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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와 언론의 '민족주의' (2004.11.8) | 이선민

작년 미디어 오늘에 실렸던 기사임. -------------

 

 

황우석 박사와 언론의 '민족주의'

[온라인기자칼럼] '배아복제 실험중단' 말뒤집기에 '묵인'

 

이선민 기자 jasmin@mediatoday.co.kr

 

한국 언론에 생명윤리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2월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복제 발표 이후, 한국 언론은 생명윤리라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한국 언론에는 오로지 기술만능주의와 경제, 국가만 있을 뿐 생명윤리와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들은 겉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말하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하는 언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말 인간배아복제를 재개하겠다는 황우석 박사의 발표와 이를 다룬 언론보도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남긴다.

 

황 박사의 말 뒤집기를 묵인한 언론

   
▲ 황우석 박사. ⓒ 연합뉴스
지난 2월 황우석 박사가 세계최초로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이후, 줄기세포 복제는 한국 사회의 화두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한국 상황은 10월 열렸던 유엔회의에서 인간복제금지협약을 두고 찬반 양론이 대립했듯이 생명윤리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이 맞서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 2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없으므로 배아복제 실험을 중단한다"고 밝혔던 황우석 박사가 10월20일 돌연 배아줄기세포 복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험중단에 동의를 표시했던 언론이 그가 기존 입장을 별다른 설명없이 뒤집었음에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중단됐던 실험이 8개월만에 사회적 합의를 얻은 것일까? 그간의 변화라면 지난 8월 영국 정부가 치료용 의학연구 목적의 인간배아 복제 실험을 세계 최초로 승인한 것이 유일했다. 10월 유엔을 통한 국제적인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언론이 황 박사가 '사회적 합의'에 대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은 것을 '지지' 혹은 '방관'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대다수의 언론은 그동안 줄기세포 복제와 관련해, 황 박사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한 반면 "논란 속에 재개했다" "파문이 일 것이다" "국제적 논란이 재개될 것이다" 등의 추상적 표현을 통해 생명윤리 지지 입장을 뭉뚱그리는 '면피성' 보도를 해왔기 때문이다.  

 

배아세포 복제는 황 박사의 도덕성 문제?

언론이 줄기세포복제를 찬성한다고 한발 양보하더라도 그가 '난치병 치료목적의 배아복제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생명윤리안전법이(2005년 1월1일) 시행되기도 전에 배아복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법의 완전성과 별개로(생명윤리 지지자들은 이 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법 제정과정에서 생명윤리와 배아복제가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연구는 사회적 여론과 법적인 절차마저 무시한 과정상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시민들과의 약속을 8개월만에 저버린 행위를 묵인했던 것처럼 과정상의 문제 또한 눈감아 주었다.
 
또한 언론은 생명윤리론자들의 입장을 거의 다루지 않으면서도 황 박사의 후원회 소식,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한 축제의 명예대사로 선정된 일, 모 정치인과의 친소관계 따위의 신변잡기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황 박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각인시켰다.  "그는 적어도 그런 식의 몰염치하고 부정직한 짓을 하지는 않을 사람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신이 시켜도 인간 복제는 하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는 한 신문 논설위원의 맹목적이다시피한 애정은 언론이 그에 대해 얼마나 우호적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언론의 이런 태도는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옮겨갔고, 언젠가부터 이를 '사회적 합의'로 오해하는 풍토가 만들어진 듯 하다. 언론은 '황 박사가 하지 않는다고 하니 염려 말라'면서 감정적인 여론몰이를 하고 있고, 이런 보도가 수없이 반복되면서 배아복제라는 사회적인 문제는 황 박사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바뀌게 되었다. 

 

황우석 박사와 국가중심적 민족주의에 호응한 언론

그의 '애국적 발언'은 매력적이었고, 언론을 자극시키기 충분했다. 이는 황 박사의 발언을 추적해보면 쉽게 밝혀진다. 그는 2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정부가 허가하지 않을 경우, 해외로 나가서라도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말하며 언론과 정부를 한차례 긴장시켰다. 이후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가 국가적 차원에서 활용돼야 한다"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황우석교수 세계 각국서 러브콜...본인은 "국내 남겠다"> <"황우석교수 지켜라" / 국내연구 지원 모색 등>의 제목과 함께 언론을 장식하며 일반인들을 감동시켰다.

민족주의적 발언이 호소력을 가진다는 것을 눈치했는지, '애국심'을 자극하는 발언은 배아복제 재개 선언 전후로 더욱 두드러졌다. 

"일부 국가들이 인간배아줄기세포 복제배양을 마치 한국만의 기술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유엔에서 복제 연구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어 걱정된다."(10월12일 기자회견)

"한두달이 더 늦어지면 다른 나라에서 남성이나 노년층 체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 복제에 먼저 성공을 거둘 수 있다."(10월2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최근 영국, 일본 등이 잇따라 배아복제 실험을 허용할 예정인데다 중국 등 기존 연구팀들도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10월2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초강대국인 미국과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국 등 경쟁국들이 맹렬히 따라붙고 있어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10월23일 기자회견)

"배아복제에 대한 연구성과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술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자산이다."(원숭이 배아복제에 성공한 10월27일 기자회견)

언론은 황 박사의 민족주의에 기초한 애국심 호소에 <"배아복제 기술은 대한민국의 자산"> <황우석, UN 움직였다> 등의 기사로 즉각 화답했다.

일부 신문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황 교수를 비롯한 연구팀은... 연구 잠정중단의 뜻을 밝혔다. 생명윤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영국 정부가 배아복제 연구를 승인하는 등 다른 나라들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첨단분야에 대한 치열한 국제적 경쟁을 염두에 둘 때 과학자로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경향신문 10월22일자 사설 <배아복제 연구는 계속돼야>)며 '국제경쟁'의 측면에서 그의 입장변화를 감싸고 돌았다.

또 다른 신문은 "이면을 보면, 이것이 생명윤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복제 연구 금지를 주장하는 나라는 거의 모두 생명과학기술이 뒤떨어진 나라"라며 "한 해 3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줄기세포 치료 시장을 각 나라가 선점하려고, 겉으로는 '생명윤리'라는 이름으로 치열한 물밑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해진다"(조선일보 10월23일 <기자수첩 : 인간배아복제 막는 미국의 속셈>)며 민족주의적 사고를 더욱 자극했다.

혹시 언론은 그가 한국민이기 때문에 그의 실험의 성과와 정당성을 두손 들어 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배아 복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세계 여타 지역이나 나라들과는 다른 듯하다. 배아 복제가 지닌 철학·도덕적 문제보다는 현실적 결과에 더 주목하고 국가적 자존심과 직결된다... 철학적 성찰보다는 국가적 자존심과 '난치병 치료'에 주목하는 우리의 인식은 과연 충분한가?"(세계일보 10월30일자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책 소개에서)라는 한 신문의 물음은 황 박사와 국가주의의 결합이 윤리적·사회적 문제를 지워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쨌거나 언론의 대대적이고도 우호적인 보도 속에 정부는 2005년 황 교수에게 265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누가 뭐래도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국민과학자'이고, 그를 비판하는 행위는 이제 '국익'을 해치는 행위가 될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환경정치를 강의해온 대전대 권혁범 교수(정치학)는 "배아복제는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문제인데 아무런 논의와 성찰 없이 이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것은 문제"라며 "배아복제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배아복제가 성공을 하더라도 성공의 혜택이 다수의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이나 관련업계 종사자의 이익을 강화하거나 특권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데,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시민이 낸 세금으로 연구를 지원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경제성장 신화에 얽매여 윤리·사회적 문제는 무시"

언론은 국가주의적 호소와 함께 성장제일주의와 과학기술만능주의에 기초해 황 박사의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주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인간복제에 찬성할 수는 없다. 문제는 치료목적의 연구다. 황 교수도 강조했듯 줄기세포 배양은 지구촌의 죽어가는 수많은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국가적으로 볼 때는 엄청난 생명산업의 효과도 있다"(<생명과학 연구에 힘실어줘야>(문화일보 10월21일자 사설)는 한 신문의 주장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영남대 이승렬 교수(영문학)는 "생명윤리적 관점에서의 문제점, 여성 몸의 상품화, 과학기술의 사회적 절차상의 정당성 확보와 같은 사회적 의미를 차분하게 짚는 태도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는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이라는 신화에 얽매여 인간배아복제로 인한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제쳐놓고 있고, 일반 시민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관계없이 '몇십 년 뒤 몇 조의 국익이 된다'는 수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다"며 "사회적으로 아무런 합의를 거치지 않았을 뿐더러,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은 것에 대해 전혀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언론이 <난치병 길 열렸다> 등의 제목으로 배아복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과장보도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 교수는 "실제 손상된 조직은 대체될 수 있으나 간과 같은 기관은 대체될 수 없는데 언론은 마치 당장이라도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황 교수 역시 "지금은 시작에 불과해 임상적용시까지 건너야 할 산이 많아 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박병상 생명안전윤리연대 사무국장(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은 "대부분의 난치병은 환경오염이나 스트레스 같은 사회적 원인에 의해 생기는데 이를 내버려 둔 채 필요한 장기나 세포를 복제해 갈아끼운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며 "복제연구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연구비용을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투자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배아복제, 윤리 사회적 성찰과 함께 인문학적 접근 필요

이승렬 교수는 "지난 2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다수의 외신이 배아복제를 크게 보도했지만 외국 언론들은 황 박사의 공적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야기하는 철학적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자세히 다뤘다"며 "그러나 국내 한 보수신문은 황 박사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부정적 어조의 평가마저 찬양일변도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박 사무국장은 "사람의 난자에 체세포 핵을 넣어 인공수정을 시키는 배우줄기 세포 복제는 생명을 도구화시키는 비윤리적 연구인데도 '치료목적의 복제는 찬성하나 인간존엄성을 해치는 인간복제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복제를 하지 않겠다는 황 박사의 주장과 이를 지지한 언론보도에 대해 "배아복제와 인간복제는 착상 여부에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고,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실험을 반복하면 가능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박 사무국장은 연구과정에서의 윤리적 문제점과 연구결과가 가져올 사회적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난자채집과정에서 여성에게 과배란를 유도하기 위한 호르몬 주사를 놓는 것은 여성의 몸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윤리적 문제가 있고, 이 과정에서 난자가 돈으로 거래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이런 행위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을 '착취'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철학자이자 변호사인 앤드류 킴브렐 또한 저서인 '휴먼 보디숍'(김영사 펴냄)에서 생물공학의 발전과 인체의 상품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킴브렐은 혈액, 장기, 태아, 난자와 정자, 아기, 유전자와 세포의 공공연한 상업적 거래를 예로 들며, 이것이 한 인간에 대한 착취와 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배아복제 문제와 관련, 윤리적 사회적 접근과 함께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배아복제는 생명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인문학의 본질적 문제와 맞닿아있는데 이런 것에 대한 고찰이 없다"며 "현대의학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는데 이는 죽음과 삶이 이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생태주의 사고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 생명공학 기술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책임있게 보도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입력 : 2004년 11월 08일 21:19:37 / 수정 : 2004년 11월 09일 09: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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