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선녀와 나뭇꾼과 백설공주

<선녀와 나뭇꾼> 동화책을 사주었다.

그 책엔 나뭇꾼이 선녀옷을 감추고 숨어있다가 혼자 남은 선녀에게 솔직하게, 내가 색시를 얻고 싶어 사슴에게 말했더니 이 방법을 알려주더라, 내 색시가 되어주실 수 없냐,라고 부탁하여 허락을 받아 같이 살게 되었다고 나온다.

 

얼마전 토요일아침 이비에스에 채널 고정하고 티뷔를 틀어놓고 있었다.

딩동댕유치원 공개방송에서 <선녀와 나뭇꾼> 연극을 하고 있었다.

나뭇꾼이 선녀옷을 감추고 숨어있다가 혼자 남은 선녀에게 그냥, 울지말고 우리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고 집으로 데려간다. 장면 바뀜. 선녀는 아이 둘을 낳고 잘 살고 있다.

 

딩동댕유치원이 끝나고 뭉뭉 인형극장, <백설공주>를 하고 있다.

못된 왕비가 머리빗에 독을 발라 백설공주 머리에 꽂는 바람에 백설공주는 쓰러졌다. 일 나갔던 일곱난장이가 돌아와서는 빗을 빼내 백설공주는 다시 살았다. 난장이들과 공주는 기쁨의 노래도 하고 다시는 모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는 대화를 나누는데, 난장이들이 계속 번갈아 공주와 춤을 춘다. 말을 할 때도 살가움의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계속 공주에게 스킨쉽을 한다.

 

 

연속으로 저 두 편의 방송을 보고있자니, 기분이 더러워졌다.

왜 내 기분이 모래씹은 것처럼 찝찝한가, 뚱딴지처럼. 생각해봤더니,

저 설정 때문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 이래저래 살을 맞닿는, 계속되는 저 설정.

그러나 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남자 쪽에서 무턱대고 다가와 여자에게 살을 맞댄다.

 

특히 인형극에서 백설공주 인형은, 짐작하시겠지만, 가슴은 c컵 사이즈이면서 얼굴은 열서너살, 목소리도 약간 코맹맹이에 어린 기가 다분, 그 여자 하나를 중심으로 수염난 난장이부터 철부지 어린 난장이까지 번갈아 다가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팔을 비벼대는데, 거의 성추행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백설공주는 화 낼 줄 모른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난장이들에게 감사해한다.

 

<선녀와 나뭇꾼>은 좀 미묘하다.

딩동댕유치원의 연극은 납치에 다름 아니지만, 내가 샀던 동화책에는 솔직한 나뭇꾼의 태도에 선녀도 마음을 열고 색시가 되는 것으로 나와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선녀와 나뭇꾼>은 나뭇꾼이 선녀옷을 감추어 선녀를 색시로 삼는다는 하나의 스토리가 대표할 뿐이지, 상황과 심리 묘사 따위가 세심하게 읽혀야하는 것이 아니라서, 결국 때에 따라 논의 외의 납치가 되기도 하고 인지상정의 여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무슨 어마어마한 간극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인권유린의 납치와 그럴 수도 있는 인지상정이 뚜껑을 열면 나란히 들어있는 한 세뜨라니. 이게 가능한 것이 상대가 여자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을 상대로한 동화에서든, 어떤 이야기에서든 취하고자 하면 취해지는 것이 여자다. 남자들이 싸우기도 하지만 아무튼 누군가 취한다.

 

되게 불쾌하다. 난장이들이 계속 다가오면서 춤 추자고 하고 팔을 비벼댄다고 생각하니 (그들이 난장이라서가 아니라 수염달린 남자부터 코맹맹이 철딱서니까지 번갈아 다가온다고 생각해봐) 아, 정말 싫다. 하긴 그런 뽀르노도 봤다. 어디서 난장이 배우들은 줄줄이 잘도 구해가지고 일곱 난장이들이 번갈아 백설공주와 섹스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고전 버전일 것이다.) 백설공주는 순진무구탱이라서 난장이들이 내미는 성기를 귀여운(?)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오잇오잇 소리를 내며 함께 논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일곱난장이와 백설공주는 그런 식의 환타지인 것이다. 그것을 아무리 어린이버전으로 옮겨봤자 그대로 드러난다. 공주는 열댓살이라도 가슴은 c컵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어떤 외모를 가졌건 공주 쪽에서의 선택의 자유는 없다. 남자는 (중?)늙은이부터 어린애까지 골고루, 번갈아.

아, 정말 여자에게 너무도 잔인하다.

 

그림형제의 백설공주는 어쩌자는 식이었을까. 사실 그림형제를 이제 다시 읽어보면 죄다 음흉하고 의뭉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