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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13일

5월 9일 월요일

[MP]

오늘로 딱 한달, 이라고 할랬더니 딱 4주를 보내고 5주차에 접어드는 날이다. 월요일. 지금 갑자기 비가 내린다. 이따 운동을 나가야 하는데. 런던에서 햄스테드히스 갔던 일요일을 떠올렸다. 거기서 내려다 보이던 런던 시내의 모습.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펑 내리기 시작하던 눈. 그 다음 날 아침 온 교통이 마비된 런던. 어젯밤 꿈에는 편지를 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못 내고 내일은 또 쉬는 날이니 못 내는 그런 꿈을 꿨다. 이번 주엔 출역장에 나갈 수 있으려나. 우중충한 월요일 아침이다. 내 옆에서 주무시는 사장님이 얼른 나가시면 좋겠다. 그냥 아저씨들은 뭘해도 아빠, 나이 많은 사람 이미지가 겹쳐져서 싫다.

5월 10일 화요일

[MP]

어제 좀 더 많은 편지를 기대했지만, 아침, 햄한테 온 게 전부였다. 내 기대가 너무 컸다. 슬슬 나 혼자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지. 오늘이야말로 딱 한달이다. 어젯 밤에 (...)

에딘버러로 떠나는 날 오전 런던에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와, 두렵고 설레는 그 기분. 휴일, 햄한테 편지쓰고 글 하나 써보든지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엄마가 넣어준 책을 비롯한 물품들이 안 들어와서, 수요일까지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병역거부자의 날에 부쳐>

5월 11일

[MP]

신기하고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기억나지 않은 누군가와 (아마도 J?) 함께 출소를 했는데 방콕 공항이랑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곧바로 출국심사대가 나왔고 그곳에서 우리는 수의를 벗은 뒤 엑스레이를 통과한 후 다시 수의를 입고, 따로 출감절차도 없었다. 나올 때 티켓을 받았는데, 웃긴 건 탑승시간과 게이트번호는 있었는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안 적혀 있는 것이다. J는 그냥 게이트로 달려갔고 나는 직원에게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직원도 금시초문이란 표정이었고, 처음에 난 서울만 가면 된다였는데, 그 티켓으로 아무데나 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 자기연결. 상상의 나래. 헤이스팅스에서 출발한 기차는 해변을 따라 런던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우왕. 빅토리아역 도착 후 걸어서 하이드파크로 갔다. 그 고요함, 상쾌함. 기분이 좋아진다. 그제부터 계속 내리는 비. 오늘도 비에 젖은 풀내음 한번 맡아봤으면!

+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에 뭔가를 넣고 먹어야 하는 습관은 아직 '교정'되지 않았다. 분류과 직원이 다녀간 후 잠시 내 평정이 흔들려서 비상식량으로 나온 건빵으 우적우적.

5월 12일

[MP]

자기연결을 안(못) 하고 잡생각이 떠오른다. 짧은 시간안에 집중해서 해야하는 건데. 한달 했다고 이제 아무 때나 자기연결을 해서인지 아니면 잡생각이 정말 많아져서인지 모르겠다. 어제 분류과 직원이 왔다갔다. 관용부로 출역해야지 하는 것이다. 내일쯤 방을 옮기게 되려나. 모르겠다. 휴. 햄과 아침, 엄마한테 총 7통 편지를 받았다. 오늘도 그 세명한테만 오려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 배고프다.ㅋ

5월 13일 저녁 -아침 접견

어제 아침에 취장으로 옮겼다. 설마 했지만 예상을 못 한것도 아니어서. '글쓰기의 시차'란 표현에 꽂혀 있는데 이제 이틀 일하고 이곳에서의 경험을 적는 것에 대한 생각도 든다. 생각보단 덜 힘들다. 정신없긴 하다. 얼굴근육이 굳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 "일할 땐 웃지 말랬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뒤의 기린 or 자칼(의 심장)이 보여서 그렇게 자극이 되진 않는다. 결국은 너도 나도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고 싶은데 수단방법이 다르단 생각이 든다.

쿠사리 먹고 싶지 않은 내 생각 뒤에는 일을 잘해서 인정, 존중받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평탄함, 여유를 갖는 것이겠지. 접견을 와준 아침에게 고마울 따름. 눈물이 나는데, 돌폼, 따뜻함에 대한 욕구였을까. 진사장님, 너무 고맙다. 이 악물고 6월 말까지는 해봐야지. 너무 진지하진 않게, 유쾌함, 가벼움 잃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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