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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10일

6월 1일(수)

드디어 6월이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5월 마지막 날. 6월 첫 날. 일도 평소보다 많았다. 한 사람의 실수 아닌 실수를 재수없게 소장이 발견했고 보안과에서 취장 주임에게 연락을 한다. 주임은 반장을 부르고 반장은 다시 조장들, 조장은 다시 작업원들을 소집한다. 이 연쇄고리. '처벌'은 '장급'들이 받는다. 이 무슨 파시즘도 아니고. 내가 아는 '책임'의 의미와 이 곳에서 '책임을 진다'의 의미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난 덕분에 5일간 설거지를 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이렇게 고비 넘겼으니 남은 6월은 후딱 가면 좋겠다. 6월 말 난 여전히 취장에 있으려나-

6월 2일(목)

어느 새 목요일이라니. 냄새에 민감한 내게 어느 덧 취장 곳곳의 조금씩 다른 냄새, 방 안의 냄새가 익숙해진 것 같다. 여전히 불쑥불쑥 낯섬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며칠 만에, 근 1주 아니 10일 만에 뛰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뛰기 힘들어도 걷기는 계속 해야겠다 최소한. 오이미역냉국의 시원함. 고기가 간간이 들어있는 하이라이스와 밥. 찐감자. 이불 빨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여기 생활에 정착해야겠단 마음을 갖고 있나보다. 조출. 설거지 없는 이번 주 말까지의 시간을 즐겨야지.

6월 3일(금)

<그날이 오면>에서 보내준 책을 받았다. 고마울 따름이다. 주말에 답장이라도 한통 보내야겠다. 즐에게 온 편지를 통해 서울대 본부 농성 분위기를 들었다. 역시나 KBS 뉴스나 신문으로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라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2005년 농성 때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취장에 와서 네번째 맞는 주말이다. "이 곳에 오지 않았으면 접해보지 못했을 사람들"이란 표현을 머리로 들었을 때와 여기 막상 지내면서 증인 분에게 듣고 나니 기분이 또 새롭다.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차이 역시 섣불리 동질화하려고 하지 않는 것. 둘 사이에 발란스를 맞추는 것.

6월 4일(토)

벽에 걸어둔 가방에서 편지지를 꺼내다가 사라졌거나 혹은 내가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햄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25일자 전자서신. 햄이 접견와준 날 써준 서신이다. 이번 주는 햄의 손을 잡아보긴 했지만 편지가 없어서 내심 불안해하던 차였다. 합동접견 때 엄마 옆에 앉지 말고 햄 옆에 앉아서 손도 잡고 껴안기도 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에효. 내일도 이빠이 편지를 써보아야겠다.

6월 5일(일) 

아직 아침 9시가 안 된 시간. 어젯 밤에는 내가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 시간을 두고 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졸려서 생각 정리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형은 너무 내성적이야. 아직 세상 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애." 이 말이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나도 내 딴에선 신경 많이 쓰고 배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욕구가 가장 큰 욕구인 듯 하다. 그 아이도 배려받고 이해받고 싶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자극에서 시작된 생각들이 이제는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들,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나의 선택은 어디로 이런 생각들로 이어졌다. 예컨대 비폭력대화가 전제하는 보편적인 욕구의 그 보편적 인간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경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 전제된 서로의 차이들에 대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 있는 것인가 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분명 차이가 있는데 거기서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질문인걸까. 아직 명확히 정리는 안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 읽었다. 고통 속에서조차 의미를 찾아 내는 것. 삶에 물을 것이 아니라 삶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을 찾을 것.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자기 자신에게 초연해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특별히 사용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분리될 수 있는 인간의 이 기본적인 능력은 로고테라피 치료 테크닉에서 말하는 역설적 의도가 작용될 때마다 실현된다. 그와 동시에 환자는 자신의 신경증 증세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고든 W. 울포트 교수의 말과도 일치한다. (...) "신경증 환자가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며 아마 치료되고 있는 중일 것이다."

6월 7일(화)

기대했던 챔의 편지가 없었다. 네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도 어딘가 허전하다. 과대망상에 빠졌다가 내일 온다고 지난 월요일에 얘기한 햄의 말도 믿지 않고 있다가 불쑥 햄이 오고 나면 민망해질테니 오늘은 이 정도에서 적절히 감정을 통제해야겠다. 이번 주 일요일 드뎌 첫 조출을 한다.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불안함이 좀 주는 것 같다. 4시에 출근해본다는 경험에 대한 은근한 설레임도 있고. 징역보살. 징역이 보살이라는 그 표현이 와닿는다.

5시 입장인데 4시에 들어와보니 그 한시간 차이가 주는 여유,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늘 축구 중계를 생중계로 해준단다. 사회의 광고를 실시간으로 본다니 어떤 기분일까. 소설 봐야겠다. 햄이 넣어준 학술서는 잘 읽히지가 않는다.ㅠㅠ

6월 8일(수) - 햄 접견

햄이 와주었다. 전자서신과 손편지까지 3종 세트를 받은 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오늘 15분 뛰었다. 당분간 15분씩 꼬박 뛰어야겠다. 군사주의 문화와 계급과는 관련이 없다는 깨달음. 이곳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이라서 좋은 경험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에 대한, 당분간 화두로 붙잡고 고민해봐야겠다.

6월 9일(목)

또 하루가 갔다. 아침에 눈 뜨고 몸이 찌뿌둥할 때 햄과 함께 봤던 일출. 낙산사 산책길. 그리고 미래에 함께 걸을 길들을 떠올리면 기운이 불끈! 난다. 고마운 햄.

6월 10일(금)

오늘은 좀 몸이 찌뿌둥한게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한 것 같다. 현지 편지를 받고 답장을 열심히 썼다. 아무래도 6월 말까지는 꼼짝없이 취장에 붙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만난 영배씨, 현민과의 대화에서 들었다. 아 피곤하다.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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