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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에 대하여

금요일 밤. 이번 주 내내 하루에 한 시간 이상씩 꼬박 용산 관련 기사를 읽은 것 같다. 주로 다음 아고라나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기사들을 보았다.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기사를 읽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에 대한 환멸과 회의가 강하게 들었다. 전철연이라는 외부세력이 문제라느니 불법시위를 쳑결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보면서 그런 말들을 하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에서부터 두려움, 냉소, 환멸에 이르기까지 여러 겹의 감정이 스친다.

 

I dont know anything about korea.

벨기에 겐트에 사는 하비엘 여자친구가 어제 밤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에 왔다. 금요일 저녁, 일 마치고 셋이서 함께 펍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을. 겐트에서 나름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이기에, 보통 활동가에게 기대되는 어느 정도의 넓은 시야가 있을텐데도 그녀는 나에게 아시아 사람의 3분의 2이상이 알콜 분해 능력이 떨어져서 술 마시면 금방 취해버린다는 말이 사실이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연속콤보로 자기는 한국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면서 하지만 일본 문화에는 정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뭐 이런 반응들이야 여기와서 늘 들어왔기에 이젠 별 감흥도 없다. 더군다나 내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국수 애국주의자도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서 한국에 대한 정보를 듣고자 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한국을 소개를 해야할지 늘 곤혹스럽기만 하다. 영어로 말해야하는 기술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이 동네 보통의 상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그게 거짓이 아니라는 걸 납득시키기는 너무나 어렵다. 병역거부자에게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한다는 얘기도,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국가에 의해 처벌을 받는 얘기도, 인터넷에서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이야기만으로도 이미 여기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다른 세상 얘기처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인데,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되려 경찰진압에 불타 죽었고 국가는 그에 대해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는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조차도 뉴스를 보고 있자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싶어지는데 말이다.

 

501번 혹은 750번을 타고 늘 지나가던 그 길이었는데. 그 길가에서 그렇게 사람들이 죽어갔다니 그저 민망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문득 이번에 철거민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간 특공대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들이 뻗쳤다. 이번에 수도 없이 회자된 경찰청장 내정자 김석기가 특공대원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보면서 예전에 봤던 <공공의 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 번째 시리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검찰청에서 열심히 일하던 한 명이 업무 수행 중에 (아마도) 사립학교 재단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들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고, (그런데) 그 장례식 장면에서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훌쩍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실 나도 영화에 몰입했다가 그 장면에서 눈물이 찔금나려고 하는데 머리로는 내가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안 되지 하며 애써 참던 기억이 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억울하게’ 혹은 ‘아름답게’ 희생된 검사.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료들. 이번에 죽은 어느 특공대원의 죽음을 모욕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역시 불의세력에 맞서다 용감하게 죽은, 국가에 의해 추앙받는 한 명의 이름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적어도 국가와 언론에 의해 다뤄지는 그의 죽음의 의미에 한해서는 말이다. 그 어디에서도 국가의 부당한 명령으로 죽음을 초래한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나, 어이없이 죽어간 한 개인 자체에 대한 의미부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희생은 오로지 국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규정된 ‘공공’의 이익 하에서만 기억될 뿐이었다. 그럼으로써 강화되는 법과 질서의 중요성.


같은 특공대원이었다는 동료의 인터뷰 기사를 보며 난 더 이상 할 말이 잃었다. 촛불집회가 잦아드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의 법질서가 확립되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니. 새삼, 경찰 전체가 집단적으로 마약을 했거나 아니면 그와 동일한 효과의 최면에 걸린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경찰은 항소심에서 2년을 선고 받았다. 상고를 해도 이젠 형기를 단축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그럼 차라리 항소를 안 하고 1심에서 받은 1년 6월로 재판을 마쳤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든다. 과연 인간은 어느 누구나 ‘변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10만이라는 경찰 집단, 48만이라는 공무원 집단, 68만 군인집단 그리고 사법부, 국회, 강부자 등등. 도저히 나와 같은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들을 추동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촛불시민들로 하여금 마침내는 짱돌을 들게 만들고 그들을 다시 폭력사범으로 몰아가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악랄함을 배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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