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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과 노무현정권의 마지막 선택_배성인

한미정상회담과 노무현정권의 마지막 선택 
 
 [기고] 내용과 실익은 없고 가능성만 확인 
  

 

출처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7447
 
 배성인(편집위원)  / 2006년09월19일 9시07분  
 
 지난 9월 13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FTA 범국본이 뒷거래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정부에게 전달한 바 있다. 한미FTA 체결의 걸림돌로 언급되는 쟁점들이 정상회담을 통해서 타결될 가능성을 경고한 것이다. 현재까지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한미FTA 문제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함께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낸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국민이 걱정 많이 하고, 미국에서도 그런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 제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면 한동안 조용하다. 약효가 그리 길게 가지는 않지만…”. 9월 6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순방길에 루마니아에서 동포 간담회를 열고 교민들에게 한 말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을 만나 한동안은 국내 정치 이슈를 잠재울 수 있는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한미FTA, 북한문제, 한미동맹 문제 등으로 인한 최근 한국사회의 혼란과 갈등 속에 이번 한미정상회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 어느 때 보다 복잡했다. 솔직히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더불어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과 우려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크게 북한문제, 한미동맹,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한미FTA, 미국 비자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번 회담에서 주요한 현안은 북핵문제였고 이를 둘러싼 다양한 추론이 난무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한미 간 입장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애초부터 합의 도출이 어려워 보였다. 정상회담 수준에서 의제의 성격과 거리가 먼 전시작전통제권에 관한 대화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새로운 내용 없이 상대방의 이견을 확인하면서 원칙적인 수준에서의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 합의라기보다는 봉합의 수준으로 해석된다. 즉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한미 간 의견 차이를 봉합하려는 수준의 원칙인 것이다. 말 몇 마디로 한미 갈등을 덮는 뛰어난 외교력을 보여주었다.


원조 친미세력과 신흥 친미세력간 애정싸움


일단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전작권 환수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이 정치문제화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점이다. 이와 함께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 한반도에서 미국의 안보 공약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전작권 문제는 본질적으로 군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쟁점화 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를 정상회담에서 의제로 상정해 논의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전작권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며, 국내 정치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한미FTA보다 훨씬 더 큰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나라당은 방미단을 꾸려서 전작권 논의 중단을 미국 측에 요청할 예정이지만 그 실효성에 있어서는 의문이다. 당분간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의 반발과 저항이 거세게 전개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계속될 것이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 발언은 이에 반대하는 국내 보수세력을 고립시키는데 성공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 목표연도가 확정되더라도 안보상황이 변화하면 목표연도를 순연할 수 있다는 단서를 두도록 미국 측에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작권을 둘러싼 국내의 논쟁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세력이 논리적 일관성이나 당장의 성과보다는 참여정부를 흔들어서 하나로 결집하려는 전략적 구도 속에서 계속 흔드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의 표현처럼 원조 친미세력과 신흥 친미세력간 미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흉측한 싸움인 것이다.


미국과 함께라면 이라크 파병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라크 추가 파병 및 파병 재연장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하는 부분이 느껴진다. 노 대통령이 “이 땅에서 테러를 완전히 예방하고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그와 같은 미국의 노력에 대해 동참하고 지지의 입장을 전합니다.”라는 발언에서 ‘동참’을 주목하고 싶다. 이러한 발언이 외교적 수사 차원이길 바라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참’의 의미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과거의 사실로부터 현재까지의 진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추가 파병에 대한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최근 정부가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중인 자이툰 부대원 모집공고를 낸 것이 그 의혹을 짙게 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결정된 것이 없지만 현실화된다면 다시 한번 한국 사회를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시킬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처음부터 미국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하는 한미동맹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북한문제 해결의 대가성은 아니겠지만 지나치게 미국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북한인권 문제와 개성공단


노무현 정부가 공개하지 않았지만 부시 대통령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9월 17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레프코위츠 특사가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 실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공개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부가 의도적이던 아니던 왜 이러한 내용을 은폐하려 했는지 강력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레프코위츠는 자신의 개성공단 방문을 위해 남한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며 “이번 방문에서 현지 근로자들과 만나 근로조건이나 생활 환경 등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직도 개성공단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다. 최근 한미FTA에 대한 미국 재계 측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윌리엄 로즈 씨티그룹 선임부회장이 미국 정부와 의회가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 한미FTA의 적용을 받도록 허용할 경우 내년 초쯤 한미FTA 협상이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미) 의회의 분위기를 감지해 본 결과 개성공단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제외하면 한미 FTA에 큰 걸림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 의회도 미국의 7대 교역국인 한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간 정치적인 입장차만 성공적으로 절충되면 협상시한인 내년 2월 안에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프레시안 9월 17일 참조).


한미FTA 3차까지의 협상 과정에서 개성공단은 커다란 쟁점이었지만 미국은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측에게는 유효한 카드이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사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미FTA …


한미정상회담에서 전작권 문제와 함께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낸 것은 한미FTA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시간보다도 내용을 중시해 협상을 하지만 가급적 빨리 촉진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원칙을 갖고 협상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양 정상은 특히 한미FTA가 양국 모두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양국관계를 한 차원 격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 FTA 체결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말은 내용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결국 시간과 내용 모두를 잡겠다는 것이다.

또한 한미 양 정상은 세 차례의 한미FTA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온 것을 평가하고 협상을 더욱 가속화시켜 양국에 상호 이익이 되는 성공적인(?) FTA 타결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 이제 한미FTA 체결에 대한 양 정상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협상 팀의 태도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협상 추진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의지가 한미FTA 저지 전선에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변함없는 그릇된 신념과 판단이 한국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재 노무현 정부의 셈법으로는 실익이 거의 없어 보이며 선택의 여지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첫째, 미국이 대북제재를 현 수준으로 동결하면서 개성공단과 관계없이 한미FTA 체결을 강하게 요구할 경우 노 대통령의 “손해만 보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수용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간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도출돼 미국이 대북제재 강화를 선택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 ‘선 북미 양자대화 후 금융제재 해제 논의’를 북핵문제 해결 카드로 내세워(개성공단을 끼워 넣어) 한미FTA 체결을 요구할 경우 노 정권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역시 손실이 크기 때문에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북한이 수용할 가능성이 적어 노무현 정부는 매우 바빠질 것이다. 셋째, 대북제재의 부분 해제와 한미FTA 체결 요구 카드가 남아있다. 여기서 변수는 개성공단 문제가 될 것이다. 미국이 개성공단을 인정하면 노무현 정권은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받을 것이다. 설령 미국이 개성공단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받을 가능성은 생각보다 많다. 북핵문제 해결을 통해서 북한도 살리고 남북관계도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한 카드도 노무현 정권에게는 실익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미국의 강경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어라


이번 정상회담에서 그나마 성과가 있었다면 대북제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6자회담 재개 및 진전을 위해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포괄적이라는 모호한 표현에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긍정적인 조치와 대북 제재 강화 같은 부정적인 내용이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상호 모순적이다. 한미 쌍방 모두가 합의를 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노린 것일까? 또한 ‘포괄적’은 오히려 문제 해결 능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도 언급했다시피 “새로운 북제재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지만 이는 미국이 현재 추진하려고 하는 유엔 결의제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포괄적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미국의 대북제재를 인정하고 한미 간 이견을 감출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 강경일변도가 완화되었거나 특별한 정책적 변화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향후 미국의 제재이행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채우게 되었다. 그럼에도 일단 시간벌기에는 성공하였다. 그렇지만 새롭고 창의적인 방안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북한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북한문제는 또 다시 원점으로, 아니 대북제재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또한 미국의 명분을 강화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면 그만이고 복귀를 거부해도 대북 강경책 강화의 명분을 제공해서 좋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 행정부의 이번 결정은 노무현 정부의 눈물어린 노력보다는 부시 행정부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제재에 대해 미국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미국 내에서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 하락, 중간선거 문제, 핵무기 비확산 정책의 실패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란?이라크 등 중동문제로 인해 여력이 없어 보인다. 또한 지속적인 대북 금융제재로 인해 북측의 핵실험이 강행될 경우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비난 등도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북측에게 공을 넘기고 북의 선택에 따라서 책임소재를 확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제공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는데 북한에게 공이 넘어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접근방안’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사전 조율과정에서 대북 금융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거나 논의를 했는데 접점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앞으로 후속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겠지만 진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대북 금융제재 해제 없이는 회담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북한과 금융제재와 6자회담을 분리한 미국의 입장 간에 절충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구체화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도출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며,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풀고 나올 지도 미지수다. 북미 양자대화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양자대화 방안이 포함될 수도 있다.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모르지만 ‘선 금융제재 해제, 후 6자회담 복귀’라는 북한의 입장과 ‘선 6자회담 복귀, 후 금융제재 등 현안 논의’라는 미국 측 입장의 간극을 채울 수 있는 수준에서의 절충안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한미 양국이 ‘2+2협의’를 통해 접근방안을 모색했지만 최종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2협의’는 9월 13일 한국 측의 반기문 장관, 송민순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미국 측의 라이스 국무장관,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이 만나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방안을 최종 조율한 것으로 알려진 협의를 말한다. 이 협의에서는 동결된 북한 계좌를 불법 계좌와 합법 계좌로 분리하는 문제, 북미 양자대화 등의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협의에서 한미 양국은 “한미 정상은 협의 결과를 보고 받은 뒤 양국이 취할 공동 조치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국 정상이 합의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과 ‘2+2협의’에서 합의한 ‘공동 조치’는 동일한 내용인 것이다.


결국 가능한 모든 방안을 열어놓고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미간에 논의되고 있는 ‘포괄적 접근 방안’은 BDA 문제,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대북 경제원조, 북미 관계개선 등 개별적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의 해법을 포괄적으로 엮은 ‘패키지 안’을 통해 북한과 미국이 한 발짝 씩 양보하는 선에서 북한의 6자회담 참가를 이끌어 내자는 것이 골자다. 이들 방안 중 그 어느 것도 쉬운 것은 없으며, 이들 방안을 패키지 묶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포괄적 접근 방안은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새로운 방안이어야 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직후 9월 16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이 다른 나라의 달러 위조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면서 북한에 대해서만 금융제재를 강화한다”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최근 포르투갈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750만 달러 위조사건이 발생했지만 미국이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9월 17일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쿠바 아바나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서 “북한은 미국이 제재를 유지하는 한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이 북한 은행계좌 동결과 북한을 돕는 금융기관들에 대한 경고 등 잇단 대북 제재 조치들을 유지하면서 우리에게 무조건 회담장에 복귀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대북 금융제재 해제의 직접적인 조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조건 속에서 차선의 방법으로 불법 거래와 합법 거래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의심이 가는 계좌에 대해서 무조건 통제하는 현재의 조치를 불법 계좌와 합법 계좌로 분리하여 합법 거래 부분을 풀어주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합의 내용에 따라서 북측의 태도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측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북중정상회담을 통해서 현안 문제를 논의하면 될 것이고, 중국 방문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중국 측이 특사를 보내 설득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미, 한중간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이번의 마지막 기회를 위기 돌파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대북지원을 재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서 하루 빨리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사파견, 남북정상회담 등 가용 가능한 자원을 총동원해서 위기를 돌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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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의 국민투표 전술 제안에 대한 의견_임필수

최근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 저지를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문성현 대표, 심상정 의원 등이 주도해서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9월 14일(목)에는 한미 FTA 범국본이 개최한 '한미FTA투쟁 전략회의'가 열려서 국민투표 제안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따라서 사회진보연대도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입장 마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모아보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제 의견을 덧붙이면... 


1. 왜 최근 들어 국민투표 문제가 불거지고 있나?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투표’라는 제도가 주목받기 시작한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헌법에는 헌법개정 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조항과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정권에 들어서 또 하나 정치무대의 중앙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헌법재판소’죠. 이는 한국 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각자가 상대방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헤게모니를 도저히 인정하기 않기 때문일 듯합니다. 그래서 양당이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기댈 수밖에 없고,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대해지면서 막강한 권력기관이 되고 있는 실정이죠.)


어쨌든, 국민투표란 제도를 처음 꺼내 든 자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습니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했죠. 당시에는 헌법이 규정한 것은 레퍼렌덤(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이지 플레비사이트(영토의 변경·병합 또는 새로운 지배자가 그 권력의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표 등 어떤 항구적인 정치 상태를 창출하는 문제와 관련된 국민투표)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의 제안 자체가 위헌이라는 주장이 반대 측에서 강력히 제기되었습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재신임 선언은 ‘국민협박극’이자 ‘인민주의적 정치동원’을 위한 술책이라고 강력히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 대부분의 운동단체는 ‘재신임 철회’를 주장했고, 사회진보연대는 재신임 투표 제안이 철회되든 아니면 정치권에서 합의되어 진행되는 간에 ‘노무현정권 심판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쨌든 당시 논란은 헌법재판소에서 다수 의견으로 ‘대통령의 의사 피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에 돌입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근거로 위헌소송을 각하하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유야무야 일단락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노무현정권에 대한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 후 이라크파병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파병반대 국민행동’에서 파병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제안하려고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도 국민행동 기획단에 참여했습니다만, 기획단은 국민투표 실시를 대표자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려고 했지만, 대표자회의에서 ‘국민투표를 하게 되면 파병찬성안이 더 높게 나올 우려가 있다’, ‘국민의 단 1%만 지지하더라도 운동 주체가 의지를 갖고 실천을 벌이면 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상당히 높았고, 전반적인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하여 결국 국민투표 제안이 부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파병 그 자체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불허한다”는 헌법 조항에 비추어 볼 때 위헌이므로 이 사실을 강조하며 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파병문제에 대한 위헌소송도 제기되었는데 당시 헌법재판소는 "일반 시민에겐 원고자격이 없고 파병 결정은 통치자의 재량행위"라는 이유로 각하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11월에 전국농민회총연맹이  2004년 11월에 ‘쌀 협상 중단과 국민투표 실시 촉구 전국농민대회’를 개최하면서 사회운동 단체 중에서는 (제가 알기로는) 처음으로 국민투표를 요구했습니다. 또한 당시 전농은 ‘민중투표’ 운동도 병행했는데 실제로 각 지역에서 쌀 협상에 대한 민중의 의지를 천명하자는 취지였죠. 그러나 실제 민중투표 운동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기에는 조직력이 취약했고,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민투표 제안은 우파 쪽에서도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이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은 “수도이전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국가안위에 관한 가장 비중 있는 사안이며, 국민의 의견이 분열돼 있으므로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한나라당과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며 국민투표 실시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처럼 좌우에서 국민투표 제안이 나오는 것은 노무현정권의 근본적 취약성을 반영하는 것이겠죠. 노무현정권은 뚜렷한 이념과 정책노선, 지지 집단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모호한 이미지와 수사에 근거해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정권이 추진하는 각각의 정책들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뚜렷이 검증된 것이 아닙니다. 주로는 집권세력이 정치게임 논리에 따라 즉흥적이거나 임기응변식으로 각종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실질적인 정책적 성과를 거두거나 지지와 응집력을 얻는 데 근본적 한계를 노정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노무현정권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들고 나온 것은 전형적인 인민주의 정치행태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남미에서는 대통령이 뭔가 국면돌파가 필요할 때마다 국민투표를 들고 나오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나 봅니다. 당연히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므로, 의제를 선정하고, 국가기구를 활용하고 언론과 미디어를 동원해서 막대한 물량공세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당연히 집권세력이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겠죠. (물론 항상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콜롬비아에서는 2003년 15개 항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좌파세력이 보이코트 전술을 펼쳤고, 실제로 몇 개 항을 빼곤 필요 투표율 25%를 넘지 못해서 국민투표가 좌절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통령과 행정부에게 막강한 권한이 집중되고, 사법부가 법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행사하는 권한이 강화되고 미디어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의회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는 경향은 인민주의 정치의 기본적 경향의 하나인 듯합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나라당도 국민투표라는 인민주의 정치행태에 의존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2.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국민투표 제안은 인민주의를 넘어서는가?


국민투표 전술을 지지하는 입장은 대개 다음과 같은 근거에 기반한 듯합니다.

첫째, ‘국민 전체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국민 스스로 결정한다’는 대의. 현재 국회로 넘어가면 지금까지 국회가 보인 행태로 볼 때 대충 제목만 보고 그냥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실이 명약관화한 현실에서 다른 대안이 필요하며, 결국 국민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견해가 점점 더 힘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둘째, 현재 FTA 반대투쟁이 교착국면에 들어선 게 사실이다.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하고, 반대투쟁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매개가 필요하다. (FTA 반대를 위한 민중총궐기란 구상은 다소 무매개적이다. 어떤 매개고리, 담론이 필요하다.)

셋째, 현재 정부가 FTA를 극히 비공개적으로 진행하며, 국민들의 알 권리 자체를 침해한다. 심지어 협상이 타결되어도 3년 간 비공개하기로 되어있다. 국민투표를 실시하려면 정보 공개가 불가피하다. 나아가 정보 공개가 즉각 이뤄진다면 얼마나 큰 문제를 안고 있는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며, 당연히 FTA 협상에 대한 대중의 공분을 높일 수밖에 없다.

넷째,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대중적 토론을 활성화할 수 있다. 현재 대선 시기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들이 정치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민투표는 정치적 공간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섯째, 민주노동당의 입장에서 보면, TV토론 등이 보장되므로 민주노동당이 FTA에 반대하는 운동의 ‘정치적 대표성’을 띠고 명쾌한 정치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 이는 반대운동을 결집시키는 유리한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에 대해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근거는...

첫째, 한국의 국민투표제도는 국민발의제도와 결합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두 가지는 서로 질적으로 다르다. (예컨대 우루과이는 물 사유화의 폐해가 너무나 심각해지면서, 25만명 이상의 국민발의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조항을 활용해서, 30만명 이상의 발의로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결국 물은 보편적 권리라는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국민발의를 위해 대중적 운동을 펼치고, 대중이 스스로 운동에 참여하고, 대중의 요구가 직접적으로 국민투표안으로 반영되는 조건에 비해, 한국의 국민투표제도는 대통령만이 부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어떤 왜곡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FTA 특위 의원단과 간담회에서 ‘국민투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앞으로도 국민투표를 받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국민투표 요구가 매우 높아진다면, 과거 재신임 국민투표 당시 ‘여야가 구체적인 방식을 합의하면 진행할 수 있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정치권에서 논의해보라고 공을 넘긴 후 논의 진행 결과에 따라 지금으로서는 예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현재 한나라당은 작통권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투표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물론 정치권 논란 그 자체가 허구적 논쟁으로 비화되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효과를 낳을 수도 있고, 또는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  어쨌든 여기에는 대통령의 정치 책략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매우 다른 양상으로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 (그때에 이르러서는 국민투표 보이코트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둘째, 어떤 (직접)민주주의 제도도 사회운동, 대중적-집단적 운동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작동할 수 없다. 현재 FTA 반대운동이 교착 상태에 빠진 후, 정부가 적극적으로 물량공세를 펼치면서 여론 분위기가 점차 역전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대중운동 계획이 입안되고 실행되지 않는다면, 이런 여론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도 없고, 국민투표는 인민주의의 정치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셋째, 현재 국민투표법은 대중운동을 가로막는 제도적 제약이 너무 많다. 운동원의 자격(정당자격이 없는 자, 예를 들어 공무원)이 제한적이고, 옥외집회 등이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미디어를 활용한 정당의 활동을 빼면, 대중운동-대중투쟁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 너무 많다.

넷째, 민주노동당에게도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직접 대중을 만나고 대중을 운동에 결합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안을 던지고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투표에 동원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토대를 확장하려는 계획이 아니다. 이번 제안은 앞으로도 국민투표 제안으로 자주 반복될 수 있고, 이런 정치프로그램에 의존할수록 인민주의 정치행태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등등.... 


어제 열린 한미FTA 전략회의에서도 견해가 상당히 엇갈렸고, 주장도 팽팽히 맞섰습니다. 어제 회의에서는 의견이 종합되지 못했고, 민주노동당에서 “이렇게 반대 의견이 많을 줄 몰랐다. 당에서도 다시 토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 논의가 일단락되었지만, 쉽게 입장이 정리되진 않을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작동도 사회운동을 전제로 하므로 따라서 대중운동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얘기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합니다. 또한 (사회진보연대는 지난 탄핵국면에서 국민발의, 국민소환의 필요성을 주장했는데요), 현행 국민투표제도의 문제점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 역시 분명한 듯합니다.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의 제도가 반드시 보완될 필요가 있고, 국민투표법 상 제약은 반드시 폐기되거나 투쟁을 통해 무효화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물론 국민발의 등은 헌법 개정 사항이 아닐까 싶어서, 쉽게 해결책이 나오긴 어려운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문제가 함께 인식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여러 위험성이 현실화될 우려도 더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일단 지금은 다소 조심스럽게 말할 수밖에 없고, 즉각적으로 찬반 입장을 밝히기보다는 참고하거나 유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로 의견을 정리해보았습니다만... 사회진보연대에서 더 많은 의견교환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런데 역시 유념해야 할 것은 이런 제안이 현재의 FTA 반대투쟁의 교착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전술로 제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FTA 협상에 대한 폭로 국면에 이어 찬반양론이 벌어진 후 운동이 기대했던 것만큼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이냐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FTA 국민투표 전술 제안에 대한 토론은 현재 국면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어떤 운동계획이 필수적인가를 논의하는 토론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듯합니다.....


자료로 첨부한 것은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해 나온 입장들입니다. 우려나 반대의 의견은 아직 글로 논리정연하게 정리될 것이 없어서 첨부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번 논란이 오히려 생산적 토론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목: 노대통령, 한미FTA는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출처: 대자보 2006/03/30 (http://www.jabo.co.kr)

저자: 우석훈 (경제학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제목: 자본의 공세에 정면돌파하는 정치적 고리로서 국민투표

출처: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1호 2006/05/02 (http://hb.jinbo.net)

저자: 황정규


제목: 민노당 "한미FTA 문제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국회FTA특위는 우리당-한나라당 연합방위군"

출처: 프레시안 2006년 9월 3일

저자: 윤태곤 기자

 FTA국민투표_의견모음.hwp(80.0 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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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파괴적’ 금융원조_사타르 카셈

[세계의창] 미국의 ‘파괴적’ 금융원조 / 사타르 카셈 2006-09-11 오후 06:15:49
 
미국은 항상 전세계 사람들에게 미국이 많은 나라에 금융원조를 하는 ‘가장 관대한’ 국가라고 말한다. 통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인도주의적 관대함인가, 아니면 미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도구인가?


팔레스타인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곤 하는 미국의 실리적 금융원조 정책의 사례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구성된 1994년 미국은 유럽과 함께 팔레스타인에 대한 금융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도움이 팔레스타인의 양보에 대한 대가임은 명백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특히 안보문제에서 이스라엘과 협력하기로 결정했고,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란 낙인이 찍힌 세력들과 싸우기로 했다. 미국과 그 동맹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의 요구를 따르고자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한 달 단위로 돈을 주기로 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에 금융원조를 계속 제공하면서 자치정부의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첫째, 팔레스타인의 가난한 경제를 압도적인 이스라엘 경제에 병합시키는 자유시장 정책을 강요했다. 둘째, 팔레스타인의 제품 생산을 중단시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봉급에 의존해 살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미국의 국제 경제정책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강요한 조건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유일한 차이점은 팔레스타인에선 경제적 헤게모니를 세계은행이 아닌 이스라엘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미국은 금융원조를 통한 식민지화 구상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국은 유럽 나라들과 함께,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동의하지 않고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에 양보했던 것들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면 자치정부에 대한 금융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마스는 자신들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뜻을 배신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언제나 민주주의가 인간 진보에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해 온 미국이 팔레스타인 선거 결과를 극도로 불쾌하게 여긴 것은 윤리적으로 놀라운 이분법이다. 중동의 모든 이들에게 미국이 민주주의의 가치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맞게 재단된 민주주의에 관심을 둔다는 사실은 명백해졌다.

 

윤리·도덕은 미국이 하마스 정부 붕괴를 희망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금융제재 상황에 몰아넣기로 결정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협력하면서 유럽과 꼭두각시 아랍정권들, 과거 팔레스타인 여당인 파타에 속한 일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 팔레스타인에 지점을 둔 아랍은행들을 동원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공무원들은 7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땀이 아닌, 외국의 경제원조에 의존해 살았던 것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팔레스타인에서는 파업이 벌어지고, 공무원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들은 하마스가 미국의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알지만, 배고픔을 해결할 대책은 내놔야 한다고 요구한다. 맞는 주장이지만 파산 상태인 정부가 그들에게 돈을 줄 가능성은 없다. 여러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미국과 협력하는 반하마스 세력이 이 파업을 선동했다고 지적한다. 이들 세력의 바람대로 하마스 정부가 사라진다면 봉급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팔레스타인의 굴욕적인 대외 의존의 상징인 경제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미국의 ‘관대함’은 윤리적이지 않다. 아랍권에서 미국의 접근법은 전형적이며, 반드시 반작용을 일으킨다. 중동의 누구도 이유 없이 미국과 싸우려고 나서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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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폭력의 악순환_사타르 카셈

[세계의창] 미국의 ‘파괴적’ 금융원조 / 사타르 카셈   한겨레 | 2006.09.11 18:26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이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일부러 다리와 발전소 등 기반시설을 파괴했고, 8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전기와 물이 끊긴 채 살아가고 있다. 집과 농장은 파괴됐다. 여성과 어린이까지 5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이 숨졌고 300명 이상이 다쳤다. 가자지구 전체가 포위됐고, 인도적 원조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팔레스타인에 남은 세 조각의 땅 가운데 하나다. 약 140만명이 살고 있는데, 주민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 집과 땅을 빼앗기고 쫓겨난 난민들이다. 이때부터 50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중동 곳곳의 난민촌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다. 67년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아랍 나라들에 압승을 거두고 팔레스타인에 남아 있던 땅 세 조각도 점령했다.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며 권리회복 운동을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테러리스트’ 딱지를 붙였다.

 

몇 해 전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순교공격’으로 부르는 자살폭탄 공격을 시작했고, 사정거리 10㎞ 정도로 정확도가 떨어지는 원시적 로켓도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은 이를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다. 안보는 이스라엘 건국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였다. 유대인들은 수세기 동안 유럽에서 박해당하면서,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조국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조국을 건설할 땅으로 선택했다. 영국 등 서방은 우간다를 대체지로 제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시오니스트들의 선택을 따랐다. 유대인들은 안보와 평화를 얻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안보 위협에 민감하다. 이스라엘은 적이 공격능력을 갖추기 전에 적군을 파괴하라는 선제공격론을 실천해 왔고, 반드시 이스라엘 인구 밀집지역과 떨어진 적군의 땅에서 전쟁을 벌이라는 원칙도 고수했다.

 

첨단 군사장비를 동원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이스라엘 군 초소를 공격해 병사 3명을 죽이고 1명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병사를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8천명이 넘는 수감자들과 교환하기를 희망한다.

 

가자지구 공격에 나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막대한 손실을 입힐 수는 있지만, 사로잡힌 병사도 석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스라엘은 오히려 이번 공격으로 자국 병사의 목숨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병사의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작전도 매우 위험한 형편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병사의 생환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국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지난 몇 해 동안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압력에 여러차례 굴복했고, ‘배신자’로 몰릴 것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돼 있고 희생도 감수하려 하는 새 하마스 정부는 과거의 파타당 정부와는 다르다.

 

이스라엘이 병사를 구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팔레스타인 수감자와 병사를 교환하는 협상에 나설 것이다. 이스라엘이 병사가 갇힌 장소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면 병사의 운명은 끝이 날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중공세를 계속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팔레스타인 장관과 의원들을 붙잡았고, 총리를 비롯해 하마스 정치 지도자 암살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며,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사타르 카셈 팔레스타인 나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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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대도박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_이정훈

노무현의 대도박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NATO] 냉전종식 후 체제개편, [한미동맹] 체제개편 후 냉전종식?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출처 : 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6/03/28/200603280500002/200603280500002_1.html

 

(2006.04.01 통권 559 호 (p194 ~ 213)

 

한미연합사령관(미국 육군대장)이 갖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OP CON·Operation Control, 이하 작통권)을 한국군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올해 안에 전시 작통권 환수를 위한 조치를 마무리짓겠다”고 밝혔다. 특히 윤 장관은 “올해 말까지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전시 작통권을 환수하기 위한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력으로 자국을 지키는 독립국가이니 당연히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미국군에 맡겨놓고 있으니 ‘한국은 주권(主權)이 없는 나라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해외 안보전문가들은 이를 꼬집어 “한국은 일본 이상으로 미국에 안보 무임승차를 해온 나라”라고 지적했다.
올해 한국 국방비는 230억달러(약 22조8000억원)인데, 이는 세계 10위쯤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세계 최고의 국방비 지출국은 연 4800억달러 이상을 쓰는 미국. 2위군(群)은 일본·영국·프랑스·독일·중국 등인데 연 300억∼800억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한다. 그리고 연 100억∼300억달러를 지출하는 3위 그룹에 한국·이스라엘·대만·인도·사우디아라비아·이탈리아·캐나다·러시아·터키·호주 등이 포진해 있다.
한국은 무역이나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마찬가지로 국방비 지출에서도 세계적 강국인 것이다. 이 정도의 ‘군사 강국’이라면 전시 작통권을 환수해 국가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누구보다도 자주(自主) 의지가 강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왜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지 않았을까.

 


현재의 적대상태가 계속되는 한…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이 미군에 넘어간 계기는 6·25전쟁이다. 당시 8개 사단이던 한국군은 10개 사단으로 구성된 북한군의 선제공격에 밀려 초전에 3개 사단(2, 5, 7사단)이 사실상 궤멸하고 최고사령부인 육군본부가 마비되는 위기에 빠졌다. 의병이라도 일으켜야 할 상황이되자 김홍일, 김석원 등 중국군과 일본군 출신의 노병들이 패잔병을 끌어모아 방어전을 펼치는 처지가 됐다.
이때 희망의 불씨를 지핀 것이 유엔이었다. 1950년 7월7일 유엔은 침략자인 북한군을 응징하기 위해 유엔기(旗)를 사용할 수 있는 다국적군 사령부(당시 표현은 ‘통합군 사령부’, Unified Command)를 결성하고, 미군이 이 사령부를 통제하도록 했다. 유엔 깃발을 사용하는 다국적군(이하 유엔군) 구성이 확정되자 ‘외교의 귀신’이라는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군을 더 빨리 끌어들이기 위해 비상수단을 내놓았다.
미군 연합참모본부(지금의 합동참모본부)는 유엔군을 지휘할 부대로 도쿄에 본부를 둔 미 극동군 사령부(사령관 맥아더 원수)를 지정했다. 7월14일 이 대통령은 ‘현재의 적대상태가 지속되는 한(during the period of the continuation of the present state of hostilities)’라는 단서를 달아 한국군에 대한 ‘모든 지휘권(all command authorities)’을 넘기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맥아더 원수에게 보냈다.
지금 한국에서는 ‘all command authorities’를 ‘모든 지휘권’으로 번역한다. 하지만 ‘all command authorities’는 헌법상 대통령이 가지는 것으로 규정한 ‘통수권(統帥權)’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통수권은 영어로 ‘the prerogative(특권) of supreme(최고) command’로 표기하지만, 뒤에서 설명할 NCMA에서처럼 ‘command authorities’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헌법에서 규정한 권한을 외국에 이양할 때는 국민투표나 국회 표결을 통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것이 다급했으므로 이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없었다. 당시 육군 지휘부는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이 36세일 정도로 젊었고 이 대통령은 만 75세의 고령이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은 외교의 달인이고 영어를 워낙 잘했으므로 그 누구도 미국과 접촉하는 이 대통령에게 조언할 형편이 아니었다.
이 대통령이 편지를 잘못 썼다는 것은 오히려 미국측에서 확인해줬다. 무초 당시 주한 미대사는 그후 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대통령이 미국군에 이양한 것을 ‘작전통제권(Operation Command Authority)’으로 표현했다. 미국은 통수권은 이양 대상이 될 수 없고 작전통제권만 이양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
통수권은 크게 인사와 예산·군수 같은 군사행정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군정(軍政)과 군사작전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군령(軍令)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작통권은 군령권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6·25 전쟁 내내 미국군은 한국군에 대해 군령권은 물론이고 군정권까지 행사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군사원조’란 명목으로 예산을 지원한 것. 그러나 한국군에 대한 인사권만은 이 대통령이 행사했다.
이러한 밀월관계는 1951년 미국이 정전(停戰)협정을 추진하면서 깨졌다. 이 대통령은 미군측에 “정전을 추진하면 모든 지휘권을 환수해 한국군 단독으로 북진하겠다”고 위협했다. 정전협정을 맺으면 양쪽은 반드시 포로교환에 들어간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한 주장이 엄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반공)포로 석방을 감행했다.

 


방위조약·군현대화와 맞바꾼 작통권

 

깜짝 놀란 미군은 이 대통령을 제거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에버레디 작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 대한 한국민의 지지가 굳건한 것을 알고 실행을 포기했다. 그리고 ‘정전에 협조하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한국군 20개 사단을 무장시켜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는데, 이 대통령이 못 이기는 척 이를 수용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인 1953년 10월1일 미국은 한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양국 국회의 비준동의를 거쳐 1954년 11월18일 이 조약을 발효시켰다. 그와 동시에 미군은 한국군 20개 사단을 현대식 무기로 무장시키고, 60만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예산과 물자를 원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례가 돼 그후 오랫동안 한국군은 총병력 60만에 육군 상비사단 20개 전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병력을 늘림으로써 총병력 69만, 상비사단 22개의 현행 체제가 만들어졌다.
방위조약이 발효되기 직전인 1954년 11월7일 양국은 ‘유엔군(미국군)사령부가 한국 방위를 책임지는 동안 유엔군사령부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계속 갖는다’는 문구가 들어간 합의의사록을 교환함으로써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유엔군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핵심적인 국가 주권인 작전권을 넘기는 대신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 대통령의 ‘벼랑끝 전술’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국군 현대화라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반면 미국은 유엔을 통해 한국군 작통권을 양도받음으로써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미국과 한국 중에서 거래를 잘한 쪽은 어디일까.
미군이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원조를 1976년까지 계속한 덕에 한국은 과도한 국방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1961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이 18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데는 미국의 안보 지원이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5·18 때 문제 제기

 

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안보 의존은 1968년 1월21일 북한군 특공대의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을 계기로 깨지게 된다. 박 대통령은 사건 직후 응징보복을 계획했으나 작통권을 가진 미군이 반대했다. 그런데 이틀 후 미 해군 정보함인 푸에블로함이 북한 해군에 납치되자 미군은 항공모함을 북한 해역에 파견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방위산업 육성에 착수했다. 국민은 미국에 의존하지만은 않겠다는 박 정권의 자주국방 노선을 지지했는데, 이러한 자주 의식이 그후 학생운동 세력에 ‘이상하게 접목’되면서, ‘한국은 미국에 자발적으로 안보권을 넘긴 게 아니라 빼앗겼다’라는 반미 자주의식을 낳았다.
반미감정이 증폭되는 데는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시절 여러 차례 발동된 계엄령과 위수령도 한몫을 했다. 그중에서도 분수령이 된 것은 박 대통령 사망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가운데 터져나온 1980년 5월의 광주 민주화운동이었다. 시위 규모가 커지자 계엄군이 유혈 진압에 나섰는데 이것이 정치 문제로 비화했다.
문제를 제기한 측은 “한국군에 대한 작통권은 미군에 있으므로 미군의 동의가 없으면 한국군은 유혈 진압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유혈 진압의 책임은 미군에 있다”고 따졌다. 이에 미국측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자 “그렇다면 한국군은 작통권을 가진 미군의 동의를 받지 않고 움직인 것이니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이 된다”고 공격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성공시킨 박정희 세력이 계엄령을 선포해 권력을 장악해가자, 매그루더 당시 유엔군 사령관은 “박정희를 따르는 군부 세력은 미군의 작전통제를 받지 않고 군사혁명을 감행했다. 군사혁명에 가담한 세력은 원대복귀하라”는 반(反)혁명 성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전례가 있는 만큼 미군은 ‘계엄령이 내려졌더라도 미군은 한국군의 작전을 통제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때 자주능력이 커진 한국군에서 ‘대(對)간첩작전 본부장에 불과한 합참의장을 명실상부한 군령권자로 만들고, 합참 통제하에 육해공군이 합동작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안팎에서 군령권 문제가 거론되자 한미 양국은 작통권을 평시(平時)와 전시(戰時)로 나눠 갖자고 합의했다. 이때 유엔사 기능은 1978년 11월7일 발족한 한미연합사가 맡고 있었다.
한미 양국은 1994년 12월1일부로 전시 작통권은 한미연합사령관(유엔군 사령관)이, 평시 작통권은 한국군 합참의장이 행사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계엄령이나 위수령발동 상황의 작전이나 대간첩 작전, NLL(북방한계선)과 MDL(군사분계선) 상에서 북한군과 벌이는 교전은 평시 작전으로 규정돼 한국군 합참의장이 통제하게 됐다.
작통권은 평시보다 전시에 의미가 있다. 전시가 되면 휴지가 되는 평시 작통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평시에는 주권국가이지만 유사시엔 종속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인식에 따라 전시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시 작통권 환수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 작통권 환수가 쉽지 않다는 것은 미군이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데프콘(DEFCON)’과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데프콘Ⅲ까지는 ‘평시’

 

데프콘은 ‘Defense Readiness Condition’을 축약한 것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방어준비태세’가 된다. 미국군은 데프콘을 다섯 단계로 나눠놓았다(데프콘을 평시에 발령되는 ‘진돗개’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 공작원이 침투한 흔적이 발견되면 합참은 ‘진돗개’를 발령해 평시작전인 대간첩작전을 펼친다).
데프콘Ⅴ는 군사적 긴장이 전혀 없는 태평성대를 뜻하는데 지금의 미국이 이에 해당한다. 미군은 여간한 위협이 아니면 데프콘을 올리지 않는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에도 데프콘을 격상하지 않았다. 초대형 테러가 일어났지만 미국이 생각하는 가상 적국에서 미국을 공격하려는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프콘 Ⅳ는 국지적 긴장이 있어 군사적 경계가 요구되는 상태다. 군사적 경계란 지금의 한국군처럼 많은 병력을 철책 근무에 투입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데프콘Ⅲ는 중대하고 불리한 영향을 초래할 정도의 긴장상태가 전개되거나 군사개입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태다. 데프콘Ⅱ는 가상 적국이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태세를 강화할 징후를 보이거나 긴장을 고조시킨 상태이고, 데프콘Ⅰ은 가상 적국이 전술적인 적대행위를 보이는 전쟁 임박 상태다.
정전협정 이후의 한반도 상황은 대부분 데프콘Ⅳ에 해당했다. 데프콘Ⅲ는 딱 한 번 발령됐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휘하던 보니파스 미 육군 대위와 발레트 중위 가 북한군이 휘두른 도끼에 찍혀 살해된 직후였다.
한미 양국군은 데프콘Ⅲ까지는 평시로 규정한다. 지금 데프콘Ⅲ가 발령되면 합참의장은 한국군 전 장병에 대해 휴가·외출 금지령을 내리고, 전원 즉각 출동할 태세를 갖추게 한다. 장병들은 사전에 작전지역으로 정해놓은 곳으로 이동하진 않지만, 전투화와 전투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자면서 출동에 대비한다.
주한미군과 한반도 전구(戰區, Theater, 통합사령관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지역)로 옮겨오는 증원군에 대해서는 전·평시를 막론하고 한미연합사령관을 겸하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작통권을 행사한다.

 


미군 통수권 가진 미 NCMA

 

데프콘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 강화된다. 데프콘Ⅲ가 되면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군은 몇몇 신속 배치군을 한반도로 이동시킬 수 있다. 8·18 도끼만행 직후엔 오키나와에 있던 해병대 3사단(지금의 제3해병대 원정군)과 전폭기 대대, 그리고 7함대 소속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함과 구축함인 레이저함·미드웨이함을 한국 해역으로 이동시켰다.
증원군 파병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National Command and Military Authorities)’가 결정한다. 이 기구는 대통령과 부통령·국방장관·합참의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미군 통수권은 이 기구가 행사한다. 미국이 대통령 1인이 아니라 여러 명으로 구성된 기구에 통수권 행사를 맡긴 것은 통수권 행사에 따른 대통령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국방 문제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전문가다. 따라서 NCMA가 있으면 대통령은 자의적으로 통수권을 행사하지 않고 국방장관·합참의장과 상의해야 한다. 그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처럼 ‘모든 지휘권을 넘긴다’는 식의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되고, 통수권을 더욱 정교하게 행사할 수 있다.
NCMA가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정보다. 미군과 미 정보기관은 NCMA가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교한 정보 수집 및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정보감시태세’로 번역되는 ‘워치콘(WATCHCON·Watch Condition)’이다. 워치콘의 정도에 따라 데프콘이 변화할 정도로 워치콘은 중요한 기능을 한다.

 


워치콘 따라 데프콘도 변화

 

워치콘에도 다섯 단계가 있다. 워치콘Ⅴ는 일상적인 상황으로 징후 경보에 문제가 없는 상태. 워치콘Ⅳ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나 잠재적인 위협이 존재해 계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의 한반도 상황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워치콘Ⅲ는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초래될 우려가 있는 경우로, 적정(敵情) 감시를 위해 정보요원 근무를 현저히 강화한다. 정보요원들은 외출과 휴가가 금지되고 전원 정위치에서 근무하거나 대기한다.
워치콘Ⅱ는 현저한 위험이 일어날 징후가 보일 때 발령되는데, 이 경우 정보 전력과 요원이 증강된다. 워치콘Ⅰ은 적의 도발이 명백할 때 내려지는데, 한반도에서는 아직 발령된 적이 없다.
워치콘Ⅲ는 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2년 10월 발령됐다. 당시 북한은 총리급 회담을 비롯한 모든 남북대화를 중단하고 준(準)전시 상태를 선포해 한미연합사를 긴장시켰다. 워치콘Ⅱ는 1982년 2월 북한군이 IL-82 폭격기를 전진 배치하고 북한 전역에서 공군 훈련을 펼쳤을 때와 1996년 4월5일 북한군이 판문점에 무장병력을 투입했을 때, 그리고 1999년 6월 서해교전 때 발령됐다.
워치콘Ⅱ가 발령되면 데프콘Ⅲ가, 워치콘Ⅰ이 내려지면 데프콘Ⅱ가 발령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데프콘Ⅲ 상태에서 워치콘Ⅱ가 발령되면 미 NCMA는 한반도 전구로 증원군 파병을 결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 미국군 차원에서 ‘신속억제방안(FDO)’을 가동하거나, 태평양사령부 차원에서 신속배치군을 보내는 ‘전투력 증강(FMP)’ 계획이 가동된다.
한반도 위기시 발령되는 150여 개의 신속 억제방안 시나리오는 작전계획 5027에 들어 있다고 한다. 그중 핵심이 정찰·감시부대를 한국으로 이동시키는 것.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한국에 파견하는 U-2 고공정찰기 등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U-2는 대공(對空) 미사일이 올라오기 힘든 7만3500피트(약 24.5km) 이상에서 비행할 수 있어 적 영공으로 들어가 정보를 수집한다(보통 전투기는 10~13km인 3만~4만피트 상공에서 비행한다. U-2는 1960년 5월1일 소련 영공에서 정찰하다 소련군이 쏜 대공 미사일을 맞고 격추된 적이 딱 한 번 있다).
미군도 24대만 갖고 있다는 대표적인 신호정보 수집기 RC-135도 이동해올 수 있다. 신호정보란 각종 무선발생기에서 나오는 전파인데, RC-135는 공중에서 이를 포착해 해독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적진 침투가 가능한 장거리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와 중거리 무인 정찰기 ‘프레데터’도 들어와 북한 영공에서 정보 수집에 들어간다.
주한 미 8군에는 ‘가드레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신호정보 수집기 RC-12H를 운영하는 501 정보여단이 배속돼 있는데, 워치콘Ⅱ가 발령되면 이 여단의 전력도 현저히 강화된다. 주한 미 2사단에 배속된 정보대대도 전력을 강화해 섀도-200 무인정찰기 등으로 북한군 동태를 감시한다.
이들 정보부대에 대한 통제는 CIA보다 세 배 많은 예산을 쓰는 NSA(국가안보국)의 한국 파견부대인 SUSLAK이 담당한다. SUSLAK에 대응하는 한국군 정보부대는 777부대인데, 두 부대는 ‘통신정보협정’을 맺고 있어 수집한 정보를 맞교환한다. 777부대는 전방 고지에 설치한 신호정보 수집 장비와 백두정찰기에서 얻은 정보를 SUSLAK에 제공한다.
한국군은 SUSLAK뿐 아니라 오산 기지에 있는 K-COIC(한국전투정보작전본부)와 CACC(연합분석통제본부)를 통해서도 미군이 획득해온 정보를 제공받는다. 한미 공군이 합동근무하는 이곳으로는 U-2기 등이 찍어온 사진정보와 신호정보가 들어온다.
한국은 공군 37전대가 RF-4C 정찰기와 신형 정찰장비인 EO/IR을 갖춘 KF-16을 띄워서 입수한 정보, 금강정찰기 등을 운용하는 정보사가 획득한 영상정보와 인간정보, 그리고 전방 군단에서 한국형 무인정찰기 ‘나이트 인트루더’로 입수한 정보를 미군에 제공한다.
한미 정보부대가 입수한 정보는 한국군 합참 정보본부에 취합돼 한국군 수뇌부의 판단자료로 활용된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이 자료에다 국정원이 운용하는 첩보위성 자료를 보태고 CIA와 교환한 자료를 더해 한국 대통령이 볼 판단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이 시기 미국 NCMA는 한국 대통령보다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보고받는다. 태평양사령부와 동급인 미국의 전략사령부(USSTRATCOM)는 한반도 전구 밖인 중국과 러시아 해안 쪽으로도 U-2, RC-135, EP-3 등의 첩보기와 첩보함 잠수함 등을 침투시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이 사령부는 뛰어난 해상도를 자랑하는 초특급 첩보위성 KH-12와 라크로스 위성 등을 통해 영상정보와 신호정보도 수집한다.
육해공군 정보부대와 CIA, NRO(국가정찰국) 등 15개 정보기관이 수집·분석한 정보는 DNI(국가정보국)에서 취합돼 NCMA에 보고된다. 이러니 미국 NCMA는 국정원과 777부대, 정보사령부 그리고 한국에 있는 미군 정보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해야 하는 한국 대통령보다 월등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미연합사는 유사시 양국 대통령과 양국 합참의장의 통제를 받게 돼 있지만, 미국이 생산하는 정보의 양과 질은 한국을 월등히 앞서므로 한미연합사는 미국이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미국은 한반도 외부에서 독자적으로 입수한 정보는 NCMA에서 활용하고 난 다음에야 한국에 제공한다.
위기가 고조될수록 미국의 상황 주도권은 강화되는 것이다. 신속억제방안을 가동했는데도 북한군이 공격 징후를 강화하면 NCMA는 ‘전투력 증강(FMP)’ 계획을 가동한다. 이에 따라 제3해병대원정군과 7함대 등 태평양사령부 예하 부대가 한반도로 이동해온다. 최근 미 육군에 창설된 신속배치부대인 스트라이커 여단도 올 수 있다.
신속억제방안과 전투력 증강계획은 순차적으로 발령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면 동시에 발령될 수도 있다. 위기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한국에 들어오는 미국 정보 자산과 증원전력이 늘어나기 때문에 1994년 한국은 전시 작통권을 환수하지 못했던 것.

 


데프콘Ⅱ부터 戰時

 

데프콘Ⅱ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딱 한 번 발령됐다. 8·18 도끼만행 사건으로 데프콘Ⅲ 위기가 이어지던 1976년 8월21일, 유엔군사령부는 문제의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폴 번연 작전’을 감행하면서 데프콘Ⅱ를 발령했다.
지금 데프콘Ⅱ가 발령되면 한국 정부는 전시임을 선포하지 않지만, 한미 양국군은 전시체제로 들어간다. 한미연합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부에 배속된 작전부대와 한국군 전투부대를 통제한다. 데프콘Ⅱ가 발령되면 전 장병은 탄약을 지급받고 주둔지(내무반이 있는 부대)를 떠나 담당할 작전지역으로 이동한다. 야전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각급 부대 중에서 최전방에 있는 것이 GP인데, 초전에 적군의 공격을 받아 점령될 가능성이 높은 GP 부대는 GP를 파괴하고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후퇴할 수 있다. 그러나 온갖 폭격과 포격에도 견딜 수 있는 철옹성 구조를 갖춘 GP 부대는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GP에 잔류한다.
남방한계선을 지키는 GOP 대대들도 일부는 철수하고 일부는 철옹성 구조의 산악 진지에 들어간다. GP와 GOP에 잔류한 부대는 인민군이 진격하면 이들의 움직임을 감시해 보고하고 적 후방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방어에 어려움이 있는 GP와 GOP 부대를 철수하는 것은, ‘FEBA(전투지역 전단)’라고 하는 남방한계선 남쪽과 민통선 북쪽 사이의 공간을 전투무대로 삼기 위해서다. 북한군의 진격이 시작되면 한미 연합 포병은 텅 빈 FEBA 지역을 향해 집중적으로 사격한다. GP와 GOP 부대는 이미 철옹성 진지에 들어가 있으니 진격하는 북한군을 마음껏 공격할 수 있는 것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북한군의 진격이 시작됐다는 것은 곧 데프콘Ⅰ이 발령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데프콘Ⅰ 발령 전에도 아군 포병은 북한군을 향해 사격할 수 있다. 북한군이 특정지역으로 대거 몰려들면, 그곳을 주공(主攻)이나 조공(助攻)의 출발지로 삼아 순식간에 FEBA를 돌파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군 집결을 저지하기 위해 사전 포격을 퍼붓는다.
이에 대해 북한군 포병이 포격으로 대응하면 데프콘Ⅱ 상황임에도 남북한은 사실상 전쟁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포격전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집결이 강화되면 한미연합사는 보다 더 강화된 방어전 준비에 들어간다.
서울 이북의 도로 곳곳에는 양쪽에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를 올려놓은 ‘대(對)전차 장애물’이 있다. 데프콘Ⅱ의 위기가 발생하면 아군은 북한군 기동부대가 일시적으로 장악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로의 장애물을 허물어 길을 차단하고 도로 곳곳에 대전차 지뢰와 대인지뢰 등을 박아넣는다.

 


440만명으로 커지는 한미연합군

 

후방에서는 예비군 소집 동원령이 떨어진다. 군사분계선에 배치된 22개 상비사단은 평시엔 필요인원의 80~90%만 채우고 있다(간편(簡編) 체제)가, 동원령이 발령되면 갓 제대한 동원예비군이 들어와 100% ‘완편(完編)’ 사단이 된다.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동원예비군은 16개 동원사단에 들어간다. 동원사단은 상비사단 뒤쪽으로 이동해 상비사단을 지원한다.
더 나이가 많은 일반 예비군은 후방을 지키는 9개 향토사단에 입소한다. 이런 식으로 입소하는 동원·일반 예비군 병력은 304만여 명. 한국군은 현역 69만명에 예비군을 더해 370만이 넘는 대병력을 가진 군대가 된다. 동원된 예비군은 현역과 함께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으며 D-데이 H-아워에 펼칠 작전을 반복하는 훈련에 들어간다.
데프콘Ⅱ가 발령되면 미군도 바빠진다. 데프콘Ⅱ에서 미군은 작전계획 5027에 따른 ‘시차별 부대전개제원(TPFDD)’을 가동한다. 이 계획은 전투장비는 배에 싣고, 전투병력은 항공기에 실어 한국으로 옮긴 다음, 둘을 결합해 전방지역으로 보내는 것이다. 미군은 이 제원을 숙달하기 위해 해마다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을 하고 있다.
미군은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전을 통해 실전 상황에 맞는 시차별 부대전개제원을 다듬어왔다. 이 계획이 완전 가동되면 한반도 전구에 들어온 미군 규모는 69만명이 된다. 이로써 한미연합사령관은 도합 440만 대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된다.

 


공세이전→격멸→민사작전

 

이러한 대비책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진격하거나 노동미사일을 발사할 조짐을 보이면, 데프콘Ⅰ이 발령된다. 그 순간 한국 정부는 전시를 선포하며 정부 조직과 운영 체제를 전시 체제로 바꾸고, 합참의장을 계엄사령관으로 한 계엄령을 선포한다. 합참의장은 육군 2군사령부와 향토사단을 주축으로 남한지역을 대상으로 계엄 업무를 수행한다.
북한이 노동 미사일을 발사할 움직임을 보이면 한미연합 지상군은 ATACMS(에이타킴스) 미사일을, 미 해군은 토마호크 미사일을, 한미연합공군은 대규모 공격편대를 띄워 북한 전역을 초토화하는 ‘충격과 공포’ 작전을 감행한다. 미사일과 항공 폭격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이라, 이라크전에서 미국은 이를 ‘A(Air)-데이’ 작전이라고 했다.
A-데이 작전은 한미 연합정보부대가 북한 노동미사일의 움직임을 손금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능력은 미군 정보부대가 갖고 있으므로 A-데이 작전 개시 여부 또한 미군이 결정하게 된다. 북한군이 노동미사일을 쏘지 않고 지상군만으로 남진을 시작하면 A-데이 작전의 규모는 작아질 수 있다.
데프콘Ⅰ의 하이라이트는 북한군의 FEBA 지역 돌파를 저지하던 한미연합 지상군이 방어전을 중단하고 역습에 들어가는 ‘공세이전(攻勢移轉)’ 단계다. 공세이전은 1개 해병대 사단과 1개 비행단, 1개 지원여단으로 구성된 미국 제3해병대 원정군이 2개 사단과 1개 여단으로 편성된 한국 해병대와 한팀을 이뤄 상륙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미연합해군의 지원을 받은 연합해병대가 평양에서 가까운 서해 남포 인근이나 상륙조건이 좋은 동해 원산 부근의 해안으로 돌격 상륙하는 순간, 한미연합 지상군도 대대적인 반격전에 돌입한다. 이른바 ‘G(Ground)-데이’ 작전이 시작되는 것인데 이때 최선봉에는 ‘맹호’ ‘불무리’ ‘화랑’ 등 한국군의 6개 기계화보병사단과 미 2사단이 선다.
7개 기동부대는 한미연합공군의 지원을 받아 순식간에 북한 깊숙한 지역까지 통로를 개척하는 ‘종심(縱深)작전’을 전개한다. 통로가 열리면 16개 보병사단이 쏟아져 들어가 ‘전과(戰果) 확대 작전’을 펼치고, 16개 동원사단이 따라 들어가 이들이 확보한 지역을 경계한다. 그 뒤로 보급부대가 들어와 보급선을 구축하면, 기동사단과 보병사단은 숨쉴 틈을 주지 않고 2차 공격에 들어간다.
2차 공격부터는 북한의 굴복을 요구하는 ‘격멸(擊滅)’ 단계에 해당한다. 격멸단계는 북한 정부가 항복하거나 한미연합군이 북한 전역을 차지할 때까지 계속된다. 이때 진격 속도를 늦추면 북한군의 저항이 커져 피해가 확대되므로 연합지상군은 보급선이 확보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진격한다.
격멸 단계가 끝나면 한미연합사는 북한 지역을 상대로 한 군정(軍政)에 들어간다(여기에서의 ‘군정’은 군령에 대비되는 군정과 다르다. 이 군정은 민사작전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한미 양국은 한미연합군이 장악한 북한 지역에 대한 군정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마찰을 빚어왔다.

 


한국군이 민사사령관 담당

 

한국은 전쟁을 통해 획득하는 북한 땅을 ‘수복(收復)지구’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조문을 근거로 한 것이다. 한국은 “북한 땅은 원래 우리 영토인데 미수복지구로 있다가 수복되면 당연히 한국 정부가 이 지역에 대해 행정력(계엄)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전쟁을 통해 획득하는 땅은 점령지이므로 한미연합사가 군정을 펼치고 이어 그 지역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때 북한 주민들이 ‘우리는 한민족이다’라며 한국과 합치겠다고 하면 통일은 쉽게 이뤄진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이 합병을 거부한다면 한반도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처럼 대립하지 않되 별개 국가가 되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은 “향후 전쟁을 치르며 통일을 이룬다면, 다시 한반도가 쪼개지는 상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에서 보듯이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점령지에서 군정을 펼치고 이어 그곳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이 국제적인 룰이다. 그리하여 나온 타협점이 ‘군정을 펼칠 연합민사(民事)사령부는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맡고, 구성원도 대부분 한국군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비록 군정의 형태이긴 하지만 회복하는 북한 땅에 한국 행정력을 투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았다.
데프콘에 대해 상세히 알아본 것은 미군의 협조 없이는 한반도 평화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위기가 고조돼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은 미국 증원군과 합세해 비교적 쉽게 북한군을 격파하고, 한미연합사의 군정을 거쳐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게 된다.
전시 작통권을 미국이 갖고 있기에 한국은 위기상황을 피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위기가 고조되면 통일을 이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시 작통권을 갖고 있지 않아도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 위기시나 전쟁시 증원군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미국은 6·25전쟁 때처럼 작통권 이양을 전제로 증원군을 파병할 것이 분명하다.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하자 쿠웨이트는 미군에 전진기지를 제공했다. 1991년 미국이 걸프전에 승리해 이라크가 장악한 쿠웨이트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은 쿠웨이트와 다양한 협정을 맺음으로써 전시 작통권을 거머쥐었다. 이라크에 대한 군정이 끝나고 이라크 민간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은 한미연합사와 같은 연합사령부를 이라크에 만들고 전시 작통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자주의식이 강한 일부 세력은 이러한 현실을 부인한다. 이들은 오히려 ‘미국이 북핵 위기를 핑계로 북한을 공격해 한반도를 전시로 몰아넣는 상황’을 염려한다. 이른바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론인데 이러한 염려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후 더욱 깊어졌다. 이들은 한반도가 미국에 의해 다시 전쟁상태로 가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에 준 전시 작통권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戰時는 북한이 만든다

 

그러나 이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지난해 발표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문구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들은 “이 성명은 중국·러시아 등과 함께 합의해서 발표한 것인 만큼 미국이 쉽게 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안보 전문가들은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 이들은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거론한다. 방위조약은 서문과 제1항에서 평화적 수단에 의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평화적인 수단으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상대의 공격으로 인해 무너졌을 때 양국은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먼저 한국이나 미국을 공격하지 않는 한 미국은 격멸 단계까지 치닫는 작계 5027을 가동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를 전시 상태로 만드는 것은 미국보다는 북한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통권을 가동케 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따라서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는 한미간 불신의 골을 깊게 하기보다는 국가 자존심을 세우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 즉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한 상태에서 전시 작통권 환수를 추진하는 것인데, 이 일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방위조약문은 ‘한국과 미국 중 어느 한쪽이 위기에 처하면 다른 쪽이 돕는다’는 동등의 원칙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거의 일방적으로 한국을 돕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 이 시혜의 반대급부로 미국은 유엔을 통해 한국군 전시 작통권을 가져갔다. 따라서 전시 작통권 환수는 방위조약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방위조약을 유지하면서 전시 작통권을 가져올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NATO는 미국 등 19개 회원국이 참여한 동맹기구다. 따라서 회원국 중 어느 한 나라가 전쟁을 벌이면나머지 회원국들도 동맹국의 전쟁 상대국과 전쟁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좋은 예가 1982년 NATO의 핵심 회원국인 영국이 포클랜드 섬 영유권을 놓고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을 때다.
영국이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할 때 미국 등 나머지 회원국은 아르헨티나와 싸우지 않았다. 이유는 NATO 차원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개별 국가 차원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NATO는 WTO(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 방위기구이므로 NATO군(軍)이 동원되려면 회원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냉전이 종식된 1991년 WTO가 해체됐다. NATO군 총사령부로서는 가상적을 잃었으며 이로써 NATO군 총사령부도 설 자리를 잃게 됐다.

 


WTO 해체로 평시 조직화한 NATO군

 

캐나다는 과거 영연방의 일원이었고 미국과 가까워 NATO에 가입했는데, NATO는 유럽 위주로 움직였다. 이에 대해 캐나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이러한 문제 제기가 맞물리면서 NATO군은 유럽동맹군사령부(ACE)와 대서양동맹군사령부(ACLANT) 체제로 나뉘게 됐다.
NATO가 유럽동맹군사령부와 대서양동맹군사령부를 출범시킨 것은 평시 체제를 갖추게 됐음을 뜻한다. 유럽대륙을 책임구역으로 하는 유럽동맹군사령부는 유럽 국가 출신 대장이 돌아가면서 사령관을 맡고, 대서양동맹군사령부에서만 미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음으로써 NATO는 유럽 위주로 움직인다는 시비도 벗어났다.
두 사령부 위에는 미군의 유럽사령부(USEUCOM) 사령관이 겸직하는 NATO군 총사령부가 있으나, 평시에 이 사령부는 나설 이유가 없다. 이는 1994년 12월 평시 작통권이 반환된 후의 한반도에 비교될 수 있다. 1994년 12월 이후 한반도에는 전시 작통권을 가진 한미연합사와 평시 작통권을 가진 한국 합참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敵)인 북한이 붕괴된다면, 한반도는 전시체제가 될 일이 없으므로 한국군 합참이 사실상 모든 한국군을 통제하게 된다. 이때 한미방위조약 정신에 어긋나는 갈등이 생기면 미국은 파병하지 않는다. 포클랜드 전쟁의 영국처럼 한국은 한국군 합참 중심으로 전쟁을 하게 된다. 북한이 무너지면 한국군이 사실상 모든 작통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NATO 회원국은 각국이 작통권을 갖고 있으나 NATO 전체 문제에 한해서는 NATO에 작통권을 위임한다. 그런데 NATO는 전시와 평시 체제를 나눠서 전시에는 총사령부가, 평시에는 유럽동맹군사령부와 대서양동맹군사령부가 작통권을 행사하는 2중 체제를 갖췄다. 그러나 WTO가 해체됨으로써 앞으로 상당기간 NATO가 전시 체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으므로 유럽국가들은 유럽동맹군사령부 중심으로 유럽의 위기를 관리하게 됐다.
WTO의 붕괴로 평시 체제가 확고해짐에 따라 유럽은 미국이 갖고 있던 작통권을 유럽으로 가져온 셈이 되었다. NATO 회원국은 개별 국가 문제는 각국이 작통권을 가진 자국군으로 해결하고, 유럽에서 일어나는 위기는 유럽동맹군사령부에 일부 부대 작통권을 위임해 해결한다. 그리고 NATO 전체 회원국이 위기를 맞으면 뒷전으로 밀려난 NATO 총사령부를 등장시키고 작통권을 맡겨 대처한다.

 


유엔사가 전시 작통권 행사

 

이러한 시스템을 한미동맹에 적용하면 전시 작통권 환수 문제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양자동맹이고, NATO 동맹은 다자동맹이라는 차이가 있다. 한미합의록에 따르면 한국군은 미군이 아니라 유엔군에 작통권을 위임했다. 그런데 1978년 한미연합사가 만들어져 유엔사를 겸하게 되면서 유엔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1994년 12월부터는 한미연합사(유엔사)도 전시에만 작통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인류 역사상 전시보다 평시가 훨씬 더 길게 유지됐다. 따라서 북한이 사라진다면 항시 평시체제가 되므로 한국군은 작통권을 100%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유럽과 달리 적이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전시 작통권을 환수하겠다니 이는 한미 간에 심각한 마찰을 초래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움직임과 관련해 신임 한미연합사령관 버웰 벨 대장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유엔사에 대한 미국 외 15개 참전국의 소임을 늘리고, 유엔사가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참여시킴으로써 유엔사를 진정한 다국적군 사령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벨 대장의 이 발언은 한반도 유사시(전시)를 대비한 사령부로 양자기구인 한미연합사 대신 16개국과 한국이 참여하는 유엔사를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한미연합사는 해체되거나 지금의 유엔사처럼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
6·25전쟁 때 한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유엔 회원국이다. 따라서 유엔사가 전시 작통권을 가지면 유엔사에 가입한 한국군도 전시 작통권을 가진 셈이 된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계책이지만 이 방법만이 방위조약을 손대지 않고 한국이 전시 작통권을 가져오는 방안이다. 한국도 참여하는 유엔사가 전시 작통권을 행사하고, 한국군 합참은 평시 작통권을 행사하는 체제가 구축된다면, 미국군 단독의 북한 공격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살피면 유엔사는 미군 합참의 통제 아래 있으므로 전시 작통권은 여전히 미군이 쥐게 된다. 때문에 벨 대장은 한미연합사가 아닌 유엔사를 전면에 내세우겠다고 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도 NCMA 만들어야

 

어찌보면 한국은 전시 작통권을 줌으로써 미국군을 ‘용병’으로 고용해, 국가를 지키고 경제발전을 도모했으며 유사시 통일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군이 전면적인 도발을 하지 않는 한 한반도가 군사적 충돌에 의해 통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약 남북한이 불가침조약을 맺고 경제교류를 활성화해 경제부터 통합하는 길을 걷는다면, 자유화의 맛을 본 북한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 그로 인해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북한 주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한국에 합병되기를 원한다면 고대해온 평화통일이 이뤄질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은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을 가진 상태에서 자문기구에 불과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안보 문제를 결정하는 불안정한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전시 작통권을 환수하려면 한국군 정보능력을 강화하고, 미국처럼 NCMA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유럽은 냉전이 끝난 후 NATO를 개편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냉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미군사동맹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NCMA를 만들고 자주파가 아니라 동맹파가 노무현 정부를 끌고 나가게 해야 한미군사동맹 재편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견해다.

 

 

 

<별첨1> 정보능력이 곧 작전능력

 

 

백두·금강정찰기, 경보기 연계한 합동전술핵심체계 구축해야

 
한국군 핵심 정보전력인 백두정찰기 

전시 작통권 환수를 전제로 할 경우 한국군이 무엇보다 시급히 강화해야 할 부문은 정보 분야다. 현대 군사에서 정보능력은 단순한 정보능력에 머물지 않는다. 정보는 작전과 동의어로 쓰인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1차적 정보는 신호 정보 수집을 통해 이뤄진다. 신호 정보 수집은 적지(敵地)에서 나오는 모든 신호를 수집 분석하는 것이라 적이 어디에 숨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데 효과가 있다. 이를 위해 신호정보 포착이 용이한 전방 고지(高地)에 신호정보수집 장비를 배치한다.
그러나 앞쪽에 큰 산이 있으면 수상한 신호가 나오는 곳의 좌표를 찾기 힘들어진다. 이 문제는 비행기에 신호정보수집 장비를 실어서 해결하는데, 현재 한국군은 백두정찰기를 신호정찰기로 운용하고 있다. 신호정찰기는 높은 고도에서 이동하면서 신호를 수집하므로 사각(死角)이 적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정보가 곧 작전

 

미국군은 U-2 정찰기를 활용한다. 백두는 일반 비행기가 날아가는 고도로 비행하므로 적 영공엔 들어가지 못하나, U-2는 대공(對空) 미사일이 올라오기 힘든 고공으로 비행하므로 적 영공에 침투할 수 있어 보다 중요한 정보를 잡아낼 수 있다.
미국군이 운용하는 또 하나의 신호정찰기 RC-135는 초대형이다. RC-135의 최대 이륙중량이 136t. 이륙중량 12t인 백두보다(U-2는 18t) 10배 이상 무겁다 보니 RC-135는 백두에 싣지 못하는 온갖 장비를 다 실을 수 있다. RC-135는 적 영공으로 침투하진 못하나 수집과 분석을 할 수 있다.
차곡차곡 쌓인 신호 정보를 해독하면 적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신호가 나오는 곳의 좌표는 영상정찰기 운용부대에 통보되는데, 영상정찰기는 이 좌표 지역을 동영상과 정지사진으로 촬영해 어느 것이 신호를 쏘는 시설인지 찾아낸다.
미국은 적 영공 침투가 가능한 U-2로 적진을 촬영한다. 그러나 한국은 백두와 동형인 금강정찰기를 운용하므로 적 영공에 들어가지 못한다. 요즘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구글에서도 정밀한 위성사진을 공개할 정도로 위성사진 분야가 발전했다. 미국은 군사용 첩보위성으로도 적 지역을 촬영하므로 한국보다 월등히 많은 정보를 확보한다.
군사용 첩보위성은 지구 궤도를 회전하며 적지를 촬영한다. 천문관측 기술이 발달했다면 적국은 이 위성의 회전 주기를 알아내 위성이 접근해올 땐 주요 시설을 은폐할 수 있다. 이러한 방어를 뚫기 위해 미국은 불시에 수상한 곳으로 U-2를 투입해 정밀 촬영을 한다.
사진 판독을 통해 확인된 정보는 작전부대에 제공되는데, 작전부대는 이를 유사시 파괴해야 할 표적으로 등록한다. 작전부대는 어느 무기로 이 표적을 파괴할 것인가도 결정한다. 이렇게 되면 유사시 작전부대는 동일 표적을 중복 사격하지 않고, 한 개 표적은 한 번 사격으로 날리는 초정밀 공격을 할 수 있다.


데이터 링크 시스템

 

미국군은 신호정찰기, 영상정찰기, 그리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유기적으로 엮어놓았다. A-데이 작전이 끝나고 육군과 해병대가 움직이는 G-데이 작전이 시작되면 적 지상군과 공군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동한다. 이때부터 아군이 찾아야 할 것은 고정 표적이 아니라 이동하는 적 지상군이다.
적 지상군도 바보가 아니므로 탐지가 어려운 야간에 기동한다. 그러나 각 부대를 통제해야 하므로 무선을 쏠 수밖에 없는데 그 좌표를 야간 정찰에 나선 신호정찰기가 포착해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통해 영상정찰기에 알려준다. 그 순간 영상정찰기가 좌표 점을 촬영해 이동 중인 적군의 규모 등을 확인하다.
그리고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통해 경보기에 알려주면 경보기 또한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통해 초계비행 중인 전투기나 육군의 ATACMS, 해군의 토마호크 미사일 부대에 통보해 바로 공격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발견과 동시에 격파한다는 ‘Sensor-to-Shooter’ 개념이다.
미 공군은 L-16이라고 하는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깔아놓았고 해군은 L-12를, 육군은 GCCS 시스템을 설치했다. 이 시스템은 호환성이 있어, 미국 육·해·공군의 모든 작전부대는 타군이 발견해준 표적도 날려버릴 수 있다.
미국군은 이 시스템을 군사용 통신위성에도 연결해놓았으므로, 전세계를 무대로 ‘Sensor-to-Shooter’ 개념의 작전을 펼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동에서 발견한 표적에 대한 공격 여부를 워싱턴DC에서 판단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통신망은 막대한 정보 유통을 전제로 하므로 대형 컴퓨터를 필요로 한다. 컴퓨터는 새로 수집한 첩보를 과거에 축적해놓은 첩보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판단한다. 아군 지휘부는 이 통신망과 컴퓨터를 통해 적진을 감시·정찰하는 정찰기와 경보기 전투기를 통제하고 지휘한다.
이로써 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s), 컴퓨터(Computers)가 정보(Intelligence), 감시(Surveillance), 정찰(Reconnaissance)과 한몸이 돼 움직이는 체제가 구축되는데, 각각의 머리글자를 따서 C4ISR 체제라고 한다. 이 체제 때문에 정보=작전이 된다.
과거 한국군은 C4ISR를 ‘지휘·통제·통신… 정찰’로 전부 풀어서 번역했으나, 최근에는 ‘합동전술핵심체계’로 옮긴다. 합동전술핵심체계란 말 속에 정보=작전 개념을 집어넣은 것이다. C4ISR은 건물을 짓듯이 종합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그러나 건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추상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라, ‘합동전술핵심체계 종합 아키텍처(architecture, 건축)’ 또는 ‘합동전술핵심체계 종합구조’로 표현한다.
합동전술핵심체계 구축은 군정권을 갖고 있는 각군 본부가 해야 할 핵심 사업이 되고 있다. 이 사업은 정보화사업으로 통칭되는데, 정보화사업은 인사와 군수·전력 증강 같은 전통적인 군정 업무를 제치고 각군 본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업무가 되고 있다.
이처럼 정보 분야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군의 인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백두와 금강은 한국군이 갖고 있는 최고의 정보 자산인데, 백두·금강이 형편없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은 적진 침투가 가능한 U-2 정찰기 자체는 물론이고 그 제작 기술을 어떤 동맹국에도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중견 강국도 백두·금강과 유사한 정찰기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이 노력해야 할 분야는 백두와 금강 그리고 향후 도입할 경보기 사이에 데이터 링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해군과 육군이 구축하는 데이터 링크는 물론이고 미군 시스템과도 연결해놓아야 ‘정보=작전’ 체제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한국군에 이를 추진할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 777부대와 정보사 등 한국군 정보부대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전문가는 많아도 데이터 링크로 엮는 분야의 전문가는 부족하다고 한다. 현재 한국군은 백두·금강정찰기를 각 4대씩 보유하고 있다. 이 정찰기는 6시간씩 비행할 수 있으므로 이론상 24시간 두 정찰기를 활용할 수 있다(4x6=24). 그러나 이는 허구다. 비행시간에는 정보 수집을 못하는 이착륙 시간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빼면 실제 비행시간은 5시간 정도로 줄어든다.
조종사를 양성하기 위해 정찰기를 훈련기로 빼내는 경우가 있고, 정비를 위해 비행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다. 한 대로는 한반도 전역을 정찰할 수 없어 두 대를 띄울 때도 있다. 따라서 한반도 상공에는 백두와 금강이 떠 있지 않은 때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최소 각 8대는 있어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부대 통합운영 필요

 

777부대와 정보사는 백두와 금강정찰기에 탑재하는 장비를 운용하고, 공군은 항공기를 책임진다. 이렇게 3개 부대가 나눠맡다 보니 가끔 파열음이 일어난다. 지난해 금강정찰기 한 대가 착륙 중 랜딩기어가 부러지며 동체 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렇게 되면 공군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사고원인을 알 때까지 동일 항공기에 대해서는 이륙을 금지하는 ‘그라운드’ 명령을 내린다.
그라운드 기간이 길어지면 777과 정보사는 마음이 급해진다. 그러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공군은 섣불리 이륙을 허가할 수 없어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제한돼 있는 한국군의 정보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려면 세 부대를 통합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일심동체가 되지 않는 물리적 혼합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작전부대는 유사시에 활약하지만 정보부대는 전·평시를 막론하고 활동한다. 또 정보=작전이므로 정보자산 확충은 곧바로 작전 능력 증강으로 이어진다. 한국군은 현재 69만인 병력을 2020년까지 50만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고 그와 동시에 전시 작통권 환수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때 정보력을 증강하지 않는다면 한국군은 무장해제 단계로 접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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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봉책의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몰락뿐이다 | 사회진보연대

미봉책의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몰락뿐이다
- 강승규 비리사태와 민주노총 집행부의 안이한 사태인식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되었다. 민주노총의 핵심 임원인 수석부위원장이 파렴치하게도 사용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하여 구속된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조합원들과 사회운동 진영은 이번 비리 사건을 근본적이고 철저한 혁신의 계기로 삼고 민주노총이 환골탈태(換骨奪胎) 할 수 있도록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민주노총 혁신과 대중투쟁을 책임질 비대위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러한 요구를 외면하고 중집, 상집 회의를 통해 결국 현행체제 유지 - 조기선거로 입장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여 1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어쩌면 비리사건 그 자체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하반기 투쟁‘을 위해서 현행체제를 유지하고 내년에 조기 선거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민주노총의 집단적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안이한 상황인식, 종파적인 태도가 결국 민주노조 운동 전반을 몰락시킬 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출발점을 확인하자

87년 이후 폭발한 남한 사회의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는 ‘민주노조운동‘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적, 자주적이며 진정으로 조합원 대중에 기반하는 노동조합, 바로 ‘민주‘노조를 세워내고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때까지 한국노총 소속의 어용노조 집행부들은 일상적으로 사용자가 제공하는 뇌물을 받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해왔다. 이들은 조합원 대중의 요구가 폭발하지 않도록 자본측의 관리를 대행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기 때문에, 87년 노동자 대투쟁 과정에서 현장의 1차적인 과제는 어용노조를 척결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은 단위 노조를 넘어 전국 차원에서도 한국노총의 어용성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총연맹 조직을 건설하자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시도는 90년 전노협 건설을 거쳐, 비록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기는 했지만 95년 민주노총의 건설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민주성은 총연맹 조직의 건설을 거치면서 오히려 지속적으로 쇠퇴해왔다. 많은 단위노조가 조합원 대중의 자발적 투쟁을 끌어내고 결집하는 조직이 아니라 조합원을 대리해 사측과 협상하고 이 결과에 따라 현장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해갔다. 총연맹은 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거쳐 98년 정리해고제를 합의한 노사정위원회, 2005년 노사정대표자회담에 이르기까지 정부, 자본과 대등한 협상주체로 인정받는 데 몰두해왔다.
자본은 노조를 다시 조합원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활용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지도부에 대한 물질적 회유도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와 같은 사건이 은밀하게 확산되었고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결국, 노조 집행부의 비리는 타락한 개인의 품성의 문제가 아니다. 금품비리는 자본이 노동자 조직을 관리하고 이를 위해 노조운동의 지도자를 회유, 포섭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노조운동이 이미 조합원 대중의 자본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운동‘조직이 아니라 자본의 현장관리를 대행하는 ‘관리‘기구로 변질되면서 현실이 되고 구조화된다.
따라서 이번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이 자주성, 민주성이라는 기본적인 정신을 상실하고 다시 대중의 불만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질되어 온 역사가 총연맹 핵심간부의 비리라는 형태로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현재의 민주노총 집행부가 노사정 협상에 몰두해온 과정, 민주노총이 조합원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기보다는 노사정 협상 틀에서 관리하려고 했던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도부의 사퇴는 민주노총 혁신,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일진전을 위한 출발점이다

단위노조에서도 노조 집행부의 비리 사건은 간부 한사람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해당 집행부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 관행이다. 노조의 활동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력이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리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책임지는 것은 민주노조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민주노조의 총연합조직이라는 민주노총에서 이러한 상식이 깨지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 현 지도부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을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노조 지도자의 비리는 노조운동 자체의 변질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해당 집행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을 물론이고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평가하고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노력에 백의종군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과 그 지명자인 위원장만이 ‘무한책임‘을 진다는 식의 민조노총 기자회견 발표는 결국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현 지도부는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내세운다. 그러나 지도부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상황, 이미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하반기 투쟁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비정규직 투쟁 등 절박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팔아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11일 기자회견 이후 주요 언론들은 현 체제유지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하반기 투쟁을 사전에 억누르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민주노총 나아가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도부의 얼굴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활로를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며 “선명성과 투쟁성이라는 낡은 구호를“ “국가경제에 기여할 방안을 생각하는 성숙한 자세“로 대체하라고 주장한다. 한겨레신문도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을 인용하여 “지도부 사퇴는 내부 혁신을 뒤로 한 채, 선거 정치 등 조직 안팎의 정치적 긴장만을 전면화시킬 우려가 있었으나 일단 현 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대정부 투쟁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노사정 협상에 복귀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론의 주장에서도 확인되듯이 지금 지배세력은 내부로부터의 혁신의 요구를 강경파의 정파적 이해관계의 산물로만 매도하고 민주노총의 위기가 과도한 정치투쟁에서 기인한 것으로 호도하며, 이번 사태를 이용하여 하반기 투쟁은 물론 중장기적인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의 예봉을 꺾으려 들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 가는 것으로는 이러한 정세를 돌파할 수 없다. 오히려 내부에서의 불신과 외부에서의 공격에 휘말려 하반기 투쟁 자체가 좌초될 위험이 크다. 더구나 지금의 사태를 명확히 규정하고 철저한 혁신을 시작하는 것과 하반기 투쟁을 제대로 하는 것은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니다. 현안 대중투쟁을 조합하여 적당히 대중을 동원하고 정부와 협상을 하겠다는 식의 시기집중투쟁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앞서 말한 민주노조운동의 변질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동의 철저한 혁신을 제기하고 결행하는 한편 아래로부터 비정규직 투쟁을 강화하고 노동자운동 전체의 연대투쟁으로 확장해 나가는 길만이 현 정세를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더구나 “지금의 결정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각 정파간의 경쟁을 부추겨 투쟁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현 지도부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수호 지도부의 관심이 혁신이나 투쟁이 아니라 선거 당선에만 쏠려 있다는 것, 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하반기 투쟁‘이 선거 승리의 발판을 다지기 위한 생색내기 투쟁에 불과하다는 것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현행 지도부의 이번 결정은 ‘하반기 투쟁‘을 핑계로 진정한 책임을 회피하고 조기 선거를 다시 준비하기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정략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조합원과 활동가들의 아래로부터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의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이 자주성과 민주성, 동시에 투쟁성과 연대성을 상실하는 과정이 하나의 사건으로 표출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도 역으로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기풍을 복원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책임회피와 이후 선거를 위한 정략적인 판단으로 일관하는 한 비리의 근본적인 원인을 근절하고 민주노조 운동의 기풍을 다시 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번 사건은 조합원, 노동자 대중들에게 환멸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결과는 ‘어느 놈이나 똑같다‘는 광범위한 회의, 무관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직전체를 바꾸어나가는 것은 지속적으로 쇠퇴한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집행부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이 나서서 책임지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 현장으로부터 문제제기를 통해서 민주노조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보여줄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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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 끝난 NPT 검토회의... 무용론 확산되나 | 오마이, 정욱식

실패로 끝난 NPT 검토회의... 무용론 확산되나
[심층분석] 미국, 일방주의 강화의 구실로
  정욱식(cnpk) 기자   

5월 2일부터 27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7차 검토회의가 핵보유국과 비핵국가의 첨예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로써 35년째를 맞이한 NPT 체제는 중대한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의 핵 선제공격 채택 및 신형 핵무기 개발, 북한의 NPT 탈퇴 및 핵보유 선언,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 등 전례없는 핵위기 속에서 열린 이번 NPT 회의는 그 만큼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회의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자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회의 집단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를 놓쳤다”고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9월 유엔 세계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회의의 의장을 맡았던 브라질 외무장관 출신 세르지오 퀘이로즈 듀라테는 참가국의 이견을 모으면 “몇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짤막한 의장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이란의 상호 비방전

이번 회의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핵보유국과 이란 및 이집트로 상징되는 비핵국가 사이에 현격한 이견이 드러난 자리였다.

미국은 이번 NPT 회의를 북한과 이란을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NPT를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비난 결의안을 추진했으나, 중국 및 비핵국가들의 동의를 받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

또한 미국은 핵보유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아예 농축 및 재처리 자체를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이용해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을 겨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란은 자신의 핵 프로그램은 전력 생산용이라고 주장하면서, NPT 제4조에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만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이용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맞섰다.

이와 관련해 주 유엔 이란 대사인 자바드 자리프는 세계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미국 등 핵보유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며,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고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서명을 거부하면서 비핵국가에 대한 핵 선제공격 전략을 채택했으며, 이스라엘과 핵이용 협정을 맺은 것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을 강력 성토했다.

또한 60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악몽을 재론하면서 “이러한 역사에 비춰볼 때, 핵무기는 가장 위험한 사람들의 손에 있다”고 말해, 미국을 궁지에 몰기도 했다.

이집트 역시 이전 NPT 검토회의에서 ‘중동 비핵지대’를 촉구하는 특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을 근거로 이스라엘의 핵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이스라엘은 NPT 미가입국으로서, 미국의 묵인 하에 수백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문제가 의제로 올라오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미국, 일방주의 강화의 구실로 삼나?

이처럼 핵보유국과 비핵국가 사이의 이견은 이번 NPT 실패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양측의 이견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1995년 5차 검토회의에서는 핵보유국들이 비핵국가에 대한 핵무기 사용 및 위협을 하지 않고 핵무기 폐기를 약속함으로써 NPT의 무기한 연장을 이끌어냈다. 2000년 6차 회의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거듭 확인되었고, 핵 페기를 위한 13개 이행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7차 검토회의는 회의 개막 이전부터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었다. 2003년 1월에 북한이 NPT를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이란의 핵 개발 의혹도 불거지면서 ‘비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는 이번 회의의 실패를 가져온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 합의된 핵 폐기 약속 및 이를 위한 13개 이행 조치의 재확인을 거부했고, 이스라엘 핵문제가 이번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특히 부시 행정부는 NPT 회의 기간에 미국 의회에 ‘벙커 버스터’용 소형 핵탄두 개발 예산의 승인을 요청해 회의 참가국들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한 비핵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장받은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미국이 아예 불허하는 방안을 관철시키려고 한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중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에 대한 국제적 통제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이는 합리적인 통제 및 고강도의 검증 체제 마련을 통해 접근했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아예 불허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함에 따라 합리적인 토론조차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IAEA가 제안한 ‘5년간 핵분열 물질 생산 중단’에 대해서도 자국의 핵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자신의 핵 패권주의는 강화하면서 다른 나라의 핵 이용에는 제한을 가하려고 했던 일방주의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대목이다.

우려되는 점은 이번 NPT에서 최소한의 합의 도출에도 실패함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유로 NPT의 무용론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비핵국가들은 미국 등 핵보유국의 핵 군축 및 폐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이전 회의에서는 핵보유국들이 ‘립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했지만, 이번 회의에서는 이조차도 거부함으로써 비핵국가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반면 미국은 NPT가 핵확산을 방지하는데 그 한계를 드러냈다며, 합의 도출 실패를 일방주의 강화의 구실로 삼고자 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강화하는 한편, 핵공급그룹(NSG), G-8 등 강대국 중심의 체제를 통해 핵확산 방지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국제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핵확산 및 핵전쟁의 위험도 커지게 된다. 냉전의 해체와 함께 핵전쟁의 공포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인류 사회 앞에 경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5-05-30 10:30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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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2005년 NPT 검토회의 | 정욱식

외면받는 미국의 'NPT 강화' 외침


정욱식/2005년 5월 2일

  
제7차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가 미국 시간으로 5월 2일부터 27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1969년 유엔 결의를 거쳐 1970년에 발효된 NPT는 5년마다 검토회의를 하게 되어 있고, 이번으로 7번째를 맞는다.

흔히 NPT는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1995년과 2000년 검토회의에서는 핵 보유국들이 '핵무기 폐기'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NPT는 이번 검토회의를 계기로 중대한 기로에 설 전망이다. NPT 회원국이었던 북한은 2003년 1월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있고, 이란도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내세워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비핵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방지한다는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의 억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비핵국가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 것 역시 NPT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특히 미국은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사실상 철회했고, 북한 등 적성국가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지표관통형 핵무기' 개발 방침을 꺾지 않고 있어 비핵국가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아울러 NPT 회원국이 아니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을 어떻게 다룰지도 주요 관심사이다. 이들 국가에게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하고 NPT 가입을 유도하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NPT 체제 밖에 계속 남겨두는 것 역시 NPT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NPT 체제가 중대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각국 정부, 그리고 반핵평화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NPT 체제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과 방향, 그리고 목적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핵보유국들은 주로 '수평적 확산'의 방지에, 비핵국가들은 핵보유국의 소극적 안전보장 및 핵 군축과 폐기 약속 이행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통제 강화

NPT는 핵보유국의 '한시적이고 합법적인 핵보유 인정'과 비핵국가의 '평화적 핵 이용 보장'을 맞바꾼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핵에너지가 군사적 목적과 평화적 목적을 구분하기가 힘든 '이중용도'(dual-use)의 특성을 갖고 있고, 북한과 이란 등 일부 국가들이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 기술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비핵국가들의 평화적 핵 이용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통제할 것인가"는 이번 NPT 검토회의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란 등 비핵국가들은 NPT 제4조에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만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이용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등 서방국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평화적 핵 이용이 군사적 용도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무기 제조로 이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통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IAEA는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다국적 통제'에 둘 것과 모든 나라가 향후 5년 동안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핵보유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아예 농축 및 재처리 자체를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IAEA가 제안한 5년간 핵분열 물질 생산 중단에 대해서도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자국의 핵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미국, 북한·이란 비난 결의 추진

또한 미국은 NPT 위반국들이나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국가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안까지 제안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한 이란과, NPT를 탈퇴해 핵무기 개발에 나선 북한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최종선언문 채택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부 비핵국가의 반발로 최종선언문 채택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특별결의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방침은 북한과 이란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된다. 최종선언문이든, 특별결의든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을 NPT 회의에서 담아내고 북한과 이란에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는 명분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IAEA 역시 NPT 가입국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조건으로 핵 기술을 전수받은 뒤 NPT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NPT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국가들에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참고로 NPT의 10조 1항은 자국의 최고 이익이 위험에 처할 경우 3개월 전에 통보하고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2003년 1월, 미국의 적대정책과 NPT의 불평등성을 강력 비난하면서 이 조약에서 탈퇴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IAEA는 북한이 이 조약에서 탈퇴하면서 수탁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에 정식으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북한의 탈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IAEA는 핵확산을 방지하고 NPT를 위반하거나 탈퇴할 경우 제재 조치를 강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NPT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NPT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5대 핵보유국과 IAEA 이사회 회원국 전부를 포함한 NPT 회원국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것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비핵국가들은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의무 사항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핵국가들의 핵 이용을 제한하는데 골몰하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NPT 회의는 '누가 NPT를 위협하고 있는가'를 성토하는 자리로 전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속화되는 핵군비경쟁, NPT의 미래는?


정욱식/2005년 5월 3일


흔히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일컬어진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한 반면에,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NPT 6조에서는 전면적인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 및 조약 체결을 명시하고 있고, 1995년에 NPT의 무기한 연장을 합의할 때도 핵보유국의 핵 폐기는 의무 사항으로 명시되었다. 또한 2000년 회의에서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13개의 핵 폐기 실행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NPT의 불평등성은 내용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의무 사항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데 NPT를 활용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핵국가들과 NGO들은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도 미국 등 핵보유국의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의 불이행을 비판하면서 약속 이행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NPT의 근간은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한다는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함께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disarmament)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는 논리이다.

특히 반미성향의 국가들과 보편성에 입각해 핵문제를 다뤄온 '새로운 의제 연합'(New Agenda Coalition) 회원국들, 그리고 전세계의 반핵평화 NGO들은 NPT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최대 주범은 미국이라며 '미핵(美核)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방침이다.

이들이 미국 핵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이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2000년 검토회의에서 합의된 13개항의 실행 조치 이행 수준을 확인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NPT 무력화시키는 미국

핵무기 폐기를 위한 13개의 합의 사항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로는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서명, 핵실험 중단, 핵 폐기 절차 및 기구 구성을 위한 협상 개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보존 등이 있다.

그러나 1999년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가 서명한 CTBT를 부결시킨 바 있고, 부시 행정부는 이 조약을 의회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서 필요하다면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2002년 12월 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더구나 미국은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의 토대를 제공했던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사실상 철회한 상황이고, 북한 등 적대 국가의 지하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상당수 비핵국가들과 NGO들은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 이러한 약속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 형태로 체결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1995년 NPT 검토회의를 앞두고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한 소극적 안전보장은 NPT의 무기한 연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며, 이번 회의에서는 반드시 법제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핵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추구해 온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1978년 소극적 안전보장을 천명한 바 있고, 유엔 안보리는 1995년 소극적 안전보장에 대한 결의안(985)을 채택한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 역시 이러한 약속이 유효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1년 12월에 작성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북한,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선제핵공격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소극적 안전보장을 사실상 철회한 상황이다.

미국, 새로운 핵무기 개발도

미국의 '벙커 버스터'용 핵무기 개발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적대 국가의 지하시설 공격과 관련해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하기 힘들고 기존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지표 관통형 핵무기 개발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는 NPT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뒷받침하듯 미국은 지난 2003년 11월 소형핵무기의 연구개발을 금지해 온 '스프랫 페이스 조항'을 폐지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 본격 개발한다는 목표 하에 '강력한 지표 관통형 핵무기'(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의 연구비로 4백만 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NPT가 규정한 핵 군축 및 폐기 의무에 성실히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핵 선제공격 전략을 명시화하고 북한 등 적대국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힘에 따라 국제 사회는 북한, 이란과 함께 미국을 NPT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핵군비경쟁, NPT의 미래는?

미국 이외의 핵보유국의 핵전력 증강 및 핵정책 변화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러시아는 미국의 MD 및 핵 선제공격 전략에 대응해 기존의 핵무기를 개량하는 한편, 핵 선제공격 전략 채택의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비핵무기 경쟁에서 미국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군사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소 핵억제이론'을 견지했던 중국의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MD 등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 역시 핵미사일의 수를 늘리는 한편, 이동식 미사일과 다탄두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NPT가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 및 '수직적 확산'(vertical proliferation)에 동시에 직면하면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확산이란, 비핵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섬에 따라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수직적 확산은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핵전력의 질적·양적 증강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핵보유국과 비핵국가의 입장 차이가 커지면서 이번 NPT 회의는 건설적인 합의에 도달하기는커녕, 서로를 맹비난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는 구실을 찾는 회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NPT에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일방주의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구성된 핵공급그룹(NSG)을 통해 모든 핵기술의 수출 중단을 추진하는 한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맞서 이란은 미국의 방해로 유럽연합과의 핵 협상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고, 작년 말에 중단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미 NPT에서 탈퇴한 북한 역시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미국와의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핵 억제력 강화를 공언하고 있다.

NPT체제가 출범한 지 35년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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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핵이용' 논란과 경수로

"경수로 폐기 고집하다 흑연감속로 들고 나올라"
[심층분석] '평화적 핵이용' 논란과 경수로

정욱식/2005년 8월 26일

3주간의 휴회를 거쳐 8월말이나 9월초에 4차 6자회담이 재개될 예정인 가운데, 1단계 회담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평화적 핵이용' 문제가 어떻게 논의될지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단 2단계 4차 회담에서 평화적 핵이용 문제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면 공동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평화적 핵이용 문제 때문에 파국을 맞는다는 것은 북한과 미국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는 점에서 1단계 회담 때보다는 유연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이 NPT에 복귀하면, 회원국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수준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미국은 평화적 핵이용이 당분간 불허된 것으로, 북한은 이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잠정 타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흐름을 모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두 가지 문제로 좁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평화적 핵이용 권리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복귀 사이의 ‘선후(先後)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 앞서 언급한 사항을 조건으로 현재 시점에서는 그 권리를 인정하지만, 권리의 행사는 NPT 복귀 이후로 상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NPT 복귀 이전에도 권리를 갖고 있으며, 핵문제가 해결되면 NPT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평화적 핵이용 불허’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북한이 NPT에 복귀한 이후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신포 경수로'
  
또 하나의 문제는 평화적 핵이용의 범위와 대상이다. 특히 미국 역시 북한이 의료와 농업용 원자력 이용은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만큼, 발전용인 경수로 사업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수로 사업과 관련해 한국은 중대제안을 통해 200만kw의 전력 제공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신포 경수로는 종료되어야 한다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자체적으로나,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아 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미국은 경수로 사업은 6자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며, 이 문제가 회담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힐 차관보는 신포 경수로의 종료는 한국도 동의했고, 북한이 발전용 원자로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지원해줘야 하는데,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포 경수로에 대해 한미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도 발견되고 있다. 미국은 신포 경수로 사업이 영구 종료되어야 한다는 반면에, 한국은 먼 미래의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월 24일 “장래에 북한이 평화적 핵 이용권한을 향유하게 되면 신포는 이미 (경수로) 터도 닦아 놓고 한반도내에서 가장 단단한 암반지역이기 때문에 남북이 공동으로 사업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경수로 사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것이 곧 신포에 건설하다가 중단된 경수로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김계관 부상은 8월 1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경수로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직접 참여 등 “엄격한 감시 하에 운영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의 주선 하에” 지어주기로 한 신포 경수로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흑연감속로'로 반격에 나설 수도  

정리하자면, 경수로에 대해 미국은 '완전 폐기'를, 북한은 '공사 재개'를, 남한은 먼 미래에 가능성을 열어둔 '종료'를 선호하고 있다. 경수로 문제를 논의하면 할수록 서로의 차이만 부각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문제가 2단계 회담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다면, 공동성명 채택 자체에 실패할 수도 있다.

특히 미국이 경수로 사업의 완전 폐기를 관철시키려고 할 경우, 북한은 이에 맞서 흑연감속로를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있다. 흑연감속로는 NPT와 한반도 비핵화선언에서는 금지 대상이 아니고, 제네바 합의에서는 동결 및 폐기 대상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경수로 사업 폐기 근거로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제시하고 있는 만큼, 북한도 마찬가지 논리로 흑연감속로를 폐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흑연감속로는 경수로에 비해 발전 효율은 떨어지는 반면에,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가 훨씬 용이한 원자로이다.

북한은 5MWe 1980년대 후반 흑연감속로를 완공해 가동하다가 제네바 합의이후 동결에 들어갔다. 그리고 2차 핵문제가 발생한 직후 재가동에 들어간 상황이다. 또한 영변과 태천에 건설하다가 중단한 50MWe 및 200MWe 원자로도 공사 재개에 들어갔거나,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경수로 폐기 압박을 받는 북한이 흑연감속로 카드를 꺼내든다면, 북핵 협상은 총체적인 난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경수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미국이 핵무기 제조가 훨씬 용이한 흑연감속로를 용인할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경수로를 보장해줄 수 없다면 흑연감속로라도 갖겠다는 입장을 내세울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경수로 사업은 제네바 합의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 파기를 근거로 경수로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북한은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하고 동결·폐기하기로 한 흑연감속로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 중단 '유예'가 가장 합리적

따라서 경수로 문제로 협상이 총체적인 난관에 직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의 '잠정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즉,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 폐기'와 북한이 요구하는 '공사 재개'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공사 중단 상태를 2년간 연장하고, 공사 재개 여부는 2년 후에 다시 논의한다'는 타협안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면 다다를 수 없다"(過猶不及)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과 미국 모두 일방적이고 무리한 요구를 접고 타협 가능한 방안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타협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주체는 남한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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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인정하라 | 정욱식

평화적 핵이용 불허? 부시를 반박한다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인정하라

정욱식/2005년 8월 10일

4차 6자회담이 3주간의 휴회에 들어간 가운데, 평화적 핵이용을 둘러싼 북한과 미국 사이의 '장외' 신경전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미국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면서 평화적 핵이용은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단계 회담을 앞두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근거는 10일(미국시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의 워싱턴 기자회견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힐은 6자회담의 초점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해체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복귀, 경제 및 에너지 문제에 맞춰져 있다"며,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첫째,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가 붕괴되자 며칠만에 NPT에서 탈퇴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쫓아내고, 과학적 연구목적으로 전력 생산용이라던 영변 핵발전소를 몇 개월만에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에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전반적인 합의는 북한이 핵에너지를 개발할 필요가 없도록 인센티브를 주도록 설계돼 있으며, 특히 한국은 아주 빠른 시간 내에 북한 내 전력수요 상당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양의 전기공급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북핵이 폐기되면 한국 주도의 에너지 지원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평화적 핵이용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대제안'이 미국에게 역이용 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이란의 경우에는 NPT에서 탈퇴하지 않았고, IAEA 사찰도 수용한 반면에 북한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핵 연료봉의 외부 제공 및 폐연료봉의 외부 이전을 전제로 이란의 평화적 핵이용은 인정할 수 있는 반면에, 북한에게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논리이다.

넷째, 북한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부시 대통령이 밝힌 것으로써, "북한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란과 북한은 다르며, 다른 만큼 다르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논리이다.

끝으로, 경수로 역시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1년 1월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제기된 문제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근거로 출범 직후부터 경수로 사업 '불가'를 고수해왔고, 이는 제네바 합의 체제 붕괴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NPT 탈퇴의 원인 제공자는 미국

위와 같은 부시 행정부의 주장은 제네바 합의 체제 붕괴 등 상황 악화와 관련해 자신의 책임을 도외시한 일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바 합의 자체에 큰 불만을 갖고 있었던 부시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 합의의 무력화를 시도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 이뤄진 북한과의 협상을 중단했고,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으며, 경수로 사업의 폐기를 시사했었다. 또한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포함시켰고,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SA)도 철회했다. 이 모든 일들은 2차 북핵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일어난 것들이다. 참고로 부시 행정부는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며 중유를 제공했었다.

부시 행정부가 이처럼 제네바 합의 체제의 근간을 허물면서, 북한이 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NPT에서 탈퇴해 핵무기 제조에 나선 '결과'만을 문제삼는 것은 여전히 일방주의적 속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중대한 '원인' 제공자는 바로 부시 행정부라는 것이다.

더구나 NPT에서는 자국의 최고 이익이 위협받을 경우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이 자신의 생존권과 자주권을 위협하고 있고, NPT가 미국의 핵패권주의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2003년 1월 6일 이 조약에서 탈퇴했다.

'미래의 관점'에서 본 북한의 에너지 수요

부시 행정부는 또한 북핵이 폐기되면 남한이 200만kw의 전력을 직접 송전할 것이기 때문에, 핵에너지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한의 직접 송전 방식이 안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와 북한의 대남 종속성의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이 정도로 북한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전력을 비롯한 경제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된 북한의 현재 전력 수요는 470만 kw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은 북한이 자체 생산하고 있는 만큼, 나머지는 남한 등 외부에서 지원하면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관점'이다. 북한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약 2천만kw의 전력이 필요하다. 또한 경제회생을 위해서도 470만kw로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석유 등 마땅한 대체 에너지원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약 400만톤에 달하는 우라늄을 이용해 에너지 생산율과 자급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동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수로가 핵무기 제조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해결할 수 있다. 경수로에서 나오는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지만, 이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북한의 핵 폐기 대상에는 재처리 시설도 포함되고, 경수로 활동은 철저하게 국제 감시와 통제 하에서만 허용하면 된다. 경수로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소지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의 보유 의혹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북한은 의혹을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고, 이번 1단계 4차회담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거듭 확인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부시 행정부 역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란 역시 지난 13년 동안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우라늄 활동을 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란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핵무기 제조용으로 보기 어렵다"는 IAEA의 사찰 결과까지 무시하면서 "이란이 거짓말을 했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그러다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부정할 때에는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관심의 초점은 8월말에 회담이 재개되면, 북미간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에 모아진다. 북한은 핵 폐기 입장을, 미국은 관계정상화 추진 입장을 밝힌 만큼, 평화적 핵이용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면, 다음 회담에서 원칙과 최종 목표를 담은 공동성명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할 때,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포기할 가능성도, 미국이 이를 인정할 가능성도 낮다. 2단계 4차회담에서도 공동성명 도출에 실패할 경우, 북미 양측, 특히 미국 강경파들 사이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강하게 제기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입장 차이는 어떻게 해서든지 좁혀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문제가 어려우면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기본이란,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이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는데 전적으로 협력하고, 미국은 이를 조건으로 북한의 핵이용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기본 정신이자 원칙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비핵화 선언과 NPT를 결합해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비핵화 선언은 핵무기 제조로 전용될 수 있는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의 보유를 금지하면서 "핵 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에 NPT에서는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평화적 핵이용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과 관련해 이 둘을 결합한다는 것은, NPT에 나와 있는 것처럼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에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라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은 불허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조치로는 북한이 NPT에 복귀하고 강력한 검증체제를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타협안만이 6자회담의 좌초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인 요구를 철회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면, 평화적 핵이용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우려되는 점은 부시 행정부가 '평화적 핵이용 불허'라는 일방주의적 원칙을 고수하다가, 정작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에게 합리적인 이성이 요구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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