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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집행 2년을 돌아보면서

집행 2년…
외로웠고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신태호

예비군 훈련장에서 힘차게 들려나오는 '충성'이라는 경례 구호와 함께 '투
쟁'의 외침이 들려온다. 습관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며, '투쟁'을 외친 내 모습
에 놀란 군복 입은 동료들의 얼굴 사이로 지난 2년의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가
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게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투쟁의 연속이었다
9대 집행부 출범 이후 상집위 인선도 끝나기 전부터 시작된 투쟁은 10대 집행
부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투쟁'은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특히, 워크아웃 극복이라는 미명 하에 가해진 살인적인 노동강도는 9대 집행
부 출범과 함께 노동재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1년 만에 12명의
소중한 동료들을 떠나 보내며 1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영안실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재 창업 선포식' 저지투쟁을 시작으로 '신 포상제도' 저지 투쟁, 장례투쟁,
물량 외주화 저지 공장 점거 쇠사슬 단식 투쟁에서 근골격계 투쟁과 02년 임·
단협 투쟁 등 - 나열하기도 숨가쁘고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지나온 투쟁
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6명의 동지들이 구속되었고 30여명의 동지들이 고
소고발·가압류로 고통받고 있지만,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자본과 노조가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적당한 선의 공식이 있었다
집행 초기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자본의 공격도 아니었고, '3개월 짜리
집행부'라 쏘아 붙이는 제 조직의 공격들도 아니었다. 대 회사와의 관계설정에
서 지금까지 묵시적으로 행해져오던 '적당한 선의 합의'라는 공식을 깨뜨리
고,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가"였다.
"3개월 안에 분명히 무너진다. 내려올 것이다"는 공격은 집행을 권력으로 생각
지 않았기에 차라리 3개월만이라도 최선을 다하자는 내부 결의로 극복될 수 있
었으나, 10여 년의 세월동안 뿌리내려 관행처럼 행해지던 조합원들의 '통
밥'을 깨뜨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고 아직까지 과제로 남아있는 문제들
이다.
이는 적당한 선의 성과를 챙기면서 노사가 명분을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
민투의 비타협 투쟁은 지금까지의 관행 자체를 부정했고, "가시적인 성과를 남
길 수 없다"는 현장 활동가와 구분되는 집행부의 고민으로 2년 내내 우리를 괴
롭혔고 결과적으로 '무대포, 성과 없는 투쟁'으로 대중들에게 비춰졌다. 하지
만, 현민투는 힘들지만 당연히 노동자 계급이 가야할 가시밭길을 선택했고 노
동자 계급의 너무도 당연한 투쟁의 공식 하나를 대우조선에서 만들었다.

'통밥을 거부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집행부
현민투 집행부의 2년은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른다"로 표현되었다. 조합원
들의 지금까지 관행에 의한 통밥은 언제나 빗나갔다. 특히, 단체협약 산안 개
악안을 놓고 벌어진 02년 임·단투는 그 결정판이었다. '4명의 구속자, 가압
류, 해고자, 회원 절반이 넘는 동지들의 고소고발, 단체교섭을 마무리하지 못
하면 차기 집행도 안 된다' 등 현민투의 목을 조여오는 수많은 현안들 앞에 거
의 모든 조합원들이 "아무리 현민투라도 양보해서 끝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
고 판단했지만, 현민투는 '원칙'을 선택했다. 이러한 결정에는 가시적인 성과
를 남기기 위해서는 양심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집행을 통해 경험했고 양
심을 던지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가 존재할 이유 또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었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무기였다
언젠가 너무도 당연한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
다. 대 회사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작은 계약에도 관행처럼 행해지던 커미션
은 현민투가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었고, 단호히 거부되어야 할 것들에 불과했
다. 지난해 몇 억대의 창립기념품 선정은 너무도 우습게 처리되었다. 담합을
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입찰에 참가한 업체가 한군데 밖에 없어 제품을 질을 떠
나 결정되어졌던 것이다. 또한, 지난해 단체교섭이 끝날 무렵에는 사측이 고소
고발 철회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이 상집위와 저녁식사였다. 단체교섭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저녁식사자리를 마치고 만취가 되어 찾아온 한 동지는 사측과
한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셨다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
런 이유로 때로는 회사와의 소통라인이 없어 일 처리가 너무도 힘들기도 했지
만,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는 힘들지만 3개월짜리 집행부라 말하
던 현민투가 2년을 집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였다. 양심을 저버리기 시작
하는 순간 우리가 이 자리에서 투쟁을 외칠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양심을 지켜내는 너무도 쉬울 것 같은 이 길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힘
들고 고달픈 길이었다. 너무도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자본과의 대립전선이 강고해질수록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은 하나씩 늘어가기
만 했다. 연일 쏟아지는 관변단체들의 소식지와 제 조직들의 비판, 친 회사 성
향의 위장 활동가들의 공격은 현민투를 '무대포 주의, 성과 없는 투쟁, 집행능
력 부재'로 몰아 붙였다.
하지만, 이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든 것은 유일하게 믿고 있던 조합원들이
연일 쏟아지는 회사소식지 속에 세뇌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손 한번 잡았
다"가 "결혼했더라"로 와전되듯이 언제부터인가 현민투에게는 무대포·집행능
력 부재의 수식어와 함께 성과가 강요되고 있었다. 대중들이 멀어져가고 있다
고 느끼는 순간 현민투의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너무도 힘든 순간이었고 좌절
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비겁하지 않은 당당한 꼴찌를 선택했다
교섭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선거에서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을 팔아 집행을 2년 더 하는 것보다 당당한
꼴찌를 선택했다. 선거 기간 내내 현민투는 개악안 저지와 민주노조 사수만을
외쳤다. 타 후보들이 개악안 저지를 외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선거투쟁
에 참여하는 목적 중 하나였으나, 오히려 개악안 수용을 전제로 한 다수 조합
원들을 위해 "연말까지 교섭을 마무리하겠다"로 표현되었다.
현장이 회사에 의해 완전장악 당해 있는 대우조선의 현실상 성과 있는 투쟁은
노사협조주의였고, 이를 뻔히 알고 있는 현민투는 성과 있는 투쟁을 외칠 수
도 외치지도 않았다.
비록, 4명의 후보 중 꼴찌를 했지만, 현민투를 지지한 700표는 칠십만 표 보
다 더 값지고 1등보다 당당한 꼴찌이다. 지금, 현민투가 가고 있는 양심을 지
키는 길이 노동자 계급의 올바른 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이 길
을 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권력과 영예가 아닌 투쟁의 수단이었다.
선거투쟁 기간 동안 현장을 순회하며, 많은 조합원들을 만났다. 조합원들은 하
나 같이 "고생했다. 현민투가 말하는 것이 옳다"고 말해주었고, 따뜻하게 두
손을 잡아주었다.
조합원들의 이러한 생각들이 과연 표로 나타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었다. 그래도 조합원들은 우리를 믿고 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회원동지들은 자
신감을 얻었고 비록, 쪽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너무도 당당하게 선거투쟁에
참여했다. 비록, 조합원들의 이중성을 확인하는 선거투쟁 결과로 나타났지만,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값진 성과였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투쟁들이 조직되었지만,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투
쟁을 조직해내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더 많은 고민과 과제를 안고 현민투 집행
부 2년은 마무리되고 있다.
우리에게 노동조합 집행부는 권력과 영예가 아닌 투쟁의 수단이었고 많은 아쉬
움이 남지만, 후회는 없다.

대우조선노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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