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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치바

키타 나라시노. 도쿄에서 묵었던 치즈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이다. 도쿄 시내로 같이 나가는 날 내게 1일 전철패스를 끊어줘서 들고 다니던 걸 안 버리고 가져와서 지금은 내 교통카드 케이스에 같이 넣어서 다닌다. 교통카드 충전할 즈음마다 카드 케이스를 열어보다 우연히 마주치면 그 때의 기억들을 떠올려보고 싶어서. 며칠 전에 그런 기억에 잠겨서 혼(!!)을 다해 적었는데 내가 뭘 잘못눌렀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서 무지 진이 빠졌다. 이번엔 조심히 해서 다시 올려보련다.

뭐 이 블로그 자체를 한국 뜨면서 외로움을 극복해보려는 방편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한국 들어오고 나서는 확실히 진보넷 방문이 급격히 줄었다. 고민이 줄고 무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515 끝날 때까지 당분간 몰아치다가 끝나고 나면 무슨 재미를 찾아 살까 자꾸 생각하게 된다.


히드로 공항에서 나리타행 비행기를 탄건 오후  4시 반이었다. 플랏을 뜨기 며칠 전부터 열심히 짐 정리를 하던 기억이. 딱히 따로 더 산 것도 없고 살림 안 늘리려고 노력을 했건만 미처 생각지 못한 짐들이 계속 생겨나서 버리고 나눠주고 해도 끝이 없더라. 그렇게 줄이고 줄였지만 공항에 들고 갈 짐을 보니 수화물 제한을 넘길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을 한켠에 가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나리타에 도착한 건 다음 날인 금요일 낮 12시 즈음이었다. 비행기에선 내가 주문했던 베지테리안 밀이 안 나와서 고생좀 했다. 승무원이 계속 미안하다고 하는데 뭐라 더 말할 수도 없고. 와인과 땅콩, 얼마 안 되는 과일로 배를 채운 것 같다.-_- 다행인건, 히드로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내 좌석이 승급이 되었다는 희소식을 알려주어서 프리미엄 이코노미에 앉아 온거다. 자리도 약간 더 넓고 편했다. 심지어 갈아신을 실내 슬리퍼도 비치가 되어 있었다. 난 미리 준비한다고 집에서 신던 슬리퍼까지 준비해서 그 많은 짐들 사이에 끼어 가져왔는데. 뜨씨

치즈루는 최근에 계약직 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고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일을 하는데 어머나 너무나 고맙게도 치즈루 언니가 조퇴를 하고 나를 마중하러 전철역까지 나와주었다. 치즈루 언니 히토미는 헤이스팅스에도 3개월 정도 있었고 그 뒤엔 런던에서 일을 하며 1년 반 정도 머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어도 또박또박 잘 구사를 한다. 어찌나 또 친절하신지. 히토미가 나랑 대화하다가 '혼또?'라고 말할때의 표정과 억양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금요일 저녁엔 치즈루 어머니가 해주신 진수성찬과 썬토리 프리미엄 맥주 한 캔을 하고 푹 잤다. 치즈루가 그렇게 자랑을 하던 엄마표 고로케..그것도 채식으로 특별히 만들어 주신 고로케 맛을 봤다. 음..오이시~~
전날 남은 고로케로 토요일 아침엔 샌드위치를 싸주셨는데 이것 역시 오이시~
토요일 아침 야스쿠니 긴자로 향했다. 마침 벚꽃이 절정이라 사람이 무지 많았다.





야스쿠니에서 자기 운을 말해주는 종이(이름이 뭐더라?)를 다들 한장씩 뽑아봤다. 이런 저런 운이 많이 나오는데 난 여행 중이었기에 여행 운이 무사하다는 치즈루의 해석을 듣고 나머지는 다 흘려들었다.
야스쿠니 근처에 공원이 하나 있는데..아마 천황이 사는 동네랑도 붙어있는 곳이었는데. 물이 흐르고 거기에 배를 띄워 뱃놀이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도쿄타워 근처 역에 내려 올라왔더니 하늘이 화창해졌다. 말로만 듣던 도쿄타워 올라가는 길에..





도쿄타워에도 사람이 참 많아서 우리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올라갈수록 발 밑 철골 계단 사이로 바람이 슝슝 불어오고 아래가 다 보이는데 살짝 아찔하다. 치즈루는 완전히 겁을 먹어서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오르고 나니 계단 다 올라왔다고 증명하는 조그만 책갈피 같은 걸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도쿄만에 있는, 야경으로 유명한 다리라는데..예정에 있었으나 저녁에 술도 먹고 비도 와서 귀찮음에 구경을 포기했다.





타워 위에서 신주쿠 쪽을 바라보고 한 컷. 저기 놓은 건물 중 하나는 작년에 올라봤던 도쿄도청이 아닐까..





이날 치즈루와 함께 구경을 시켜준 미애짱과 조지. 미애짱은 치즈루 고등학교 동창. 조지는 오랜 친구이자 애인. 치즈루가 영국에 있는 동안 막판에 이탈리아 남자랑 바람이 나는 바람에 관계가 흔들렸으나 지금은 또 다시 잘 지내는 듯. 미애짱 조지 모두 나보다 두 살밖에 안 많은데 벌써 직장 생활 한지가 5년 째란다. 참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미애짱한테는 일본어도 몇 마디 배우고.ㅎ





치즈루는 연신 자기 계획대로 하루 일정이 잘 돌아간게 뿌듯했나보다. 피따리 플랑(plan)이란 말을 연발했다. 집에선 늘 뭔가 허둥대는 막내라고 놀림을 받지만, 나에겐 정말 사려 깊은 호스트였다. 내가 교토가면 테짱이랑 오사카 스타일 오코노미야끼를 먹게 될테니 여기서는 후쿠오카 스타일을 한번 먹어보자며 데려갔다. 위에껀..파가 이빠이 들어간 계란 말이 정도? 나에겐 그냥 심심한 맛 밖에 안 났지만 치즈루 생각해서 연신 음 오이시~를 입에 달았다.





위에꺼보다 좀 더 먹음직스럽게 생긴..아보카도 뭐시기라 불리던 음식. 근데 음식들이 다 간에 기별가기도 힘든 양이다.





모두 750엔이라는 줄 맨 위에 것이 위에 먹은 거다. 아보카도키메코노치즈야끼? 대충 그런 것 같다





드디어 우리의 메인..오코노미야끼다. 오이시소~ 





오른쪽이 치즈루..작년 6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친구가 되주었던 고마운 친구다.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까지 한 7개월을 같이 본 셈이다. 앞으로도 계속 관계가 지속되면 좋겠다. 나중에 치즈루 결혼식 한다고 하면 그 핑계로 일본에 한번 또 놀러가는 상상도 해본다





오코노미야끼를 앞에 들고..치즈루가 주문을 할 때 고기 해물 다 빼달라고 말해줘서 난 걱정없이 먹었다. 근데 일본 사람들 스타일이 그런 건지 고기 해물 빼달라고 하는데 어찌나 주눅이 들어서 연신 미안하다며 종업원에게 얘기를 하는지..내가 더 미안해지게..
이곳 식당에 오는 길에 조지 회사에 들려서 조지 차로 이동을 했는데 이날은 조지가 술을 마시고 싶다며 술을 못 마시는 친구 한명을 더 초대했다. 이 친구는 초등학교 교사라는데..치즈루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 말이 외모는 전혀 일본인처럼 안 생겼는데(내가 보기엔 오키나와 쪽인 듯한)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니 웃기지 않냐는 얘기들을 했다. 최근에 같은 학교 여선생님한테 고백햇다가 차여서 힘들어 하는 중이라고..그래서 이날 치즈루 집까지 조지 차를 운전해서 우리를 내려준 다음 조지랑 둘이 또 밤새 연애상담을 하러 떠났다.






일요일은 공교롭게도 마침 치즈루 어머니가 미국으로 한 일주일 정도 여행을 출발하는 날이었다. 치즈루 어머니는 젊어서 영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어서 영어도 곧 잘 하신다. 그 어머니가 딸들을 다그쳐서 두 딸도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 같다. 치즈루 아버지도 뭇 남성 가장 답지 않게 근엄하지도 않고 사근사근 잘 대해주셨다. 치즈루 어머니 공항으로 나가기 전에 허둥지둥 사진을 남겼다. 치즈루는 회계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같이 못 찍었네.
치즈루 가족의 (문자 그대로) 화목한 분위기를 보면서 우리 가족 생각이 많이 났다. 부러운 감정 같기도 하고. 밖에선 남들 배려 많이 하다가도 집에만 돌아오면 말도 줄고..한국 돌아와선 노력을 많이 하지만 20년 넘게 쌓여온 가족 안의 분위기는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밖에서만 부드럽고 안에서는 애교도 못 떨고 살갑지도 못한 아들들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 같다
 




일요일 밤..매일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출근을 한다는 치즈루가 기어이 또 나를 도쿄역 앞 야간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 주었다. 신세를 너무 지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나 혼자 헤멜 걱정 안해도 되니 고맙기도 하고 여러 감정들이 섞인다. 치즈루는 심지어 버스 기사에게까지도 얘기를 해서 잘 부탁드린다며 '오네가이시마스'를 연발한다. 버스에 올라타 치즈루와 인사를 하고 나니 눈물이 찔끔 났다. 치즈루와 치즈루 친구 가족들이 베풀어준 호의가 고마워서, 한편으론 앞으로 당분간은 이 사람들 다시 보고 싶어도 한국을 못 뜨는 처량한 내 신세가 떠올라서.
도쿄역으로 나온 조지와 인사를 나누고 사진도 이렇게 한 컷 찍어줬다. 키오츠케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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