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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5
    가슴칠 일이 하나 있는데....(4)
    이유

가슴칠 일이 하나 있는데....

반찬은 김치찌개 한 냄비 놓은 게 전부인데도 밥을 양푼으로 퍼다놓고 먹기 시작하였다.

 

엄마네 김치찌개는 어찌 멸치국물만으로 끓여도 이렇게 다냐.

 

그거 멸치만 넣은 거 아냐. 동태대가리도 넣었다야.

 

웬 동태대가리?

 

시장길 여고 후배가 언니 이거 가져가, 언니 줄려고 남들이 대가리 안 넣어준다고 뭐라 하는 걸 다 무시 하고 꼭꼭 싸놨는데. 이거 가져가.하고 날 그렇게 주고 싶어해.

 

왜 그래?

 

내가 지나가다 야쿠르트 한 병도 주고, 엄마 있을 때 엄마 드리라고 음료수 하나 사다주고,하니까 날 언니언니하면서 좋아하네. 사람들 다 나 좋아해. 영화사(엄마 다니는 절)에서도 다 나만 보면 좋아서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어하고, 뭐든 주고 싶어하고 그런다니까.

 

그러게, 내가 봐도 엄마는 누구든 좋아할만한 양반이다. 그 나이 되도록 욕심 없고 헛치레없고 바보처럼.

그런데 아빠만은 그런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이 다 인정하지 않는대도 서로 인정해야할 관계라면 부모와 자식이고 부부이더라. 그게 결국 인간살이더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빠, 그 고집 좀 이젠 꺽으시면 좋을텐데 여자 앞에서는 반드시 대접을 받아야한다.

 

사실 알고보면 아빠는 엄마에게 가장 의지하고 있다.

내가 봐도 알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외출하는 걸 무지 싫어했었는데, 난 그게 그냥 꼴통 가부장이라 그런 건 줄 알았었다. 어쩌면 내가 어렸고 두 양반이 젊었을 땐 그래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아빠는 집에 엄마가 없으면 날개 떨어진 수탉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곧 죽어도 붉은 벼슬을 곧추 세우는 폼을 하고 있지만, 여지없이 느껴진다. 그래서 엄마가 어딘가로 놀러간다,하면 아빠는 대리전쟁을 한다.

 

며칠전엔 엄마가 즐겨듣는 라디오 불교 방송의 어떤 프로의 공개녹화를 들으러 간다고 했단다.

토요일 오후였다.

처음에 우리 아빠는 스스로도 개선되려 마음 먹었고 그걸 보이려했는지..

당신 밖에서 밥 사먹는 거 싫어하니까 고구마 좀 싸가져가서 출출하면 먹지그래. 그게 냄새도 안 나고 좋아.했단다.

나가기 한 시간 여 전.  엄마, 안방에서 신문 펼쳐놓고 보고있는데 아빠가 난데없이 청소기를 들고 들어와 청소를 시작하며 딴 데가서 신문 펼쳐보라고 빽 고함을...

어이없는 우리 엄마, 어차피 한 시간 후면 나 외출할 건데 이왕 청소할 것 그때 아무도 없을 때 청소하면 편하잖아?(그게 원래 주부들이 일하는 방식 아닌가)

아침밥먹고 무슨 일을 했다고 지금 큰소리야.라는 아빠의 대꾸.

이런 식이다.

결국 엄마 혼자 외출을 앞두고 아빠는 불안불안.. 자신의 불만을 그러나 솔직하게 말도 못 하고 대리전쟁을 시작한다.

 

엄마는 내가 동태대가리 김치찌개와 밥 한 양푼을 먹는 동안 아빠 흉을 내차 봤다.

딸래미한테 아빠 흉 보는 게 마음 편한 엄마에게 나도 정성껏 대꾸.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아빠 흉을 본다.

 

그런데 지금 엄마 눈에 눈물이 그렁하다.

지금 속에 있는 얘기는.......

 

가슴 칠 일이 하나 있는데.. 이 얘길 내가 누구한테 하겠니.. 아고, 너한테 또 이 말하면 너도 가슴 아플텐데..

얼마전에 어린이집에서 빨개벗겨 벌 세운 선생 얘기 나왔었잖아. 그걸 보더니 나쁜놈들,나쁜놈들 그러더라. 늬 아빠가. 그런데 생각나? 우택이에게 그랬었잖아. 어렸을때. 너 기억나? 그래서 내가 눈물만 뚝뚝 흘리고 반성할 사람은 우리야.그말만 하고 말았어.

 

지금 속에 있는 얘기는 역시 동생 얘기였다.

그래도 엄마는 이제 그런 짤막짤막한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엄마 앞에서 동생 얘기로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올해로 동생 11주기가 된다. 벌써.

2월3일은 그 아이의 생일이었다.

나는 걔가 죽은 후 몇년 동안은 생일날에 생크림케잌을 사가지고 그 아이 뼛가루를 뿌렸던 산에 갔었다.

그런데 생일은 산 사람에게이고, 죽은이에게는 제일인것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생일날이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생일날에 어떤 선물이 좋을까,가 더 어울리는 나이인 것이다. 걔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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