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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2/01
    2017/02/01(1)
    하루

기도

 

 

 

2017년 7월 21일 새벽 6시 27분에 쓰기 시작함

1. 그날, 2017년 7월 15일 오후 2시 56분,
나는 3월부터 진행해오던 '아키비스트, 예술로 영종을 기록하다' 마지막 수업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참여자가 막바지 편집을 하고 있었고
나는 기획자와 다음날 있을 상영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하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늘 그런 것처럼 학원에서 끝났으니 데리러 올 수 있냐는 전화일 줄 알았고
나는 회의중이었으므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자동메시지를 보내고
회의를 계속했다.
기획자는 "전화 받아도 돼요"라고 했지만
회의를 빨리 끝내고 싶었기때문이다.
 

하은 친구 윤진의 전화가 또 걸려왔고 나는 또 받지않았다.
그리고 지수의 문자가 왔다.
"하은이 교통사고 나서 강화병원에 있는데 와주실 수 있어요?"
나는 기획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뛰어나가서 지수에게 전화를 했는데
통화중.
 
남편도 통화중.
친구 김윤진에게 전화해서 어디 다쳤냐고 물었더니
"하은이가 차에 깔렸어요" 라고...
남편은 여전히 통화중.
그리고 하은이와 통화가 됐다!!
하은이는 울고 있었고
차에 깔렸다고 했고
어디? 어디가 아파?
묻는데
다 깔렸다고, 다 아프다고 했다.
그 말만 남기고
경찰 조사 중이라며 전화가 끊겼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경찰조사를 마치고
강화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하고
예전에 내가 입원했었던
부천 우리병원으로 이동한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고
나도 영종도서관에서 부천 우리병원으로.
내가 먼저 도착했는데
어디를 다친 건지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
너무 궁금한데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리고 도착한 하은이를 보았다.
안경은 없고
얼굴에 거즈
무릎과 팔에도 큰 반창고들.
흙투성이 티셔츠.
하은에게 묻는데 설명하다 울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은과 하은 친구 셋이서 청소년 행사에 가려고
강화터미널에 내렸고
터미널 건너편
넓은 주차장이 끝나는, 사람과 차가 함께 다니는
길을 건너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한 차가 멈추지 않고 하은의 친구를 치었고
이어 하은도 치었다.
하은은 넘어졌고
그 위로 차가 지나간 거다.
가방을 맨 하은의 몸은 차와 길바닥 사이에 끼었고
그 상태로 끌려갔다 한다.
 
 
 
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다음날, 하은이 자꾸 등이 아프다고 사진을 좀 찍어달래서
등을 봤더니
등 한쪽에 붉은 줄이 두껍게 그어져있었다.
앞에 가슴쪽도 마찬가지이다.
가방끈이 몸에 배긴 채
차와 함께 끌린 거다.
정황을 알면 알수록 무서웠다.
우리 하은이가 이만한 게 정말 정말 다행이다.
토요일밤에 하은의 발을 씻어주었다.
너무나 작고 사랑스러워서
꽃잎같다고 느꼈던
어린 발은
이제 내 발 만큼 커졌다.
발을 닦고 얼굴을 닦아주면서
이렇게 무사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하고 또 안도했다.
 
 
 
생전에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왔다는 우리 아버지 덕인 것도 같고
 
자식도 외면하는 숙부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오빠네 덕인 것도 같고
늘 기도하고 감사하는 남편 덕인 것도 같고
무엇보다 그날 그 자리에서
119에 신속하게 전화를 하고
어떻게든 하은을 지키려고 나섰던
하은의 친구들.
차 밑으로 몸이 빨려들어갈 때
하은 친구 김민경이
"하은아 손 집어넣어. 손 집어넣어"
외쳤던 거를 하은이는 기억해냈다.
그러니까 그 외침 때문에
하은은 손을 집어넣었고
온 몸이 바퀴와 바퀴 사이에 있을 수 있었던 거다.
 
 
 
순간 순간이 아찔하다.
이만할 수 있었다는 건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신들과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하은을 지키고 도운 덕분인 듯.
함께 왔던 한별은 자꾸 물었다.
"엄마, 그 사람은 벌을 안받아?"
경찰은 사고원인을 운전미숙이라 했다 한다.
너무 놀라서 경찰조사 후 그냥 집으로 갔다고.
보험회사가 일반화되면서
사람 사이에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일들은 무시되고 있다.
그게 당연해져버렸다.
그 사람은 벌을 안받아.
사과 한마디 없어.
많이 놀랐대.
자기의 실수로 죽다 살아난 내 딸이 놀란 건
중요하지 않다.
자기가 놀란 게 중요한 거지.
 

하은의 살이 패인 손바닥,
하은의 덴 종아리(하은은 엎드린 상태에서 차에 끌려들어갔다한다),
하은의 긁힌 등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좋아지고 가해자에 대한 미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지만
얼른 마음을 바꿔서
하은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하자는 생각을 한다.
 

2.
하은의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울며 지냈다.
그냥 틈틈히.
나의 선배 경이 얼마 못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경이 몸이 안좋아서 6월에 올라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경의 친구이기도 한 남편에게
그런 상황을 설명했고
경은 남편의 전화는 받았다.
 

지난 주 화요일, 어딘가의 회의에 갔다가
경과, 내가 함께 활동하던 팀의 위원장이
암때문에 수술을 받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경에게 습관처럼 전화를 했다.
나에게 경은 그런 사람이다.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너무 이상한 상황에 처했을 때,
너무 놀랐을 때
전화를 해서
"형, 있잖아~"
하고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전화를 하면 그는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응 그래? 응 그렇구나
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다가
하루야, 나 이제 가봐야하니까 나중에 또 통화하자
하고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던 그런 사람이었다.
경이 오래 대답이 없으면
내가 너무 오래 말했어? 나 이제 전화 끊어? 끊을까?
하고 물을 수 있었던
어쩌면 내게 유일한 친구였고
확실히 내가 믿을 수 있는 선배였고
어떤 고민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자였다.
 

지난 주 화요일, 그동안 내 전화를 피하던 경이
전화를 받았다.
너무 반갑기도 하고 너무 놀라기도 한 상태에서
"형, I가 아프대."
라는 말을 했더니 경은 깜짝 놀랐다.
아마 놀라서였을 것이다.
남편에게 그냥 시골에서 요양중이라고만 했다는 경에게
"형, I가 세브란스에서 수술을 받는대."
라고 했고
경은, 한숨을 쉬더니
나도 세브란스에 있어.
라고 했다.
 

어디 아파, 누구랑 있어
폭풍같은 내 질문에
하루야, 나는 가족과 함께 잘 있으니 그런 이야기 나중에 하자,
짧게 대답을 했다.
형, 강화에는 언제 올거야, 물으니
잠시 침묵하던 경은
강화에는 못갈 것같다고 했다.
주변이 소란해졌고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해서
나는 경에게
전화를 해줘, 가끔이라도 전화를 해줘, 부탁했다.
알았다고 하고 경은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통화한  내용을 말했고
우리는 다음 날 세브란스를 뒤지기로 했다.
가서 이름을 말하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경이 자기 이름을 말하지말라고 했을까봐
세브란스에 의사로 있는 지인을 통해
경이라는 사람이 입원해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다음날 남편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경은 세브란스를 떠났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나중에 밤에 남편이 말해주길
경은 지금 어딘가에 있는데 하루에게는 말하지 말라 했다 한다.
남편에게는 성직자 윤리라는 게 있어서 그걸 지켜야한다고 했다.
 

경이,
강화에는 못 갈 것같다고 했으니
많이 아픈가 했다.
남편은 경을 만나러 강원도로 떠난 날,
나는 파주에서 하루종일 교육을 했다.
9시부터 4시까지 진행된 전일제 교육.
학생들이 촬영을 하는 날이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하고 스토리보드를 만들게 한 후
촬영을 내보내고 나서
나는 아무도 없는 창고 뒷 편에서 울었다.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며
어떻게 해도 돌아올 수 없는 순간들을 아프게 기억하며
울었다.
 

3.
나는 자신을 장애와 가난과 여성이 작업영역이라고 소개한다.
내 방식으로 경을 소개하면 경은 장애와 가난을 화두로 20년 넘게 작업을 해온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나의 선배였다.
경은 까칠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지만 후배들을 착취하지 않았다.
경이 부르면 나는 어디든 갔다.
장애인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했고 노숙인들과 함께 영화만들기를 했다.
보수는 늘 전혀 없었지만
경 또한 보수없이 그 일들을 진행했기 때문에
나는 선배를 믿고 그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왔다.
 

2009년이었을 거다.
그때에도 경은 영화교사가 필요하다며 나를 불렀고
나는 영등포시장 뒷쪽에 있는 노숙인센터로 가서 수요일마다 영화교육을 했다.
교육이 끝나면 늘 술을 마셨다.
그 때 경은 간경화였으므로 나는 늘 경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고
경은 술은 조금, 하지만 침뜸으로 자기 몸을 돌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16일, 나는 우연히 길에서 경을 만났다.
그날은 세월호 2주기 추모행사가 있었고
나는 길에서 혼자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중이었다.
경이 있길래, 잘됐다, 하고서
경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나는 질문을 했다.
그렇게 경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 끌어들였다...
 
그 일많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 경을 밀어넣고
나는 빠져나왔다.
교통사고 후 나는 글쓰기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책임감 강한 경은 아프기 전까지
늘 세월호와 함께 있었다.
 
 
 
..... 
 
 
2017년 7월 23일 새벽 2시 38분에 이어씀
 
응급실에 있는 경을 만나기 위해 남편이 강원도의 어떤 도시로 떠났다.
그 후로 늘 휴대전화를 켜놓는다.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다. 
새벽의 전화는.....불길하다.
전화를 받았는데 "누구세요?"라고 묻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한편으로는 짜증이.
툭 끊어버리고 차단.
 
그리고 잠을 이루지 못함.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생각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 순간들.
때를 놓쳐버려 불가능해져버린 가정들.
2015년 4월에 경을 만나서 미디어위원회로 끌어오지 않았다면.
2017년 2월, 담낭절제수술을 하고 나서 경에게 걸었던 전화,
"건강검진 받자"
그 때 경은 "나는 절대 안하지롱" 하며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뒤늦게 전해들은 몇 번의 기회들
4월 가족모임 때 가족들이 병원진찰을 권유했다는 이야기.
6월에 양방병원이 아닌 침뜸치료를 하기로 한 선택.
내가 뭔가를 했으면 지금은 아니었을 거라는 후회.
그러지 않아서 안타까운 마음. 피흘리는 것같은 내 마음.
 

2017년 7월 23일 밤 11시 10분
강원도에서 올라오는 남편을 픽업하기 위해 주차장을 걷는데
어린 고양이들 여럿이 모여 있었다.
노란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림자가 노란색이었다!
그 기이한 풍경에 놀라 다가가보니.......
앉아있는 노랑이의 형제로 보이는 또다른 노랑이가 죽어있었다.
토한 피가 큰 얼룩을 이루고 있었다.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는 검+흰 얼룩이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얼룩이의 그림자인 줄로만 알았던 형체가
사실은 죽은 고양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두 고양이는 모두 피를 토했고 입가가 피투성이였다.
 
깊은 밤, 주차장. 몇 개의 창만이 불을 밝히고 있는 병원.
그리고 죽은 고양이들.
개화역에서 남편을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죽은 고양이들을 같이 치웠다.
그런데 두번째 고양이, 그러니까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살아있었다.
이틀 동안의 여행에 지쳐있던 남편은 "나는 너무 피곤해"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 고양이에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 했다.
저 까망이도 노랑이처럼 곧 죽겠지.
죽을 것이다...
독약을 먹은 것같고 피를 토했으니.
그리고 같은 증상의 비슷한 몸집의 고양이가 이미 죽어있으니까.
 

병실로 돌아와 하은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하은이 날 위해 빌려왔던 <펫 로스>에는
죽어가는 반려견의 옆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다가
너를 외롭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에
마지막 숨을 지켜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도 그러기로 했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가
숲에 놓여진 두 마리의 고양이
그 중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까망이를
야옹아, 야옹아 불러주었다.
그런데 까망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기도 했고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24시간 동물병원들에 전화를 해보고
가장 가깝다고 판단되는 강서구의 병원에 까망이를 맡겼다.
20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선입금하고 돌아오는 길,
방학이라 수입이 없고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지출이 많은 이 때에
체크카드를 탈탈 털어 20만원을 지불한 후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런 상상을 했다.
나는 까망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이 세계에서 까망이를 살리기 위해
돈과 시간과 마음을 다 바쳐 최선의 노력을 한다면
이 세계보다는 고차원의 누군가가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겨
경을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주지 않을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까망이의 노력에
나는 어떻게든 부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경에게
다른 세계의 누군가가 부응하려고 노력해주지 않을까.
 
새벽 3시에 병실에 돌아와 꿈없는 깊은 잠을 자고
여의도에 가서 두 개의 영화를 소개하고
강서구의 동물병원에 들러서 까망이를 찾아서
강화의 단골 동물병원에 맡겼다.
의사선생님은 사흘만 버티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물론 그전에 잘못될 수도 있지만
해볼만 하다고 했다.
 
비슷한 말을 하며 치료에 들어갔던 순돌이가 결국 죽고 말았던
5년 전 기억이 떠올랐지만 얼른 지웠다.
까망아 힘내.
경 힘내!!
 

내 간을 떼어서라도 경을 살리고 싶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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