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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영화처럼 행복할까요?

작년 겨울에 우연치 않게 ‘나의 결혼 원정기’라는 영화를 단체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시골에서 면면치 않은 살림에 농사를 짓는 노총각들이 결혼을 하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까지 날아가서 맞선을 보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진 영화였습니다.

노총각들은 결혼이라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꽤나 거금을 들여서, 이름도 생소하고 어디 있는지 한참을 찾아야 지도책 사이에 겨우 찾을 수 있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혼을 성사시켜야 돈을 받게 되는 국제결혼알선업체를 통해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게 되면서 좌충우돌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세 명의 노총각들은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결혼알선업체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한국생활을 부풀리면서 여성들의 환심을 사려 하기도 하고, 좀 더 좋은 상대를 고르기 위해 상대여성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떻게든 한국으로 가려는 여성들의 공세 속에 다양한 해프닝도 벌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 쌍은 사기결혼으로 국내에 들어오게 되고, 나머지 두 쌍은 참된 사랑을 확인하게 되면서 1년 후에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저도 그렇고 그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있었다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흥행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하게 됩니다.
농촌총각 문제와 국제결혼 문제를 무겁지 않고 코믹하게 그려내는 연출력, 이국적이면서도 정겨운 화면, 연기자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는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영화관을 나서면서는 왠지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 남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얘기라고 웃으면서 보던 ‘결혼하지 못하는 노총각들’의 문제는 지도책 사이에 끼여 있는 머나먼 우즈베키스탄으로 결혼상대를 찾아가거나, 참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고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가 휑휑 하는 이 땅에서 ‘못생기고, 나이 많고, 변변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꿈꾸기 어려운 장애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즘 길거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국제결혼 알선업체의 광고에 눈길이 가기는 하지만,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을 넘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렇게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다는 장담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영화 속 노총각들의 해프닝과 해피엔딩은 현실에서는 단지 위안으로만 다가올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그 사랑을 버리고 한국 남성과 결혼하려고 했던 우즈벡 여성과 사기결혼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한국으로 가고자했던 젊은 여성들의 사연은 영화 속에 나오지 않습니다.
‘우즈벡 여성들은 왜 그렇게 악착같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려고 할까?’라는 의문은 저의 어릴 적 기억으로만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4.3항쟁 시기에 몸을 피해 일본으로 가족이 넘어간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수시로 일본을 드나들었습니다. 관광비자로 일본에 들어가서는 가방공장이나 음식점 등에서 불법체류외국인이 되어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조금이나 빚을 갚으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동생들은 항상 비행기를 보면서 어머니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가끔 아버지도 돈 벌러 일본으로 가기도 했습니다. 용달차 운전을 하다가 장기실직이 되었던 즈음 아버지는 일본으로 갔습니다. 일본에서 숯불갈비집에서 일을 했다는 아버지는 3개월만에 ET처럼 뼈만 만은 모습으로 우리들 곁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고, 우리는 눈만 말똥말똥 거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일본에서 당했던 일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귀국하고 몇 달이 지나면서도 일자리는 구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벌어왔던 돈은 다시 바닥을 보이면서 아버지의 자학적인 폭음과 폭력이 이어졌습니다. 정말, 그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습니다.
‘나의 결혼 원정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우즈벡 여성들의 뒤에 가려진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얼만 전에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된 외국 주부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간접적인 얘기나 TV에 나와서 웃으면서 한국생활의 해프닝을 얘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외국 주부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멍했습니다. 20대 초·중반의 어린 여성들이 어린 애를 안고 있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국제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한국 노총각을 소개받고 한국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 오게 된 이들에게 그 결혼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생기발랄한 이들이 낯선 이국생활에 적응해야 하고, 대화도 통하지 않는 부부관계와 시댁생활을 해야 하고, 어린 나이에 스스로 임신과 출산과 육아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여성은 식욕부진과 스트레스성 두통 등에 시달리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에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이혼을 고민하게 되지만, 이혼은 가난이 기다리는 고국으로 돌아가든가,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든가를 결정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보면서 ‘나의 결혼 원정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농번기 속에 한참 마을사람들이 바쁜 가운데 만삭의 우즈벡 여성이 참을 머리에 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과연 이들은 영화처럼 행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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