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07년 3월 11일(제3호)천재지변+육체적 장애=배움의 권리 박탈??

천재지변+육체적 장애=배움의 권리 박탈??

오늘 4학년 기말시험이 끝났습니다..
전 잘 봤냐구요?? 어제, 아니 오늘 새벽까지도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침이 되고 출발시간이 가까워졌음에도 제가 살고 있는 평택은 폭설이
그치질 않더군요..(참고로 제가 사는 곳이 외곽이라 눈이 오면 차량접근이 어렵답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학기부터 카풀해주신 학생회 회장님께서도 직장 근무 관계로 갑작스레 못 가신다고 하고...



저 뇌병변 1급 장애인입니다..
일어나 걷는 건 물론 제 두 손으로 태어나 지금껏 뭘 해본 적이 없고
이 글도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쓰는 것입니다..
저의 머릿속이 온 세상을 덮은 눈만큼 하얘지더군요..
출발시간은 촉박해오고 제가 아는 분들은 사정상 혹은 거리가 멀어 못 오시고..
장애인 심부름센터나 활동보조인서비스(유료외출도우미)도 일요일은 모두 휴무...
설령 콜택시를 부른다 해도 앞이 안보일 정도의 폭설을 뚫고 외진 곳까지 들어올 리
만무하고....... 그것도 지역대학이 있는 수원과 평택을 왕복한다는 건...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단어...... 포기..... 제가 가장 말하기 싫어하는 두 글자...였습니다....
결국 시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 학기 동안의 수고는 무용지물이 된 채..



지난번 학보에서 본 기사가 떠오르더군요.. 집중호우 때문에 교통편이 끊겨 시험을 보지 못한 강원도 학우의 구제요청.. 당국은 재시험 불가라고 한마디로 묵살해버렸습니다..
학교특성상, 인력부족이란 이유만으로.. 국립대학교라 그렇다고 하기엔 상당한 어폐가 있는 말입니다.. 30년이 넘은 역사와 몇 십만 재학생, 그 몇 배에 달하는 졸업생을 배출한 4년제 대학교란 명예에 걸맞지 않게 형평성과 융통성 없는 구 제도만 고수하는 태도를 취하는 건 정말 커다란 모순이 아닌가요?
재시험 제도 실행이 어렵다면 기말고사의 비중을 낮추고 중간고사 외에 과제물이나 웹을 통해 평가할 수 있는 시험제도를 추가 개설하면 훨씬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편입 후 1년을 다니고 1년을 쉬었습니다.. 대필과 차량편을 구하지 못해서였습니다..
평택이란 작은 도시까지 당국이 만들어 놓은 도우미 제도가 미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한결같은 대답 뿐.....
배움의 기회는 공평하고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교육헌장에는 분명히 나와 있는데
천재지변을 당해서 혹은 육체의 장애를 가졌다고 공정하게 부여된 권리와 기회를 줄 수 없다면 그건 대학당국의 학칙 뿐 아니라 헌장까지 무시하는 것이 되는데..
타 국립대학을 다녀봤지만 이렇게까지 꽉 막히진 않았습니다..



우리대학 시각장애 학우들 괜히 시위한 거 아닙니다..
동등하고 공평하게 배우겠단 겁니다...
무조건 원망하거나 떼쓰는 것도 아니고 도와달란 말도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배움의 과정 하나하나를 헛되게 만들지 말아달란 겁니다..



전 내년에도 시간과 체력과의 악전고투를 해야 하겠지요..
저 뿐 아니라 많은 학우들이 그러실 겁니다.. 가정과 직장을 가지셨으니..
하지만 제가 겪은 이 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