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간의 긴긴 영상 마무리 작업 시다역할을 마치고

한달만에 전주 집에 갔다.

집에 간길에 머리 빠마도 하고 나의 유일한 취미인 서점에서 책보기에 돌입

물론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엔 없었지만

미리 봐 두었던 신경숙의 신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를 거침없이 집었다.

 

분신한 언니를 지켜 봐야 했던 그녀의 동생 미루와 그의 친구명서

엄마의 죽음에서 해어나오지 못해 상처입은 정윤과 그의 친구 단.

 

짧게 소개해 보자면

이렇게 네 젊은이들이 주인공

 

여차여차하여 네명이 서로 친구가 되고

쌍둥이 처럼 붙어 다녔던 단과 미루가 각각 세상을 떠나게 된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그 시절 그 때쯤이 배경인듯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열기로 가득찬 광장을 뛰어 다니고

죽음을 목격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죽기도 하면서

그 시간들을 건너온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소설속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정윤의 엄마만 제외하고

단과 미루 그리고 미루 언니의 죽음은

그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배경은

결코 그 개인들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겁다.

 

어느날

학생운동을 하던 애인이 실종되자 그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사람은 찾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세상에 호소했던 미루의 언니

그리고 그 언니의 죽음을 목격했던 동생은 오래된 자괴감으로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죽어가고

 

사회에 적응해 보겠다며 군에 입대한 단은

경계근무를 서던 중 자신의 총에서 나온 총알이 몸에 박혀 죽게 된다.

 

이 죽음들을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러면서도 '언젠가'라는 말을 남기며

좌절이 아닌 긍정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언젠가라는 말은 참으로 요원하다.

 

언젠가  세상이 바뀌겠지

언젠가 사람이 바뀌겠지

하는 말은

 

희망과 긍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언젠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그냥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함 속에서

그야말로 언젠가 오는 것이겠지... 생각해 본다.

 

이런 의미라면

작가가 말한 비극이 아닌 희망으로 한발짝 더 가는 것일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6/04 21:14 2010/06/04 21:14
Tag //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dalsang/trackback/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