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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29
    경로를 수정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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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6/05/26
    불어나는 여행 경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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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5/20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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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5/15
    [터키/이스탄불] 아야소피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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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를 수정하다

 

말걸기[불어나는 여행 경비] 에 관련된 글.

 

 

시베리아-몽골 여행은 애초에는 시베리아-몽골-중국 여행으로 제안되었었다. 중국까지 가면 몸이 못 버틸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중국이 빠졌다. 이 때만 하더라도 돈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Green Asia 2006 공모에서 떨어지면서 우수리스크에 갈 이유가 사라져서 바이칼을 가기 전에 하바로프스크를 들르기로 했다. 또한 여행팀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궁금증과 욕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 경로가 만들어질 때 쯤 예산은 불어만 갔다. 그래서, 20만 원 정도 줄이는 방안으로 날짜를 줄여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 뛰고 하바로프스크로 바로 날아가기로 했다.

 

 

[여행 경로의 수정]

 

(1) 서울 - 속초 - (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우수리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텐진 - (배) - 인천

 

(2) 인천 - (비행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우수리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3)  인천 - (비행기) - 블라디보스토크 - (TSR) - 하바로프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 다만, 현지 상황을 봐서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비행기) - 인천'으로 변경될 수 있음.

 

(4) 인천 - (비행기) - 하바로프스크 - (TSR) - 이르쿠츠크 - (TSR+TMR) - 울란바타르 - (비행기) - 인천

* 다만, 현지 상황을 봐서 '울란바타르 - (TMR) - 북경 - (비행기) - 인천'으로 변경될 수 있음.


 

이제는 세세하게 뭘 보고 다닐 지 시간표를 짜봐야 한다. 굵직굵직한 이동 경로와 교통수단, 시간표는 다 확보했다. 해당 도시나 지역에서 가야 할 곳, 가는 방법, 비용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신경도 많이 쓰이고 정신도 살짝 나가 있다. D200과 친해질 시간도 의외로 없고 약속도 잊는다.

 

6월 1일에는 몽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려줄 사람을 만난다. 이날 얘기를 마치면 계획도 완성되고 가장 구체적인 예산도 짜여지고, 무엇보다 예약할만한 건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준비물을 챙겨야 할 시간이 된다. 내게는 가장 큰 걸림돌인 보험 문제도 알아봐야 할 테고.

 

 

왠지 블라디보스토크를 건너 뛴 게 안심이 된다. 여행자에게 충고는 하되 협박은 금물!

 

 

불어나는 여행 경비

 

말걸기[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 에 관련된 글.

 

 

러시아의 물가가 비쌀 리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유럽의 러시아가 아니라 아시아의 러시아, 즉 시베리아의 물가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는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동네 물가는 여의도 물가 뺨친다. 사람들은 여의도 물가의 특징을 잘 모르는데, 이 동네 물가의 특징은, 기본 가격은 상당하고 '싼 것'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홍대앞이나 강남역 동네에서는 비싼 데도 많지만 싼 데 찾기도 어렵지 않다. 이것 참. 러시아 동쪽 동네 물가가 여의도 물가라니... 어딜 가든 먹고 자는 데 싼 곳은 있기 마련이다.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로브스크, 이르쿠츠크에도 싼 데는 있겠지. 근데 어디 있느냐 말이지.

 

한국에서 정보 구하기가 어려우니, 현지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여행업자/숙박업자)이 제시하는 가격에 먹고 자고 이동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사이트에 문의글도 올리고 이곳 저곳 메일도 보내고 여행 경비로 얼마를 준비해야 할 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늘은 몇 통의 답신 메일과 인터넷 서핑의 결과를 모아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예산을 짜 보았다. 환율 계산해 주는 사이트까지 찾아가면서.

 

ㅇㅇㅇ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 셈에 넣지 못한 경비가 있다. 정보가 부족해서 다시 알아봐야 하는 몇 군데 관광비용이다. 오마나! 얼마나 더 필요할까. 처음 여행을 가야겠다고 맘 먹을 때에 비해 100만 원이 오바하는 비용이다. 이건 하루가 멀다 인플레이션이 심한 러시아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7월부터 열차삯이 또 오른단다.

 

나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으로 잼나는 여행을 꿈꾸다가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니 김이 좀 샌다. 주머니가 두둑해서 돈 많이 들든지 말든지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일단 가고 봤으면 좋겠다.

 

 

불어나는 여행 경비에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씩 훈수를 둔다. 누구는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100 같은 고액 달라 지폐를 보이면 칼 맞는단다. 또 누구는 세계여행 이리저리 다 가봐서 더 이상 갈 데 없는 사람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단다. 아주 겁을 먹게 만드는 멘트다. 내가 여행갈 때 들쳐 메고 가야 할 가방 한 보따리는 400만 원 정도한다. 카메라 가방. 달라 지폐는 커봐야 $100이지만 이 가방은 $4,000나 되는데 나 더러 칼 맞으라는 거냐. >.<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싫지만, 안정감 없는 여행이 더 싫다. 위협을 받는다거나 바가지를 뒤집어 쓴다거나 하는 건 너무 싫다. 좀 고생해도 이런 게 없는 게 좋다. 돈도 없으니 삐까뻔쩍한 곳에서 잘 먹고 잘 잘 수는 없지만 몸은 불편해도 맘은 편안했으면 좋겠다. 난 '평온을 얻기 위해' 여행을 가려는 건데 말야.

 

 

지금 돈 등등 땜에 기분이 언짢은 게 액땜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전전긍긍하다가 막상 가서는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여행.

 

 

시베리아-몽골 여행의 탄생

 

며칠 전에 여행 함께 갈 사람들과 만났는데, '각'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했다. 문득 내가 쓰고 싶어졌다.

 

 

 

언제였더라... 민주노동당 정책위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는데, 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다가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했다. 여럿이 있었는데 그 중 당시 제2정조위원장이었던 김변이 큰 돈 벌면 다함께 바이칼호 관광시켜준다고 했다. 가고 싶은 맘이 굴뚝 같아 '나도 갈래'라고 소리쳤지만 그런 날이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2월초에 사직을 하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조금씩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지기도 했다. 과연 난 뭘 하고 살까? 약 6년 동안 지친 건 몸뿐만이 아니라서 마음을 달래기에 바빴다. 내 안의 괴물을 알게 되니 무섭기도 하거니와 우울중과 불안증으로 하루가 괴로웠다. 앞으로 뭘 하든 당장은 나에게 좋은 건만 하고 살자 맘 먹었다.

 

소수의 사람들과만 접촉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누군가 여행을 권했다. 꽤 긴 여행. 새로운 공간에서 익숙치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면 감당하기 힘드니 적당한 깊이의 만남. 좋은 제안이라고 여겨졌다. 여행을 권한 사람이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알아봐주겠다고 했다. 다만, 돈이 얼마 들지 몰라 어떨지 모르겠단다. 잘 알지는 모르지만 '피스 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나처럼 연고 없는 사람이 참여하려면 1,500만원이나 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단다. 한달 정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1,500만원이면 나한텐 지극히 사치스럽기도 하거니와 돈 만들 능력도 되지 않아 포기했다.

 

김이 새버린 처지일 때 '각'이 바이칼호 얘기를 다시 꺼냈다. 예전에 잠시 스치는 꿈만 꾸었던 바이칼. 상당히 구체적인 구상을 밝혔는데 그 동안 바이칼 여행을 실현하기 위해 이것 저것 많이도 알아보았나 보다. 기본 루트와 기간, 대략적인 예산. 이 정도면 여행을 맘 먹기에는 충분한 정보였다. 퇴직금을 받아내서 여기에도 쏟아 부어야 할테지만 난 떠나고 싶었다. 난 바이칼이 좋다기 보다는 여행이 필요했다.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의 여행에 대해 나는 짝꿍의 이해를 간곡히 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난 나름대로 가고 싶다는 표현을 했는데 짝꿍은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통보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미안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한 문제다. 짝꿍은 내가 긴 여행을 가게 될 걸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난 가야겠다. 기대에 부풀다가 정작 가서는 고생스러워도,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생경과 개성을 지닌 풍광을 보고 와야겠다. 사진에다가도 담아 와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삼아야겠다. 난 너무 더럽고 절망적인 것들과 살아왔고 조롱과 비난과 상처에 익숙해져 있다. 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깊이 느끼지 못하면 앞으로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도 결심하지 못할 거다. 이건 죽음의 길이다. 아직까지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니 파산과 함께 여행을 선택했다.

 

 

'각'이 제안한 컨셉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도 빌려주어 열심히 읽었다. 고생이 눈에 선하나 흥미롭다. '각'은 주변의 인물을 꼬셨다. 내가 알지 못하는 두 명을 더해 넷이 가자고 했다. 하나는 이제 유학을 결심한 듯하다. 이번 여행엔 함께 못하게 될 것 같다. 이번 일로 딱 두 번 만났음에도 아쉬웠다.

 

예산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불어났다. 지금도 불어나고 있다. 돈도 큰 문제라 고심하던 터에 환경재단의 'Green Asia 2006'이라는 공모 사업을 알게 되었다. 시민사회의 주제를 가지고 아시아 지역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제출하면 심사해서 한 팀에 500만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3주 고생해서 나름대로 솔직하고 괜찮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응모했는데 떨어졌다. 나름대로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들로 구성된 팀이 떨어진 것에 적지 않은 이들이 쪽팔린 일이라며 놀려대고 있단다. 우리는 그냥 내정자들이 있었던 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리했다. 더더욱 훌륭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채택되지 않았을 공모에 응한 게 어리석었다고. 이게 쪽팔린 거라고. 자존심이 상할 땐 남탓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각'의 애초의 제안과 달라진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각'도 몰랐던 러시아의 물가 상승이었다. 즉, 대략 200만원 씩이면 꽤나 잘 먹고 놀겠다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러시아는 여의도 물가란다. 또 하나는 여행 루트다. '각'은 중국의 베이징까지 들르길 원했지만 일정(이는 곧 돈)도 길어지고 체력에 자신없는 내가 몽골에서 끝내자고 했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는 계획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될 지 모르니 중국비자는 받아두고 몽골-한국 항공권은 구입하지 않기로 했다. 난 아마 못버티고 몽골에서 한국으로 날라올 것 같다.

 

며칠 전 여행자들끼리 만나서 날짜와 기본 루트를 만들어 보았다. 몽골 횡단열차의 운행 날짜를 알 수 없어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 차이 정도니 문제는 아니다.

[여행 일정(안)]

 

6/25(일) 인천 → 블라디보스토크(항공편)

6/26(월) 블라디보스토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27(화) 하바로브스크 도착

6/28(수) 하바로브스크 관광

6/29(목) 하바로브스크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

6/30(금) 열차 안에서

7/1(토) 이르쿠츠크 도착

7/2(일) 이르쿠츠크 관광

7/3(월) 리스트비얀카 등 바이칼호

7/4(화) 이르쿠츠크 → 알혼섬

7/5(수) 알혼섬 일주

7/6(목) 알혼섬 → 이르쿠츠크

7/7(금) 환바이칼열차

7/8(토) 울란바타르로 출발(시베리아 횡단열차+몽골 횡단열차)

7/9(일) 울란바타르 도착

7/10(월) 울란바타르 관광

7/11(화) ~ 14(금) 고비사막 여행

7/15(토) 울란바타르 근교 등

7/16(일) 울란바타르 → 인천(항공편) or 북경행 열차

7/17(월) ~ 몇 일간 여행. 북경에 있다면

 

자, 이제는 비자발급과 티켓, 숙박 예매를 해야 한다. 다들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 좋은 결과란 '싸고 좋은 상품'을 취하는 것이다. 정보가 많지 않으니 돈을 무지막지하게 아끼진 못할 것 같다. 이제 러시아어와 몽골어 공부도 해야 하고 여행 물품도 마련하고 할 게 많다. 이런 과정이 나에게 큰 재미를 주었으면 한다. 그게 나의 여행 목적이니까.

 

 

[터키/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아이비님의 [이스탄불/아야소피야/060318] 에 관련된 글.
아이비님의 여행기를 가끔 읽는데, 내가 가본 곳이라 왠지 반가워서 글과 사진을 올린다. 지난 얘기기는 하지만.

 

 

아야소피아는 터키의 이스탄불에 소재한 사원이다. 지금은 '박물관'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말걸기와 짝꿍은 신혼여행으로 터키에 갔었고, 때는 2003년 3월 초중순이었다.

 

@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2003. 3.)

 

아야소피아는 아이비님이 소개한 대로 6세기(537년)에 지어졌다. 이 건축물은 1,500여년 동안 무수한 지진을 견뎌냈다고 한다. 요즘 말로 '내진 설계'가 제대로 되었단다. 사람들이 아야소피아를 신비하게 여기는 이유는 건축을 시작한 후 5년 10개월 만에 지어졌음에도 이렇게 거대하고 튼튼한 건출물이기 때문이다.

 

아야소피아 맞은 편에는 아야소피아 건축 약 1,100년 후 지어진 블루모스크(술탄아흐메트 사원)가 있다. 1609~1616년 사이에 지어진 이 사원은 크리스트교도에 대한 무슬림의 자존심을 걸고 더 크게 지으려고 했었단다. 그러나 이런 양식의 건축물들의 자존심인 꼭대기 돔의 크기는 아야소피아가 더 크단다.

 

아야소피아는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었고, 이슬람의 점령지가 된 이후에는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무슬림들은 아야소피아의 벽화를 회로 칠해서 덮어서 그들의 문양을 그렸단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한참 회벽을 걷어내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 공사를 위해 설치한 듯.

 

21세기 초엽에 아야소피아는 흥미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슬람의 세월을 걷어내어 나타나는 비잔틴의 벽화가 이슬람의 유물과 공존하고 있었다.

 

@ 아야소피아 내부 벽화. 성모상

 

다음 사진은 엄지 손가락 넣고 나머지 네손가락을 떨어뜨리지 않고 한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구멍이 난 금속판이다. 성모 마리아의 손모양이란다. 소원을 빌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손이 지나가는 자리만 반들반들.

 

당시에는 아야소피아 내부가 상당히 공사 때문인지 조명도 없고 어두워서 이것저것 구경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다음에 가면 비잔틴 시대의 벽화도 구경할 수 있겠지. 어두운 곳에서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폼만 잡고 왔다.

 

@ 폼 잡는 짝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