없어도 마음만 행복하면 된다고 애써 위안을 삼으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돈의 위력에서 벋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가든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이 돈의 위력에서 벋어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100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이렇게 없이 사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없이 사는 것에는 이골이 났습니다. 없이 살아가는 것이 이골이 난 사람들은 좋은 것에 대한 욕심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갖고 싶어도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돈을 내지 않는 것에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돈을 낼 능력도 없고, 그에 대해 주위 사람들도 뭐라 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 몸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참 편해 보이는 이런 삶도 항상 돈 때문에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아껴서도 월말이 되면 돈은 바닥이 나고, 매달 반복되는 이런 조건에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합니다. 가끔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며칠을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도 않은 채 참고지내다가 병을 키워서 결국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혼자서 속으로 되뇌이는 말이 있습니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저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좀 더 살펴보면 저보다 못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힘들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위안이 되기보다는 삶이 비참해집니다.
그러면 또 이렇게 혼자서 되뇌입니다.
“사는 게 뭔지”

주위에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젊었을 때와는 다른 버릇이 생겼습니다.
어쩌다 목돈이 생기면 친한 사람들과 어울려서 술도 먹고, 놀러도 가고, 그 집 애들 선물도 사주고, 어쩌다 마음먹고 얼마를 쥐어주기도 합니다. 그 돈을 나를 위해서 모아두거나 아껴보아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차라리 힘들게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50만원 받던 월급이 70만원으로 올라본들 힘든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50만원 받을 때 씀씀이로 살아가면서 나머지 20만원으로 함께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70만원으로 찾은 삶의 행복이고 활력입니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돈을 지배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50만원으로 살아가든, 70만원으로 살아가든, 100만원으로 살아가든, 200만원으로 살아가든, 삶이 힘겹기는 마찬가지라면 돈이 나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써야 합니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을 불리기 위해 돈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돈의 위력에서 벋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돈 없는 사람들은 돈의 위력에서 벋어나기 위해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쓰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잠시의 위안일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돈의 위력에서 쉽게 벋어날 수 없습니다.
‘돈이 인간을 쓰는 세상’에서 벋어나 ‘인간이 돈을 쓰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돈 없는 사람들이 ‘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돈 없는 사람들을 돈에 옭아매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사람을 위해 돈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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