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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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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12/06
- 2014/12/06(8)
글을 쓰고 난 후에는 다시는 그 글을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끔찍해지는 그런 글
그런 글을 쓰고 있다.
몇시간 있으면 활자화되어 가판대에 놓여질 그 글도
읽고 싶지가 않다.
나는 왜 그런 요청을 받아들였나.
내시경으로 들여다봤을 때 보았던
나의 위,
보다도 더 연한
마음의 내장을 그냥 내보이고 살고 있다.
왜?
위가 아프다.
일은 끝날 기미가 안보이는데
밤은 짧다.
자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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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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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강화에 놀러와라, 가을에 영화제 오면 차 한잔하자 했는데 빈 말로 그치고, 겨울 한가운데 있네요.하고 싶은 거 하지도 못하면서 왜 이리 여유가 없는지 싶은데, 요즘은 체력도 떨어져요. 아무것도 안하고 죽은 듯 누워있고 싶어요. 때론 어쩔 수 없이 과장되게 명랑하게 지내다 보니 정말 성격이 밝아지는 것 같다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기력을 소진시키는 일이었나봐요.
겨울에 친구들이랑 쿄토에 가서 며칠 가만히 쉬다 오려고 계획세웠는데, 뜻하지 않게 다른 일로 일본에 가게되어 그마저 취소했어요.
새 봄에는 강화에 한 번 가고 싶네요.
무슨 글인가하고 생각했는데, 오늘 봤네요. (누군가가 언급하는거 자체가 끔찍하다했는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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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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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아니예요. 괜찮아요. 그냥 그래야할 시기였어요.청탁이 왔고....남편이 하자고 해서 한 건데 고심고심해서 썼고....쓰는 과정이 힘들었고...네 번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인터뷰마다 싸웠고... 여전히 우리 사이에는 강이 있다는 거알았고.... 그래도 어쨌든 좋은 시간이었어요. ^^ 봄에 고구마 심을 때 놀러오실래요? 어린이날 즈음에 심는다는군요.ㅎㅎ부가 정보
나뭇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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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꼭 가고싶어요. 강화는 너무 추울 듯 하지만 1월말이나 2월에도 사정이 허락하면 가보고 싶네요~부가 정보
docurm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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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는 정말 너무 추워요.아침에 하은이 데려다주는데 하은이네 학교 앞 문방구(애들은 매점이라 불러요)
옆에 아기고양이 세 마리가 얼어죽었다고 해요. 하은이 친구가 비닐에 담아서 무덤을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문방구 주인이 "그냥 산에 갖다가 버려라"라고 했다네요.
땅을 파서 묻어주는 게 제일 좋을 것같긴 한데 요즘은 땅이 얼어서 팔 수도 없어요.
너무 추워요. 밤새 추웠을 개, 고양이들에게 아침에 따뜻한 물을 줬는데...
물통이 꽁꽁 얼어있었어요. 작년에 너무 춥게 겨울을 나서 올해에는 일찍 펠릿난로를
들였습니다. 펠릿 2톤을 사서 창고에 쌓아두고, 김장을 하고 나니,
월동준비를 다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푸근해졌어요.
밤에 난로가에서 뒹굴뒹굴 거리는 아이들을 보다보면 같이 뒹굴뒹굴 하고 싶은데
아침이면 일찍들 학교에 가고 저는 집에 늦게 들어옵니다.
그래서 더 애틋해지기도 하겠지요 ^^
1월이든 2월이든 오셔요~~ ^^
작년에 촬영 때문에 12월 31일에 전등사에 갔었어요
역시나 많이 추웠지만 색색 꽃등의 고운 색깔과
스크린에 비춰지는 카운트다운
새해를 기다리며 함께 숫자를 세던 그 풍경들은 새로웠어요.
새로운 공간은 새로운 경험을 주고 기억이 되어 한 층 한 층 쌓여갑니다.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기억 만드시러 오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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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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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 인터뷰를 제가 보았나봐요. 위를 들여다 보는 줄은 몰랐는데요...연우엄마에요. 몇년전에 유진이 임신했을때 강화 가고 처음 얘기 나누나봐요.
그 유진이가 지난 8월에 네 돌이 되었네요.
간간히 안부 묻고, 또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동네 성공회 성당 지나갈 땐 하은이네가
여기 사제로 오면 좋겠다, 이런 상상도 했고요 ㅋ
강화 많이 춥지요.
전 지난 7월까지 위스콘신 매디슨이란 도시에 일년 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성공회 성당(episcopal church 라고 하더군요, 미국 성공회가 동성애 지지 문제로 갈라져 반대하던 무리들은 Anglican church로 이름을 붙여 나갔는데 또 한국에 와보니 성공회는 다 anglican 이라 해서 헷갈렸어요)을 나가게 됐어요. 사제는 제 또래 여성인데 인류학 학위를 받고 사제가 되었대요. 여튼, 돌아와선 11월에 동네 성공회 교회 두군데 중 한군데를 몇번 나가고 있는데 많이 착잡해요... 여기다 막 쓰면 안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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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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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예요~ 지금 다니는 삼흥리교회는 참 좋아요. 그때 성공회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 큰 교회 갔다가(이름은 말안할께요 ^^) 약간 실망해하던 벼루집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 저는 이때까지 한 번도 전도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데요 요즘 삼흥리교회에 다니면서는 전도란 걸 한 번 해볼까 생각도 하지만 곧 아아 냅두자, 싶어요. 교회에 같이 다니자라고 말하는 건 엄청난 용기 아닌가 싶어요~ ^^이번 주교 때 제가 아는 면직자만 세 명입니다. 다 이유가 있겠지요. 그리고 남편은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도 않아요. 작년부터 저희에게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는 푸른영상 동료 중에 한 명이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말을 해요. 그 말을 전하니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안돼. 천주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면 사람들은 들여다보겠지만 성공회를 비판하는 다큐가 나오면 사람들은 이럴거야. '저기 이단 아니야? 교세도 작은 곳인데 별 일이 다 있네. 역시 이단은 달라'" 뭐 이럴 거라는 거죠. 아무리 아픔을 겪고 힘든 일을 겪어도 남편은 성공회 사제이고 성공회를 사랑합니다. 내부의 문제가 곪아 터진다 하더라도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그 애절한 애정 때문에 그 곳은 그렇게 굴러갈 것입니다.괘씸한 것은 그 애정을 볼모로 자기 욕심을 채우는 부류들이 존재한다는 거죠. 애정 때문에 절대로 외부에는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니까.
<쿼바디스>를 봤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감독이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그러더라구요. "저는 독실한 크리스찬입니다...." 그 말에 목이 메였습니다. 크리스찬이 교회를 비판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걸 아니까요.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모욕받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용기를 냈습니다"라고도 말을 하더군요.
저는 성공회를 사랑합니다. 모태신앙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억이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대학을 가고 운동을 하면서 10년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서른 살에 성공회를 계기로 다시 크리스찬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가장 값진 것으로 바라보는 성공회의 교리가 제겐 너무나 매력적이었거든요. <로빈슨 주교의 두가지 사랑>을 보면 성공회 교인들의 치열한 토론현장이 나옵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성공회 교인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고 너무나 많이 절망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태도에 대해서, 사람과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것들을 거의 다 버렸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었더라구요. 작년 일을 겪으면서 저는 사람 관계를 많이 정리했습니다. 친절할 기회가 오면 주저없이 친절을 베풀며 지냈어요. 그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운 거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살면서 교류가 되고 인연이 형성되는 건 줄 알았지요.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제가 참담해하며 깨달았던 건 나는 그저 기관 책임자의 아내였을 뿐이어요. 그 책임자가 자리를 잃자 사람들은 눈 앞에서 차갑게 돌아섰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교류가 많지 않은 사람이예요. 그러니 오랫동안 진보넷 블로그에 빠져살았겠지요. 그저 스쳐가는 사람에게도 친절하려고 노력했고.....맞아요 그림자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랬어요. 그림자마저도 없는 존재감 없는 사람. 교회 안에서 사모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투명인간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작년 가을 이후에 '그 일'이 닥치고 사람들이 눈앞에서 태도를 바꿨습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의연하게 지냈습니다. '그 일'이 터진 후, 학교에서 돌아온 한별이 "엄마, 나 전학가야돼? 애들이 나 전학가는 거래"라고 말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거든요. 우리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뿐인데 사람들은 왜 저러나...싶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는 일은 남편과 저에게는 무대에 서는 일이었습니다. 위로 혹은 호기심 혹은 비웃음의 시선들 속에서 우리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보낸 1년이었어요.
있죠, 나는 시골이 고향입니다. 시골 사람들, 인심 좋다는 얘기, 아니라는 거 어렸을 때 너무 일찍 알아버렸어요. 강화도로 발령이 났을 때, 윤태호의 <이끼>를 보았더랬어요. 나는 그 때 <이끼>의 마을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에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작년, 우리가 겪었던 일은 그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미스터리가 너무나 많아요. 오죽하면 푸른영상 동료가, '미스터리 다큐멘터리 만들기 좋은 소재야'라고 말을 했겠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났고 결국 면직이 되었고 그러던 차에 한겨레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냥 가족간 인터뷰래요. 남편은 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다'라고 외치고 싶었겠지요. 자잘한 수정 말고 세 번을 글을 완전히 갈아엎으며 다시 썼습니다. 행복해보인다고, 잘 사는 것 같다고 , 사람들이 그럽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래야 하는 시기거든요.
다행인 것은 제가 제 삶에 대해서 좀더 주도하게 되었다는 것? 작년 10월 1일 최초의 통고가 있은 후, 남편이 집에서 살림을 맡게 되자, 제가 장기출장을 가기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밀양에 몇 번이나 갈 수 있었어요. 새옹지마라는 말이 딱 맞아요. 저는 자유를 얻었고 남편은 예민해졌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변화입니다. 제 인생에 시즌2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
세월호 인권감시단 활동을 하다가 바리를 만났어요. 우리, 그 때, 꽉 막힌 세상에서, 숨 쉴 곳이라고 생각했던 진보넷 블로그, 그 곳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각자 시즌2를 이어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 듯해요. 시즌2를 축하하며 새봄에 한 번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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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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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넷은 아직도 모블로깅이 힘들죠~집에 이제 들어왔어요.내일 아침 컴을 켜고 다정한 대화 이어가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