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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2
    6월 18일
    나르맹
  2. 201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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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3. 20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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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맹
  4. 2013/09/19
    5월 21일-31일
    나르맹

6월 18일

6월 18일(토) - 아침, 조짱 접견

오른 발목 통증이 나아질만하면 또 아파와서 의무과에 휴역증을 끊어왔다. 휴식을 얻어 오랜만에 주말 이틀 온전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작업장 다른 재소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몸이 아픈 것 자체보다는 나의 아픔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 않고 걱정이나 돌봄보다는 오히려 의심과 불신을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왜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못 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일까.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한다, 너가 일을 쉬면 내 할 일이 많아진다는 생각. 그렇다면 시스템의 문제인데, 보통은 시스템이 아닌 해당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군 가산점에 흥분하는 예비역들. 귀족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다.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 

이곳에서 통용되는 언설들이 있다. 징역에서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다거나 그렇기에 징역살이는 결국 혼자 견뎌야 한다는 그리고 이곳에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착함이 오히려 이용당하는 곳이라는 말들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적자생존의 정글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말들이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말은 일면 자신이 처한 역경을 현명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유용한 생활방식일 수도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성을 갖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방법은 각자 살아온 환경,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이 택하게 되는 방식은 남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따져보는 것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다고 쉬 말하긴 어렵다. 이 때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개인을 그렇게 환대와 상생이 불가능한 곳으로 내모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본주의의 발달이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붕괴시켜 농민들을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키고 근대적 빈곤을 만들어내면서 두려움(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늙어서 고생할거야라는 식의)과 경쟁이 지배하는 시대정신을 탄생시킨 것처럼 한국의 교정 현실 즉 이 징역도 결국은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선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정신을 심어주고 이로써 사회 복귀한 자들이 체제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징병제를 유지함으로써 순응적 노동자를 양산한다는 박노자 선생의 지적처럼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정'은 개별 교도관들의 인성이나 성품과 무관하게 인간에 대한 불신, 시스템에 대한 무기력(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어차피 혼자 나서봐야 자기만 손해야)을 학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명제를 이 곳에서 증명하려는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내면화한 이들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이 역시 나의 '평가'일 뿐 한 사람 한 사람 대화를 나누면 분명 그들이 가진 인간성(예컨대 '좋은 아빠') 또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생각들로부터 일단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말아야겠다. 힘이 약하고 아픈 것도 '죄'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 곳의 현실이 원망스럽고 분하기도 하지만, 몸이 제 상태가 아니면 생각의 흐름도 건강하지 못하고 나 역시 타인에 대한 증오를 은연 중에 키우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단 경각심이 든다.

우리의 선한 인간성을 믿으며

(일기를 보니 색깔 펜으로 쓰고 지우며 많이 고쳐놨던데, 이렇게 정리해서 밖에 써보냈나보다. 문단 별로 번호를 매긴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직 손으로 직접 쓰는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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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16일

6월 11일(토) - 지환, 미란, 영선 접견

반가운 얼굴들이 접견을 와주었다. 그런데 접견실을 나와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접견실에 흐르던 묘하게 무거운 기운을 바꿔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즐거운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내 걱정을 안 해줄거란 두려움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관심, 돌봄에 대한 내 욕구를 확인한다. 한편으론 먼 길 와준 분들이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싶은 욕구 또한 있다는 것을 보았다. 역에 내가 갇혀 있는 게 국가의 탓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택해 온 길이니,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분들을 떠올리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렇기에 그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내가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겠다. 연기하면 힘들테니 실제로도 잘 지내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다. 출소했을 때 온 기운이 빠져 쓰러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내 마음 돌봄을 잘 해야겠다.

지금 TV에 영화 <글러브>를 보여주고 있다. 올 1월 인천 전교조 연수에 연미 쌤과 함께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것보다 채식에 대한 배려를 받았던 기억이 크게 떠오르는 걸 보면 역서 채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긴 있나보다. 연미 쌤한테도 편지 한통 보내야 할텐데. 다음 주에 아침과 함께 면회를 오면 좋으련만.

"집합"이란 말은 사회에 나가면 들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 불신의 존재가 되는 것. 언제든 혼날 준비가 되는 것. 그 위축된 기분이 불쾌하고 싫다.

6월 12일(일)

사람들에 치이다보니 가끔은 내 편은 커녕 주변 모두가 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내 마음은 꽁꽁 닫혀 있어서, 얼굴은 웃으려 하지만 초췌하다는 말을 듣기 일쑤이고 작은 자극에도 날카로워지거나 혹은 모든 감정을 삭제한 채 멍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씩 예기치 못한 호의를 한번씩 받고 나면 이내 곧 마음이 눈 녹듯 풀려서 여름 하늘 구름 한번 올려다보며 심호흡 한번 고르기도 한다. 경직된 내 몸 곳곳의 근육들에 호흡을 불어 넣어주면서 몸을 편하게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날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그 상대의 말과 행동 이면에서 비극적으로 표출된 아름다운 욕구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가져본다. 뒷골이 땡기고 목 두, 어깨가 경직될 때마다 이제 습관처럼 존중 받는 것, 자기 보호, 따뜻함, 자기 표현 이런 욕구들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쌍욕을 아침 7시부터 들었던 긴 하루도 드디어 저물어간다. 조출을 나가 간마네 형광등 불빛 방해 없이 동틀녁 사위를 볼 수 있었다. 괜히 더 황홀해지는 기분이었다. 생매장한 살인마. 이러니까 그가 괜히 더 악마처럼 보인다. 존중 (받는 것). 자기표현. 나는 과연 그와 인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연결하고 싶은 걸까? 그냥 피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6월 13일(월) - 나동 접견

나동이 다녀갔다. 마치 엊그제 만나고 다시 만난 것처럼 익숙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덤덤히 얘기를 나누는 기분이 좋았다. 내 말을 온전히 다 하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간지러운 부분을 적시에 얘기해주는 나동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마침 오늘 보라 생일이라고 오후에 접견 마치고 이제 보라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맥주 한 잔. 캬. 내일은 특별접견이 있다고, 오늘 들어온 여옥 전자서신으로 들었다. 매일 접견만 있어도 징역 살만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카펠라 공연에 갔다가 정말 우연히 현민을 만났다. 이 무슨 기묘한 상황인지. 일을 뺄 수 있단 생각에 그리고 갔다가 겪은 일로 글 쓸 거리가 생길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라이브 공연의 맛을 느껴보려고 갔었다. 국민체조를 시키는 부분에선 뜨악하기도 했지만, 마음껏 소리지르고 하니 스트레스는 풀리는 기분이었다. 현민은 어찌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가면 홍대 클럽 공연도 바로 가야겠다. 어제 오늘 달리기를 쉬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뛰어봐야겠다. 태양볕이 뜨겁긴 하다.

6월 14일(화)

부은 손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반질'크림 구매를 했다. 손발의 굳은 살, 주부습진을 위한 연고라고 한다. 오늘 승호씨, 케이티, 여옥이 특별접견을 와주었다. 무지 반가웠다. 내 징역에 몇 라운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 접견까지 마치고 나니 한 고비를 또 지난 기분이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험한 말들이긴 하지만 그냥 이 상태를 받아들인달까. 내일은 햄이랑 통화를 또 할 수 있으니, 그러고 나면 이번 한주도 훌쩍 흘러있겠구나.

6월 15일(수)

1시 살짝 전에 전화 불려가서, 햄이 씻고 있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쉽지만 아침과 통화를 한 것으로 만족. 엄마 편지(장접 일정 관련) 받고 살짝 또 울컥하려고 하는데, 워워. 느낌에 어제 앰네스티 접견 덕에 담당 주임이 나를 '잡범'과 구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은 게 학창시절 교사들의 관심을 받으며 누리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떠올랐다. '존중'을 가장 큰 욕구라 생각했는데, 오늘 주임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돌봄, 관심, 보살핌도 큰 욕구였다는 걸 깨달았다. 기다리던 수감자 우편물이 들어온 날. 카페에 올릴 글 하나 보내야겠다.

6월 16일(목)

어제부터 신호가 오던 오른 발목이 오늘 더 아파와서 얘기를 하고 1시 입방을 했다. 꾀병 소리를 듣는게 힘들긴 하지만 -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이해. 돌봄의 욕구- 그래도 쉬고 싶었다. 내가 빠져서 일을 더 할 분들에 대한 배려도 중요한데 여기는 "배려를 배려로 받지 않고 이용해 먹는" 불신의 공간이기에 나도 그냥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고 내 몸을 챙긴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전에 양파, 오이, 당근, 양배추, 배추, 감자, 대파, 애호박 등등 식재료들 오후엔 냉동 닭, 돈육, 돈불(고기) 등의 고기가 들어오기에 일을 하고 있다가도 "물건" 외침과 함께 달려나가 물건들을 수시로 나른다. 물건을 나르는 사람, 물건 나르는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된 이곳에서 처음엔 괜한 욕 안 들으려고 그리고 내가 더 들면 남이 덜 고생하리란 생각에 남들만큼의 양을 들고 날랐지만 오늘은 기운이 없어서 남들이 2개, 3개씩 들 때 1개를 들었더니 바로 "야 넌 왜 한 개만 들어, 장난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가 힘자랑 하는 곳도 아니고 딱 한번 그렇게 들었는데 바로 '쿠사리'를 먹는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건 나의 과도한 예민 반응인 것일까. 다같이 똑같이 들어야 평등하단 그의 마음. 결국 '이해'의 문제란 생각.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이해받지 못했을 때 그는 '버럭'했지만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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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10일

6월 1일(수)

드디어 6월이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5월 마지막 날. 6월 첫 날. 일도 평소보다 많았다. 한 사람의 실수 아닌 실수를 재수없게 소장이 발견했고 보안과에서 취장 주임에게 연락을 한다. 주임은 반장을 부르고 반장은 다시 조장들, 조장은 다시 작업원들을 소집한다. 이 연쇄고리. '처벌'은 '장급'들이 받는다. 이 무슨 파시즘도 아니고. 내가 아는 '책임'의 의미와 이 곳에서 '책임을 진다'의 의미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난 덕분에 5일간 설거지를 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이렇게 고비 넘겼으니 남은 6월은 후딱 가면 좋겠다. 6월 말 난 여전히 취장에 있으려나-

6월 2일(목)

어느 새 목요일이라니. 냄새에 민감한 내게 어느 덧 취장 곳곳의 조금씩 다른 냄새, 방 안의 냄새가 익숙해진 것 같다. 여전히 불쑥불쑥 낯섬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며칠 만에, 근 1주 아니 10일 만에 뛰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뛰기 힘들어도 걷기는 계속 해야겠다 최소한. 오이미역냉국의 시원함. 고기가 간간이 들어있는 하이라이스와 밥. 찐감자. 이불 빨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여기 생활에 정착해야겠단 마음을 갖고 있나보다. 조출. 설거지 없는 이번 주 말까지의 시간을 즐겨야지.

6월 3일(금)

<그날이 오면>에서 보내준 책을 받았다. 고마울 따름이다. 주말에 답장이라도 한통 보내야겠다. 즐에게 온 편지를 통해 서울대 본부 농성 분위기를 들었다. 역시나 KBS 뉴스나 신문으로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라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2005년 농성 때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취장에 와서 네번째 맞는 주말이다. "이 곳에 오지 않았으면 접해보지 못했을 사람들"이란 표현을 머리로 들었을 때와 여기 막상 지내면서 증인 분에게 듣고 나니 기분이 또 새롭다.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차이 역시 섣불리 동질화하려고 하지 않는 것. 둘 사이에 발란스를 맞추는 것.

6월 4일(토)

벽에 걸어둔 가방에서 편지지를 꺼내다가 사라졌거나 혹은 내가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햄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25일자 전자서신. 햄이 접견와준 날 써준 서신이다. 이번 주는 햄의 손을 잡아보긴 했지만 편지가 없어서 내심 불안해하던 차였다. 합동접견 때 엄마 옆에 앉지 말고 햄 옆에 앉아서 손도 잡고 껴안기도 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에효. 내일도 이빠이 편지를 써보아야겠다.

6월 5일(일) 

아직 아침 9시가 안 된 시간. 어젯 밤에는 내가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 시간을 두고 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졸려서 생각 정리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형은 너무 내성적이야. 아직 세상 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애." 이 말이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나도 내 딴에선 신경 많이 쓰고 배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욕구가 가장 큰 욕구인 듯 하다. 그 아이도 배려받고 이해받고 싶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자극에서 시작된 생각들이 이제는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들,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나의 선택은 어디로 이런 생각들로 이어졌다. 예컨대 비폭력대화가 전제하는 보편적인 욕구의 그 보편적 인간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경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 전제된 서로의 차이들에 대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 있는 것인가 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분명 차이가 있는데 거기서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질문인걸까. 아직 명확히 정리는 안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 읽었다. 고통 속에서조차 의미를 찾아 내는 것. 삶에 물을 것이 아니라 삶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을 찾을 것.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자기 자신에게 초연해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특별히 사용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분리될 수 있는 인간의 이 기본적인 능력은 로고테라피 치료 테크닉에서 말하는 역설적 의도가 작용될 때마다 실현된다. 그와 동시에 환자는 자신의 신경증 증세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고든 W. 울포트 교수의 말과도 일치한다. (...) "신경증 환자가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며 아마 치료되고 있는 중일 것이다."

6월 7일(화)

기대했던 챔의 편지가 없었다. 네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도 어딘가 허전하다. 과대망상에 빠졌다가 내일 온다고 지난 월요일에 얘기한 햄의 말도 믿지 않고 있다가 불쑥 햄이 오고 나면 민망해질테니 오늘은 이 정도에서 적절히 감정을 통제해야겠다. 이번 주 일요일 드뎌 첫 조출을 한다.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불안함이 좀 주는 것 같다. 4시에 출근해본다는 경험에 대한 은근한 설레임도 있고. 징역보살. 징역이 보살이라는 그 표현이 와닿는다.

5시 입장인데 4시에 들어와보니 그 한시간 차이가 주는 여유,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늘 축구 중계를 생중계로 해준단다. 사회의 광고를 실시간으로 본다니 어떤 기분일까. 소설 봐야겠다. 햄이 넣어준 학술서는 잘 읽히지가 않는다.ㅠㅠ

6월 8일(수) - 햄 접견

햄이 와주었다. 전자서신과 손편지까지 3종 세트를 받은 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오늘 15분 뛰었다. 당분간 15분씩 꼬박 뛰어야겠다. 군사주의 문화와 계급과는 관련이 없다는 깨달음. 이곳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이라서 좋은 경험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에 대한, 당분간 화두로 붙잡고 고민해봐야겠다.

6월 9일(목)

또 하루가 갔다. 아침에 눈 뜨고 몸이 찌뿌둥할 때 햄과 함께 봤던 일출. 낙산사 산책길. 그리고 미래에 함께 걸을 길들을 떠올리면 기운이 불끈! 난다. 고마운 햄.

6월 10일(금)

오늘은 좀 몸이 찌뿌둥한게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한 것 같다. 현지 편지를 받고 답장을 열심히 썼다. 아무래도 6월 말까지는 꼼짝없이 취장에 붙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만난 영배씨, 현민과의 대화에서 들었다. 아 피곤하다.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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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31일

5월 21일(토)

첫 휴일. 밀린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가 짧아보이기만 하다. '국조'의 작업도 이젠 대충 다 알겠다. 개근하고 12사 갔다가 돌아와 상차리고 밥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청소 하고 걸레 빨로 좀 쉬면서 화장실 다녀오고 국 짬 버리고 다시 식간 깔고 국여분 버리고, 식수 받고 상 차리고 밥먹고 개근하고 설거지 하고 김치 개근 하면 점심 쉬는 시간. 이때 손빨래를 하고 구매장 쓰고. 전업을 언제 나갈지 기대 말고 일단 두 달 꼬막 채운다 생각해야 겠다.

오후 운동 30분 동안 담벼락 안 운동장을 걸으며 현민과 대화를 나눴다. 내 징역의 전망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과의 경쟁 관계 때문에 내가 관용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것이 현민의 전망이었다. 이떻게 될지. 훈련생 신청을 다시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 중인데, 이번엔 여러 말 안 돌게 잘 넣을 수 있을지 걱정, 불안, 초조, 두렵긴 하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겠지.

5월 22일(일)

일요일. 이상하게 몸도 무겁고 허리, 꼬리뼈 통증이 심했다. 차기 조장이 저녁 설거지를 대신 해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고마운데 자꾸 그 이면에 뭐가 있진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욕구 차원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겠다. 주임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들어서 내일 분류과 면담 신청 얘기를 할지 말지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계속 일할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얼른 허리가 괜찮아져야 할텐데.

지난 주부터 일요일에 <나는 가수다>를 보여준다. 지난 주엔 작업장에 있는 시간이라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7시 넘어서 보여주니 기쁘다. 지금은 김연우가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르는 중. 여기서 이런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감동이다.

5월 23일(월)

끝이 있는 고통은 견딜 힘을 준다.(예측가능성).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때 이 고통을 왜 겪어야 하는가 회의가 들면서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심리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분류과 면담을 신청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사람이 허리 아프다고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 군대 훈련소 왔다 생각하고 해야지. 여긴 강제로 노동을 하는 거잖아. 강제로 하는 데서 못 이겨내면 밖에서 자유로울 때는 어떻게 이겨내겠어. 분류과 면담은 시켜줄게. 시켜는 주겠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작업장 주임의 말이다. 이걸 확 물어버리고 싶긴 한데 일단은 좀 더 간을 보는 중이다. 국가인권위에도 내고 국민신문고에도 내고. (존중) 계산기를 좀 두드려봐야겠다.

5월 25일(수) - 햄 접견

오늘이 벌써 25일이라니. 곧 있으면 6월이네. 뜨거운 물을 페트에 받아와서 등허리를 좀 지졌다. 오늘은 기온이 꽤 높았던 것 같다. 여름을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급히 편지를 썼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일면 예상이 되면서도 투정을 좀 부리고 싶었다. 이러나 가족 접견에 엄마가 안 와버리면 어쩌나 싶다.ㅎㅎㅎ 내일도 접견이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전없세 CO노트 원고 청탁 받았는데...쩝. 무슨 말을 써서 보낼지 모르겠다.

5월 26일 - 혜란, 염 접견

오늘 무슨 종합선물세트처럼 무수한 편지를 받았다. 2009년 초 런던에서 Turning the Tide 트레이닝 때 만난 분들이 지지의 엽서를 보내주었는데 완전 감동이다. 아침이 보내준 손편지 세트도. 아까 작업장에서 얼핏 받았을 땐 햄 편지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방에 돌아와 보니 보이지가 않는다.ㅠㅠ 허리보호대를 하니 좀 더 괜찮아진 것 같다. 아프다 생각하면 더 아픈 것 같아서 돌봄 관심 존재감 평탄함의 욕구는 윶하면서도 안 아플 수 있게 내 몸을 잘 보살펴야겠다.

5월 27일(금)

관료 조직, 군대의 위계서열과 근대 학교 교육이 가정하는 교사-학생 관계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가르치는자-배우는 자가 이미 결정이 되어 있고 그에 따른 권력 그리고 심지어 인격적 우열까지 정해지기도 한다는 것. 개인차가 있겠지만 학생-낮은 지위의 사람은 배우는 자이기에 의심을 받는 존재 혹은 부족한 존재로 전제가 된다.

5월 28일(토)

드디어 내일 휴일이다. 1년 전 이때, 교생 마지막 날 아이들과 헤어져 마로니에 공원에서 인권영화제에 앉아 있으며 현지를 기다렸던, 그리고 밥을 먹고 성곽길에 올라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선 부천 집으로 먼 귀가 길에 올랐지. 아까 작업 마치고 사동으로 돌아오는데 아직 밝은 저녁 햇볕을 보며 캔맥주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읽을 책이 적당히 밀려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긴장감이 마음에 든다. 꾸역꾸역 산다는 생각을 없애주고 하루하루가 아깝단 생각을 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일 밀린 편지도 쓰고 카페에 보낼 글도 쓰고. 시와의 "여신이시여" 노래가 떠오른다.

5월 30일(월)

뭔가 긴 하루였다. 약 9시간 전 엄마와 햄을 만나 손을 잡고 포옹을 한 게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떡, 초콜렛, 과일, 밥, 나물, 다 더먹고 싶었는데..중간에 울컥 울음이 나왔는데 엄마도 역시나 우는 모습을 보며 슬프고 착잡하고 미안하고. 나를 지긋히 바라봐주던 햄이 고마웠다. "신입 오면 좀 더 편해질거야." "야 너가 엄살이 심한거지." 자극이 되는 말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5월 31일(화)

선규 형이 취장으로 왔다. 정말 기묘한 인연. 반가움이 컸다. 비가 왔다가 날이 맑아졌다 다시 소나기 후 지금은 그냥 살짝 우중충.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 떠오른다. 3년전 이날 런던으로 출국했지. 편지에 더 집착하게 되는데, 기대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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