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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8일

5월 1일

[MP]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되지는 말기. 사소한 자극에 툭 말을 내뱉지 않기. 항상 한번 더 숨 고르고. 오늘 아침 몸 상태는 요 며칠 드물게 허기가 느껴진다. 적당히 묵직한 아랫배도 느껴지면서. 호흡할 때 복식호흡이 잘 안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새 감옥에 찌들어서인지 나를 웃음짓게 하는 곳의 장면이 잘 선명하게 불러와지지가 않는다. 드디어 5워. 괜히 기분이 좋다-가도 마음 한 구석 출역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구석도 있다. 비가 그쳐서 좋다!

5월 2일

[MP]

월요일 아침. 주말을 견딘 뒤 월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냥 설레인다.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신뢰. 해이스팅스, 런던에서의 시간들, 홀로 돌아다니던 그때의 시간들, 홈스테이 가족들의 따뜻함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게 어떤 시간이 닥쳐도 잘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타인을 내가 먼저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때 내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총 10통의 편지를 내보냈다. 연결된 느낌을 간직하면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잊지 말자.

5월 3일

[MP]

남산3호터널 입구에서 정장에 넥타이를 맨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계산하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벅차오르는 마음. 내가 받는 사랑을 재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믿음, 편안함. 수업 준비하며 떨리긴 하지만 뭔가 나의 것을 펼쳐본다는 기대. 결과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들뜨는, 생기가 들게 만드는. 이 기억으로 징역의 칙칙함을 이겨보리라.

5월 4일

[MP]

날짜를 적고 보니 5년전 대추리 생각이 난다. 이 곳에선 꿈을 많이 꾸게 되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아직 감옥 꿈을 꾸는 것 같진 않다. 따뜻한 말, 돌봄에 대한 그리움. 맨날 '네 귀'만 하고 살 순 없으니깐. 자기연결하는 중간에 영기가 나보고 싱크대 옆 이불에 물 튀지 말라고 베개에서 썩은 내가 난다고 말을 걸어서, 그것도 한 2번 이상 반복을 해서 잠시 평온이 깨졌다.

5월 5일

[MP]

쉬는 날. 목요일 아침이다. 자꾸 어제 분류심사 장면이 떠오른다. 보소로 지원하라던 직원의 말을 그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취장에 못 간다는 말은 확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탄함에 대한 욕구가 아쉬운 걸까. 동전뒤집기를 해서 하나가 나왔지만 여전히 아쉬운 그런 마음이다. 결국은 취장에 안 갔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달까.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물론 내가 보소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장 내일 방을 옮길 수도 있으니 오늘 편지를 또 많이 써야겠다.

5월 6일

[MP]

런던의 자전거 행진 Bicycle Mass가 생각났다. 하비엘과 함께 달리던. 금요일 밤 런던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때 생각이 난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며 보이던 하늘에 걸려있던 달 생각도 나고. 확실히 휴일 다음날 아침은 몸이 찌뿌둥하다. 오늘 나를 부르려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어젯밤에도 꿈을 꿨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양 옆의 사람들과 안 부딪히려고 이불을 침낭처럼 돌돌 말아잤다.

분류심사를 하는데, 가족의 화목 정도를 물어보더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화목'이라고 적었는데 직원이 어떻게 화목하냐면서 '스트레스 심함'으로 고쳐적었다. 그 직원에 의해 우리 집은 화목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 것이다.

5월 7일

[MP]

꿈 속에선 뭔가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고작 하루가 지나 다음날 해가 떠있을 뿐이라 좀 허망하다. 꿈에서 출역을 나갔는데 그게 취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감옥 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엄마와 동생이 접견을 온다. 어제 엄마가 보내준 전자서신을 받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 잘 노력해봐야겠다. 편지 적당히 쓰고 책 읽던거 마무리 해야겠다. 이번 주말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진심의 탐닉>.

5월 8일

[MP]

일요일. 오늘은 식수 이후 배식이 바로 와서 이거 적을 시간이 여의치 않다. 자기연결하며 작년 교생때 갔던 북한산 소풍을 떠올렸다. 빵셔틀. 143번 버스. 산에서 먹던 맛있는 점심. 푸핫. 맛있는게 먹고 싶나보다. 방 안에서의 생활이 서로의 생활에 배려를 하는 것이라지만 먼저 있던 자의 방식이 곧 그 방의 질서일 확률이 높고, 그 사람의 방식에 맞지 않으면 쿠사리를 맞는데 그 논리는 "넌 아직 빵에 적응이 안 됐어"이다. 24시간 갇힌 시간 잘 견디자. 이 시간들을 모두 견딘 후, 여권을 만들어 떠날 수 있단 생각을 하니 불끈 기운이 난다. 어디부터 가볼까. 일본? 영국? 라오스? 아님 일단 제주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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