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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24
    [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말걸기
  2. 2004/11/23
    <지저분한 일기>에 대하여
    말걸기

진압된 뒷북 - 부유세로 상징되는 조세개혁정책의 수난

11월 30일 오후 2시,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실 회의 테이블에서는 정책조정회의가 있었다.

지난 11월 9일 민주노동당이 발의한 조세관련 법률 개정안들에 포함된 '간이과세제 폐지'가 또 다시 도전을 받았기 때문이다.

 

 

<1>

 

11월 9일에 발의한 10개 법률 개정안들은,

민주노동당의 조세개혁 프로그램의 1단계로서 부유세로 대표되는 당의 슬로건,

'부자에겐 세금을, 서민에겐 복지를'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한 것들이었다.

 

부유세 정책은 민주노동당이 이 사회에 던진 하나의 화두이다.

이로써 돈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전파했다.

당의 조세정책에서 부유세가 전부는 아니지만 부유세가 사회화된 상징임은 분명하다.

부유세가 도입되려면 그 이전에 여러 사전 장치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세개혁 프로그램을 '부유세 도입 3단계'로도 표현한다.

 

부유세 정책은 사실 이 땅에 태어나지도 못할 뻔한 정책이다.

예전에 당은, 조세개혁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민주노총과 참여연대와 협의한 적이 있었다.

민주노총도 참여연대도 부유세 도입 정책을 반대했었다.

그래도 당 정책위는 부유세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부유세 정책은 당의 수많은 정책들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뭍힐 뻔 하기도 했다.

2002년도 대선에서 부유세를 공약에 넣었을 때,

선본 안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대선 후보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부유세 얘기를 꺼내니까,

나름대로 경제전문가라는 기자가

부유세 얘기를 하면 대선에서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충고'를 했단다.

후보는 인터뷰 후, 인터뷰 내용에서 부유세는 빼달라고 기자에게 요구했고

다음 날 기사에는 부유세 얘기는 실리지 않았다.

또한, 공약으로 내건 부유세의 과세 기준은 순자산 10억이었지만,

어느 순간 30억으로 보도되었다.

가진자들의 조세저항은 세련되었고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까지 흔들었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공약은, 논쟁거리가 되면서 히트쳤다.

 

이런 일을 겪고서 부유세 정책은 당의 상징이 되었다.

부유세를 걱정하던 그 누구도 당당히 부유세는 도입해야 한다고 큰 소리치기 시작했다.

 

 

<2>

 

부유세로 상징되는 조세개혁정책은 세번째 수난을 맞이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은 국회에 진출했고, 법안발의 하한선인 10석을 차지했다.

당은 마땅히 조세개혁입법을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그 첫 선을 11월 9일에 보였다.

하지만 이보다 발의가 늦춰져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다루어지지 못할 운명을 맞이할 뻔했다.

당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고위원회의 다리걸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위원 다수가, 조세정책은 치밀하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은 타당했다.

그러나, 당이 수년 간 준비했던, 그리고 국회진출 후 세세하게 다듬어졌던 정책이,

그것도 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았던 부유세 도입 등 조세개혁 프로그램이

검증받지 못한 정책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1가구1주택 소유라고 해도 양도차익을 2억 이상 얻은자에게 세금을 걷는 게

무슨 중산층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인가.

투명과세를 위해 소득을 투명하게 하는 간이과세제 폐지가,

영세 상인만을 당의 적으로 만드는 정책인가.

 

당의 상징인 부유세 도입과 조세개혁정책을 지키라는 당내 여론으로

최고위원회는 11월 9일 입법발의를 허했다.

 

 

<3>

 

이것으로 당의 정책은 수호된 줄 알았다. 근데 뒷북이 울렸다.

간이과세제 폐지의 취지는 타당하지만, 연 매출액 7,200만원 이하 사업자에게 부담되는

"세부담 증가액은 전액 세액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또한 합리적이고 충분한 보완장치들이 마련되지 않는 경우, 일정한 형태의 정치적 결정을 해야할 중요한 사안"이라는 주장이 당 정책위 내에서 제기된 것이다.

상인단체들도 공문을 보내와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래서, 11월 30일 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법제실장, 조세담당 정책연구원, 의정정책실장, 정책기획실 정책연구원, 심의원실 정책수석, 송실장, 경제민주운동본부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는 당이 발의한 원안대로 결론을 내렸다.

당론이 정해져 법안발의까지 했어도 여전히 문제제기가 있으면,

다시 점검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나는 이번 과정을 심각하게 여긴다.

당에서 조세정책은 제2정조위 소관업무다.

문제를 제기한 송실장은 제2정조위 실장이다. 말하자면, 정책조정 실무책임자다.

조세담당 정책연구원이 구체적으로 법안을 작성할 때,

초안 작성을 마친 후 의원실과 협의를 할 때,

그리고 발의하기 위해 마지막 마무리를 할 때, 즉 정책위의 안을 확정하기까지

실장은 모든 걸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그땐 도대체 무엇을 했길래 법안이 발의된 후에 문제를 제기하는가.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자기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한들,

최종안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30일에 정책조정회의를 하기로 해 놓고선,

29일에 당 사이트 게시판에 "간이과세 관련 입법발의안 - 심각한 문제있다"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자기주장을 펴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뒷북은 진압되었다.

주의장은 잘 된 일이라 한다.

문제가 보이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것이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도 포함해서 합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웬지 부유세로 상징되는 조세개혁정책의 수난은 계속될 듯하다.

 

 

 

이제야 왔다.

11월 24일 민주노동당에서는 인사가 있었다.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부임되었다.

 

윤영상 부의장은 전 평화군축운동본부장을 역임했고

정책위원으로도 활동을 한 사람이다.

마산의 주대환 위원장을 중앙정치의 정책위 의장으로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주의장을 두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10년만의 복권'을 이루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지난 6월, 의장이 선출된 초기에는

당헌에 따라 새롭게 구성해야 할 정책위 조직체계와 운영, 사업에 대한 구상을

주의장과 나누었던 사람이다.

기존의 정책위원회 상근 멤버들과도 이런 구상을 나누기도 했다.

 

나는 6월에 윤영상 부의장에게 요구한 바가 있다.

정책위에서 자리를 잡으라고. 어떤 자리든.

윤영상 부의장은 내게는 두 가지 이유로 정책위에서 자리를 갖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나는, 자기 일신 상의 이유였다. 먹고 사는 문제를 포함해서 자기 개인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측근을 데려오는 모양새가 주의장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주의장을 깊이 배려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선출직이다.

선출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구상대로 2년을 책임지겠다는 뜻이고,

자기와 뜻이 맞는 몇몇을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자리를 뜰 때 함께 나가면 된다.

이를 두고 보통 '정무직'이라고 한다.

 

그때, 윤영상 부의장이 정책위 '정무직'으로서 주의장과 호흡을 맞추리라고 기대했었지만 좌절되었다.

좌절은 여름에 한 번 더 있었다.

어느날 주의장이 소위 정책위 기존 상근자들을 모았다. 그자리에 이실장은 없었다.

윤영상을 부의장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고 했다.

그자리에서 이를 두고 우려를 표한 사람을 없었다.

다만, 역할을 잘 주자고만 덧붙였다.

나는 장난삼아 거한 식사 한번 사주시면 아무소리 안하겠다고 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별 눈치없는 나는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아무말 없지? 거한 식사값을 댈 자금이 없으신감?

시간이 좀 지난 후 알게 되었는데,

정책위의 터줏대감 이실장이 반대 혹은 그 비스무레한 의견을 주의장에게 던졌단다.

그래서 좌절되었단다.

이실장은 반대 한 적 없단다. 약간 고려해야 할 게 있다고 했을 뿐.

 

그리고 시간은 지나갔다.

정책위 기능이 원만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정책기획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책기획력을 올리기 위해 정책위의 여러 사람들이 고생 좀 했다.

고생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차츰 기획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고생한 사람들이 윤영상을 부의장으로 데려오자고 의견을 모았다.

간언으로 주의장의 의지도 확인했고 이실장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문제가 생겼다.

윤영상 아찌가 안오겠다고 버티더란다.

난 문득, 어차피 올거면서 퉁기기는... 생각이 들었다.

김실장의 노력으로 윤영상 아찌는 부의장을 수락했다.

김실장의 노력이란, 윤영상의 의지를 돌린 게 아니라본다.

윤영상을 달랜 노력이다.

 

그래서, 결국 5개월 전에 왔어야 할 사람이 이제야 왔다.

 

 

 

[기고]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월간 네트워커 칼럼 기고문 - 0411122>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이런저런 일도 많고 참으로 시끄럽다. 세상이 시끄럽다는 건 그만큼 역동적인 사회란 뜻이겠지만 시끌벅적 다툰 결과가 우리 사회에 유익하다면야 모든 걸 견디고 이해하겠지만, 우리 귀를 자극하는 소란한 사태 중 여럿은 별 도움도 못되는 싸움이라는 게 문제다.


지난 11월 12일 정보통신부는 KT, 하나로텔레콤 등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에게 31개 '친북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도록 명령했다. 정부가 또 사고쳤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불법통신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번에 차단한 31개 사이트가 제53조 제1항 8호인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에 해당한다며 정통부 장관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차단 명령을 내린 것이다. 배경에는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요청이 있었다.


정부의 '친북사이트' 접속 차단은, 표현의 자유·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터넷 사이트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등등,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처분이다. 그런데, 그 '친북사이트'들은 예전부터 운영되고 있었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필요와 선호로 '애용'해 왔던 사이트들이었는데, 하필 지금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그것도 '대규모'로.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법률도 만들고 투자도 안내하고 무역도 허하고 관광도 부추긴다. 북한방송을 보여주는 것도 안 말린다. 실컷 그래놓고선 이번엔 '친북사이트'라며 31개를 골라서 차단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은 웬만한 서점과 도서관에서 다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사회가 사회주의 국가가 되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작이 서점과 도서관,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 볼 수 있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북한의 이념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권력은, 허용해서는 안 될 목록은 차츰 줄이면서도 유독 북한과 관련한 목록을 줄이는 데는 신경을 곤두세운다. 북한, 혹은 북한의 주장이 이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번 정신분열적 조치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수구세력과 자유주의 세력이 쌈박질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은 반공규율을 상징함과 동시에 수구세력의 존재 징표이다. 그 때문에 거대여당은 자기들의 존재 근거를 잃지 않으려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진다는 것은 87년에 이루지 못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며 새로운 합리적 보수주의의 출현을 강제하는 것일 뿐이다.


우스운 건, '친북사이트'야 아무리 막아도 볼 사람은 다 볼 터인데, 우리를 위하는 척하면서 수구세력의 준동에 부응하여 이들 사이트를 차단하는 정부의 작태다.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여당을 얼마나 우습게 알았으면 정부조직이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친북사이트'를 차단했겠냐마는, 대통령과 여당의 무능함을 조롱하기보다는, 오늘은 정부조직을 야단쳐야겠다. 세상 돌아가는 것 좀 읽으시라. 공익과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정부가 '사고'를 칠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이젠 제발 시대에 뒤떨어진 거 말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머리 맞대고 지혜를 나누고 싶다. 누구랑? 정부랑!

 

 

<지저분한 일기>에 대하여

 

나는 4년 넘게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원래부터 생겨먹은 게 '정치'는 체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긴 시간 여기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뭘까.

 

나름대로 고상하고 원대한 사연도 있겠지만,

(블로그 이름도 이름인 만큼) 꼭 소개하고픈 이유는

"버티기 한판"을 해야겠다는 오기가 들끓는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일기>에는 나로 하여금 '열받게' 만든 일들을 쌓아둘까 한다.

아마도, 진짜 쪽팔려서, 스스로 검열로 빼버리는 사연도 많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