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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1
    [엄마...] 말 줄임펴 안에 담긴 그녀들의 이야기
    하루

[엄마...] 말 줄임펴 안에 담긴 그녀들의 이야기

[엄마...] 말 줄임표 안에 담긴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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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가기 RSS 주소복사 2005-03-09 수요일
 

극장가에 고요하지만 두터운 파장을 일으키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류미례 감독의 <엄마...>다. 지난 해 4월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제2기 다큐멘터리 옥랑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는 세대마다 반복되는 가정 속 여성의 삶과 강요된 모성성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엄마와 여자 형제들의 삶을 스크린에서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엄마...>는 제목 그대로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라는 글자 뒤의 말 줄임표가 이 영화를 만들며 쉽게 꺼내기 어렵고 제대로 이야기한 적 없는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야할 지 고민했을 감독의 의중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50분 가량의 다큐멘터리엔 세 명의 엄마가 나온다. 6남매 중 막내 딸이자 영화를 찍을 당시 딸 아이를 둔 엄마였던 감독과 그녀의 어머니 박사심 여사, 그리고 러시아에 살고 있는 셋째 언니가 그들이다.

영화의 초반, 초점은 박사심 여사의 변화에 맞춰져 있다. 그 변화란 남편을 사별한 후 6남매를 혼자 키워 내고 술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어머니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머리가 큰 자식들은 말이 많아진다. 남편은 없고 자식들은 다 출가시켰으니 연애에 무슨 걸림돌이 있을까 싶지만, 자녀들은 또 다른 감시자가 된다. 엄마의 연애는 로맨스이기 이전에 ‘사건’이다. 자식들은 생기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연애를 지지하기도 하고, 남들 눈을 의식해 불만을 나타내기도 하고, 말년에 상처 받게 되실까봐 근심 어린 눈으로 보기도 하고, 자식들에게 살갑지 않았던 엄마가 아저씨에겐 잘하는 모습에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셋째 언니는 혼자 힘으로 억척스럽게 공부해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에서도 독하게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고, 언론에 얼굴을 비추기도 하며 학자로 성공할 거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결혼과 육아로 10년 공부를 접는다. 자기 일이 있고 거기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는 언니를 보며 류감독은 그래도 언니는 공부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는 엄마인 감독 자신이 있다. 딸을 친정 엄마와 놀이방에 맡겨 두고 일하러 가는, 아이가 잔칫집에서 밥을 굶어도 영화 찍는 일에 골몰해 챙기지 못하는 안타까운 엄마이다.

한국에서 엄마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어려웠던 딸은 러시아 여행을 통해 자신의 엄마와 언니의 삶이 또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음을 보게 된다. 가정을 위해 간절히 원했던 공부를 접어야 했던 셋째 언니. 이론적으론 무장되어 있어도 한 집안의 며느리 역할을 다하지 못할 때 질책을 이기기 어려웠고, 낳아 둔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기에 악에 바친 순간에도 모두 다 버려두고 떠나질 못했다. 그런데 그 시절을 견디게 해주고 살아갈 힘을 준 건 그녀의 두 아이들이었다.

감독의 엄마도 집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이 술로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건 가난과 여섯 아이들뿐.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전쟁 같았기에 그녀는 도망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겨우 자기 삶에 눈을 돌렸을 때, '엄마' 대신 외롭고 늙은 여자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 엄마를 벗고 여성으로 살고자 할 때 자신의 품을 떠났던 가족, 자식들이 보이지 않는 감옥을 쌓아 올린다. 자식들은 엄마가 여자로 살기보다 엄마로 살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에 마땅히 희생하고 가족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엄마는 또한 사랑받기를 원하는, 외로울 수도 있는 한 여자다.

감독 역시 자신의 딸을 엄마에게 맡김으로써 엄마를 또 다시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내가 키우지 못할 때 우리 엄마가 키워줄 거라는 생각은 여성의 성공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하려면 또 다른 여성이 육아의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견 폭력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도 좋은 엄마는 아니다. 필요할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하고, 돌봐주지 못한다. 어느새 어린 딸에게 상처를 주는 엄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는 엄마의 사생활을 긍정하며, 또 감독의 딸도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로 살아간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도, 우리 엄마도 그랬고, 우리 딸들도 엄마가 될 것이다. 내가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니라는 영화 속 러시아 속담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여성들의 삶이 비슷비슷하게 닮아 있다.

엄마는 천하무적도, 나이팅게일도 아닌 그냥 엄마일 뿐이다. 엄마를 신화 속에 가두어 두고 그녀의 삶에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화된 엄마 상을 들이댄다면 안 그래도 희생하며 살아온 그녀를 두 번 죽이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잣대가 당신, 또는 당신의 아내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이 땅의 모든 딸들이, 또 엄마들이, 각자의 삶에 주인이 되고 희생보다는 자신의 소망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길, 여성의 역할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길 꿈꿔 본다.


기 사작성:박서은 기자. (baeksuk78@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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