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8/02/05

우연히 동생일기 - [스케쥴 다이어리]를 봤다.

원래 남의 일기를 보면 안 되는데....

동생이 간수도 못하고 놔뒀으니 미안하지만 한번 봤다.

그런데 일기가 참 짧게,  스스로의 생각을 써놓았다.

그렇지.... 원래 일기란게 4~5줄만 써놔도 되는건데 나는 왜.... 그렇게도 못 썼을까....

일기는 정말 생에 길이 남는데 말이다. 

 

 

ㅡㅡㅡㅡ

아침에 밥을 먹고 설거지 했다. 

1시간이나 걸려서 10시30분이다.

 

운전면허 때문에 [동아서점]에 갔다.

그곳에서 [운전면허 학과시험문제- 크라운출판사]라는 총정리 형태의 문제집을 샀다.

동아서점 누나는 언제나 있다. 종업원인지 직원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다.

105호 아줌마가 사준 유기농산물 야채를 함꼐 먹었다.

 

 

오늘은 여권준비를 하러 갔다.

여차저차 해서 [바리]님으로부터 알게 된 김성민기자한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포토뱅크]사진관에 가서 여권용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김해)시청으로 갔다.

(공교롭게도 3~4명 모두女)여권담당과에 여권신청서를 작성해서 냈다.

그리고 민증, 운전면허증 요구에 나는 [지문날인거부자] 임을 밝혔다

그리고 [청소년증]을 보여줬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지침(외교통상부에서 발간한 편람)상 청소년증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김성민]기자의 예를 들며 현행법상에 조항이 없다고 하자 '외교통상부에 알아보겠습니다'며 물러났다.

그러나 끝내 발급은 안된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당황해서 [김성민] 기자와 통화를 해보니, 담당 공무원들이 경험이 없으니, 독촉은 하고 일단 알아보게 해놓고 설 연휴 끝나고 며칠 기다려보면 된다고 한다.

이미 자신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안 할 수는 없다고 했다.

혹시나 안 될 경우에는 자신의 방법을 쓰면 된다며 

그래서 나도 안심하고....

아마 내가 처음인지 내가 지문날인 거부를 한다는 것에 대해 당황한 것 같다.

자신들도 [지문날인거부자]는 처음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혹시 처음에 전화상으로나 직접 와서나 너무 긴장하고 당황하다보니 다소 거친말투를 썼나?

좀 걱정이다.

신청서의 연락처로 신청해준다고 돌라하기에 맡기고 왔다.

그런데 집에 오는길에 나는 Ye를 외쳤다.

왠지 모를 짜릿함이랄까?

내 안의 공포를 이겨내고, 내 양심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생긴 것 같다.

아빠는 나를 지지해주는 편인 것 같고, 엄마는 나의 웃음을 보더니 또 바뀐 것 같다.

2/11부터 직업훈련원 CNC선반 국비지원과정 면접이 있다.

신분증 요구가 있어 매우 초조하다.

빨리 여권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돕헤드 번역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Marc Siverstein 지음



오늘날의 사회에서 아동은 독특한 방식으로 억압되어 있지만 이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서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잘 모르기 일쑤다. 불평등과 강요에 기반해 아동과 성인의 관계가 이뤄진다는 사실은 보통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의 사회적 억압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이유는 아동에 대한 차별이 어떻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동은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 아동에 대해 어떤 형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주권과 강요하지 않음, 그리고 자유연합과 상호부조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아나키즘의 사상은 부모역할론, 교육일반론 그리고 아동육성론 등에서 비권위적 이론을 공식화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또한 억압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아동들이 해방을 시작하는데 아나키즘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권위는 부모로부터 나온다. 부모는 아동이 태어난 날로부터 만 18세 또는 19세에 이를 때까지 법적으로 정당화된 보호권을 갖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관점에서 아동과 관계를 맺는다. 부모는 아동을 소유물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아동은 양육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며, 적정선을 지켜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며, 규율을 배워야 하고, 선행을 했을 때는 칭찬을 받고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동에 대한 이런 식의 개념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한다.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그저 자신의 미래에 소속될 뿐이다.”


        일부 부모들은 핵가족 하에서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식을 과도하게 보호한다’거나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기도 한다. 성별화된 질서가 생성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다. 권위적인 이데올로기가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도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를 통해서다. 핵가족 하에서 성(性)에 대해 금욕적으로 억압한 결과 아동들에게서 신경증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격적 특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신이 가진 특정 종교(유대교, 기독교 등)나 정치적 입장(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가 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등)를 자식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한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남자아이가 13살이 되면 유대교 성년식인 ‘바 미츠바(Bar Mitzvah)’라는 것을 열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또는 대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남자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표시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등은 아동이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종교적 잔치다. 자신 스스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아동은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가 5살 무렵이 되면 학교에 보내지는데, 이곳은 아나키스트 밥 블랙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아동수용소’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기관에서 아동은 교사에 의해 주의 깊게 감시를 당한다. 교사는 아동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아동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생각이나 개인성의 징후를 보일 때마다 은근하게 또는 명시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것을 꺾어놓는 것이다. 아동이 ‘제대로’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학생주임에게 보낸다거나, 교무실에 가둬놓는다거나, 정학시킨다거나, 퇴학처분을 내린다거나 또는 낮은 성적을 주는 등의 체벌을 가한다. 사립학교 대부분에서 그리고 많은 공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복장과 두발의 규정이 가해진다. 웃옷은 반드시 가지런히 바지에 넣어야 한다거나 허리띠를 반드시 매야 한다는 식의 조항까지 있을 정도다.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염색하거나 귀걸이나 피어싱을 하거나 또는 기타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학생주임이나 또는 교장이 직접 나서서 호통을 치고 이를 금지시킨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노동자와 사장의 관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장은 회사를 소유하고, ‘행동 규정’을 마련하며, ‘생산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위자에게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며, 학생들의 분노는 학생자치기구나 학교가 인정하는 학생회 등을 통해 조절된다. 이는 거대한 노동조합총연맹(미국의 경우 AFL-CIO 같은 단체)을 통해 노동자들의 분노가 조절되는 것과 유사하다. 학생자치기구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아나키즘이 요구하는 것처럼 학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강요와 폭력의 철폐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가 감옥과 얼마나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감옥과 학교 모두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적용된다. 권위적인 구조, 복장과 두발 규정,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정숙과 질서에 대한 강조, 금지규정을 지키기 위한 단속, 행동에 대한 규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보상제도, 개인 자율성에 대한 상실, 자유에 대한 억압,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등.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아동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작업장--학생들은 패스트푸드 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착취를 경험한다--에서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부모와 성인들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이야기해보자. 계급에 대한 자각은 필수적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자신이 하나의 독특한 계급으로서 억압을 받는다는 계급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억압하는 계급은 삶의 조건에 대해 명령을 내린다. 아나키스트들의 국제노동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회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의 규약 서문을 알기 쉽게 바꿔서 말해보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조그만 방식으로 불복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거나, 학교가 강요하는 종교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 또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할 때, 과제의 주제로 청소년 운동의 역사 또는 엠마 골드만이나, 학교에서 아나키스트 동아리를 만들고 반전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한 15살 학생 케이티 시에라Katie Sierra 등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 앞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작업거부나 태업과 비슷한 방식의 불복종이다. 학교 바깥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등 스스로를 교육시켜보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학교에 붙일 수도 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소책자나 잡지를 만들어 학교에 돌릴 수도 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동맹휴학 또는 ‘길거리를 되찾자’ 등의 방식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접하면서 더욱 급진적이 되어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나키스트 동아리는 근처 개훈련장에 붙어 있던 ‘복종을 가르칩니다’ 라는 문구를 떼어내 한 고등학교에 펄럭이도록 붙여놓았다. 이런 행동은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부모들과 학교 당국은 예전에는 별로 저항을 받지 않고도 지나갔던 것들이 이제는 학생들로부터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런 권력이 도전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학생은 전처럼 형태가 없는 한 무리의 온순한 양떼가 아니라 계급의식을 갖고 지성을 갖춘 젊은 청소년들로 조직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영원히 없애나갈 것이다.

        아나키즘은 청소년 해방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강요와 폭력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은 청소년이 처해 있는 노예와도 같은 속박상태에서 청소년이 자유로워지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청소년의 해방에 있어서 아나키즘은 부모의 강요를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즉 청소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안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중권력 전략’의 좋은 예이다.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껍질을 벗고서 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약골 번역)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상, 야릇, 쫓기는 꿈

어제 거제도에 갔다 왔다.

 

아빠의 도교육감 선거 지원유세 등을 위해서 말이다.

 당일 아침에 결정 났기에 바빴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왜냐면.... 나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줄 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 하루는 여러가지로 불편함, 그리고 잊지 못할 고마움 등.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나는 중국 텐안문(천안문)광장에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군중들과 데모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 삼엄하기로 유명한 공산자본당(?)이 짭새(公安ㅡ경찰을 의미)가 차를 대기시켜놓고 있고, 거기다 사복경찰, 밀정들도 가득할텐데... 

그럼에도 짭새들이 최루탄, 곤봉, ㅇ형태의 방패를 들고 아직 폭력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오쩌둥' 이 저지른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이란 이름을 걸었으나 무산계급인 노동자는 가만히 있은 채 학생대중들을 동원한 비겁한 권력싸움)의 피해자들이었다.

피해자였던 덩샤오핑이 주석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과오인데 어째 잔잔한 피해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었냐며 항의했는데 여론이 너무 피해자 편이라 바로 진압하진 못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짭새들이 덮쳤다.

사람들이 쫓기고 벌떼같은 짭새들이 오고, 나는 지하도 혹은 지하상가 화장실로 숨었다.

 

이것도 망상이겠지만, 생생한 꿈이니 적어본다.

하루 빨리 중국 노동자와 민중들이 공산당(실제로는 자본당)의 폭력으로부터 해방의 길이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바쁨속에...

블로그는 내 삶을 기록하며 공유하는 일기장 같은 것이다.

몇 달 동안 못 쓰고 있다. 

왜 그럴까? 진보넷을 쓰고 싶은데 차라리 네이버라도 쓸까.....

휴, 힘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번쨰 휴식

버스타고 남원으로 전주로 서울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걸었다

걸어가며 말했다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며

거의 혼자하다시피 이루낸 것을

푸짐한 막걸리집에서도

결국 나를 사랑하자

자신감을 가지자

너무 많은 기대를 가지지 말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만금에서 그레질하며

(새만금)계화도에 갔다

어제께 도착해서 오늘부터 갔지

그레에 갔다

갯벌을 걸었다

사막같이 변하고 있는 곳을 걸었다

맛조개, 게 등이 시체가 죽어 널려있고

바닥은 딱딱하고.

 

그레질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한번 해도 되요"하고 물었다

왜냐면 이때까지 계화도에 2~4번 왔지만

그레질은 해 본 적이 없어서

할머니는 "해봐"하시며 그레를 풀어서 줄을 내 몸에 묶어주셨다

슥슥슥(그레질하며) '타그락'(생합 걸리는 소리)

생합의 빛깔은 검었다

'나비'씨가 카메라로 찍어주었다.(그게 남아 있을까 모르겠다)

죽음의 방조제 때문에 이렇게 생합이 변해가고 있단다.  

쉽지는 않지만 아주 어렵지는 않은 그레질

이렇게 먹고 사는게 지속가능한 삶이지

평생 먹고 사는 것인데

왜 빼앗을까

 

그리고 [류기화]씨에 대한 이야기도 알려주었다.

생합을 더 잡기 위해 물이 있는 곳에서 그레질을 해서

몸에 가득 실어서 무거웠다나...

그런데 하필 방조제 개방으로 물길이 들어왔다.

원래 헤엄을 거뜬하게 하지만, 그 생합의 무게 땜시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 4달만에 새만금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새만금과 뭇생명의 눈물, 어민들의 눈물은 결국 말라 말라 이 땅과 지구에 미칠 것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남한테 피해주는 것

고민 1

 

남에게 피해주는 것에 대해서,

나는 왜 그럴까?

언제부터 그런 습관이 생겼을까.

왕따 당하면서 생기던 습관?

왜 그런 쪽으로 생각 못했을까.

 

고민 2

그다지 쓰잘데기 없는 짓을 왜 하는 걸까.

효민 형의 말이 다 옳지는 않지만,

옳은 것도 분명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나에 대한 지적 중에

옳은 것도 있는데

옳은 것도 잘 고치지 못했을까

 

고민 3

 

다시 생각한다

남 탓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축제에서 본 것

어제 노래마당을 하는 데서 감명이 깊었다.

정욱, 유솔, 재훈, 현선 팀이 보여줬던 재롱잔치(?)같은 공연과 순서에서 보여준 것들이 말이다.

결국 나도 저런 것을 배워야 되지 않을까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집에 갔다와서

처음으로 김해 ㅡ>(창원 경유)대전 버스를 타고 와 봤다. 진주ㅡ>장계ㅡ>학교로 오는 것 보다 더 많이 걸리는 것 같다. 2시40분에 출발해서 6시20분에 대전 도착(3시간 40분), 7시에 무주로 향하는 차를 타고,

무주서 7시55분차타고 안성면에 와서, 걸어가니 9시가 넘었다. 거의 6시간이나 걸렸다.

진주로 오는 경우 1시간30분+2시간(1시간~1시간30분 추가되기도 함)+1시간인데 버스를 한번밖에 갈아타지 않은 것을 제외하곤 그다지 좋은 효과는 못본 것 같다. 돈도 비싸고 말이다. 안성에서 대전까지 시간이 참 많이 걸리는 것 같다.

대전거쳐 학교오기 - 만2800원+4천원(+책값3천원+김밥천원) 도합 2만천원, 차비만해도 만7천원이다.

그런데 진주로 오면 4천700원+7천800원+천400원 만4000원이다. 무려 3000원에서 많게는 7원까지다.

앞으로 되도록이면 진주로 와야겠다.

 

 

농협마트에서 산 누룽지를 (뜨거운 물에 담긴)허브차랑 같이 먹어봤다. 누룽지가 녹으니 부드럽다.

한봉지를 다 먹고 똥을 싸니까 색깔도 좋다. 냄새도 별로 안나고, 휴지에도 별로 안 묻어나고 말이다.

무엇인가 따뜻한걸 먹고 싶을 땐 괜히 우동이나 라면먹기보다 누룽지를 먹는게 좋겠다.

그런데.... 우동 저걸 교환해서 올까말까.... 고민중이다

 

그리고 내일(7/2일 월요일)부터 시험이다.  8시30분까지 도덕실로 가야 한다.

나는 이 망할 놈의 (입시를 위해 진정한 배움과는 별 연관없는 암기식의)시험이 너무 싫다.

그래도 딱 한가지 좋은 것은 일찍 마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점심먹고 오니까 말이다.

 

그 시간동안 자서전쓰기나 빨리 해야 될 것 같다. 일부러 사진도 들고 오고 하는데 자꾸 미뤄서 한줄도 못썼다. 제대로 완성해야지. 내겐 시험보다 자서전이 더 중요하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울함과 마력

이상하게 컴퓨터로 해야 할 것은 안하고 다른 것 하다가 이제 11시 30분이 넘었다.  왜 그럴까?

 

집에선 TV만 보다가 시간 다보낸다. 왜 그럴까?

 

이것들의 마력, 중독성이 너무 강한 것일까? 아님 내 마음 속 무의식이 그렇게 나를 인도하는 것일까?

 

참으로 고민이다.... 숙제를 미루는 건 결코 좋은게 아닌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