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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이 맴맴

 

꽤 오래 전부터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싶었던 얘기들이 여럿 있다. 멀리는 지난 총선 때 말걸기가 '사기공약'이라 불렀던 심상정의 교육공약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전부터 있던 일일지도 모른다. 촛불집회를 두고 '식자들'이 하는 얘기들이 가관이라 따지고 싶은 맘도 굴뚝같다. 최근에는 교육감 선거에 대한 생각도 맴맴거린다. 그리고 진보블로그의 최대 갈등인 '엄마'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도 할 말이 생긴다.

 

그런데...

 

귀찮아 죽겠다. 이 귀찮음은 기본적으로 게으른 천성에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귀찮아서 떠들지 못하겠는 하나의 이유는 집안일이다. 날도 더워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맥이 빠진다. 최근에 부지런을 떨었더니 이런다. 아침에 일어나면 계속 무언가 일을 한다. 물론 지쳐서 축 늘어져 쉬기도 한다. 어쨌든 열심히 일해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쌓여 있다. 일거리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잡다한 일거리들은 한둘이 아니다. 해결되지 않은, 결코 끝나지 않을 집안일들은, 하면 할수록 늘어가기만 하는데 이 때문에 지쳐 있다.

 

더욱 암담한 자기진단 중에 하나는 "과연 말걸기가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은 있었는가?"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6년 간의 열정이 좌절로 되돌아 왔던 상처가 인간을 이렇게 오래도록 괴롭힌다.

 

 

사기공약이나 촛불집회, 교육감 선거나 엄마 얘기들은 그 자체로 모두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다. 그런데 말걸기에게는 가볍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이들을 둘러싼 주장들과 감성들이 한국 진보의 어처구니 없는 한계, 그러니까 자기 목적 상실, 열등감, 안일함, 국가주의나 도덕주의 따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주제들은, 특히 심각성을 느낀다면, 공들여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심상정이 내세운 이범은 알고 보니 극우들과 교육이념이 통하네, 촛불집회는 애초에 우익과 우익의 싸움이었는데, 교육의 정점은 교육과정인데 이게 뭔지 모르니 교육자치고 입시고 헛다리 짚고들 있지, 글은 어쩔 수 없이 그 글 속의 맥락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데 자기 의도만 강조한다고 글이 달라질까 따위까지로만 정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 생각의 시작은 단순하다. 몇 개의 토막들이 가지를 쳐서 정리가 잘 되면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글로 완성된다.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생각을 정리해서 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앞서 언급된 주제들은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야 전달도 제대로 될 것들이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그것을 글로 쓴다는 건 노력이 많이 든다. 에너지를 한 바가지 퍼다가 머릿속을 쥐어 쨔야 한다. 사적인 감성이나 일상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글 속의 맥락에 주의해야 한다. 몸이 지쳐 있어 이렇게는 글을 못 쓰겠다. 문득문득 생각의 조각들이 툭툭 터져 나오는데 정리가 안 된다. 머릿속이 맴맴거린다. 스스로도 참으로 갑갑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거리들 때문에 한숨을 쉬고 골이 난다. 화가 난 모습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도 궁금하다. 아마도 한국 진보의 어처구니 없음의 한가운데에서 일하며 이에 기여함과 동시에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인 것 같긴 하다. 열정이 사라지는 이유는 지난날의 괴로움을 떠올리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모순되게도, 그렇게 괴로우면 일관되게 무시하면 될 걸 자꾸 쳐다보고 분석하고 할 말을 만든다. 이게 자학인지 미련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쳐서 정리 안 되는 머릿속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