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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8
    매몰비용
    말걸기
  2. 2011/06/11
    이상한 정태인과 대학등록금
    말걸기
  3. 2011/06/02
    진보신당 분당(2)
    말걸기

매몰비용

 

합리적 선택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비용의 개념으로 매몰비용(sunk cost)이란 것이 있다. 매몰비용이란 일단 지출된 뒤에는 어떤 선택을 하든 다시 회수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비용을 뜻한다. 예를 들어 박샛별 씨가 음식점을 새로 열면서, 내부장식을 하고 개업광고 전단을 만드는 데 각각 5백만 원과 3백만 원의 경비를 지출했다고 하자. 이와 같은 성격의 경비는 한번 지출하면 그만이라서 박 씨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다시 회수할 수 없다. 이런 성격을 갖는 비용을 매몰비용이라고 부르는데, 가라앉아 묻혀 버리기 때문에 도로 찾을 수 없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일단 지출된 매몰비용은 철저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합리적 선택의 요령이다. 다시 말해 과거는 과거로 돌려야 하며, 그것이 미래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매몰비용의 성격을 갖는 비용을 지출해 놓고 미련을 버리지 못해 비합리적 선택에 이르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지출된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회수할 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들인 돈이 아깝다는 생각에서 뒤에 후회할 일을 하고 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우리말에 “본전을 뽑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비합리적인 태도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싼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간 사람이 연주가 무척 시시하다고 느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시시한 연주를 참고 듣느니 집에 가서 비디오나 보는 것이 훨씬 더 낮다고 생각하면서도 본전을 뽑기 위해 계속 앉아 잇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다. 참을성을 발휘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고 입장권을 사기 위해 지불한 돈을 되돌려 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비싼 돈을 내고 입장권을 샀다 해도 그것은 이미 버려진 돈일 뿐이다. 그렇다면 연주가 무척 시시하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자리를 뜨는 것이 최선의 선택임이 분명하다.

 

- 이준구 <새열린경제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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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인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돈이 매몰비용은 아닐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기회비용을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4개월 동안 수강하면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해 보자. 자격증도 하나 딸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한 달 수강해 보니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그 자격증이라는 게 4개월치 수강료와 공부하느라 든 시간에 비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 돈과 시간이면 다른 걸 할 수도 있다. 이왕 한 달 공들였으니 3개월 마저 돈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인가?

 


 

이상한 정태인과 대학등록금

 

반값등록금으로 세상이 난리다.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왠일인지 그다지 관심이 확 쏠리지는 않는다. 등록금 내려면 17년은 있어야 해서 그런가? 아님 요즘에 세상을 너무 쿠~울하게 보나?

 

어쨌든 반값등록금은 소위 진보를 자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소 가이드라인, 보수는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결코 먹어서는 안 되는 악마의 사탕인듯하다. 이런 와중에 깨나 진보랍시는 정태인이 '도발적으로' 반값등록금 반대를 외쳤다.

 

'반값등록금'에 반대한다

 

노동시장에서의 학력, 학벌 차별이 교육을 이상하게 만드는 원인이라 지목하고, 임금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 없다. 다만 이 사람은 임금시장과 서열화된 대학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임금 "격차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이 대학 등록금 인상을 막는 가장 근본적 처방"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렇다. 짧은 칼럼에서 이 사람 생각을 다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이 사람은 노동시장에서의 학력, 학벌에 따른 임금 차별을 해소하면 대학등록금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그게 쉽게 될까? 또 이 사람은 "어떤 정책이 아무리 복지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더라도 양극화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면 그 정책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학 등록금이 바로 그렇다. 현재도 대학 입시경쟁은 과잉이다. 그런데 대학 다니는 비용을 낮춰 준다면 대학에 가려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입시 경쟁은 더 격화될 것이다. 결국 현재 대학 등록금 인하가 그 이상의 차세대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도 대학입시 경쟁이 과잉인 건 알겠는데, 이 상황에서 대학등록금이 반값으로 줄면 경쟁이 더 치열하게 된다는 말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동안 대학등록금은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인상되어 왔다. 그러니까 대학졸업장 가격이 계속 상승했는데 그 동안 수요, 즉 대학입시 경쟁률은 떨어졌나? 또 내일 당장 등록금이 반으로 줄었다치자. 2012학년도 대학입시 경쟁률이 올라갈까? 아니면 내년이나 후년에, 그 다음해에 올라갈까?

 

정태인은 자칭 경제전문가답게 대학등록금 문제를 기본적으로 가격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가격 문제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단지, 대학졸업장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격에 따라 수요량이 달라지는 소위 '일반상품'과는 너무나 다른 상품이라는 사실을 쉽게 무시한다. 대학졸업장이 하나의 상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경제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공급 법칙하고는 안 맞잖아?

 

서열화된 대학구조와 노동시장에서의 임금차별이 동시에 대학으로하여금 배째라 등록금인상을 보장하고 있다. 그걸 대학도 아니까 열심히 현금과 부동산을 축재하면서도 등록금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얘기가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니 길게 할 것 없고...

 

가정을 해 보자. 노동시장의 임금차별을 완화하자. 그러면 대학졸업장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물론 대학교육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하는데 이 얘긴 그냥 제쳐두자.) 그렇다고 대학등록금이 낮아질까? '아니올시다'가 답이다. 대학졸업장 수요가 줄어들면 정원도 못 채우는, 현금유동성 확보를 위해 이 기업 저 기업이 만들어낸 대학들이 먼저 망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살려달라고, 대학을 없애면 안 된다고 야단들을 치면서 말이다. 그 상황에서 연고대가 등록금 내릴까? 그리고 경영상의 위기가 닥친 대학들은 등록금 내리면 경영 위기가 더 심화되는데 무턱대고 등록금을 내릴까?

 

노동시장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는 건 쉽지 않다. 당연히 자본이 반대하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사실 설계 자체가 쉽지 않은 정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서 근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치자. 대학졸업장 수요가 줄어든다. 서열 맨 아래에 있는 대학부터 파산을 하고 그 위로는 입학정원 조정을 비롯해서 경영상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이다. 등록금도 낮출 수 있는 만큼 낮추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대학들은 희망이 없다. 낮은 비용으로는 양질의 교육이 불가하기 때문에 더욱 소비자의 선택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회의 구조상 일정정도의 대학졸업자, 석박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층의 대학들은 안 망한다.

 

이 정도라도 지금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상황이다. 이제는 어느 대학을 살리고 죽일 것인가?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 수급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이런 문제는 지금보다 정부의 정책에 더욱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등록금은 별개의 문제로 존재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으로 일단 살아남은 대학들은, 그 사회적 필요가 더욱 선명해졌으므로 양질의 교육을 명분으로 자신들이 치뤄야할 비용을 정부든, 기업이든, 학생이든, 누구에게든 더 큰 손을 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상황이에서도 공익적 목적을 수행하는 대학교육의 비용을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부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누진적인 방식의 조세와 기업의 직접 투자로 대학의 비용을 부담하는 게 가장 아름답기는 하겠으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만약 대학졸업장에 대한 수요는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대학이 학생들에게 높은 등록금을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크지 않은 학생들은 대학졸업장에 드는 비용과 대학 후 구한 직업으로 얻게 되는 소득을 따져 보고는 대학입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뭐 굳이 대학 안 나와도 돈 벌 수 있으니까. 안타까운 건 공부를 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대학이 좋은 집안 자제들로 가득 찰 것이고 이 사회의 높은 수준의 지식은 부자들에게 독점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정태인이 절대 안 된다는 양극화를 촉진하는 매커니즘이 될 것이다. 다시 반동의 시대가 도래하겠군!

 

 

한국의 교육이 왜곡된 건 임금차별, 즉 노동의 영역에서 큰 원인을 제공했다. 그렇다고 노동문제 해결이 곧 교육 문제 해결은 아니다. 대학교육을 포함한 공교육도 그렇고 사교육도 그렇도 이제는 거대한 자원을 흡수하고 통제하는 영역이다. 교육문제는, 그 발단을 제공한 여러 영역의 문제 해결 방법과 함께 그 내부의 해결 방법도 실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지금 상황에서 교육정책 이외의 분야 정책이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라고 얘기하는 건 모자란 얘기다. 또한 당연히도 반값등록금이 교육문제의 상당 부분을, 혹은 아주 긴박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해도 모자라다.

 

욕심을 낸다면 이번 기회에 대학의 비용,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양질의 고등교육의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고등교육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등의 정책을 쏟아내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함께!

진보신당 분당

 

며칠 전에...

가끔씩 찾아가던 진보신당 당직자들을 만났는데,

그다지 좋지 못한 건물 한 켠에 방을 몇 개 만들어 놓고 사무실을 꾸미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꽤 많이 보였다.

지친 모습이지만 다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진보신당이 창당될 때와는 달리, 누군가에게 달려들어 악다구니를 쓸 것 같지는 않은,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런데 왜 이리 불쌍해 보이던지...

지갑에 있던 돈을 죄다 꺼내서 그 중 누군가의 손에 쥐어주고 왔다.

 

 

요즘 진보신당 난리구나.

소위 통합파와 독자파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진보에는

너무나 타락한 이들이 이끄는 순진무구 부대들과

용기도 창의력도 없는 이들만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