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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에 형사와 면담을 나누고
그 때 이미 시일이 지체되어버렸으니
다시 편지가 오면
그 때에는 손대지 말고
뜯지도 말고
비닐에 밀봉해서 경찰서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작년 11월이 마지막 편지였고
안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나름 감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제가 회계를 보던 곳에서
공금을 빌려서 다 써버린 후에
갚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단지 그 단체에서만이 아니라
그 단체의 이름으로 신뢰를 얻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귀농한다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 다시 서울에 나타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귀농한 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을 반복해서
더이상 살 수 없는 처지에 처해 있다고 하더군요.
편지가 오기 시작하던 시기에
저는 그를 몇 번 만났습니다.
그는 제게 말하기를
"시골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서 미디어교사라도 하려고 한다"라고 말하며 부탁을 했고
저는 "전공자가 아니면 구하기가 힘들어서 나도 잘 못구한다"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어요.
결정적으로 다시 충돌을 하게 된 것은
사무실 제 자리에 짐을 쌓아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특성상
작업 때문에 숙식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는데
짐까지 옮겨놓는 걸 보고
저는 다시금 10년 전 일이 반복될 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 가져갔던 돈을 갚아라.
그리고 이 곳은 사무공간이다.
여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냐.
과거를 청산할 거면
밀린 빚부터 갚아라.
그리고 이런 식으로
남의 사무실에 은근슬쩍 자리잡지 말아라.
내가 강화에 살지 않아서 사무실에 가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매일 가볼 것이다.
사무실 사람들이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그냥 그렇게 눌러앉을 생각인 것같은데
나는 그걸 용납하지 않겠다.
만약 다시 돌아오려면
밀린 돈문제부터 해결해라."
그날 부로 그는 짐을 챙겨서 떠났다고 하고
얼마 후부터 저주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일 것같아서
경찰에 최종 고발장을 접수하지 않았어.
다시는 편지가 오지 않기를 바랬는데
다시 편지가 왔으니
이제는 나도 어쩔 수가 없네.
자기 삶을 돌아보기를 바래.
나를 미워하고 저주할 시간에
알바라도 해서
사람들한테 빚부터 갚아....
사무실로 전해지는 소식들에
내 낯이 화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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