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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장 남성사업장의 여성 대의원 -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최임숙 대의원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본조(울산공장)에서는 240여 명의 대의원이 있다. 남성 대공장 사업장에서 여성 조합원들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해서 올 해 처음으로 여성할당 대의원 선거구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할당 대의원은 울산공장만 놓고 보더라고 240여 명 중 10명도 되지 않는 형편이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 여성할당 선거구가 아닌 혼합 선거구에서 남성 활동가들과 경선을 통해 당선된 유일한 여성 대의원이 있다. 승용1공장 생관1부 최임숙 대의원이다. 최임숙 대의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현대자동차에 입사에서 벌써 근속이 19년에 이르는 고참 경력이면서 대의원으로 초선이다.

어린 나이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해서 생관1부 사무직으로 입사한 최임숙 대의원은 98년 정리해고에 맞선 고용안정투쟁 때까지는 노동조합 활동을 모르고 일을 해왔다. 98년 정리해고 국면이 벌어지면서 가장 먼저 불어 닥쳤던 해고의 광풍이 사무실을 중심으로 한 희망퇴직 공세였다. 그 과정에서 같은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희망퇴직으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이 많았다. 정리해고 문제가 한참일 즈음, 노동조합 조합원이기는 하지만 사무직의 특성상 낮에는 회사에서 강요하는 야유회 등으로 산이나 바다로 불려 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노동조합의 집회에 꼬박꼬박 참여했다.

“낮에는 어쩔 수 없이 산이나 바다로 다니면서도, 이 문제가 내 문제다라고 생각하니까 저녁에는 노동조합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런 이중생활을 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노동조합 집회를 참여할 때마다 문화패 사람들이 정리해고 문제에 대한 절박한 호소를 하고, 그에 맞서서 투쟁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당당하게 자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노동조합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최임숙 조합원은 이후 노동조합의 집회에 자주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열성적인 조합원의 모습이 눈에 보인 문화패 활동가의 권유로 99년에 노래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동기였다.

“그때 문화패 활동을 하면서 참 재미있었고, 많은 것을 보고 느꼈어요. 전국에 있는 문화패들과도 만나면서 많은 얘기도 나누었고, 각종 집회나 수시로 있는 상경투쟁도 다니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기 시작했어요.”

집회를 가면 항상 맨 앞에서 나서서 피를 흘리며 싸움을 하는 문화패와 함께 하면서 최임숙 조합원은 많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눈물도 많이 흘렸다.

“2000년 전국노동자대회 때, 98년 고용안정투쟁을 비디오로 제작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전국의 많은 동지들과 그 비디오를 함께 보면서 같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2002년쯤에 풍물패장 이었던 고 이경재 동지가 백혈병으로 운명을 달리했어요. 그때 서울에 문상 가서 같이 동고동락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엄청 울었어요.”

그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시작한 최임숙 조합원은 2003년 노동조합 정보통신부장을 하게 되면서 문화패를 넘어서는 활동을 처음 접하게 됐다.

“늦게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상집이 되면서 현장활동을 처음 접하게 되었거든요. 정보통신부장이라 것이 노동조합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는데, 기획실장님이 각종 정책회의가 있으면 항상 참석을 하도록 하는 거였어요. 무슨 얘기인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때 회의에 참석하면서 열심히 얘기를 들었어요.”

2년의 노동조합 상집 활동을 마치고 2005년 말에 현장으로 다시 돌아왔고, 막바로 2006년 대의원 선거가 닥쳐왔다.

“19대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생관1부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의원선거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동지들 속에서 제가 대의원에 출마하는 문제로 논쟁이 되었어요.”

2006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선거는 처음으로 여성할당 대의원선거구제도가 생기면서 여성활동가들에 들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높아진 상황이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여성 활동가인 최임숙 조합원의 대의원 출마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어떤 사람들은 문화패 활동도 했고, 노동조합 상집도 해봤으니까 대의원에 나가보라고 얘기했어요. 그런 반면 어떤 사람들은 남성사업장에서 혼합선거구에 나서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으니까 여성할당선거구로 출마하라는 얘기를 했어요.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여성할당선거구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것이어서 싫었어요. 그리고 조합원들 속에서 제가 활동가로서 검증받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출마를 하겠다고 그랬어요.”

생관1부는 3중선거구여서 총 9명의 후보자가 출마를 해서 그 중에 3명이 당선이 되는 구조였고, 9명 중 8명은 남성 활동가였고 최임숙 조합원은 유일한 여성활동가였다.

“선거하면서 ‘여자지만 남자와 다를 게 뭐냐? 여자이기 전에 활동가로서 선택해 달라’ ‘나는 사무실 출신이지만 현장조합원을 찾아다니면서 배우면서 활동 하겠다’면서 조합원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어요.”

“고민을 많이 하다가 선거에 나가보니까 현장여론이 생각보다 좋았어요. 오히려 그래서 저는 더 긴장했거든요. 그래서 1차에서 2등을 하고, 결선투표에서 당선 됐어요.”

여성 조합원이고 사무실 업무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최임숙 조합원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고 얘기한다.

“제 성격이 솔직하고 떠놓고 얘기하는 성격이라고 사무실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현장 사람들하고 더 친했어요. 일부러 현장사람들 하고도 자주 어울리고 지냈고, 그러다보니 현장사람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그리다보니까 현장에서는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는데, 막상 사무실에 와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문화패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사무실사람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어요.”

현대자동차에서 20년 가까이 일해 왔고 문화패와 상집경험을 했다고 하지만, 대공장 남성사업장의 초선 여성대의원으로서 어려움이 많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대의원 활동한 지 두 달이 되었거든요. 주위에서 하는 얘기가 ‘최임숙은 활동성은 좋지만 현장을 잘 모른다’고 그래요. 그래도 ‘지금은 초반이니까 후반으로 가면 치고 나갈 수 있을 거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 선거구가 3중선거구라서 대의원이 주간이나 야간 개념이 없거든요. 주간에 사안이 있으면 주간조합원만 아니라 야간조합원들에도 설명해야 해요. 이런 선거구에서 선거구 순회만 한 번 하려고 해도 3시간이 넘게 걸려요. 또 현장 사안들도 생각 외로 많아서 솔직히 많이 힘들어요.”

“제가 여성이라서 다른 대의원들이 편의를 봐주기는 해요. 하지만 그런 편의는 제가 허락이 되지 않아서 다른 대의원들과 똑같이 하겠다고 해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은 초선 대의원의 열정만으로는 해쳐나가기 어려운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관료화되고 정파적 현장조직 구도가 심한 상황에서 초선대의원들의 열정은 쉽게 무너졌던 경험이 많은 것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이었다.

“조합원들 앞에서 언변은 좋지만 뭔가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제가 대의원의 입장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조합원들 앞에서 솔직하게 얘기하고 책임지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활동초기에 김진숙 동지를 멀리서 보면서 ‘나도 저렇게 조합원들 앞에서 명쾌하게 얘기하고 당당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의원 활동을 하다보니까 조합원들 앞에서 그렇게 명쾌하게 얘기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공부도 많이 하고, 자신감도 더 쌓으면서 내 중심을 잡고 정체성을 찾고 싶어요.”

승용1공장은 현안문제를 갖고 한 달 가까이 철농을 이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대의원회가 사측과 합의한 내용을 두고 현장에서 논란도 있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과정에서 그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최임숙 대의원은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저는 여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경험을 받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초선 대의원으로서 앞으로 열의가 있는 다른 초선 대의원들을 묶어내서 작은 반란을 이끌어내고 싶은 것이 포부예요.”

사업부 현안문제 때문에 두 차례나 인터뷰 약속이 연기된 끝에 금요일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어렵게 만난 최임숙 대의원은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를 마치고, 또 다시 선거구 대의원들을 만난야 한다면서 현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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