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윌리암 버드(William Byrd)

우리집에 저 사람의 씨디가 생기게 된 것은 어언 칠팔년전 일로, 어떻게 우리집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原주인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지금 그 육신은 독일에 묶여 철학인지 무언지를 공부하고 있고 그 영혼은 대기층 어딘가를 떠돌며 방황을 하고 있는 정*원씨이다.

 

그가 이 씨디를 어찌어찌하여 우리집에 흘러들어오게한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이 씨디를 주인에게 무척 돌려주고 싶어하며(나에게 전혀 상관없는 물건인데다, 물건은 주인을 찾아주어야한다는 양심에 따라) 그의 육신이 한국으로 돌아와 만나게 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부산에서 연수를 받는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났다.

 

얼마전에 떠들은 바 있는 그 '멋진 남자'로 부터 음악수업을 받았는데, 그 음악 수업은 이론과 합창이었다. 나는 이제껏 귓등으로 장조니 단조니 5도 화음이니 하는 단어를 들어봤긴 봐서 산수계산을 하듯 어쩌구저쩌구 따져 객관식 음악시험의 답 맞추기용으로는 써먹을 수 있었지만,  정말 그것이 음악으로서 어떤 것인지 도통 외계인 세상의 것으로만 느껴왔었는데,  이번에 생전 처음으로 음을 느끼고, 음과 음 화음을 느끼고, 장조와 단조를 느껴본 것이었다.

 

그것은 음악에의 첫 개안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덩달아  합창시간에 부른 노래들 또한 나에게 처음으로 노래를 하는 느낌을 주면서, 그 때 불렀던 각종 화음과 장조와 단조의 노래들을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하곤 하였는데, 그 중에서 유럽 중세시대의 라틴어 노래 하나를 유독 자주 흥얼흥얼하였다.

 

그 곡의 작곡가는 윌리엄 버드였다. 버드라고 발음되는지 어떤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BYRD라는 그 철자를 보고 왠지 낯이 익다, 싶었다.

돌아와서 무언가 짚히는 게 있어 씨디를 찾아보니, 그랬다, 칠팔년전에 우연히 우리집에 안착한 그 씨디가 윌리엄 버드의 씨디였던 것이 맞았다.

이 씨디와 나의 인연은 그리하여 칠팔년이란 세월이 쌓인 후에나 정식으로 맺어진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씨디플레이어에 올린 이 사람의 곡들은 칠팔년 간의 서먹함이 새봄에 눈처럼 녹아 사라지고 예전부터 아주 친했던 것 같이 군다.

 

나는 이제 정*원씨를 만나도 씨디를 돌려줄 생각이 없다. 싹 입을 씻을 작정이다. 이 씨디의 새주인은 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