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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핵이용' 논란과 경수로

"경수로 폐기 고집하다 흑연감속로 들고 나올라"
[심층분석] '평화적 핵이용' 논란과 경수로

정욱식/2005년 8월 26일

3주간의 휴회를 거쳐 8월말이나 9월초에 4차 6자회담이 재개될 예정인 가운데, 1단계 회담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평화적 핵이용' 문제가 어떻게 논의될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단 2단계 4차 회담에서 평화적 핵이용 문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면 공동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평화적 핵이용 문제 때문에 파국을 맞는다는 것은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점에서 1단계 회담 때보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이 NPT에 복귀하면, 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수준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미국은 평화적 핵이용이 당분간 불허된 것으로, 북한은 이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잠정 타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흐름을 모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두 가지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평화적 핵이용 권리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복귀 사이의 ‘선후(先後)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 앞서 언급한 사항을 조건으로 현재 시점에서는 그 권리를 인정하지만, 권리의 행사는 NPT 복귀 이후로 상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NPT 복귀 이전에도 권리를 갖고 있으며, 핵문제가 해결되면 NPT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평화적 핵이용 불허’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북한이 NPT에 복귀한 이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신포 경수로'
  
또 하나의 문제는 평화적 핵이용의 범위와 대상이다. 특히 미국 역시 북한이 의료와 농업용 원자력 이용은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발전용인 경수로 사업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수로 사업과 관련해 한국은 중대제안을 통해 200만kw의 전력 제공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신포 경수로는 종료되어야 한다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자체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아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미국은 경수로 사업은 6자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며, 이 문제가 회담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힐 차관보는 신포 경수로의 종료는 한국도 동의했고, 북한이 발전용 원자로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지원해줘야 하는데,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포 경수로에 대해 한미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도 발견되고 있다. 미국은 신포 경수로 사업이 영구 종료되어야 한다는 반면에, 한국은 먼 미래의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월 24일 “장래에 북한이 평화적 핵 이용권한을 향유하게 되면 신포는 이미 (경수로) 터도 닦아 놓고 한반도내에서 가장 단단한 암반지역이기 때문에 남북이 공동으로 사업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경수로 사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것이 곧 신포에 건설하다가 중단된 경수로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김계관 부상은 8월 1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경수로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직접 참여 등 “엄격한 감시 하에 운영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의 주선 하에” 지어주기로 한 신포 경수로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흑연감속로'로 반격에 나설 수도  

정리하자면, 경수로에 대해 미국은 '완전 폐기'를, 북한은 '공사 재개'를, 남한은 먼 미래에 가능성을 열어둔 '종료'를 선호하고 있다. 경수로 문제를 논의하면 할수록 서로의 차이만 부각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가 2단계 회담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다면, 공동성명 채택 자체에 실패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이 경수로 사업의 완전 폐기를 관철시키려고 할 경우, 북한은 이에 맞서 흑연감속로를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 흑연감속로는 NPT와 한반도 비핵화선언에서는 금지 대상이 아니고, 제네바 합의에서는 동결 및 폐기 대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경수로 사업 폐기 근거로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제시하고 있는 만큼, 북한도 마찬가지 논리로 흑연감속로를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흑연감속로는 경수로에 비해 발전 효율은 떨어지는 반면에,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가 훨씬 용이한 원자로이다.

북한은 5MWe 1980년대 후반 흑연감속로를 완공해 가동하다가 제네바 합의이후 동결에 들어갔다. 그리고 2차 핵문제가 발생한 직후 재가동에 들어간 상황이다. 또한 영변과 태천에 건설하다가 중단한 50MWe 및 200MWe 원자로도 공사 재개에 들어갔거나,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경수로 폐기 압박을 받는 북한이 흑연감속로 카드를 꺼내든다면, 북핵 협상은 총체적인 난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경수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이 핵무기 제조가 훨씬 용이한 흑연감속로를 용인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경수로를 보장해줄 수 없다면 흑연감속로라도 갖겠다는 입장을 내세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수로 사업은 제네바 합의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 파기를 근거로 경수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북한은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하고 동결·폐기하기로 한 흑연감속로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 중단 '유예'가 가장 합리적

따라서 경수로 문제로 협상이 총체적인 난관에 직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의 '잠정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 폐기'와 북한이 요구하는 '공사 재개'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공사 중단 상태를 2년간 연장하고, 공사 재개 여부는 2년 후에 다시 논의한다'는 타협안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면 다다를 수 없다"(過猶不及)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과 미국 모두 일방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접고 타협 가능한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타협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주체는 남한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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