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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16
    명망가와 활동가(2)
    야단법석
  2. 2006/09/16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2)
    야단법석
  3. 2006/09/16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1)
    야단법석

명망가와 활동가

명망가...자신의 이름 석자를 위해 친구와 동지, 심지어 가족까지 이용하고 팔아먹으며 끝내 역사속으로 명멸할 자.

 

활동가...가난한 이웃을 위해, 노동하는자가 주인될 세상을 위해, 동지를 위해, 그 과정과 결과로서 마침내 가족을 위해 자신 마저도 팔 자이며 끝내 역사 속에서 아름답게 부활할 자. 

 

아, 나는 한 때 저 고결한? 명망가들에게 내 신념을 팔고, 심지어 영혼까지 넘겨줬었지. 

-나의 대학 초반은 DJ에게 빠져있었고, 처절하게도 배신을 당했다.. 유난히 춥고 암울했던 80년대 말의 그 겨울을 잊지 못한다.

-20대 후반, 천리타향 임지에서 순진하게 교직생활 시작했을 때, 나에게 전교조와 참실활동의 진수를 보여줬던, 보기만 해도 그저 아뜩하고, 존경이 저절로 묻어나던, 교사로서 내 삶의 구심같았던  그 잘나신 L선생은 지금 어디 가 계신가?!....놈현 정권의 교육 참모부에서 뭘 하시는지.

-30대 초반, 하다본께 맡게된 전교조 지회 말딴 간부를 시작할 때, 전교조 활동의 최고 정점으로 여겨졌던 역시 L선생은 여전하신가? ...교육노동자, 이땅의 노동자로서, 노동자의 자긍심으로 살아계신가?!...부디 노욕일랑 버리시고 잘 사시길!

 

이제는 조금 보인다. 누가 진짜 내 친구이고 동지인지.

아직도 철이 덜 들었는지 교장교감과 침튀기며 싸우다가도 필요이상으로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끔, 내가 원칙과 아량을 혼동하지 않는지 놀랄 때도 아직 있지만.

 

난, 언제 가난한 이웃과 노동하는 자가 주인되는 세상은 고사하고,

이 가볍고, 석자나 빠진 내 이름 석자(노,동,자) 제대로 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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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2)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2)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3-2) - 노동자 선동하는 송경동 시인
송경동(시인) 
착시 현상을 벗어나서

그렇다면 정말 노동자문학은 이제 끝난 것인가? 노동자계급운동은 이제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할 퇴물인가? 혁명에 대한 꿈을 더 꿀 필요없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는가? 하지만 우리의 답은 아직 아니다이다. 이 모든 건 착시 현상이거나 역사 파고에도 늘 있는 고점과 저점에서 저점, 흔히 반동이라는 시기에 있음으로 판단한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세계 진보운동의, 계급운동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을 본다. 자본주의 역사는 채 100여년 밖에 안 되었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험 역시 길어야 8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현세를 사는 우리는 늘 내가 사는 육체적 나이에 근거해 역사를 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역사적 상상력 속에서 100여년의 세월이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우린 그 시간동안 중세봉건적 사회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경험해 보고 있다. 크게 보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역사 체재들이 그것이었다.

이 둘의 역사 체재는 아예 만날 수 없는 수평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비슷한 사회운영 원리 속에 있기도 하다. 둘 모두가 뿌리박고 선 대지의 가장 큰 규정성은 노동세계라는 시대적 원리다. 농노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자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 노예가 아니기에 최소한의 시민권을 인정해야 하고 천년만년 이어지는 왕조의 역사가 아니기에 최소한 사회 구성원들이 인정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택해야 한다.

노예가 아니기에 근로계약이 일을 시키고자 하는 자와 일을 하고자 하는 이 사이에 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현상적으로 보면 근대 자본가들을 당시의 혁명가들에 비유하기도 한다. 중세봉건영주들로부터 노예들을 해방시킨 사람들로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착시 현상이거나 사실의 오도다. 노예해방은 노예이기를 이제 더 이상은 거부하는 인간들의 피나는 희망으로부터 노력으로부터, 세계정신으로부터 이루어졌다.

자본주의가 어떤 혁명적 조치들을 취하기 이전에 이미 있어 왔던 그 수많은 노예들의 반란, 농노들의 반란을 생각해보라. 근대 자본가들은 이런 시대 변화상의 본류를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곳에 무임승차 몸을 실은 사람들이다. 파도와 바람이라는 큰 흐름을 느끼고 돛을 어느 쪽으로 올려야 하는지를 안 약삭빠른 사람들이다. 자본주의는 그래서 최소한 인권의 보편성, 기회의 균등을 이야기한다.

우린 누구나 ‘자유’롭고, ‘민주’적이라는 게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져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보통선거권을 도입하고, 사적소유의 자유를 얘기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에 의한 통치, 법치주의를 이야기한다. 자본은 이제 누구나 성실하면 가질 수 있는 사회공공적 부고, 자본만 있으면 누구던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진정으로 민주적이지 못했다. 그런 사실은 자본주의 초기 과정부터 금세 밝혀졌다. 자본주의는 부패할 수밖에 없는 기생의 체재였다. 현대 노동자들은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했으되 중세의 농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때에 따라서는 중세의 농노보다 더 끔찍한 인간성의 소외와 착취,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토지와 다르게 공장은 24시간 풀가동이 가능했다. 임금(생존권)을 미끼로 자본가들은 언제든지 노동자들을 노예화 시킬 수 있었다. 정작 자본가들이 한 역할은 사회공공적 부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가치(자본화폐화된)의 과도한 선점을 통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이었다.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의 절대화를 통해 화폐를 신격화했다.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가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자본가들이 만들어 낸 각종 제도와 시스템들을 들어 자본가들 역시 생산적 노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갖게 하지먄 그 대부분은 사실 생산과 분배의 민주적 시스템들과는 무관하다. 그 들의 일은 노동에 대한 착취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생의 시스템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사회 그 많은 ‘생산적 활동’들이 하고 있는 실내용을 보라. 교육에 종사하는 자본의 하수인들이 하는 것은 산교육이 아닌 죽은 교육의 재생산에 있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그 많은 자본의 하수인들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노동행정에 종사하고 있는 하수인들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수많은 군인들은 도대체 왜 모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사고한다면, 진정으로 인류들의 창조성과 의식성을 믿는다면 자본가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이 사회 시스템 중 대부분은 폐기되고 난 후에도 영영 웃음거리가 될 고물들에 다름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중 생산적 활동들도 있지만 본 바대로 그것은 그만큼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인류 진보의 유산들이다. 그것은 꼭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자본가들의 존재가 아니더라도 유지 존속 더 진보 발전될 사회적 가치와 일들이다.

자본가들은 이러한 역사의 진보를 두려워하기에 교육과 언론과 정치와 이를 강제하는 물리적 힘인 법과 군대와 경찰력을 놓지 않는다. 이런 물리력과 이데올로기적 공작이 없으면 기생충인 자신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자본가들은 바보가 아니다. 참 똑똑하고 영리한 놈들이다. 다만 그 좋은 머리가 타인의 불행을 획책하는 쪽으로만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의 소금이 아닌 종양이 된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치적 자유라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이미 그들은 교육을 통해 언론을 통해 법을 통해 군대를 통해 일상적으로 선거운동들을 펼치고 있다. 이 모든 선거수단들을 가지지 못한 정치적반대파(진보주의자들)들은 단지 부르조아 선거법이 명시하고 있는 선거운동기간을 통해서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가끔 진보주의자들이 대중(민중이라 부르던 노동계급이라 부르던 노농계급이라 부르던, 전선이라 부르던, 시민이라 부르던 다중이라 부르던)들의 무지에 좌절해 대중을 한탄하거나 무시하거나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지 못하고 반대파에 전향하거나 반대파와 타협하거나 개량으로 돌아서기도 하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도 멍청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예지가 아닌 무지를, 이성이 아닌 야만을 교육받고 교육받아 온 절대다수의 대중들이 어떻게 진보적일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개진하고 있는 진보적인 정치활동이 단지 전술인지, 전략인지, 타협인지, 개량인지를 주도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전술적인 활동들을 타협이나 개량으로만 치부해서도 안 되고, 전술을 전략으로 격상하여 꿈꾸기의 중단을 가져오는 폐해는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현실운동은 현실 대중들과 함께 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현실의 구체적 대중과 함께 할 생각이 없는 진보주의자들은 가끔 극좌와 극우가 통한다는 사실을 재미없게 되풀이해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악한 이들은 다른 세계, 다른 체제 구성을 꿈꾸었다. 그것이 자본주의 태내에서 자라나(이 말도 어패가 있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고자 한 사회주의적 이상들이었다. 사회주의는 기생하는 자본주의와 다르게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받지 않는 사회 체제를 꿈꾸었다. 노동을 소외시키지 않는 교육과 문화 정치를 꿈꾸었다.

자본가들의 대의기구에 불과한 부르조아 정치 집단과 그 이데올로기 형식인 다당제를 넘어 노동자계급혁명일꾼들로 구성된 혁명적 당일꾼들을 상정했고, 노동자계급 집단지도체제로서 1당 독재체제를 선호했다. 그것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선 직접민주주의의 형식으로 보았다. 보이지 않는 손(철저히 자본의 이익에 따르는)에 의해 작동되는 자유시장의 폐해를 넘어 노동과정과 생활과정에서 일어나는 2차적 소외를 없애기 위해 교환가치가 아닌 사용가치에 우선 주안점을 두는 국가계획경제를 주창했다.

어떤 이도 삶으로부터 소외당하면 안 된다는 기본 취지하에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을 실험했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기간산업과 사회적 부는 개별 자본가들이 아닌 국가, 즉 노동자당이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이것을 국유화 프로젝트라고 한다. 자본가들의 국가가 아닌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국가. 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기획인가.

노동과정에서의 착취와 생활 속에서의 착취 분을 메우기 위해 또 착취의 연속인 노동의 쳇바퀴 속을 굴러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만 일하고도 생활이 지속될 수 있다는 꿈. 그 나머지 시간들은 온전히 나를 위한 창조적 문화노동에 할여할 수 있다는 꿈. 통치의 대상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이 사회의 운영에 진정한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꿈. 누구도 누구를 착취하거나 폭력으로 위압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꿈. 동료를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나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는 정신병적 상태를 벗어나 위계와 차별이 아닌 아름다운 차이로 서로가 공존할 수 있다는 꿈 등등.

하지만 이런 세계를 자본주의가 호락호락 용인할 리가 없기에 이들은 민중무력혁명(전민항쟁)이라는 방식을 택했다.(아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십수년 밖에 안되었는데도 이런 말들은 이미 사어 취급을 받고 있다.) 각 민족이 처한 환경에 따라 이는 우선적으로 자본주의의 다른 이름인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해방전쟁으로 표출되기도 했고, 사회주의 혁명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주력군은 노동자부대였고, 연대군은 농민부대였고, 진보적 학생과 지식인들, 양심적 종교인들, 중소영세상인들과 룸펜프롤레타리아, 입장들에 따라 평가가 다른 중소자본가 민족자본가 층들이 엄호군이라는 그림이었다. 파업은 그 유효한 수단 중 하나였다. 파업은 혁명의 교육장이자 계기였다.

노동문학 작품들에서 숱하게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큰 목적하에서 이루어졌다. 한때 노동문학에서 전형성을 이야기할 때 결국 목적했던 것은 이런 전위적 활동, 대중적 활동의 형상화였다.

이 지난한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출혈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착취가 본성인 자본의 성격 그대로 자본은 자신의 체재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해 절대 관대하지 않다. 짐승이 자신의 먹이를 빼앗으려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자비하듯이 자본 역시 그렇다. 자본 자체의 성격이 태생적으로 인간에 가깝기보다는 짐승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근래에만도 미국자본이 저지른 그 수많은 테러와 전쟁을 돌아보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그 수많은 양민학살을 기억해 보라.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저질렀던 그 수많은 야만을 생각해 보라. 이 정도의 표현도 사실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다. 그 수많은 산재와 비관자살, 정신파탄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이 정도의 표현은 정말 정말 인간적인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온 까닭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결코 배 다른 자식들이 아니라는 것이다.(여기서 누구는 재빨리 그래서 노동과 자본 간의 화통의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겠지만 그런 뜻은 아니다.) 그 둘은 모두 노동이라는 인간의 대지 위에 서 있다. 하나는 기생의 형태로, 하나는 공감의 형태로. 그래서 우리는 늘 어떤 역사적 체재, 역사적 이데올로기를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이 노동의 대지에 기반 해 생각과 꿈과 전망을 개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노동의 대지는 때로 가혹하여 자신의 뜻에서 너무 가버린 체제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메스를 덴다. 그래서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패퇴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국가들을 전복시킨 것도 아니다. 노동의 대지, 그 본성에 가깝지 않은 체재 하나가 그 토양으로부터 배제당해 그 수명을 다한 것일 뿐이다. 그러니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를 자본주의의 승리로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사회주의는 그렇게 노동의 대지로부터 ‘숙청’ 당했는데, 왜 그보다 못하다는 현실 자본주의는 오히려 영원불사할 것처럼 오히려 창궐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은 너무나 이분법적이다. 우회적으로 답한다면 사회주의 체재는 그렇게 자신을 돌이키고 자신들이 모자란 부분들을 향해 두 손 두 발 들고 문을 여는데 자본주의 체재는 왜 그러질 못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왜냐하면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역사적으로 그 한계가 증명된 사회주의의 똑같은 재반복 재구성이 아니라 다시 자본주의 이후이기 때문이다.

난 사실 현존 사회주의의 패배는 현존 사회주의의 후기 시절을 구성했던 전위들의 패배이지 사회주의 대중들의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패배했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남는가. 역사에 대한 허무감 밖에 남을 것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들의 대중들이 ‘아직’ 패배하지 않았듯이 사회주의 사회의 대중들 역시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대중들은 그들의 무능하고 부패한 당을 역사의 뒤로 퇴출시켰다. 그들의 당은 그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했다. 나중엔 정치적 자유마저 현저히 후퇴시켰다. 불가피한 체재 경쟁과 냉전은 더더욱 그런 폐해들을 부추겼다.

자본주의의 개인들에 비해 사회주의의 집단은 너무나 몸이 비대해졌고 무거웠다. 정치는 권력화했고, 창조적 열정은 꺾였다. 그렇게 ‘현존 사회주의’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우리는 다시 우군을 잃은 상태에서 자본주의의 일상을 뛰어넘기 위한 다른 기획들을 준비해야 한다. <기사 이어집니다>
송경동 시인은 얼마 전 포항건설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찰서에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책상에서 쓰는 시보다 공사판에서 투쟁현장에서 쓰는 시가 많다고 한다. 2006년에 첫시집 <꿀잠>을 삶이보이는창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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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1)

노동자문학운동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 몇 닢 (1)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3-1) - 노동자 선동하는 송경동 시인

송경동(시인) 

민중언론 참세상은 잊혀지거나 몰랐던,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노동문학 작가들의 삶과 문학의 솔직한 고백을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의 제목으로 연재한다. 앞으로 연재될 글들은 지난 7월 8일 '인천남구 학산 문화원'의 주최로 스무 명의 노동문학 작가가 참여하여 진행된 '노동문학 작가대회-노동문학의 회고와 전망'의 자리에서 발표된 글이다. 이번 기획은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합니다. - 편집자 주


세계적 시야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시 부문 수상자인 노동자 시인 백무산(35) 씨는 “이 상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로 받아들인다” 기운찬 발언으로 수상 연설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조국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습니다. 보호받을 재산도, 보장받을 자유도, 꿈꾸는 미래도 없습니다. 천만 노동자계급을 외면하는 조국은 누구의 조국입니까? 노동자계급의 진출과 싸움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보다 인간답게 살겠다는 집단적 분노,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사상은 바로 그런 현장에서 싹트고 있습니다.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자, 반민중적인 6공에 대해 노동자계급과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연설 도중 오른팔을 치켜들고 구호를 선창하기도 했다. “출판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기성 문학계가 마련한 상을 노동자가 받는 그런 시상식은 우리 문학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진출’에 걸맞는 그런 수상 연설은 ‘정신적 귀족주의’로 잘 다듬어진 시상식장 분위기를 일거에 교란시켜 버렸다.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 수상식을 다룬 한 언론의 신문기사 내용이다. 신문기사의 내용도 가히 혁명적이다. 분단 이후 맥이 끊겼던 사회주의 문학, 노동문학의 재현이 마침내 이루어지던 시기. 모든 좋은 문학은 ‘노동문학’이라는, ‘노동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가 자연스레 통용되던 시기의 사회 분위기를 위 시기는 함축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리곤 다시 15년여가 흘러갔다. 그 시절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가장 큰 변화는 1990년대 초반 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이었다. 노동자들의 소비에트가, 혁명적 당을 중심으로 한 현실 사회주의의 실험이 자체 모순을 이기지 못하고 ‘세계사적인 전향’을 시도한 물결은 이제 막 혁명‘적’ 진출의 발을 떼고 있는 한국사회 ‘계급’에게는 대홍수와 같은 것이었다.

근대 시민혁명을 넘어 선 시대의 꿈의 키워드로 불리던 민족해방운동, 그리고 노동자계급혁명의 결과는 보이는 현상으로만 따지자면 비참하고 참담했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나왔던 비판의 요지들만 해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도식화 위험을 감수하고 일별해 보면 이렇다.

무오류의 당은 오류투성을 넘어 부패했고,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서구의 합리적 이성보다도 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어서 인간적이지 못했다. 노동자 직접민주주의로 이야기되는 권력의 해체와 분산, 평등은 요원해지고 사회주의 1당 독재는 오히려 관료주의와 권력의 집중을 가져왔다. 그 아래에서 민중권력은 점점 요식화 되고 새로운 선민들이 키워졌다.

사회주의적 생산(중앙계획경제)은 오히려 무능을 낳았고, 퇴보를 낳았다.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자율적 공동체는 꾸려지지 않았다. 민중들의 창의력은 배제당하고 수동적 인간형들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전체 생산력이 떨어지고, 근로 의욕은 감퇴되면서, 창조적 노동의 힘은 키워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이후를 목표로 싸워왔던 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상을 버리고 자본주의의 사적소유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자유경쟁(우리는 이를 기회의 균등이 배제된 불평등 경쟁이라고 불러 왔다. 사악한.)을 인정하고, 사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했다. 독점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과다 축적을 인정했다. 자본주의는 계급해방 무력투쟁을 통해서, 통해서만 물리쳐질 수 있고, 절멸시켜야 되는 사회의 악에서 더불어 공존해 나가야 할 필요악 정도로 복권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어떤 이에 따라서는 자본주의 이후는 없다는 확고한 믿음들을 갖게 했다. 자본주의의 꽃인 사적소유, 자유시장, 자유경쟁,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선 더 이상의 꿈의 체제, 꿈의 제도, 꿈의 주체들은 없다는 역사의 죽음을 선포케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 사회적으로 반동의 물결이 득세하자 우리들의 삶의 가치들도 바뀌어 갔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를 넘어 설 수 있다는 구체적 꿈을 유보 상태로 두는 순간 자본주의 넘어서려는 모든 인간적 고뇌와 실천, 희생 역시 더 이상 덕목이 아닌 무의미하고 시대착오적이며 우스꽝스런 낭만적 포즈처럼 되어 버렸다.

자연스레 백무산 시인의 낙관적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국사회 내의 ‘혁명적’ 분위기는 사그러들었다. 혁명적 분위기가 사그러들었다는 것은 혁명적 주체들 역시 사그러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확고하고 명징하게 모두를 설득할 수 있고 스스로도 최면에 빠질 수 있는 혁명적 이론이 없으니 혁명적 주체들이 없고, 혁명적 주체들이 없으니 혁명적 대중들과 혁명적 상황들이 없고, 혁명적 대중들과 혁명적 상황들이 없으니 혁명적 꿈들조차 더 이상 꾸어지지가 않았다. 이제 막 역사의 무대로 화려하게 등장한 ‘노동계급 문학’이 퇴조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꿈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리얼리즘에서 꿈이 빠질 때 자연주의만이 남듯 쳇바퀴도는 일상만이 남은 현실이다. 현실은 철저히 자본주의의 대지 위에 뿌리박을 때만이 최소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과거와는 다른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들과 자리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예는 정말 부지기수로 많았지만 일정한 패턴을 따랐다. 노동자 곁에서 시민 곁으로 자본가 곁으로, 거리에서 공간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희생에서 사적이익으로, 실천에서 지식으로, 단체에서 기업으로, 당파성에서 관용으로, 민중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 실천에서 이론으로, 이름없음에서 이름있음으로 등등.

물론 이러한 현상을 노동자계급문학이라는 확고한 자기 당파성 속에 서 있는 무리들만의 상처로 바라볼 까닭은 없다. 전체 사회의 변화였고, 시대 담론의 변화였고, 전체 사회 대중들이 이런 변화로 인한 결과 속에 있다. 전체 민족민중문학이 퇴조기를 맞았고, 더 나아가 ‘문학’이 위기를 맞았고, 더 나아가 삶의 문화 전체가 위기에 몰렸다. 쏟아져 나오는 그 수많은 문화상품들 속에서도 민중들은 문화생활을 찾지 못한다.

인터넷 게임이, 문화상품의 소비가 문화적 삶을 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상품들 자체가 문화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삶이 문화적으로 소외되는 현상을 부추긴다는 기제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나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내용의 문화상품들은 노동으로부터의 자기 소외와 더불어 2차 소외를 경험하게 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사회적 가치와 부로부터 더욱 더 고립되는 현대인들의 삶 그 자체가 포괄적인 노동의 문화이다. 운동의 부문화를 넘어 총체적이고자 했던 노동자계급문학의 본령을 생각한다면 사실 주체 스스로가 주체 이외의 모든 사회계층과 상황으로부터 소외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이런 반동적 흐름, 패배적 관점으로부터 빨리 탈피해 나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문학이, 노동자계급운동이 대중들로부터 소외당했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런 전도 현상을 일컬을 때 쓰여질 것이다.

이런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한국사회 노동자문학운동 역시 수세기를 면치 못했다. 유능한 활동인자들이 활동을 접고, 남아 있던 유능했던 활동인자들도 무엇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난망해 했다.

창작은 당당한 개진에서 회고로 넘어가고 다른 모색으로 넘어가고 절필로 넘어갔다. 있던 재산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물에 젖은 소금이 빠져나가듯 술술 빠져 나가는 모습을 대책없이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새로운 꿈과 활동의 상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해왔던 사업들은 모두 관성화되거나 정신이 빠진 채 형식화되었다. 유대감은 점점 경계없이 허물어지고 도대체 어느 경계에서 계급이 나뉘어지는 것인지, 세계관이 나뉘어지는 것인지 모호해 졌다. (기사 이어집니다)
송경동 시인은 얼마 전 포항건설노동자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는 이유로 포항경찰서에서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책상에서 쓰는 시보다 공사판에서 투쟁현장에서 쓰는 시가 많다고 한다. 2006년에 첫시집 <꿀잠>을 삶이보이는창에서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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