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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2005년 NPT 검토회의 | 정욱식

외면받는 미국의 'NPT 강화' 외침


정욱식/2005년 5월 2일

  
제7차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가 미국 시간으로 5월 2일부터 27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다. 1969년 유엔 결의를 거쳐 1970년에 발효된 NPT는 5년마다 검토회의를 하게 되어 있고, 이번으로 7번째를 맞는다.

흔히 NPT는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1995년과 2000년 검토회의에서는 핵 보유국들이 '핵무기 폐기'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NPT는 이번 검토회의를 계기로 중대한 기로에 설 전망이다. NPT 회원국이었던 북한은 2003년 1월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있고, 이란도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내세워 핵무기 개발이 가능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비핵국가의 핵무기 보유를 방지한다는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의 억제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비핵국가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치고 있는 것 역시 NPT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특히 미국은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사실상 철회했고, 북한 등 적성국가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지표관통형 핵무기' 개발 방침을 꺾지 않고 있어 비핵국가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아울러 NPT 회원국이 아니면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을 어떻게 다룰지도 주요 관심사이다. 이들 국가에게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하고 NPT 가입을 유도하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NPT 체제 밖에 계속 남겨두는 것 역시 NPT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NPT 체제가 중대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각국 정부, 그리고 반핵평화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NPT 체제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경과 방향, 그리고 목적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핵보유국들은 주로 '수평적 확산'의 방지에, 비핵국가들은 핵보유국의 소극적 안전보장 및 핵 군축과 폐기 약속 이행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통제 강화

NPT는 핵보유국의 '한시적이고 합법적인 핵보유 인정'과 비핵국가의 '평화적 핵 이용 보장'을 맞바꾼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핵에너지가 군사적 목적과 평화적 목적을 구분하기가 힘든 '이중용도'(dual-use)의 특성을 갖고 있고, 북한과 이란 등 일부 국가들이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 기술을 통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비핵국가들의 평화적 핵 이용을 어디까지 보장하고 통제할 것인가"는 이번 NPT 검토회의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란 등 비핵국가들은 NPT 제4조에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은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만큼,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이용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등 서방국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평화적 핵 이용이 군사적 용도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하게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무기 제조로 이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통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IAEA는 농축 및 재처리 시설을 '다국적 통제'에 둘 것과 모든 나라가 향후 5년 동안 농축 및 재처리 활동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핵보유국 등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아예 농축 및 재처리 자체를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IAEA가 제안한 5년간 핵분열 물질 생산 중단에 대해서도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은 자국의 핵 이용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미국, 북한·이란 비난 결의 추진

또한 미국은 NPT 위반국들이나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는 국가들에게 제재를 가하는 방안까지 제안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IAEA에 신고하지 않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한 이란과, NPT를 탈퇴해 핵무기 개발에 나선 북한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최종선언문 채택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미국은 일부 비핵국가의 반발로 최종선언문 채택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특별결의도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방침은 북한과 이란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된다. 최종선언문이든, 특별결의든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을 NPT 회의에서 담아내고 북한과 이란에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는 명분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IAEA 역시 NPT 가입국이 '핵의 평화적 이용'을 조건으로 핵 기술을 전수받은 뒤 NPT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NPT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조약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국가들에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참고로 NPT의 10조 1항은 자국의 최고 이익이 위험에 처할 경우 3개월 전에 통보하고 이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2003년 1월, 미국의 적대정책과 NPT의 불평등성을 강력 비난하면서 이 조약에서 탈퇴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IAEA는 북한이 이 조약에서 탈퇴하면서 수탁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에 정식으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북한의 탈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IAEA는 핵확산을 방지하고 NPT를 위반하거나 탈퇴할 경우 제재 조치를 강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NPT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NPT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5대 핵보유국과 IAEA 이사회 회원국 전부를 포함한 NPT 회원국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것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비핵국가들은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의무 사항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핵국가들의 핵 이용을 제한하는데 골몰하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NPT 회의는 '누가 NPT를 위협하고 있는가'를 성토하는 자리로 전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속화되는 핵군비경쟁, NPT의 미래는?


정욱식/2005년 5월 3일


흔히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으로 일컬어진다.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의 핵무기 보유는 인정한 반면에, 다른 회원국들의 핵무기 개발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NPT 6조에서는 전면적인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상 및 조약 체결을 명시하고 있고, 1995년에 NPT의 무기한 연장을 합의할 때도 핵보유국의 핵 폐기는 의무 사항으로 명시되었다. 또한 2000년 회의에서는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13개의 핵 폐기 실행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NPT의 불평등성은 내용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의무 사항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데 NPT를 활용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핵국가들과 NGO들은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도 미국 등 핵보유국의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의 불이행을 비판하면서 약속 이행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NPT의 근간은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한다는 '비확산'(non-proliferation)과 함께 핵보유국의 '핵무기 폐기'(disarmament)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는 논리이다.

특히 반미성향의 국가들과 보편성에 입각해 핵문제를 다뤄온 '새로운 의제 연합'(New Agenda Coalition) 회원국들, 그리고 전세계의 반핵평화 NGO들은 NPT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최대 주범은 미국이라며 '미핵(美核) 문제'를 강력히 제기할 방침이다.

이들이 미국 핵문제를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이 핵 군축 및 폐기 약속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안보 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2000년 검토회의에서 합의된 13개항의 실행 조치 이행 수준을 확인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NPT 무력화시키는 미국

핵무기 폐기를 위한 13개의 합의 사항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로는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서명, 핵실험 중단, 핵 폐기 절차 및 기구 구성을 위한 협상 개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 보존 등이 있다.

그러나 1999년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가 서명한 CTBT를 부결시킨 바 있고, 부시 행정부는 이 조약을 의회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면서 필요하다면 핵실험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위해 2002년 12월 ABM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더구나 미국은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의 토대를 제공했던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NSA)을 사실상 철회한 상황이고, 북한 등 적대 국가의 지하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핵보유국이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상당수 비핵국가들과 NGO들은 이번 NPT 검토회의에서 이러한 약속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조약 형태로 체결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1995년 NPT 검토회의를 앞두고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한 소극적 안전보장은 NPT의 무기한 연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며, 이번 회의에서는 반드시 법제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핵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추구해 온 미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1978년 소극적 안전보장을 천명한 바 있고, 유엔 안보리는 1995년 소극적 안전보장에 대한 결의안(985)을 채택한 바 있다. 클린턴 행정부 역시 이러한 약속이 유효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1년 12월에 작성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북한,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비핵국가에 대해서도 선제핵공격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소극적 안전보장을 사실상 철회한 상황이다.

미국, 새로운 핵무기 개발도

미국의 '벙커 버스터'용 핵무기 개발 문제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적대 국가의 지하시설 공격과 관련해 재래식 무기로는 파괴하기 힘들고 기존의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부수적인 피해'(collateral damage)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지표 관통형 핵무기 개발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는 NPT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뒷받침하듯 미국은 지난 2003년 11월 소형핵무기의 연구개발을 금지해 온 '스프랫 페이스 조항'을 폐지했다. 그리고 2006년부터 본격 개발한다는 목표 하에 '강력한 지표 관통형 핵무기'(Robust Nuclear Earth Penetrator)의 연구비로 4백만 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NPT가 규정한 핵 군축 및 폐기 의무에 성실히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핵 선제공격 전략을 명시화하고 북한 등 적대국의 지하시설을 겨냥한 새로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힘에 따라 국제 사회는 북한, 이란과 함께 미국을 NPT 파괴의 주범으로 비난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핵군비경쟁, NPT의 미래는?

미국 이외의 핵보유국의 핵전력 증강 및 핵정책 변화도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러시아는 미국의 MD 및 핵 선제공격 전략에 대응해 기존의 핵무기를 개량하는 한편, 핵 선제공격 전략 채택의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비핵무기 경쟁에서 미국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군사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최소 핵억제이론'을 견지했던 중국의 움직임 역시 심상치 않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MD 등 군비증강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 역시 핵미사일의 수를 늘리는 한편, 이동식 미사일과 다탄두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NPT가 '수평적 확산'(horizontal proliferation) 및 '수직적 확산'(vertical proliferation)에 동시에 직면하면서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평적 확산이란, 비핵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섬에 따라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수직적 확산은 핵보유국들이 자신들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핵전력의 질적·양적 증강을 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핵보유국과 비핵국가의 입장 차이가 커지면서 이번 NPT 회의는 건설적인 합의에 도달하기는커녕, 서로를 맹비난하면서 각자의 길을 걷는 구실을 찾는 회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NPT에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일방주의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서방국가들 중심으로 구성된 핵공급그룹(NSG)을 통해 모든 핵기술의 수출 중단을 추진하는 한편,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맞서 이란은 미국의 방해로 유럽연합과의 핵 협상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보고, 작년 말에 중단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미 NPT에서 탈퇴한 북한 역시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미국와의 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핵 억제력 강화를 공언하고 있다.

NPT체제가 출범한 지 35년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서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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