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에 살다보니

뭔가 국가적인(!) 중대 발표가 있을때마다 기지는 더욱 시끄러워진다는 걸 느꼈다. 

 

천안함으로 의기 투합한 한미 양국이 서해안 대규모 군사 훈련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2일 선거가 끝난 오후부터 시끄러워지더니

3일이 되선 본격적으로 헬기들이 지붕 위를 왕왕 날아다니고

유리창이 달달달 떨릴 정도로 괴롭히더니

4일이 되어서까지 윙윙 떠다닌다.

 

필시 평택에서 오는 헬기들인텐데.

오전에 군산으로 출근했다가

다섯시가 될때쯤  평택으로 퇴근 하는 듯 하다.

꼭 아침 8시에 탈탈탈 들어 와선

저녁 해가 떨어지기 전에 탈탈탈 돌아 간다.

 

아마 담주로 예정된 군사훈련 때문에 왔겠구나 싶다.

 

이런 식으로

뭔가 중대 발표가 있을때

북한이 무슨 훈련을 했다, 미사일을 쐈다 할때

옥봉리는 시끌시끌하다.

 

뉴스를 보지 않고서도

뭔가 시끄러워졌다 싶으면 무슨일이 꼭 일어나 있다.

 

정말 옥봉리에 산다는 것이

군사기지가 있는 마을에 산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구나 싶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그들도 긴 휴식에 들어갈 터...

 

담주 훈련은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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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21:33 2010/06/0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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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의 긴긴 영상 마무리 작업 시다역할을 마치고

한달만에 전주 집에 갔다.

집에 간길에 머리 빠마도 하고 나의 유일한 취미인 서점에서 책보기에 돌입

물론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엔 없었지만

미리 봐 두었던 신경숙의 신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를 거침없이 집었다.

 

분신한 언니를 지켜 봐야 했던 그녀의 동생 미루와 그의 친구명서

엄마의 죽음에서 해어나오지 못해 상처입은 정윤과 그의 친구 단.

 

짧게 소개해 보자면

이렇게 네 젊은이들이 주인공

 

여차여차하여 네명이 서로 친구가 되고

쌍둥이 처럼 붙어 다녔던 단과 미루가 각각 세상을 떠나게 된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그 시절 그 때쯤이 배경인듯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열기로 가득찬 광장을 뛰어 다니고

죽음을 목격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죽기도 하면서

그 시간들을 건너온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소설속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정윤의 엄마만 제외하고

단과 미루 그리고 미루 언니의 죽음은

그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배경은

결코 그 개인들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겁다.

 

어느날

학생운동을 하던 애인이 실종되자 그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사람은 찾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세상에 호소했던 미루의 언니

그리고 그 언니의 죽음을 목격했던 동생은 오래된 자괴감으로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죽어가고

 

사회에 적응해 보겠다며 군에 입대한 단은

경계근무를 서던 중 자신의 총에서 나온 총알이 몸에 박혀 죽게 된다.

 

이 죽음들을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러면서도 '언젠가'라는 말을 남기며

좌절이 아닌 긍정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언젠가라는 말은 참으로 요원하다.

 

언젠가  세상이 바뀌겠지

언젠가 사람이 바뀌겠지

하는 말은

 

희망과 긍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언젠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그냥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함 속에서

그야말로 언젠가 오는 것이겠지... 생각해 본다.

 

이런 의미라면

작가가 말한 비극이 아닌 희망으로 한발짝 더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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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21:14 2010/06/0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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