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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13
    파리, 텍사스
    하루

파리, 텍사스

내 인생의 영화

파리,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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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텍사스/빔 벤더스 감독/145분/프랑스, 독일

황량한 텍사스 위에 자신들의 파라다이스 파리를 꿈꾼 한 남녀의 잃어버린 사랑찾기.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감독 빔 벤더스의 1984년 칸영화제 그랑프리 작품.

 

중학교 시절 어느 밤, 설핏 잠이 들었다가 언니들이 소곤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큰언니와 둘째언니가 며칠 전 본 영화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예쁜 여배우에 대해서, 애절한 기타 선율에 대해서, 그리고서 몇 마디

“그런데 왜 그 남자는 여자를 만나지 않았을까?”

“그러게. 만났으면 좋았을 걸”

언니들의 궁금증을 고스란히 받아안은 채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20년 후 어느 날, 신림역 지하상가에서 떨이로 파는 영화 CD 무더기를 구경하다 무심코 집어든 영화 <파리, 텍사스>. 10대의 어린 나, 20대 초반 언니들의 궁금증에 덩달아 갸웃했다가 30대의 아기 엄마가 되어 영화를 본다.

영화는 황량한 배경만큼이나 황폐해 보이는 한 남자의 목적없는 걸음에서 시작된다. 남자의 이름은 트래비스. 기억상실에 실어증까지 겹친 트래비스는 4년만에 만난 아들과 함께 떠난 아내를 찾아나선다. 동생 부부에게 매달 아들의 양육비를 입금한다는 어느 은행에서 무작정 기다리다가 결국 아내를 발견하지만…. 그러나 그 곳은 환락가의 핍쇼(Peep Show). 손님은 여자를 볼 수 있고, 여자는 손님을 볼 수 없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트래비스는 손님이 되어 아내를 만난다. 아내는 뒤늦게 남편인 것을 알고 안타까워하지만 트래비스는 아들과의 만남만을 주선해주고 어디론가 다시 떠나버린다.

20년만에 영화를 보며 나는 궁금증보다는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언니들의 빛나던 나이를 생각했다. 만남, 사랑, 결혼과 같은 세상의 관계들이 온통 장미빛으로만 다가왔을 그 시절. 머리 속으로 아무리 나쁜 상황을 그려보아도 싸움조차 사랑싸움의 언저리를 넘지 못했을 순진한 상상력. 그러나 세상엔 치유하지 못할 상처도 있다. 회복되지 못할 관계들이… 너무나도 많다. 운명적 사랑이라고 생각했을 트레비스의 아내 제인. 그러나 스무살의 젊은 아내는 자꾸만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했고, 남편은 사랑에 파묻혀 직장까지 그만 두고 아내만을 바라본다. 파국, 그리고 재회.

줄거리만을 봤을 때는 단순 멜로영화지만 영화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초반 30분동안 말과 기억을 잃은 채 공허한 눈빛만을 보여주는 트레비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을까. 그의 상실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의문이 풀리는 순간, 시원함보다는 애절함에 목이 메인다. 어쩌면 단순한 멜로영화였을 수도, 혹은 가족영화였을 수도 있을 평범한 설정은 마지막 30분 동안의 클라이맥스를 거치며 비범해진다. 영화는 더 이상 사랑이나 가족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된 사람들, 사진 속에만 남아있는 예전의 자리들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잊고 싶어하는,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그것들을.

트레비스는 제인에게서 고통만을 본다.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이젠 더이상 기쁨이 아니다. 설혹 제인이 자신을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애가 타도록 만나고 싶어하더라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그저 트레비스는 “언어도 없고 거리도 없는 어떤 곳, 이름도 모르는 미지의 장소”만을 꿈꿀 뿐이다.

지나간 것들은 더이상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과거와 단절되었을 때, 모든 지나간 것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상처를 헤집는다. 그리운 선배를 만나도, 기억 속의 벤치에 앉아보아도 현재는 자꾸만 기억을 밀어낸다. 붉은 머리띠가 아름다웠던 선배의 세련된 넥타이. 멋진 분수대가 차지해버린 흙먼지 날리던 운동장. 과거는 아스라히 떠나가버리고 존재하는 것은 변화된 현재 뿐이다. 누군가는 그래서 떠나버린다. 과거든 현재든, 차라리 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버리는 선택을 한다. 새로운 하늘 아래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살아간다. 사무치게 그것들이 그리워도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며.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20대의 나라면 어쩌면 언니들처럼 트레비스의 떠남을 궁금해했을 것이다. 왜 당신은 사랑을 떠나가는가? 다시 시작하라.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30대에 <파리, 텍사스>를 본다. 그리고 말한다. 떠나가라 트레비스. “언어도 없고 거리도 없는 어떤 곳, 이름도 모르는 미지의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라.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

정리되지 못한 과거는 미래이다. 언젠가는 정리하고 받아들이고 껴안아야 한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의 상처는 그것을 들여다볼 힘을 필요로 한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 마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을 때, 낡은 서랍 속에서 빛바랜 사진이 불쑥 튀어나올 때, 문득 걸려온 옛 친구의 전화에 마음이 들뜰 때, 그렇게 지나간 것들은 다시금 당신을 일깨울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난 다시 <파리, 텍사스>를 보겠다. 트레비스의 떠남이 과거, 바로 새로운 미래와 반갑게 해후하는 시간임을, 나는 내 시간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다. 내가 살아가야할 이 길 위에서. 

 

                       200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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