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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비폭력에 대한 오해들

Published in Gandhi Marg, volume 30, number 2, July-September 2008, pp. 235-257

브라이언 마틴

 

피터 겔덜루는 그의 '비폭력이 국가를 보호하는 방식'에서 비폭력이 무력하고, 인종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방법론면으로 뒤쳐지며 제도적 측면에만 의존하는 하나의 망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비폭력에 대한 이와 같은 그의 공격은 매우 강렬하며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겔덜루의 관점을 평가하기 위하여, 먼저 나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비폭력 직접행동의 사례들을 조망하고 이를 겔덜루의 주장을 분석하는 토대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폭력이 언제나 비폭력에 승리를 거두었다는 그의 논쟁적인 주장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판단으론 겔덜루의 주장들이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있는 비폭력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는 어떤 수준의 그리고 어떤 종류의 폭력까지 받아들일 있는 지에 대한 그의 기준을 말하고 않음으로써 스스로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나키즘과 폭력/비폭력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

나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오랫동안 옹호해온 사람이기에 내가 겔덜루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것이다. 나는 비판적인 분석과 접근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비폭력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현실에서 실험을 해보는 과정에서 더욱 강해질 있을 것이다.

비폭력 행동의 사례들


많은 사람들은 역사 수업이나 헐리우드 영화 그리고 뉴스 등을 통해서 폭력에 대한 가지 믿음을 갖게 된다. 하나는 군대와 무기, 군수산업과 같은 잔혹한 폭력의 상징물들을 많이 가진 집단이 대부분의 경우 들보다 폭력적인 집단을 압도할 있다는 믿음이다. 이와 같은 전제는 비폭력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제기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드러난다. “당신은 나치를 끝장내기 위해서 무엇을 것인가?” 번째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폭력에 대한 생각 하나는, 폭력은 단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자체로는 선악을 평가할 없다는 것이다. , 폭력이 범죄자나 테러리스트 혹은 적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악이 되지만, 폭력이우리 의해 사용이 된다면 선이라는 것이다. 유혈혁명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전제를 받아들인다. 그들이 믿기에 혁명은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고 따라서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무장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폭력 행동은 위의 가지 주장 모두에 도전한다. 비폭력 행동의 성공적인 사례들은 우월한 폭력이 언제나 승리한다는 믿음에 의문을 던진다. 한편, 비폭력 행동이 가지는 속성은 비폭력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간디가 주창했던 비폭력 행동들은 사회 변혁에 있어 비폭력 행동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1906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시작하여 1940년대까지 인도에서 펼쳐진 비폭력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비폭력 행동은 간디 이전에도 수세기동안 존재해온 것이다. 예컨대, 헝가리에서는 1850년부터 1867년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의 통치에 반대하며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비협조 운동을 벌어졌었다. 간디의 업적 중의 하나는 사회 변혁의 전략에 있어 비폭력 행동을 하나의 접근법으로 여겨지게끔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간디의 운동들은 비폭력 운동의 원리와 방법론들이 세계 전역으로 퍼지며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회 운동들에서 이제 비폭력 행동은 하나의 중요한 접근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비폭력 행동은 정치적인 의사소통과 갈등해결의 주요한 도구 중의 하나로서 기존의 진부한 행동들이나 폭력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행위는 투표나 로비 그리고 기존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운동을 의미한다. 한편 전통적인 경제활동은 노동과 재화 용역의 판매와 소비활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통적인 사회 활동은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 이웃을 만나는 , 자선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폭력 행동은 앞서 기술한 일상적인 상식과 행동체계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심지어 비폭력 행동은 기존의 가치체계들을 전복하기도 한다. 광대 복장을 하고서 정부 회의를 방해하는 시위, 국가 시스템과는 별개로 지역공동체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 전쟁에 반대하여 전쟁세 납부를 거부하는 , 소액 계좌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함으로써 은행 업무를 마비시키는 소비자 운동, 버스 노동자가 승차요금 받는 것을 거부하는 , 사무실 노동자가 용량의 파일을 전송함으로써 이메일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 지역화폐를 쓰는 ,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비폭력 행동의 사례에 해당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행동들과 비폭력 행동을 구분하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의 탄압이 심한 상황의 경우에는 리플렛 장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비폭력 행동의 범주에 수가 있겠지만, 파업이 일상적인 곳에서는 파업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급진적이지 않은 단지 기존의 운동의 하나에 불과하다.

  1. 폭력은 보통 잠재적인 지지자들을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맞서 싸우는 상대편들은 완강하게 버티며 격렬하게 저항할 것이다. 이유는 '반응 추론 이론'(correspondent inference theory)이라고 불리우는 심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할 있다. 사람들은 보통 다른 사람의 행동의 결과를 근거로 행동의 동기를 추론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행동으로 인해 죽은 사람이 있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결국 죽게 것이라고 여긴다. 실제로는 죽음이 아니라 자유롭게 생존하는 것이 행동의 동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론은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들의 동기를 오인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작동한다.


폭력은 개인에 대한 상해를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특정한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억압적인 시스템을 바꿔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치인 한명을 죽이더라고 자리에는 재수없는 정치인이 들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정치인은 한편으론 누군가의 부모이며 친구이고 음악가였을 수도 있는데, 폭력은 그런 다양성을 간과함으로써 시스템의 전반적인 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고한 개인의 죽음만을 불러오게 된다.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로 하여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하게 되며, 심지어 국가가 시위대들의 폭력보다 심한 폭력을 쓴다 할지라도 앞서 급한 '정치적인 유술' 효과는 반감하게 된다.

  1. 폭력은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단다. 젊고 건장한 남성들만이 공권력 그리고 시위대 양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무력을 동반한 비밀시위 역시 사람들의 참여를 제한한다.

폭력은 폭력을 사용하는 당사자들은 고무시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제한된 참여는 결국 폭력의 사용하는 당사자들의 능력도 저하시킨다.

4. 방법론으로서의 폭력이 내포하는 속성들은 운동의 목표인 비폭력적인 사회의 모습과 충돌한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다만 폭력의 연습과 경험 그리고 정당성을 부여할 따름이다. 폭력은 즉각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그리고 참여자들이 원래 목표했던 길에서 벗어나 지배권력과 닮아가는 결과가 발생하기 쉽다.

비폭력의 관점에서 봤을 위에서 지적한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 지적들은 폭력의 사용을 반박하는 핵심적인 논리들이다.

물론 여기서 지적한 비폭력의 논리와 폭력에 대한 반박 논리들은 다만 경향적으로 타당할 , 언제 어디서나 진실인 보편타당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비폭력 행동이 폭력적 행동보다 많은 지지를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비폭력 행동의 방식에서는 사람들의 참여가 제한적일 있으며 반대로 폭력을 수반한 운동들에서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수단적 비폭력의 관점을 취할 때에는 상황과 맥락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비폭력 운동들은 사람들의 자발성에 기대고 있으며, 특별한 준비과정이나 계획 혹은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폭력을 수반한 운동들은 무기와 훈련 그리고 많은 계획을 필요로 하며 이것들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적일 없을 것이다. 군사적 훈련과 작전에 투여되는 엄청난 재원과 노력들을 생각해본다면, 비폭력 행동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할 있는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운동인 셈이다.

삶의 원리로써 비폭력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앞서 언급된 원리적 비폭력주의자를 의미함, 옮긴이 )에게 특정한 상황이나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명의 독재자를 암살하는 것이 수백만의 고통을 경감시킬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암살과 같은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비폭력 행동이 보통의 경우에 나은 선택이라고 한다면, 원리적 차원에서의 비폭력을 수행하는 것이 (실용적 관점에서도) 현명하다고 있는데, 이는 참여자들이 비폭력에 대한 오해할 가능성을 줄일 있고, 상대편으로부터 부당하게 폭력의 딱지를 받는 것도 피할 있으며, 행동의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피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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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마틴 글의 사분의 일정도 번역을 같다. 용어를 선택하는 것도 어렵고, 맥락을 따라가는 것도 어렵고 생각보다 밑천을 많이 요구하는 작업인 같다. Principled nonviolence pragmatic nonviolence 구분을 처음 접했고, 어떤 단어로 번역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에게 물어봐얄 같다. 지금 올리는 부분은 주석 처리도 하고 편집도 안했지만(ㅜㅜ), 번역 잡업에 나름의 성취감을 맛보고자 이렇게 거칠게나마 포스팅을.. 전체 원문의 주소는

http://www.uow.edu.au/arts/sts/bmartin/pubs/08gm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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