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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9/26

[기사] 자동차 역사 바꾼 도요타의 미국 견학 / 홍성욱

기술 속 사상/(23) 포스트 포드주의 고급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기술 선진국의 공장을 방문하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문은 가끔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에서 뜻밖의 결과를 낳곤 한다. 1950년 봄, 일본이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시기에 도요타 회사의 자동차 생산을 담당하던 도요타 에이지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사의 로그공장을 방문했다. 그의 목적은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조립라인에서 작업을 하던 거대한 로그공장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공장을 방문한 뒤에 도요타 에이지가 내린 결론은 포드사의 대량생산 방식이 일본에서는 결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선 일본의 자동차 수요는 미국처럼 대량 소비가 가능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 또 일본 사람들은 한가지 모델에 만족하기보다 다양한 모델을 찾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전후의 일본 경제에서는 거대한 공장과 같은 높은 설비투자를 할 수가 없었으며, 공장의 노동자들도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단순 조립 노동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을 정교하게 깎고 여러 종류의 금형을 제작해야 했다. 원래 이 모든 것은 숙련된 장인과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나 (지금도 최고급 스포츠카는 수제품임을 기억하라), 헨리 포드는 인간으로부터 이 숙련을 빼앗아 이를 기계에 부여했다. 즉 포드의 공장에는 ‘숙련된’ 기계인 전용기계들과 탈숙련된 단순 조립 노동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숙련노동을 대체한 포드의 전용기계는 매우 복잡하고 비쌌으며, 이를 설치하거나 바꾸는 데에 많은 설비투자가 필요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포드회사가 모델 T에서 모델 A로 생산라인을 바꾸는 데 오랜 시간과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미국의 절반만 투자해 생산 두배로 도요타 에이지는 미국과 일본을 비교한 뒤에 ‘미국의 절반만 하자’고 판단했다. 전쟁 때문에 황폐화된 일본에는 자원이 부족했고,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것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이었다. 절반의 장비와 기계, 절반의 노동력, 절반의 공장부지, 그렇지만 하나의 제품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옮겨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절반의 설비투자로 신제품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생각은 얼핏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포드사의 혁신이 거대한 설비투자 때문에 늦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했다. 도요타 회사의 엔지니어들은 이를 가능하게 할 기술혁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우선 새로운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금형을 만드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도요타사의 엔지니어 오도 다이이치는 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프레스 공정에서 간단한 금형교환기술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는 생산을 유연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모델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 신속하게 많이 생산해서 원가절감을 이루었던 포드식의 대량생산의 이점에, 유연성과 양질의 제품 생산이라는 수공업생산의 이점을 결합한 혁신이었다. (도요타의 생산체계는 이후 대량mass생산과 대비되어 린lean생산으로 이름 붙여졌다). 도요타 생산방식의 핵심은 유연성에 있었다. 그렇지만 유연한 금형제작기술은 도요타 혁신의 끝이라기보다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또 한번의 새로운 혁신은 전혀 예상치 않던 방향에서 찾아졌다. 오노 다이이치는 1956년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미국의 자동차 공장보다는 수퍼마켓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수퍼마켓은 물건을 고르는 구매자가 자신이 원하는 수량만큼의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면 매니저가 빈 진열대를 재빨리 파악하고 이를 다시 채워넣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일본에서 수퍼마켓을 구경하지 못했던 오노에게 미국의 수퍼마켓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서 물건이 채워지는 방식을 주시했고, 일본에 돌아와서 이를 자동차 생산에 응용했다. 기존의 자동차 생산은 부품의 공급에서 시작했다. 생산라인은 공급받은 부품을 조립해서 다음 라인으로 넘겼고, 그 다음 라인은 이를 받아서 다음 단계의 조립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앞 라인이 뒷 라인의 부품에 의존하다보니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질 경우에 항상 재고가 문제가 되었다. 재고 혹은 낭비(muda むだ)를 줄이는 것은 ‘카이젠’이라고 불리던 도요타 공장의 오랜 경영철학이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오노는 공장의 생산라인을 수퍼마켓의 진열대 식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소비자가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수퍼마켓 진열대에서 골라 들듯이, 한 생산라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부품만을 이전 생산라인으로부터 취사선택한다는 개념이었다. 모든 생산라인은 다음 생산라인을 위한 수퍼마켓이 되는 셈이었다. ‘저스트 인 타임’과 ‘간판’ 효과 ‘저스트-인-타임’(Just-in-Time 혹은 JIT) 생산방식으로 불리게 된 이 시스템은 뒷 공정에서 필요한 만큼만 앞 공정의 부품들을 인수함으로써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도요타 회사가 시장의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러한 공정상의 혁신이 존재했다. 물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후공정에서 전공정에 생산량, 시기, 방법, 순서, 운반량, 운반시기와 같은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어야 하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간판(kanban)’이었다. 간판은 조그만 사각형의 비닐 봉투에 종이쪽지를 집어넣는 것으로, 이는 생산과 조립에 대한 지침을 전달하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간판 스스로가 부품과 함께 움직임으로써 생산 공정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했다. 간판이 쌓여있는 곳은 당장 관리를 해야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도요타 회사의 생산체계는 노동자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했다. 포드 공장을 희화화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같은 영화에서 보듯이, 포드의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기계의 부품에 지나지 않았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와 같은 생산의 과정에 잘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불량부품을 만들어 내거나 조립과정을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컨베이어 벨트를 비롯한 공장의 생산라인은 24시간 계속 돌아갔고, 여기에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요타 키운 ‘유연성’이 위험으로 반면에 도요타 회사의 노동자들은 불량 부품이 만들어졌거나 조립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생산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기계를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시스템은 ‘지도카’(Jidoka - 자동화)라고 명명되었다. 이를 영어로 번역할 경우, 일반적인 자동화를 의미하는 automation이 아니라 autonomation이라는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인간의 지능과 손길을 기계에 부여하는 자동화라는 뜻이다. 일본이 독특한 생산방식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회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렇지만 1970년대와 특히 1980년대를 통해서 일본의 자동차들이 미국 시장에서 미국차를 밀어내기 시작하면서, 포드나 GM과 같은 미국의 거대 자동차 제국들은 일본의 도요타의 모델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요타 에이지와 오노 다이이치가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미국 공장을 방문한 지 30년 만에, 미국의 엔지니어와 경영학자들이 도요타의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서 일본 공장을 찾아왔다. MIT의 경영학자들은 5백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받아서 5년간 일본의 도요타를 연구했다. 이들의 책은 1990년에 <세상을 바꾼 기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무렵부터 ‘유연성’은 생산은 물론 경영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유연한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충족되었지만, 이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더 급변하게 만들었다. 소비자의 수요를 안정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이 어려워지고 신제품의 생산 주기는 더 단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산품, 소비패턴, 노동과정만이 아니라 노동 시장 자체도 유연해졌다. 범세계적인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평생직장을 보장하던 도요타 회사마저도 임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종업원들의 해고를 감행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유연한 것은 불안정한 것, 심지어 위험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홍성욱/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59037.html 접속일: 200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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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량생산 대중소비, 포드주의 / 송성수

기술 속 사상/(22) 대량생산 대중소비, 포드주의 철도가 19세기를 상징하는 교통수단이라면 20세기 이후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은 자동차이다. 내연기관을 이용한 가솔린 자동차는 1880년대 독일에서 처음 발명되었지만 1910년대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만 해도 자가용을 굴리는 사람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자동차의 소유가 보편화되는 이른바 ‘마이카 시대’에 접어들었다. 역사상 최초로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바로 ‘자동차의 왕’으로 불리는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이다. 포드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기계공의 길을 걸었고 청년 시절부터 자동차에 도전하였다. 그는 1896년에 자동차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 후 기술자 겸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190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포드자동차회사가 설립되었는데, 그 회사는 오늘날에도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와 함께 미국 자동차업계의 ‘빅 3’로 불리고 있다. 포드사의 급속한 성장은 ‘모델 T’에서 비롯되었다. 포드는 모델 T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나는 수많은 일반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다. 최고의 재료를 쓰고 최고의 기술자를 고용하여 현대 공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한 디자인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지만 가격을 저렴하게 하여 적당한 봉급을 받는 사람이면 누구나 구입해서 신이 내려주신 드넓은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당시만 해도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만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기술자가 힘들여 제작한 고가품으로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의미가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드는 생활필수품으로서의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의 출발점은 동일한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데 있었다. 그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핀은 다른 핀과 똑같고, 성냥 또한 그렇다. 이것은 자동차도 마찬가지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립라인 완성→작업 단순화 1908년 10월에는 검정 색상의 소형자동차인 모델 T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새로운 합금강을 사용하여 견고할 뿐만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모델 T는 825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모델 T에게 ‘틴 리치’(Tin Lizzie) 혹은 ‘플리버’(Flivver)라는 애교스러운 별명을 붙였다. 틴 리치는 ‘털터리 자동차’를, 플리버는 ‘싸구려 자동차’를 뜻한다. 포드주의의 두 기둥: 컨베이어 벨트와 일당 5달러 포드사는 1910년에 4층으로 된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공장을 신설하였다. 그것은 작업이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최신 공장이었다. 4층에서는 차체가 만들어지고, 3층에서는 바퀴에 타이어가 부착되면서 차체에 페인트가 칠해졌다. 2층에서 모든 조립이 끝난 자동차는 경사면을 따라 1층으로 내려와 최종 검사를 받았다. 모델 T의 생산대수는 1910년의 19,000대에서 1913년에는 248,000대로 크게 증가하였다. 하이랜드 파크를 건설하면서 포드는 생산과정을 연속화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당시에 그는 시카고로 여행하던 중에 푸줏간 주인이 도살한 소를 손수레로 이동시키면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부위별로 고기를 발라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포드는 유사한 기능을 가진 기계들을 그룹별로 묶어 본 후 나중에는 생산물을 중심으로 기계체계를 구성하였다. 결국 포드사의 생산과정은 1913년에 컨베이어 벨트(conveyor belt)로 연결된 조립라인(assembly line)이 구축됨으로써 완성되었다. 이에 따라 공작물이 이동하고 노동자의 작업 위치는 고정되었는데,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의 영화인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는 이러한 상황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사회부’ 만들어 노동자 생활 조사 조립라인이 완성되자 포드사의 생산성은 급속히 향상되었다. 그것은 1914년의 자동차 생산량과 노동자의 수를 비교해 보면 단번에 드러난다. 당시에 포드사에서는 13,000명의 노동자들이 26만 72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던 반면, 미국의 나머지 299개 자동차업체들은 28만 6,770대를 생산하기 위하여 66,350명의 노동자를 투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업의 단순화는 높은 이직률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하루 종일 나사를 조이는 작업만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데 무슨 노동의 즐거움이 있겠는가? 1913년 한 해 동안 포드사는 100명의 노동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무려 936명을 고용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포드는 1914년 1월 5일에 ‘일당 5달러’(Five-Dollar Day)라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하루 8시간 노동에 대하여 최소한 5달러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미국의 노동자들이 하루 9시간 일한 대가로 2.38달러를 받았으니, 포드사는 통상적인 임금의 2배 이상을 보장했던 셈이다. 포드는 이를 가리켜 “내가 한 것 중에서 가장 멋진 비용절감 운동”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와 동시에 포드사는 노동자의 규율을 확립하기 위하여 ‘사회부’(Sociological Department)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었다. 사회부는 노동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노동자의 인간관계, 경제적 여건, 생활습관 등을 조사하였다. 그것을 바탕으로 포드사의 경영진은 해당 노동자가 일당 5달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였다. 음주나 도박에 문제가 있는 노동자들은 경고를 받았고 그것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에는 해고되었다. 이러한 정책을 통해 포드사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움직임을 막을 수 있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을 자동차 고객층으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중반에 모델 T의 가격은 290달러에 불과했는데 그것은 포드사에 근무했던 일반 노동자의 3달치 봉급과 비슷하였다. 이제 일반 노동자들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포드사는 컨베이어 벨트와 일당 5달러 정책을 통해 ‘대량생산’(mass production)과 ‘대중소비’(mass consumption)의 결합을 추구하였다. 1920년대부터 미국 사회는 풍요한 경제와 모델 T를 배경으로 자동차 대중화 시대에 돌입하여 1930년에는 가구당 1대의 자동차를 보유하게 되었다. 대량생산과 대중소비를 연결하기 위한 포드사의 실험은 이후에 ‘포드주의’(Fordism)로 불렸다. 그러나 포드사의 온정주의적 정책도 경영 환경이 나빠지자 계속해서 유지될 수 없었다. 경영 환경이 악화된 이유 중의 하나는 포드사가 한 가지 차종에 집착함으로써 소비자의 새로운 기호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1924년은 포드에게 역설적인 한 해였다. 1924년은 모델 T의 생산량이 1천만 대를 넘어섰던 해이자 제너럴 모터스에서 시보레(Chevrolet)가 출시한 해였다. 시보레는 모델 T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신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크랭크 대신에 전자 시동장치가 부착되었으며, 무거운 톱니바퀴식 변속기 대신에 부드러운 3단 기어가 장착되었다. 시보레는 자동차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지만, 포드는 자신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검정색의 모델 T에 끝까지 집착하였다. 그는 자신의 차가 팔리지 않는 이유를 몰랐으며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포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고객은 누구나 원하는 자동차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적어도 그것이 까만 색깔인 한.” “까만 차가 아니면 차가 아니다” 포드사의 상대적 쇠퇴와는 별도로 포드주의는 오랫동안 호평을 받았다. 예를 들어 공상과학소설의 백미로 평가되는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현대사회에 ‘A.F.’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After Ford’의 약칭으로서 포드가 현대사회를 건설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사실상 자본주의 경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고도 전례 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했으며, 거기에는 포드주의의 확립과 확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포드주의는 상당한 위기를 맞이하였다. 포드주의는 소비자의 수요가 다양화되는 추세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막대한 설비투자나 임금의 상승과 결부되어 자본의 수익성을 감소시켰던 것이다. 게다가 노동조합의 성장과 노동운동의 강화를 배경으로 포드주의는 노동을 비(非)인간화하는 상징으로 간주되어 극렬한 저항에 직면하였다. 결국 포드주의는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급속히 쇠퇴하였고 다양한 형태의 ‘포스트 포드주의’(post Fordism)가 모색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송성수/부산대 교양교육원 조교수·과학기술학 triple@pusan.ac.kr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156986.html 접속일: 200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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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포스트포디즘 논쟁: 몇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 김명진

포스트포디즘 논쟁: 몇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이 글은 1980년대 이후 기존의 주류적인 대량생산(mass production)방식을 대체할 것으로 각광받아 온 '새로운' 생산방식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이 '새로운' 생산방식은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포스트포드주의(Post-Fordism), 일본적 생산방식, 팀 생산방식, 도요티즘(Toyotism)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새로운' 생산방식은 1960-70년대의 일본에서 몇몇 기업들을 중심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후 80년대 이후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의 성격과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새로운' 생산방식에 대한 논쟁에서 드러난 몇 가지 쟁점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서 이로부터 약간의 함의를 도출해 내려 한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세 권의 책을 선택하여 이들의 입장을 상호비교하는 방식으로 글을 풀어나가 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세 권의 책에 대한 주제서평의 형태가 되는 셈이다. 세 권의 책은 다음과 같다: James P. Womack, Daniel T. Jones and Daniel Roos,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 (MacMillan, 1991) [국역: 현영석 역, 『생산방식의 혁명』(기아경제연구소, 1991)], Mike Parker and Jane Slaughter, Choosing Sides: Unions and the Team Concept (Labor Notes Book, 1988) [국역: 강수돌·이호창·강석재·김종환 역, 『팀 신화와 노동의 선택』(도서출판 강, 1996)], 이영희 저, 『포드주의와 포스트 포드주의』(한울, 1994). 국내에 이미 상당수의 연구서들이 편저의 형태로 나와 있음에도 이 세 권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① 각각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과 연구방법에 입각해서 '새로운' 생산방식을 바라보고 있으며, 때로는 뚜렷하면서도 때로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종종 다른 책에서 주장한 내용을 서로 언급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입장의 비교가 용이하다. ② 이 세 권의 책은 경영학 전공자, 사회학 전공자, 현직 노동운동가에 의해 각각 씌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생산방식을 바라보는 여러 분야의 입장을 다양하게 접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③ 이 세 권의 책은 편저가 아니라 자동차산업을 분석대상으로 하는 단일 연구서(monograph)의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책 전체를 통해 저자들의 입장이 일관되게 전개되므로 이들의 입장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용이하다. 아래에서 필자는 먼저 각각의 책의 논지를 간략하게 요약한 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의 논점을 잡아 저자들의 입장차이를 정리해 보고 결론부에서는 필자의 입장을 한두 가지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 * * * 먼저 『생산방식의 혁명』(아래에서는 『생산방식』으로 줄여 쓴다)을 보자. 이 책은 MIT 경영학과에서 발주한 프로젝트인 국제자동차산업 연구프로그램(IMVP)의 연구보고서로서 1991년에 출판되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들의 입장은 간단명료하다. 이들은 20세기 초에 수공업적 생산방식을 대량생산방식이 대체했던 것처럼, 현재의 시기는 대량생산방식을 새로운 린 생산방식이 대체해 나가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기존의 대량생산방식은 부품조달이나 재고관리, 신제품개발, 기업경영의 측면에서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반면, 새로운 린 생산방식은 생산성의 제고와 효율의 극대화,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시장상황에의 적응, 다기능화를 통한 노동자들의 직무만족도 상승이라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생산방식이다. 린 생산방식은 단순히 공장 안에서의 변화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부품조달 하청업체와의 관계, 자금조달방식, 신제품개발 팀의 인적 구성과 운영, 판매방식의 변화 등 기업운영의 모든 측면에 미치는 것이다. 저자들은 린 생산방식이 (그것이 생겨난 지역적 장소인) 일본에 고유한 사회특성들의 결과로 가능해진 것이라는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린 생산방식에 관한 한 주된 연구대상이 일본 기업들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린 생산방식이 갖는 '보편적 성격'에 초점을 맞춘다. 즉, 린 생산방식은 '또하나의' 생산방식이 아니라 생산방식의 진화과정에서 수공업적 생산방식과 대량생산방식의 뒤를 잇는 중요한 '역사적 단계'의 지위를 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이들은 대량생산방식에서 린 생산방식으로의 단계 전환이 효율 면에서 불가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인간화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것이라는 함의를 이끌어 낸다. 이들에게 있어서 린 생산방식은 여러 가지 장애물들을 제거해 가면서라도 하루빨리 확산시켜야만 하는 당위이자 절대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팀 신화와 노동의 선택』(아래에서는 『팀 신화』라고 줄여 쓴다)의 저자인 파커와 슬로터는 입장을 달리한다. 이들은 GM과 도요다의 미국 내 합작공장인 NUMMI의 사례를 주로 들면서 노동운동가의 입장에서 본 '팀 방식' - 이 당시에는 아직 린 생산방식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 의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흥미롭게도) 팀 방식의 '보편성' - '일본화'와는 반대되는 의미에서 - 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들이 파악하는 팀 방식의 보편적 성격은 앞서 『생산방식』의 저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팀 방식의 '우월성'과는 관계가 없다. 이들이 보기에 팀 방식은 "모든 나라의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위해 만국의 경영자들이 서로 앞다투어 채택하고 있는 '경영 관리' 기법"(『팀 신화』, p. 52)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들은 팀 방식을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라고 이름짓는다. 이들에 따르면 팀 방식의 높은 생산성과 효율은 생산방식이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원리(내지는 '철학')에 입각해서가 아니라, 생산체계 내의 모든 지점들에 물리적·사회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가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부품을 적시에(Just-In-Time) 조달하며 세부 작업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결국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방식은 전통적인 생산방식에 대한 혁신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설치되었던 완충 장치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오히려 전통적 방식을 가장 극단까지 밀어붙인 결과라고 이들은 결론내린다. 이어 이들의 논의는 생산현장 내에서 노동조합이 어떻게 팀 방식의 확산과 이에 따른 노동강도의 강화에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로 초점이 옮아가고, 마지막에는 몇 가지 실천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것으로 책을 끝맺고 있다. 앞의 두 책에 비해 볼 때, 『포드주의와 포스트포드주의』(아래에서 『포드주의』로 줄여 쓴다)는 좀더 본격적인 연구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선 이 책은 앞의 두 책과는 문제설정의 지점을 달리한다. 구체적인 입장을 어떻게 취하고 있는가와는 별도로 '과거와는 <다른> 생산방식의 광범한 도입'이라는 거시적인 문제설정에 일단 동의하고 있는 앞의 두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그런 식의 문제설정이 한계를 안고 있음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포드주의, 유연전문화론 등의 거시적인 개념틀들이 실제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사례연구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지 못하므로 이를 검증하기 위해 개별 공장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한 미시적 연구가 필수적임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문제설정과 포스트포드주의 논의에 대한 일반적 서술, 연구방법론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는 3장까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분량을 현대자동차, 도요다자동차, 볼보자동차의 비교연구에 할애한다. 이들 기업들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환경과 개별작업장 내에서의 미시적인 '생산의 정치'가 어떻게 각 기업들 내에서 특정한 생산체계를 정착시키게 되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포스트포드주의'라는 거시적인 개념틀의 유효성을 점검해 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전략이다. 그 결과로 도출된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먼저 도요다자동차의 생산체계를 전통적인 포드주의적 생산방식과 단절한 '포스트'포드주의로 파악하는 것은 명백한 오해라는 점이다. 저자가 보기에 도요다자동차의 경우,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는 컨베이어벨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 여전히 '규모의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숙련의 배제에 기반한' 다능공화(多能工化)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 자율권의 행사가 생산효율성의 측면에서만 형식적으로 부여되고 있다는 점 등으로 판단컨대, 전통적 생산방식과의 단절로 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컨베이어벨트의 폐기, 직무의 통합, 더 넓어진 노동자의 자율권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볼보의 우데발라 공장과 같은 경우를 포드주의적 원리들로부터 명백히 벗어난,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한 전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 * * 이상의 요약으로부터 세 책의 저자들이 취하고 있는 입장의 차이가 어느 정도는 드러났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제 네 가지 정도의 논점을 중심으로 해서 저자들간의 입장의 차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면서 이러한 입장의 차이들이 생겨난 원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1) '포스트-', 즉 '연속'과 '단절'의 문제 우선 세 책의 필자들은 '새로운' 생산방식을 지칭하기 위해 각기 다른 용어 - 린 생산방식, 팀 생산방식(혹은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포스트포드주의 - 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 용어선택 속에 '새로운' 생산방식이 무엇을 넘어섰는지, 혹은 무엇을 넘어서지 못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먼저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대량(mass)'이라는 말에 대한 반대의 의미로 '작은(lean)'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린 생산방식은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대량생산방식에 대해 대안적인 생산방식으로 제출된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이들은 이런 의미에서 린 생산방식이 과거의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 - 이들은 포드주의라는 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듯하지만 - 을 '넘어선(post-)'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모두 이러한 단절을 인정하지 않는다. 『팀 신화』에서는 린 생산방식이 과거의 생산체계는 온존시킨 채 단순히 관리기법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 보며, 『포드주의』에서는 팀 방식을 도요다자동차에서의 그것(=린 생산방식)과 볼보 우데발라 공장에서의 그것으로 나누어 후자만을 포스트포드주의적인 것으로 인정한다. 왜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빚어졌을까? 물론 이를 간단히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반영한 결과'라고 말해 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필자는 이보다 좀더 정교한 설명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보기에 관점의 차이를 빚어낸 결정적인 요인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비롯된다.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량생산방식의 핵심은 ... 이동식 조립공정이 아니라 부품의 완전하고 일관된 호환성과 부품장착의 용이성이다."(『생산방식』, p. 50) 물론 부품의 호환성이 대량생산방식의 구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대량생산방식은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테일러주의적인 직무세분화와 정교한 시간-동작연구와는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반면,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즉 이들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이 직무세분화와 구상과 실행의 분리, 그리고 중앙집중적 통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여전히 근본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린 생산방식은 결코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넘어선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포드주의』의 저자는 도요다자동차의 작업조직이 노동자의 다능공화 원칙을 도입하긴 했지만, 이는 여전히 직무의 세분화에 근거한 가운데 그것의 수평적 확장을 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테일러주의의 원칙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린 생산방식은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의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결코 포드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2) '보편'과 '특수'의 문제 린 생산방식이 대량생산방식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생산방식이라는 주장에 대해 주어졌던 (경영자측·노동자측 양측 모두의) 일반적인 반응은, 그것이 '일본'이라는 특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이런 점을 특히 강조하는 이들은 '일본적 생산방식'이나 '일본화(Japan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생산방식』과 『팀 신화』의 저자들은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특수'의 측면을 강조하는 이러한 주장에 서로 다른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 이들은 린 생산방식이 일본의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출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생산방식의 핵심을 몇 가지의 원리나 요소들로 추려낼 수 있으며, 이러한 원리나 요소들이 일본과는 다른 사회문화적 배경 하에서도 도입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성공적으로' 도입되었다고 본다는 점에서는 일단 공통적이다 (이들은 모두 앞서 언급한 NUMMI의 사례를 공통적으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으로부터 이끌어내는 함의는 서로 다르다. 『생산방식』의 저자들의 경우에는 "따라서 하루빨리 이 생산방식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라는 식의 결론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팀 신화』의 저자들은 '일본화'에 대한 논의가 일본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에 기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영 주도의 효율성 향상'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흐려 그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특수의 측면에 대한 강조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러나 『포드주의』의 저자는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 개별사례 연구를 통해 '포스트포드주의'라는 거시적 패러다임의 유효성을 검증하겠다는 그의 입장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특정한 공장에서 어떤 생산방식이 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특수한 환경뿐만 아니라 개별 공장 내에서의 노사관계의 성격, 경영측과 노동측이 각각 취하는 전략 등의 다양한 요인들이 개입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입장을 따르자면 도요다 공장에서 정교화된 린 생산방식을 몇 개의 원리들의 묶음으로 치환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원리들의 묶음이 다른 공장에서 도입될 때에도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다. 필자는 『포드주의』가 취하는 이러한 입장이 현상을 설명해 내는 틀로서는 물론이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의 능동적인 실천을 보장해 준다는 면에서도 앞서의 거시적인 논의들보다 좀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러한 입장은 "일본 내의 일부 공장들은 특별히 '린'하지도 않으며, 북미의 많은 공장들이 린 생산방식의 실현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생산방식』, p. 126)는 『생산방식』의 저자들의 주장을 오히려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일부 공장에서 '앞선' 린 생산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뒤처져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앞서 언급했던 다양한 거시·미시적 요인들이 공장마다 차이를 보여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좀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3) '노동의 인간화' 문제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린 생산방식이 생산성 및 효율의 제고와 노동의 인간화라는, 일견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우월함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자면 이들은 린 생산방식의 구현 속에서 상반되는 가치들 사이의 '최적화(optimalization)'가 달성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흔히 선전되는 바와 달리, 린 생산방식 속에서는 현장노동자에게로 책임의 광범한 이양이 이루어지거나 하지 않으며, 도리어 수평적 직무확대로 인한 노동강도의 강화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팀 신화』의 저자들은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하에서 노동자들은 오히려 일상적인 물리적·심리적 스트레스 하에 시달리게 된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직무확대 내지는 다기능화가 반드시 직무만족으로 이끌리는 것은 아님을 여러 가지 경우를 들어 언급하고 있다 (『팀 신화』, pp. 229-232). 아울러 『팀 신화』의 저자들은 '팀 내부의 협동작업에 대해 노동자들이 대체로 만족감을 표시한다'는 주장을 공격한다. 이들에 따르면 작업이 막 시작되어 라인이 제속도를 내며 돌아가기 전까지는 불균등한 작업이 이루어지므로 노동자들간의 자발적인 상호협력이 가능한 반면, 라인이 완전히 제속도로 일단 돌아가기 시작하면 상호협력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결국 진정한 팀 워크란 불가능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팀 신화』, p. 126). 『포드주의』의 저자 역시 수평적 다기능화가 직무만족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볼보 우데발라 공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직무의 통합과 자율성의 확장이야말로 인간적 노동으로 향하는 길임을 주장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생산방식』의 저자들이 이러한 비판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린 생산방식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결국 '스트레스에 의한 관리' 기법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대해, 이들은 그것을 스트레스가 아닌, '지속적인 도전' 내지는 '창조적 긴장감'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어 이들은 볼보 우데발라 공장의 '실험'을 '신장인주의'라고 명명하면서, 이런 생산방식이 직무만족도를 높여 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산성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생산방식』, pp. 142-146). 이상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은 분명히 특정한 가치의 개입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판단컨대, 단순작업을 하면서도 생산라인에 좀더 몰입하도록 강제하는 린 생산방식이 노동자들에게 '지속적인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경영자측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듯하다. 마찬가지로 우데발라 공장의 실험이 생산성이나 효율의 측면에서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은 결국 노동의 인간화보다는 생산성과 효율을 더 상위의 척도로 놓은 결과가 아닌가라는 반박을 피해가기 어렵다. 결국 필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생산성 및 효율의 극대화와 노동의 인간화 모두를 만족시키는 어떤 최적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이 둘 사이의 대립은 서로 상이한 가치들 사이의 대립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4) '생산성'과 '효율'의 문제 지금껏 줄곧 서로 분명하게 다른 입장을 보여 왔던 세 책의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효율'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입장을 같이한다. 즉, 린 생산방식은 분명히 여타의 생산방식에 비해 보았을 때 생산성과 효율의 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책의 저자들은 높은 생산성과 효율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두고서는 역시 서로 입장을 달리한다. 『생산방식』의 저자들은 린 생산방식이 생산성의 면에서 뛰어난 이유를 이전의 대량생산방식과 결별한 지점에서 찾는다. 즉, 한마디로 말하자면 린 생산방식은 '포스트포드주의'이기 때문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3)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린 생산방식이 생산성 및 효율과 (포드주의적 대량생산방식 하에서는 달성되지 못했던) 노동의 인간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생산방식이라는 이들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팀 신화』와 『포드주의』의 저자들은 입장을 달리한다. 이들은 린 생산방식이 결코 대량생산방식과의 결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기본인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린 생산방식의 높은 생산성은 오히려 대량생산방식의 '빈 곳'을 공략하여 그것을 극단적으로 합리화시킨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한다. 노동의 관점에 볼 때, 이는 곧 노동강도의 강화와 스트레스의 배가를 의미한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이들 중 특히 『포드주의』의 저자는 유연적 포드주의로서의 도요다자동차와 포스트포드주의로서의 볼보 우데발라 공장을 대비시키면서, 도요다의 높은 생산성은 결코 '포드주의를 넘어선' 요소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이에 덧붙여, 우데발라 공장의 생산성이 전통적인 포드주의적 공장들에 비해 보았을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높은 수준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우데발라 공장의 생산성이 린 생산방식을 적용한 도요다의 그것에는 확실히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면서 노동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의 '실험'의 전망이 상당히 암울할 것이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이러한 그의 예측은 볼보자동차의 경영합리화의 결과, 우데발라 공장이 문을 연 지 3년만에 폐쇄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 * * 지금까지 부족하나마 세 권의 책을 중심으로 해서 린 생산방식과 포스트포드주의에 대한 몇 가지 논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 위에서 정리한 것이 각각의 책들에서 주장한 핵심적 내용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은 못된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생산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서 첨예하게 제기되는 몇 가지 지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립구도가 명확해진 듯하다. 필자는 이 대립구도를 근거로 해서 이제 몇 가지 '확실해'졌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맺을까 한다. 아래에서 필자의 주된 관심은 노동의 인간화 쪽에 맞추어질 것이다. 먼저, 린 생산방식으로 흔히 알려진 '새로운' 생산방식이 전례없이 높은 생산성과 효율을 성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포드주의적 요소들로부터의 일탈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어느 정도 분명해진 것 같다. 즉, 흔히 받아들여지는 생각과는 달리 린 생산방식과 포스트포드주의는 서로 친화도가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는 포드주의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소의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포드주의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그것의 핵심적 요소가 무엇일지는 자명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린 생산방식은 생산성 및 효율과 노동의 인간화의 대립을 중개하면서 이 둘을 최적화하는, 그런 '환상적'인 생산방식이 아니라는 점 역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결론일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서 필자는 과연 생산성(및 효율)과 노동의 인간화가 양립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오래된 논쟁에 새로이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점을 잠시 접어둔다면, 적어도 이 둘을 서로 이질적인 가치체계의 대립으로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진 것 같다. 즉, 이 중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의 논리나 언어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데발라 공장에서 있었던 포스트포드주의적 실험의 예를 다시 상기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우데발라 공장은 경직적 포드주의에서 성취한 정도의 생산성과 대단히 높은 수준의 직무만족을 동시에 이끌어 냄으로써, 앞서의 오랜 논쟁에 출구를 마련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장인적 생산방식을 도입한 우데발라 공장이 포드주의적 공장의 극단적 합리화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는 도요다 공장의 생산성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팀 방식』의 저자들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첨예한 국제 경쟁의 시대에 생산성과 효율의 향상으로 얻은 비교우위는 모방에 의해 금방 상쇄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만약 저항이 없다면 린 생산방식은 지역적으로 분명 확대될 것이고, 그 결과 결국 포스트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가장 극단화된 형태의 린 생산방식과 생산성의 면에서 경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린 생산방식에 의한 '최적화'가 노동의 인간화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노동의 인간화를 성취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한 미시적·지역적 실천에서 도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볼 때, 그 미시적인 실천은 자본의 다국적화라는 현상 앞에서 상대적으로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다소 암울한 예측이 앞서의 결론에 따라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여기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지구화(globalization)의 경향 속에서 지역적(local)인 실천이 가질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지점이 될 것 같다. 필자는 『팀 신화』와, 같은 저자들이 지은 Working Smart: Unions' Response to Participation Program and Reengineering(1994)과 같은 저서들이 내놓은 구체적 방안들이 이러한 지점에 있어 상당히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팀 신화』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들은 최근에 린 생산방식의 확대와 관련하여 북미 지역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개관해 주고 있는데 이들 사건들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고 생각되며, 린 생산방식의 미래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http://myhome.naver.com/walker71/postford.htm 접속일: 200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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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0세기를 나른 컨베이어벨트/김성희

[경제] 20세기를 나른 컨베이어벨트 포드사 창립 100주년을 맞아 돌아본 포드주의…철저한 분업과 노동통제로 저항 부르기도 자동차 생산의 살아 있는 역사인 포드자동차가 6월16일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창업자인 헨리 포드는 1903년 디트로이트에서 자본금 10만달러와 노동자 12명으로 포드사를 설립해, 1908년 세계 최초의 대중차를 생산하면서 자동차 대중화 시대와 함께 내구 소비재의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를 열었다. 헨리 포드는 큰 성공과 작은 실패를 여러번 경험한 뛰어난 사업가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삶과 포드사의 부침의 역사는 20세기 자본주의의 흐름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포드주의(Fordism)라는 말이 생산방식과 노동편성 방식, 나아가 자본주의 경제순환 방식을 특징짓는 이름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세기는 포드주의의 생성, 발전, 변형 또는 소멸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로 특히 그가 파격적으로 지급한 ‘일당 5달러’는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기인 전후 황금기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생산할 당시 자동차는 장인 노동자의 숙련노동에 의존해 주문 제작하는 고가의 사치품으로 ‘말 없는 마차’에 불과했다. T형 포드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1908년 당시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자동차 값은 평균 2천달러 정도였다. 그러나 포드는 825달러에 팔았다. 그 후 가격을 300달러 이하까지 낮췄다. 포드는 어떻게 싼값으로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었을까? 헨리 포드가 착안한 것은 노동자가 작업대에 가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물이 이동하여 정해진 위치에 있는 작업자들에게 흘러가는 컨베이어벨트였다. 이전까지 자동차는 장인들의 수공 조립품이었다. 포드는 이동 조립라인을 통해 단기간의 훈련을 거쳐 생산현장에 투입되는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를 고용해 낮은 비용으로 높은 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컨베이어벨트가 활용되려면 작업자 한 사람마다 과업이 구분되도록 분업화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이 표준화·단순화되어야 한다. 당시 작업 과정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하는 과학적 관리 기법이 테일러에 의해 시도되고 있었다. ‘시간동작 연구(time and motion study)’로 불리는 테일러주의는 집고 들고 걷고 구부리고 맞추는 작업 동작을 ‘초시계’로 측정해 반복작업을 표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능력을 향상시켰다. 테일러식 노동분업과 과학적 관리의 원리는 포드의 컨베이어벨트라는 기계적 생산시스템과 결합하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극단적 분업과 기계속도에 의해 통제되는 단순반복적 노동으로 표준제품을 만들고, 이에 따라 싼 가격으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테일러주의는 노동자들이 관습과 경험으로 체득한 작업관련 지식을 모두 빼내 공장의 시간동작연구실로 옮겨 와 관리자의 손에 집중시켰다. 이제 노동자는 관리자의 손에 독점된 노동과정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된 작업지시서에 따라 일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해리 브레이버만은 1974년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테일러주의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노동분업으로 인해 노동자는 탈숙련화되어 더 이상 두뇌노동이 필요없이 손노동만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헨리포드는 보통 노동자의 임금이 일당 2, 3달러이고 10시간 노동제이던 1914년 8시간 노동에 일당 5달러라는 파격적인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한다. 헨리 포드가 박애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럼, 왜 헨리 포드는 파격적인 임금을 노동자에게 주었는가? 노동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우다 현대 경제학의 한 조류에서는 이를 효율임금가설로 해석한다. 주어진 생산성 수준에서 되도록 낮은 임금으로 고용한다는 효율성의 원리를 뒤집어, 높은 임금을 주어 노동자의 사기와 헌신도를 높여 더 높은 생산성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헨리 포드는 효율임금론이 등장하기 전에 이를 먼저 실천했다. 강화되고 단조로운 노동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결근율은 75%나 감소했고 이직이 줄었다. 고임금에도 불구하고 산출물 단위당 노동비용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고임금의 효과만은 아니다. 오히려 포드는 전과자로 구성된 구사대를 동원했고, 생산현장에 T형 포드자동차 대수보다 더 많은 헨리 포드의 첩자를 뒀다고 한다. 작업현장의 주류판매 금지, 성적 타락 금지 등의 노동규율도 강요했다. 헨리 포드의 사고에는 고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할 이유가 없다는 가부장적 노사관계관이 깃들어 있다. 포드주의 생산방식에 구현된 이런 강화된 노동규율은 이후 포디즘의 해체를 가져오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대량생산이 개화함으로써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그러나 대량 생산된 내구재를 대량으로 소비해 줄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재생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드의 일당 5달러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비싼 내구소비재에 대한 구매력의 원천이었다. 생산성 증대로 인한 이득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상대적 고임금으로 지급해 돌려준다면 내구소비재의 대량소비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성장의 호순환 구조인데, 일당 5달러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자본주의 황금기(Golden Age)를 떠받든 하나의 지주가 된다. 축적체제로서 포드주의는 노동조합의 역할을 인정해 고도성장의 과실을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방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포드는 대량생산 방식을 통한 생산성 이득을 노동자에게 고임금으로 배분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고임금이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을 떠받드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개혁좌파(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몫이 되었다. 전후의 주도권을 발휘한 사민주의 정당들의 정책을 통해 대량생산 방식으로서 포드주의는 대량소비를 뒷받침하는 복지국가와 케인즈주의 거시경제 관리와 함께 자본주의 황금기를 일구어낸 중심축이 된다. 그러나 60년대 후반 포디즘에 구현된 테일러주의의 극단적인 분업과 단순반복적 작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어 결근율이 다시 높아졌다. 포드주의 작업장에 대한 불만도 치솟았다. 노동자들은 ‘공장 문 앞에 멈춘 민주주의를 공장 안까지’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장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서기에 이른다. 유럽을 휩쓴 68운동의 혁명적 분위기와 미국의 반전운동의 기운에 힘입어 노동자들은 경제적 분배 정의의 요구를 넘어 인간화된 작업장을 실현하라는 산업민주주의의 요구를 분출시켰다. 생산방식이자 노동편성 방식으로서의 포드주의는 극단적인 분업과 기술적 합리성에만 의존하여 노동의 인간화 요구를 무시했기에 노동자들의 불만과 집단적 저항의 표적이 되었다. 이런 내적 한계로 인해 포드주의는 70년대 들어 고도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고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다품종 소량생산과 포드주의의 몰락 헨리 포드는 자신의 성공을 가져온 단순한 디자인 T형 자동차를, 그것도 검은 색만 고집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20년대에 GM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헨리 포드의 이런 경직적 태도로부터 힌트를 얻었을 법한 포드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등장했다. 전용기계를 사용하고 반숙련·미숙련 노동자를 활용해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으로서 포드주의는 소비자 기호가 다양해지고 품질과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맞지 않는 경직적 체계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탈포드주의(post-fordism)와 유연화(flexibilization) 주장은 포디즘의 몰락을 확인한 이론적 성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직적’ 노동의 몰락만이 아니라 노동권 자체의 쇠퇴를 가져온 출발점이 되었다. 독점기업의 고도성장 과실을 노동자에게 배분한 포드주의는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했지만, 비인간적이고 통제 위주인 노동편성의 한계로 인해 노동자의 저항을 받아 내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다국적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시대에 경직적 체계인 포디즘의 효용성은 상실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황금기를 이끈 포디즘의 저력은 일당 5달러라는 노동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함께 신화로서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생명력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포드사는 자동차 생산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100대 기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김성희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경제학 박사 출처: http://www.hani.co.kr/section-021011000/2003/06/021011000200306250465050.html 접속일: 2006.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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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성쇠/김형기

<참여연대 ‘참여사회아카데미’ 특별기획 강좌 강의 1999. 6. 8>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성쇠 -자본주의 황금시대와 그 종언- 김 형 기(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1. 머리말 20세기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대표적 키워드 중의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면 포디즘(Fordism)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포디즘이란 용어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의 이름과 그의 새로운 경영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학적 관리의 원조인 테일러(F. Taylor)에 이어 포드는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생산방식과 경영방식을 도입하여 자본주의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포디즘은 미시적인 생산체제 수준에서 정의되기도 하고 거시적인 축적체제 수준에서 정의되기도 한다. 미시적 수준에서 사용할 때 포디즘은 과학적 관리인 테일러주의(Taylorism)에 컨베이어 시스템(conveyor system)을 결합시킨 대량생산체제(mass production system)이고, 거시적 수준에서 사용할 때 포디즘은 19세기 자본축적 방식과는 구분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결합에 기초한 축적체제(accumulation regime)이다. 나아가 포디즘은 경제, 정치, 문화를 포괄하는 사회구성체 차원에서 19세기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20세기 자본주의 발전모델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포디즘을 미시적 생산체제와 거시적 축적체제를 포함하는 발전모델로서 사용한다. 그리고 20세기 자본주의의 특성을 포디즘적 발전모델로 파악한다. 포디즘적 발전모델은 포드가 T형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위한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한 1913년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이 확립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이다. 자본주의는 이 포디즘적 발전모델을 통해 2차 대전 이후 30년 동안 이른바 ‘황금시대’(Golden Age)를 누린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다름 아닌 이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위기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의 위기와 함께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성쇠는 바로 자본주의의 성장과 위기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의 현대자본주의의 성장과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성립과 위기 그리고 해체의 과정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고찰 과정에서 우리는 포디즘적 발전모델이 인간의 삶의 질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리고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서로 다른 길을 검토하고, 포디즘의 성공과 실패가 주는 교훈을 알아보고자 한다. 2. ‘발전모델’ 분석을 위한 개념들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특징을 논의하기 전에 먼저 발전모델을 분석하기 위한 주요 개념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발전모델이란 개념은 주로 프랑스의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에서 자본주의 유형 분석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발전양식이라고도 한다. 조절이론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위기, 그리고 자본주의의 가변성과 다양성을 해명하기 위한 몇 가지 개념들을 개발하였다.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한 조절이론의 기본개념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발전모델(development model)은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이 결합된 것을 지칭한다. 축적체제(accumulation regime)란 사회적 생산물이 소비와 투자로 배분되는 체제, 생산과 수요가 연계되고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이 연계되어 거시경제적 순환이 지속되는 체제를 말한다. 따라서 축적체제란 일정기간동안 안정된 거시경제적 규칙성을 말한다. 거시적 수준의 축적체제속에는 미시적 수준의 생산체제(production system)가 포함되어 있다. 생산체제에는 노동과정과 노사관계가 주요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자본에 의한 임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축적체제는 적대성을 가지기 때문에 부단한 대립과 갈등을 야기한다. 또한 무정부적인 시장경쟁을 통한 자본축적이 이루어지는 축적체제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조절양식(mode of regulation)은 이러한 축적체제에 규칙성을 부여하는 메카니즘의 총체를 말한다. 축적체제의 규칙성은 다양한 형태의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실현된다. 조절이론에서는 제도를 기본적으로 경제주체들간의 투쟁과 경쟁을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제도는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계급투쟁과 자본가간의 경쟁의 산물이다. 동시에 제도는 경제주체들의 행동 즉 투쟁과 경쟁에 제약을 가한다. 제도가 부과하는 강제적 질서는 개인의 행동에 체현된다. 이렇게 되면 개인들은 제도가 부과하는 질서에 따라 행동하게 되므로 축적체제는 규칙성을 가지고 유지된다. 한 사회의 관습과 규범도 제도형태에 영향을 미친다. 자본주의의 기본적 제도형태에는 임노동관계, 화폐형태, 경쟁형태, 국가형태, 국제체제에의 편입형태 등을 들 수 있다. 임노동관계는 노동력의 사용과 재생산을 규정하는 조건들을 말한다. 화폐형태는 본위제도를 포함한 화폐신용관계를 말한다. 경쟁형태는 자본간 경쟁의 존재형태와 시장구조를 말한다. 국가형태는 국가개입의 형태와 사회경제정책의 성격을 말한다. 국제체제에의 편입형태는 세계시장과의 관계 혹은 국제분업에서의 위치를 말한다. 이 제도형태들중 임노동관계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이러한 제도형태를 통한 조절에 의해 축적체제가 유지되고 자본주의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절양식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발전모델을 주도하는 사회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계급 혹은 계층의 이익을 접합시키는 정치적 타협을 해야 한다. 여기서 주도계급을 중심으로 한 계급동맹 혹은 계층연합이 형성된다. 이와 같이 하나의 발전모델을 주도하는 사회계급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계급동맹 혹은 계층연합을 헤게모니 블록(hegemonic bloc)이라 한다. 헤게모니 블록은 지배계급의 이해와 피지배계급의 이해의 일부를 접합시킴으로서 발전모델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때 축적체제는 헤게모니 블록에 참가하는 계급 혹은 계층의 이해를 보장해야 한다. 어떤 특정한 발전모델을 가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배적인 가치관 및 세계관을 사회 패러다임(societal paradigm)이라 한다. 사회 패러다임은 헤게모니 블록을 향해서 무엇이 정당한 이익인가를 가려주는 판단기준이 된다. 하나의 발전모델에는 그것에 적합한 사회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 패러다임의 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따라서 사회 패러다임은 사람들의 관습과 규범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 패러다임은 제도형태와 함께 조절양식의 내용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가 된다. 이와 같이 축적체제, 조절양식, 제도형태, 헤게모니 블록, 사회 패러다임 등의 요소들의 총체를 발전모델이라 한다. 따라서 발전모델이란 광의로 보면 경제, 정치, 문화 등을 포괄하는 사회구성체 수준의 개념이다. 협의로 보면 발전모델은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을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이제 발전모델을 구성하는 각 요소들간의 관계를 보면 <그림 1>과 같다. 발전모델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는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이다. 축적체제에는 경제주체들간의 투쟁과 경쟁이 직접적으로 작용하고 제도형태는 축적체제의 구성요소임과 동시에 제약요소이다. 제도형태와 관습 및 규범은 조절양식의 내용을 구성한다. 제도형태는 경제주체들간의 투쟁 및 경쟁 그리고 사회의 관습 및 규범의 산물이다. 역으로 경제주체들의 투쟁 및 경쟁 그리고 사회의 관습 및 규범은 제도형태에 의해 제약을 받거나 영향을 받는다. 경제주체들간의 투쟁과 경쟁 속에서 특정한 헤게모니 블록이 형성된다. 헤게모니 블록은 제도형태의 형성과 경제주체들의 투쟁과 경쟁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 패러다임은 관습 및 규범과 제도형태의 형성에 작용한다. <그림 1> 발전모델의 구성 요소들 ??????????????? ??????????????? ?헤게모니 블록?←?????????????사회 패러다임? ??????????????? ??????????????? ? ?????????????????????????????? ? ???????????? ???????????? ???????????? ?투쟁?경쟁???→? 제도형태 ?←???관습?규범? ???????????? ???????????? ???????????? ? ????????????????????????????? ? ? ? ? ? ???????????? ???????????? ? 축적체제 ?와 같이 나타낼 수 있다. 한편 고생산성이 고임금 지급으로 연결되고, 고임금이 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하고, 대량소비가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고생산성은 고이윤을 가져오고 고이윤은 고투자를 유발하여 대량생산을 지속시킨다. 다른 한편 대량소비는 고투자를 유발하고 고투자는 고생산성을 실현하여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고투자는 대량소비와 함께 직접적으로 대량생산을 뒷받침하는 총수요를 형성한다. 이와 같이 ‘고투자-고생산성-고이윤-고임금’을 통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결합되는 호순환이 이루어져서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포디즘적 축적체제를 ‘내포적 축적체제’라 한다. <그림 2> 포디즘적 축적체제의 거시경제적 회로 ???????????? ???????????? ? 대량생산 ?? 고임금 ? ???????????? ???????????? 포디즘적 축적체제의 바탕에는 포디즘적 생산체제가 있다. 포디즘적 생산체제의 특징은 대량생산체제(mass production system)이다. 전용기계 중심의 기계화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단일 품종 혹은 소품종의 대량생산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저비용을 추구하려는 것이 대량생산체제의 생산전략이다. 포디즘적 대량생산체제에는 포디즘적 노동과정이 존재한다. 포디즘적 노동과정은 간단히 ‘테일러리즘+기계화’로 요약될 수 있다. 테일러리즘(Taylorism)은 테일러(F. Taylor)가 주창한 과학적 관리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 육체노동의 단순화, 위계적 노동통제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노동과정 혹은 작업조직을 말한다. 테일러리즘의 요체는 생산을 구상하는 사람과 생산을 실행하는 사람간의 분리에 기초하여 육체노동을 단순화하고 직무를 세분화하여 상명하달의 위계적 통제를 통해 노동강도를 높임으로써 잉여가치 생산을 증대시키려는 것이다. 테일러리즘에서는 생산현장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에서 구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엔지니어나 경영자의 업무지시에 따라 오직 세분화된 단순반복노동을 수행할 뿐이다. 생산현장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적 숙련이나 지식 혹은 창의성이 아니라 주어진 세분화된 직무를 최대한 빠른 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포디즘적 대량생산체제에서는 이러한 테일러리즘에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상징되는 기계화가 결합되어 테일러리즘의 원리가 더 철저하게 관철된다. 중간생산물의 이전이 자동화되는 컨베이어 시스템이 도입됨에 따라 작업속도가 크게 증대하여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다음으로 포디즘적 조절양식을 보자. <그림 2>의 거시경제적 회로에서 고생산성과 고임금의 연계, 대량소비와 고투자를 통한 총수요의 유지 등이 축적체제의 규칙성과 안정성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이러한 포디즘적 축적체제에 규칙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안정화시키는 제도형태는 무엇인가? 포디즘의 주요 제도형태는 임노동관계 측면에서는 단체교섭제도, 최저임금제도, 사회보장제도, 화폐형태 측면에서는 관리통화제도와 소비자신용제도, 경쟁형태 측면에서는 과점적 대기업제도와 대기업의 독점적 가격설정, 국가형태 측면에서는 케인즈주의적 재정금융정책과 복지국가, 국제체제 측면에서는 IMF-GATT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등을 들 수 있다. 단체교섭제도는 고생산성을 고임금으로 전환시켜주는 제도형태이다. 노동3권의 법적 인정과 노동조합의 교섭력에 기초한 단체교섭제도는 생산성 향상이 임금인상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해 주었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임금소득을 지지해 준다. 사회보장제도는 노동자가 실업 상태에서도 소비를 가능하게 해 주어 대량소비를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단체교섭제도와 최저임금제도, 사회보장제도는 경기변동과 노동시장 상황이 임금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력을 제한하여 노동시장을 경직화시키는(혹은 안정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관리통화제도는 정부가 통화량을 조절하여 고투자와 유효수요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소비자신용제도는 대량소비를 촉발하는 작용을 하였다. 과점적 대기업에서의 대량생산과 안정적인 시장수요 및 높은 수익성이 고투자를 지속하게 하였다. 케인즈주의적 팽창적 재정금융정책과 복지국가는 지속적 성장을 위한 유효수요를 뒷받침해 주었다. 팍스 아메리카나 아래의 IMF-GATT체제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각국은 환율을 쉽게 조정하여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포디즘적 발전모델에서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담보한 것은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계급타협이었다. 우선 기업수준에서는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측이 테일러리즘을 수용한 대신에 자본측이 생산성 연동 임금을 제공하는 노사타협이 이루어졌다. 노동편성에서의 노동측의 양보와 임금형성에서의 자본측의 양보를 통해 노사타협이 이루어졌다. 이를 포디즘적 노사타협이라 한다. 국가수준에서는 최저임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 등 복지국가의 친노동적 제도가 실시됨으로써 노동자의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동의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급타협이 이루어짐으로써 포디즘의 헤게모니 블록이 형성되었다. 이 헤게모니 블록에는 발전모델을 주도하는 대 자본가를 중심으로 중소 자본가와 신중간층 그리고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가 포함되었다. 생산성 연동 임금제, 최저임금제도, 누진세제도, 실업보험제도 등이 존재하여 포디즘적 발전모델이 구축된 사회에서는 국민의 2/3정도가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포디즘의 사회는 ‘2/3사회’라 불린다.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사회 패러다임은 어떠한가? 우선 노동과정에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당연시하는 사고를 들 수 있다. 생산현장 노동자는 작업지시에 따라 단순반복노동을 숙달되게 실행하는 것만이 요구되고, 지식을 가지거나 자율성을 가져서는 안되고 가질 필요도 없다는 사고 방식이다. 이는 현장노동자에 대해 노동과정에서의 어떠한 지적 참가(intellectual involvement)도 부정하는 테일러주의적 패러다임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소비가 미덕’이라는 소비주의(consumerism) 사고이다. 포디즘의 거시경제적 순환에서 필수적인 대량소비를 위한 사회적 요구가 ‘소비가 미덕’이라는 관념을 형성시킨다. ‘저축이 미덕’이라는 사고는 부적합한 낡은 사고로 치부된다. 이에 따라 절약 정신은 사라지고 향락과 사치 그리고 낭비를 부추기는 소비문화가 형성된다. 소비주의는 ‘소비자가 왕’이 되는 소비자 주권(consumer's sovereignty)으로 연결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기업의 조직적인 광고를 통해 소비가 조장되어 ‘소비자가 봉’이 되는 타율적 소비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국가는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을 위해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케인즈주의 관점, 국가가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국가의 사상을 제시한 비버리지(Beveridge)의 관점이 포디즘의 사회 패러다임을 구성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포디즘적 패러다임에는 포드와 케인즈와 비버리지의 사상이 혼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장지상주의는 또 다른 포디즘적 패러다임이다. 성장과 개발이 지상의 목표이고 생태계 유지와 환경보전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사회진보의 기준은 경제성장, 구매력 증대, 소비수준의 향상으로 간주된다.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소득, 더 많은 소비’를 통한 행복 추구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쾌락주의적 생산력주의’ 모델이 포디즘적 패러다임이다. 포디즘적 패러다임이 가장 전형적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미국적 생활양식’(American way of life)이라 할 수 있다. 4. ‘포디즘’의 위기와 그 원인 포디즘은 미국에서 먼저 구축되었지만 2차대전 이후 다른 선진자본주의 국가들로 확산되어 간다. 미국이 서유럽과 일본에 기술과 자본을 이전하여 산업을 재건한 마샬 플랜(Marshall Plan)이 포디즘을 확산시킨 계기였다. 포디즘적 발전모델이 구축됨에 따라 자본주의 경제는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다.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거시경제적 성과는 어떠한가? <표 1>에서 1870년이후 OECD 국가들의 경제성장 관련 지표를 보면, 국내총생산(GDP), 1인당 국내총생산, 1인 1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 고정자본 스톡 모두 1950-1973년 사이에 그 전후의 다른 시기에 비해 훨씬 높은 성장률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포디즘적 발전모델이 구축된 이후 약 30년간(1945-1974) 선진자본주의는 고도성장을 달성한다. 이에 따라 ‘고성장-완전고용-고복지’, ‘고생산성-고임금’으로 특징지워지는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도래한다. <표 1>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성장 관련 지표 연평균 성장률: % ????????????????????????????????????????????????????????????????????????????????????? 시 기 GDP 1인당 GDP 1인 1노동시간당 고정자본 스톡 GDP ????????????????????????????????????????????????????????????????????????????????????? 1870-1913 2.5 1.4 1.6 2.9 1913-1950 1.9 1.2 1.8 1.7 1950-1973 4.9 3.8 4.5 5.5 1973-1979 2.5 2.0 2.7 4.4 ????????????????????????????????????????????????????????????????????????????????????? 주: OECD 16개국 산술평균임 자료: A. Maddison, Phases of Capitalist Development, 1982, 山田銳夫, 레규라시옹 이론 1993, 講談社, 104-105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포디즘적 발전모델은 1973년 석유파동이라는 외적 충격을 계기로 위기에 빠진다. 1974년 이후 이윤률의 하락과 생산성 둔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 결과 기업의 투자활동이 위축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며 실업률이 크게 증대한다. <표 3>에서 OECD국가의 GDP, 생산성, 고용 동향을 보면 1960-1973년 시기에 비해 1973-1989년 시기가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증가율이 현저하게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 3>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생산, 생산성, 고용 추이 연평균 증가율: % ????????????????????????????????????????????????????????????????????????????????????? 구분 시기 OECD 유럽 미국 일본 ????????????????????????????????????????????????????????????????????????????????????? GDP 1960-1973 4.8 4.7 4.0 9.6 1973-1989 2.7 2.2 2.6 3.9 생산성 1960-1973 3.7 4.3 2.1 8.2 1973-1989 1.6 1.8 0.6 3.0 고용 1960-1973 1.1 0.4 1.9 1.3 1973-1989 1.1 0.4 2.0 0.9 ????????????????????????????????????????????????????????????????????????????????????? 자료: OECD, Historical Statistics, Economic Outlook, 필립 암스트롱 외, 김수행 역,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1993, 동아출판사, 350쪽에서 재인용 <표 4>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실업률 단위: % ????????????????????????????????????????????????????????????????????????????????????? 시 기 유럽 미국 일본 ????????????????????????????????????????????????????????????????????????????????????? 1961-1970 2.2 4.7 1.2 1971-1980 4.0 6.4 1.8 1981-1990 9.0 7.1 2.5 ????????????????????????????????????????????????????????????????????????????????????? 자료: European Commission, European Economy, No.63, 1997 pp.68-69 실업률은 <표 4>에서 보는 것처럼, 유럽의 경우 1960년대 2.2%에서 1970년대 4.0%, 1980년대 9.0%로 증가하고, 미국의 경우 1960년대 4.7%에서 1970년대 6.4%, 1980년대 7.1%로 증가한다. 이윤율과 이윤 몫(이윤/부가가치)은 <표 5>에서 보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황금시대인 1950, 1960년대 동안 높은 수준에 있다가 포디즘이 위기에 빠진 1970년대 이후 크게 하락한다. <표 5>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이윤율 및 이윤 몫 추이 기간 평균: % ????????????????????????????????????????????????????????????????????????????????????? 시 기 OECD 유럽 미국 일본 ????????????????????????????????????????????????????????????????????????????????????? 이윤율 1952-1959 26.8 22.6 29.3 26.7 1960-1969 26.2 17.4 29.4 48.1 1970-1979 17.8 13.3 18.4 28.5 1980-1987 13.1 13.3 12.4 14.6 이윤 몫 1952-1959 23.5 27.6 20.3 29.1 1960-1969 23.9 23.4 21.2 40.6 1970-1979 19.6 18.2 17.6 28.7 1980-1987 17.1 17.7 14.8 20.1 ????????????????????????????????????????????????????????????????????????????????????? 주: 제조업의 순이윤율과 순이윤 몫임 자료: 필립 암스트롱 외, 김수행 역,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1993, 동아출판사, <부표 1> 및 <부표 3>에서 정리 이와 같이 1970년대 이후 성장률, 생산성, 이윤율 등의 대폭적인 하락은 포디즘이 위기에 빠졌음을 말해 준다. 포디즘의 위기는 1980년대까지 지속된다. 이 위기 과정에서 포디즘은 해체되어 간다. 그러면 포디즘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자본주의에서 경제위기는 무엇보다 이윤율 하락으로 표출된다. 그렇다면 포디즘적 발전모델에서 이윤율 하락의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이윤율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나타낼 수 있다. P/K=(P/Y)?(Y/L)?(L/K) 여기서 P는 이윤, K는 자본투입량, Y는 산출량, L은 노동투입량을 나타낸다. 이윤율(P/K)은 이윤 몫(P/Y), 노동생산성(Y/L), 자본-노동비율(K/L) 이라는 세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이윤율의 하락은 ① 이윤몫(P/Y)의 하락, ② 노동생산성(Y/L)의 하락, ③ 자본-노동비율(K/L)의 상승 등의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포디즘의 위기 속에서 나타난 이윤율 하락도 이러한 세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이윤 몫은 실질임금 상승과 노동생산성 둔화로 인한 이윤압박(profits squeeze)으로 하락하였다. 유럽에서 실질임금은 1960년대 말에 큰 폭으로 상승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경우 실질임금 상승률은 1965-1967년에 2.9%이었으나 1968-1969년에 5.4%이었고, 독일의 경우 1966-1968년에 연평균 3.3% 증가했으나 1969-1970년에 9.2% 증가하였다. 이러한 노동생산성 상승을 초과하는 이러한 ‘임금폭발’은 이윤을 압박하여 이윤 몫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다음으로 노동생산성은 포디즘적 노동과정 즉 테일러리즘의 효율성 하락으로 인해 그 상승이 둔화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구상과 실행을 엄격히 분리하고 육체노동을 탈숙련시키며 위계적 노동통제를 하는 테일러리즘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과 반항이 증대함에 따라 생산성 상승의 원천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테일러리즘은 처음에는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지만, 노동자들의 교육수준 향상, 자의식 증대, 직무만족과 노동의 존엄성에 대한 욕구 증대에 따라 점차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테일러리즘에 기초한 포디즘적 대량생산체제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한편 기업간 경쟁 격화에 따른 과잉투자로 인해 자본-노동비율이 상승하였는데, 이는 이윤율을 하락시킨 요인의 하나였다. 과잉투자 혹은 과잉축적은 한편에서는 노동력 수요 증대로 임금을 상승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잉설비를 초래하여 이윤율을 하락시켰다. 이와 같이 생산성 둔화로 나타난 ‘생산성 획득의 위기’에 이윤 몫 감소로 나타난 ‘생산성 분배의 위기’가 중첩되어 이윤율이 하락하고 있는 상태에서 유효수요를 증대시키기 위한 케인즈주의적 재정금융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뿐이었다. 그래서 생산은 침체하는데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이 출현한다. 이러한 공급측 요인과 함께 수요측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소비자 욕구의 다양화와 가변성 증대에 따라 다품종 소량소비가 출현하였는데, 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체제와 모순되었다. 이와 같이 다품종 소량소비로의 소비패턴 변화에 따라 전용기계에 의해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경직적인 포디즘의 기술이 부적합하게되어 대량생산체제에 위기가 발생한다. 아울러 글로벌화의 진전에 따른 국제경쟁의 격화로 국내수요가 정체되고 국민국가가 유효수요를 통제하여 성장을 관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축적체제의 불안정성이 크게 증대하였다. 한편, 생산성의 둔화와 임금의 경직성으로 인해 고생산성과 고임금의 호순환 구조가 깨어진다. 이에 대응하여 자본가들은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한다. 경기변동과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임금과 고용을 신축적으로 조정하려는 노동시장 유연화 시도로 포디즘적 노사타협이 해체되고 임노동 관계가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의 길로 나아간 미국과 영국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났다. 아울러 사회보장제도의 위기가 나타난다. 사회보장지출 증대로 인한 재정적자 누적, 기업의 조세 부담 증대는 자본축적의 위기를 가중시켰다. 아울러 사회보장 확대에 따른 실업의 규율효과가 감소하여 자본의 노동통제가 그만큼 어렵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자본과 국가가 사회보장지출을 삭감하려는 시도를 한다. 여기서 포디즘 발전모델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복지국가가 해체되어 간다. 그리고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가 진전함에 따라 환율, 주가, 금리가 세계경제 상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어 성장, 고용, 물가 등 에 대한 국민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의 효력이 약화되었다. 종래의 케인즈주의적 개입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진 것이다. 아울러 세계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국가간의 성장에 균형을 맞추고 세계경제를 조절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협약과 같은 국제적 조절양식이 결여되어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크게 증대한다. 세계무대에서 유럽과 일본이 등장하여 미국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팍스 아메리카나가 해체됨에 따라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결합에 기초한 포디즘은 하나뿐인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생태위기(ecological crisis)를 초래하였다. 원재료와 에너지와 같은 자연자원의 대량사용에 기초한 대량생산은 인류의 공유재산인 자연자원을 파괴하고 고갈시켰으며 대량의 이산화탄소(CO2)와 산업폐기물을 배출하였다. 대량소비는 에너지의 대량 사용과 생활 쓰레기 대량 배출을 가져와 환경을 파괴하였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필요로 하는 대량의 에너지를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는데 한계에 부딪히자 개발한 원자력 에너지는 지구의 생존과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공할 흉기로 등장하였다.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도래시킨 포디즘은 ‘지구의 종말’을 초래할지 모를 생태위기를 야기시켰다. 이상에서 논의한 것과 같이 테일러리즘의 모순으로 인한 생산성 획득의 위기, 노동생산성 둔화와 실질임금 상승으로 인한 생산성 분배의 위기, 세계화로 인한 수요의 정체와 불안정 등의 요인이 중첩되어 축적체제의 위기가 발생하고, 포디즘적 노사타협의 해체, 복지국가의 해체,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정책의 효력 약화, 팍스 아메리카나의 해체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의 증대 등과 같은 요인들이 중첩되어 조절양식의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포디즘적 발전모델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해체되기 시작한다. 5. 포디즘 이후의 발전모델 포디즘의 위기는 1970년대 중반이후 점차 심화되어 1980년대에는 해체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포디즘이 초래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두 가지 길이 나타난다. 포디즘 위기 탈출의 두 가지 길은 포디즘 이후의 서로 다른 발전모델의 등장으로 연결된다. 하나는 네오 포디즘(Neo-Fordism)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의 길이다. 우선, 네오 포디즘은 포디즘 위기의 주요 원인을 임금 및 고용의 경직성과 사회보장지출 증대에 따른 고비용 구조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윤률 하락의 원인을 임금상승으로 인한 이윤 몫(P/Y)의 하락 즉 생산성 분배의 위기에서 찾는다. 임금 상승은 포디즘적 노사타협에 의한 임금 및 고용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임금 및 고용의 경직성을 폐지하는 것, 다시 말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는 것이 네오 포디즘의 위기탈출 전략이다. 즉 생산성 연동 임금제를 해체하고 노동자를 자유롭게 고용하고 해고하며, 임금을 경기변동과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자본의 권능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본은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거나 무노조 전략을 구사하여 단체교섭을 약화시키거나 폐지하려는 경영방식을 추구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구상과 실행을 분리하는 테일러리즘적 노동과정은 그대로 두었다. 극소전자(ME) 기술과 정보기술을 이용할 경우 종래의 테일러리즘적 노동과정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온존?강화하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점에서 네오 포디즘을 ‘컴퓨터 지원 테일러리즘’(computer-aided Taylorism)이라 부른다. 그리고 테일러리즘의 노동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네오 테일러리즘(Neo-Taylor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부는 노동시장에 대한 친노동자적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여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촉진하였다. 그리고 국영기업 혹은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공공부문의 노사관계가 시장원리에 지배받도록 하였다. 사회보장지출을 대폭 삭감하여 복지국가가 후퇴하거나 해체되었다.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증대시키는 케인즈주의 거시경제정책은 후퇴하고 자유시장의 완전성을 믿고 국가 개입에 반대하는 통화주의 정책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에 미국의 Reagan정부와 영국의 Thatcher정부와 같은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 나타났다. 이 정권들이 추구한 정책 노선이 바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의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에 이은 1990년대 중반 이후의 글로벌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다른 선진국, 신흥공업국, 이행도상국(구사회주의권) 등에로 범세계적으로 확산된다. 이들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네오 포디즘’적 발전모델을 따르고 있다. 외환위기를 당한 채무국에 강제되고 있는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도 그러하다. 네오 포디즘과는 달리 포스트 포디즘의 길은 포디즘 위기의 주요 원인을 대량생산체제와 테일러리즘적 노동과정의 비효율성에서 찾는다. 이윤율 하락의 원인도 임금인상으로 인한 이윤 몫 감소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노동생산성(Y/L) 둔화와 과잉설비(K/L의 증대)에서 찾는다. 즉 생산성 분배의 위기가 아니라 생산성 획득의 위기에서, 고비용 구조가 아니라 저효율 구조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그리고 생산성 위기는 기본적으로 구상과 실행을 분리하는 테일러리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따라서 생산체제 및 노동과정 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것, 고효율 생산조직을 창출하는 것이 위기탈출의 전략이다. 즉 임금과 고용의 경직성(안정성)을 유지하면서 노동과정을 테일러리즘으로부터 반테일러리즘(Anti-Taylorism)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이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 매뉴얼화된 단순작업, 하이에라키적 명령조직이란 테일러리즘 원리를 완화하거나 폐기하고 참가의식을 가진 다기능 숙련노동으로 작업조직을 재편성하는 것, 노동자들의 지식과 창의성을 동원해서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지식과 창의성을 노동과정의 개선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에게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때의 자율성은 생산체제가 부과하는 책임을 다하는 자율성 즉 ‘책임있는 자율성’(responsible autonomy)이다. 노동자가 자율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교섭에 기초한 참가’(negotiated involvement)가 필요하다. 여기서 교섭에 기초한 참가란 노동자가 생산성 분배에 대해서 교섭하고 생산성 획득에 적극 참가하는 것이다. 요컨대 ‘교섭에 기초한 참가’를 통해 노동자에게 ‘책임있는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지적 능력과 창의성을 동원하여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려는 전략이 포스트 포디즘의 길이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기업이 임금을 동결 내지 삭감하고 고용을 줄이는 방어적 전략을 취하는 ‘네오 포디즘’과는 달리, 포스트 포디즘은 노동조직을 유연하게 하여 노동자를 배치전환 하거나 교육훈련을 통해 노동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공격적 전략을 취한다. 즉 네오 포디즘은 수량적 유연성(numerical flexibility) 혹은 외적 유연성을 추구하지만 포스트 포디즘은 기능적 유연성(functional flexibility) 혹은 내적 유연성을 추구한다. 한편 포스트 포디즘에서는 복지국가(welfare state)의 위기를 복지의 축소가 아니라 복지공동체(welfare community)의 건설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신자유주의적 네오 포디즘은 복지지출의 삭감과 사회보장제도의 폐지, 복지를 시장기능에 맡기는 사보험 실시 등을 통해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이와는 달리 포스트 포디즘에서는 시장부문도 정부부문도 아닌 ‘제3부문’(third sector)을 건설하여 사회복지를 지역공동체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공동체 지향 제3부문’은 새로운 복지모델일 뿐만이 아니라 경제관계를 인간화하는 새로운 발전모델의 핵심 요소로서 의미를 가진다. 아울러 포스트 포디즘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실업을 줄이고 고용을 창출하는 대안을 지향하며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생활양식을 지향하는 생태주의(ecology)를 지지한다. 포스트 포디즘적 발전모델은 1980년대에 스웨덴이나 독일과 같이 사회민주당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가 걸을려고 했던 길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자본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함에 따라 이 발전모델은 위기에 빠진다. 20세기말인 현재의 시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글로벌화 속에서 이 발전모델이 생존할 수 있을지가 의문시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발전모델의 생명력이 다했다고 할 수 없다. 21세기가 희망의 세기가 되기 위해서는 포스트 포디즘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6. 맺음말: 포디즘 성쇠의 교훈 포디즘은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포디즘의 흥망성쇠의 교훈은 무엇인가? 포디즘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유례없는 고성장과 완전고용 그리고 고복지를 달성하였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한 세대동안 그야말로 ‘황금시대’라고 할 정도로 번영을 구가하였다. 포디즘의 시대는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측면이 있는가 하면 하락시킨 측면도 있다. 우선, 포디즘은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임금 상승 및 소득증대로 국민의 물질적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 자동차, 가전제품 등 내구소비재의 대량소비를 통해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상당정도 충족되었다. 포디즘적 노사타협에 의한 고용안정, 최저임금제도, 실업보험제도 등을 통해 노동계급의 생활이 안정되었다. 복지국가를 통해 전체 국민의 생활도 안정되었다. 포디즘의 여러 제도들은 소득분배를 상대적으로 균등화시켜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relative deprivation)은 약화되었다. 신중간층과 노동자들의 소득과 부가 지속적으로 증대하여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포디즘의 시대 동안 선진자본주의에서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은 수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포디즘은 삶의 질을 하락시키기도 했다. 포디즘의 대량생산체제에서의 테일러주의적 노동과정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구상기능을 없애고 세분화된 직무에서 단순반복노동을 행하게 하며 위계적 노동통제에 따르게 함으로써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소외를 크게 심화시켰다. 아울러 컨베이어 시스템은 노동강도를 크게 증대시켜 노동력의 소모를 가속화하였다. 따라서 다수 노동자들의 노동생활의 질(Quality of Working Life)은 오히려 하락하였다. 뿐만 아니라 대량생산은 에너지 및 자연자원 사용 증대와 산업폐기물 배출증대로 인해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시켰다. 대량소비는 생활쓰레기를 대량배출하여 환경오염을 심화시켰다. 지구촌의 생태위기는 상당정도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산물이다. 그래서 소득은 증대했지만 마시는 물과 숨쉬는 공기는 오염되어 생명이 파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소비주의의 만연으로 인해 상품관계를 매개로 하지 않는 인간적 삶은 오히려 궁핍화되었다. 물질만능주의의 지배로 인해 사회는 더욱 비인간화되었다. 이와 같이 포디즘은 인간의 삶의 질을 증대시킨 빛과, 삶의 질을 떨어뜨린 그림자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포디즘이 인간의 삶의 질에 미친 순효과가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성장지상주의자들은 당연히 플러스라고 말할 테지만 생태주의자는 마이너스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포디즘의 성쇠가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포디즘은 생산성 연동 임금제, 단체교섭제도, 최저임금제도,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비교적 공평한 제도들을 통해 고도성장을 달성하였다. 따라서 포디즘 성공의 교훈은 ‘공평성 없이 효율성 없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포디즘은 직무가 세분화되고 고정되어있는 경직적인 노동조직, 관료화된 경직적인 대량생산체제, 관료화되고 인센티브 없는 사회보장 시스템 등의 요인 때문에 위기에 빠져 해체되었다. 따라서 포디즘 실패의 교훈은 ‘유연성 없이는 효율성 없다’는 것이라 하겠다. 포디즘이 이룬 공평성을 이어받고 시스템과 조직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유연성을 통해 새로운 효율성을 실현하는 대안적 발전모델을 21세기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포디즘이 남긴 이러한 교훈을 음미할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브와예 지음, 정신동 옮김, 『조절이론』, 학민사, 1991 아랑 리피에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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