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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

어제 먹통이 된 내 하드에는 10여년 동안 모든 다큐멘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맥북프로에 있던 자잘한 영상들이 있었다.

그리고 또 뭔가가 더있었는데 기억이 안났다.

사실 그런 걸 기억할 정신이 없었다.

이미 잃은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잃었다.

원래 다큐모음은 2테라 하드에 있었다.

용량이 부족해서  3테라로 옮겼다.

2테라 하드를 오래 가지고 있다가 

몇 개월전에 포맷하고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

내가 이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데 다른 여지는 없었다.

그래도 자꾸 미련이 남아서

10년 전에 1테라 하드에 다큐들을 모았던 기억을 했고

(현재와 같은 SATA 방식이 아닌)

'IDE 방식의 1테라하드를 어쩌면 내가 버리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작업실을 떠나기 직전 머리 속에 번뜩 떠올랐다.

그래서 오래전 하드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하드에.... 있었다.

그건 옛날 1테라 하드가 아니었다.

재작년에 우리 학교에 교수님이 새로 오셨고

작년에 교수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교수님은 미드를, 나는 다큐모음을, 서로 교환 했었다.

그 때 교수님 드린다고 카피했던 하드.

나만 소장해야 했던 다큐들은 어쩔 수 없이 누락시켜야했다.

그리고 교수님은 EBS에서 일하시던 분이니 EIDF 다큐들도 필요없었다.

이번에 먹통이 된 내 3테라 하드에는

독립다큐, 명작, 보관, EIDF라는 네 개의 폴더가 있었고

교수님께 드릴 하드에 나는 독립다큐, 명작, 두 개의 폴더의 다큐만 복사해 드렸다.

그리고 그 하드를 다시 포맷을 안하고 어딘가 던져두었던 거다.

최근 3년동안 모은 다큐멘터리는 날아갔더라도 그 전 7년치는 있는 거다.

물론 '보관'이라는 이름의, 나만 가지고 있어야하는 영화들은 날아가고 말았지만.

최근 몇 달동안 열심히 다운받았던 EIDF 다큐멘터리들도 다 날아가고 말았지만

그래도 몇 개는 있더라.

 

 

공부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자동차들이 찌르는 듯한 불빛을 쏘아대는

굽이굽이 외길을 운전해오면서

나는 울었다.

그러면서 기억해냈다.

나의 울음은 늘 이렇게 유예된 채로

나중에 나중에 흘러나온다는 것을.

 

5년의 시간을 갑작스럽게 종결지었던 첫번째 남자의 이별통고에도

남편의 갑작스런 실직소식에도

나는 늘 의연했다.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꾸려가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사람들은 괜찮아?라고 물었지만

너무 애쓰지 마, 위로했지만

나는 노력한 게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충격에 대한 반응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조금씩 그리고 점점 더 진하게

배어나오기 시작한다.

24살의 실연 후, 나는 매일밤 술을 마셨다.

학원강의가 끝나고 나면 홍대 앞 술집들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다.

카드로 그어댄 술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나중엔 적금을 깼다.

남편의 실직 후에도 나는 매일 밤 술을 마셨다.

그땐 갈 데가 없어서 집에서 마셨다.

슬퍼서 혹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맨 정신으로 잠드는 게 쉽지가 않았다.

 

10년동안 모은 영화가 날아간 지금

그래도 7년치 영화는 건졌기에

어제 안심하고 울었고

이제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거다.

오늘은 중2학생들과 진로콘서트를 하는 날이다.

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누군가는 다큐멘터리감독을 꿈꿀 수 있기를.

 

털고

가자.

그냥  이렇게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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