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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고속도로를 걸었다.

오늘이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진지 40년이란다. 그날 비가 많이 왔다.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그때는)당연히 개통행사에 동원이 되어

고속도로 위로 갔다. 두리번 두리번 하고 있는데, 차가 몇대 지나가더니 대충 끝났다.

 

고속도로라는데를 처음 올라 비까지 오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새까만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흐르니 마치 거울 같이 보였다. 우리는 차도 다니지 않고

비오는 고속도로를  한참 동안 걷다가 돌아왔다.

 

지난 일요일 KBS 스페셜에서 방송하는 '대한민국 성장의 힘, 경부고속도로 40년'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고, 자원도 없었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께서  

불가능의 환경에서 이루어낸 성과라고 찬양 일색의 프로그램이었다. 4대강사업을 빗대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하루 차량 통행이 1만대였으나 지금은 1백만대이고, 대전터널 당재터널 공사의

어려움, 고속도로 주변의 옥천의 마을이 잘 살게 되었다. 성주의 참외, 천안의 호두과자가

전국적으로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경부 고속도로로 구미공업단지가 가동이 될 수 있었고, 

포항 울산이 산업도시로 탈바꿈 될 수 있었다. 고속버스 운전사와 안내원의 보수와 인기도

대단했고, 기사 생활 2~3년 정도면 집을 살 수 있었단다.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판단은 쉽게 할 수 없다. 그러면서 그후  한국 사회는 많이

변화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 긴급조치를 먼저 생각하겠지만,

사회경제적인 변화도 크다.

 

70년 경부 고속도로 건설에 이어, 경제계획으로 공업단지 조성, 이로 인한 대규모 이농,

통일벼 재배로 인한 쌀 생산력 확충, 화학비료 공장도 가동, 저곡가 정책으로 뒷받침,

도시빈민층의 증가와 대규모 판자촌,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길을 넓히고 스레이트 지붕으로....

 

그렇게 되니 농경사회에서 가난하지만 오손도손 정답게 살던 이웃은 이디론가 간데

없고... 이웃과 주변을 항상 경계해야 하고 경쟁의 상대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동물의 왕국 같은 사회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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