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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오늘날 총여학생회의 존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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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여학생회의 존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

 

 

 위 홍보전단의 “총여학생회의 존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히나 이 문장이 학생회 선거운동의 공약으로, 그것도 ‘총여학생회를 준비’하는 선거본부(이하 선본)가 ‘총여학생회 폐지’를 위해 내건 공약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것은 2013년 11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총여학생회 선본의 선거 홍보물이다. 이 선거가 진행되기 몇 주 전 연세대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자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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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총여학생회인가”

 

 

 “전체 예산 중 1.04%만이 여학생 복지 비용으로 지출”이라니, 정말 자극적인 문구다. 정말로 총여학생회는 뭘 하는 곳이란 말인가!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자. 대자보에서 여학생을 위해서는 이것밖에 쓰이지 않았다는 주장에 포함되는 것은 여학생 휴게실 관리비와 생리대에 쓰인 비용뿐이다. 대동제, 즉 학교 축제에 아이스크림 기곗값과 야광 팔찌, 배지, 단체 티 제작에 사용된 비용은 여학생을 위해서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교 축제에서 학생회가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행사를 진행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이나 배지 등을 파는 것이 ‘여학생을 위해 쓰인 돈’이 아니란 말일까. 설사, 이 행사가 전혀 페미니즘과는 관계없는 행사였다고 가정해도 위의 항목들은 총학생회나 다른 학생회들이 학생회비를 지출하는 내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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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자보에서 말하는 바는, 결국 생리대와 같은 ‘생물학적 여성의 특징’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만 여학생의 복지를 위한 비용으로 인정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여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거나 학내 성차별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캠페인을 하는 비용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한 해결책이 총여학생회는 여학생들을 위해 더 일하라, 여학생을 위해서 돈을 쓰지 않고 뭐 하느냐고 일갈하는 것이 아니라 이 쓸모없는 여학생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남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위의 두 사건이 말하는 바는 같다. 총여학생회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미 성평등이 실현되었고 심지어 여성 상위시대이기 때문에, 대학 내의 페미니즘은 이제는 구닥다리라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대학교에서 총여학생회 선본이 나오지 않거나, 선거가 진행되지 않았다. 더 이상 총여학생회가 기능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라는 주장 때문에 총여학생회는 없어지거나 여성위원회로 전환되어갔다.1 이제 서울 시내 4년제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남아있는 대학은 6개 대학(한양/동국/숭실/경희/명지/연대 – 이중 연대는 올해 선본이 나오지 않아 선거가 진행되지 않았다)뿐이다. 이마저도 남학생들이 같이 투표권을 가져야 된다는 주장이나, 폐지해야 한다는 논란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정말 “페미니즘이 위기”이거나 “더 이상 필요 없기”때문인가. 대학에서는 성평등이 실현된 것인가

 

 

“남학생들도 돈 내는데 면도기는 안 주나요?”

 


 총여학생회 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남학생들도 같이 내는 돈인데 왜 여학생들만을 위해 쓰느냐는 것이었다. 한양대학교의 경우 총 학생회비 한 학기 약 6000만 원 중 총학생회가 2000만 원가량, 총여학생회는 300만 원이 안 되는 돈을 지원받는다(축제를 위해 2000만 원 정도 더 지원받고 후원금이 한해 2000만 원 가량 된다). 여학생 수가 전체 학우의 1/3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왜 학생회비를 여학생을 위해서는 쓰지 못하나요?” 그러면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총학생회가 있잖아요! 총학생회가 모두의 복지와 권익을 위해 힘쓰는데 여학생회가 있으면 여학생들은 이중으로 혜택을 받잖아요! 총학생회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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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학생회가 내 거는 술집 할인 혜택들이 여학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사실 그런 자리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추행이나 언어 성폭력이 많이 일어난다),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모든 학생들을 위한’ 운동회에는 실질적으로 여학생이나 장애학생은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낙태하는 년들은 걸레같이 주고 다니면서 수술했다고 수업이나 빠지려고 한다”는 학내 커뮤니티의 말들을 묵인하거나 “여자들은 자꾸 결혼하고 그래서 대학원생으로 뽑지 않는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주억거리면서도 성차별은 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학교 내에서 성폭력이 일어나긴 하나요? 괜히 총여학생회가 없는 일을 만들어서 여학생을 피해자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요?”

 

 여기서 이 명제가 다시 떠오른다 “총여학생회는 오히려 여학생들의 권익을 침해한다.” 일례를 들어보자, 한양대에서 지난해 비상생리대를 화장실이나 학생회실에 배치하겠다는 공약은 상당한 반발을 받았다. “김치년들의 저 거지 근성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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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학생들조차 부정적이었다. 공약을 철폐할까 하는 기로에서 여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이 나왔다. “꼭 필요하고 설치되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공약을 내걸면 오히려 남학생들한테 여자들이 욕먹으니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오히려 총여학생회가 권익을 침해한다”는 문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모든 총여학생회 혹은 대학 내 페미니즘이 같은 위기에 처해있다. “여학생들이 수업을 못 듣느냐 뭘 못하냐 여학생 휴게실도 있고 요새는 여학생들이 더 떵떵거린다”는 명목적 ‘평등’의 표면 아래서, 눈치를 보며 총여학생회가 존재하기 위해 내세울 것은 ‘복지’라는 명목밖에 없다. “여학생들한테만 돈을 쓴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남학생이 함께하는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만들기’ 행사를 진행한다. ‘커플상담사’를 불러온다. 취업을 위한 메이크업을 진행한다. 잡지 <코스모폴리탄>을 배부한다. 자행되고 있는 차별 때문에 차별이 진행되고 있는 억압적 시스템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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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눈치를 본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그 위협은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이기 때문이다. 학내에서 여성주의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여성주의 활동을 하는 이들의 피로도도 대단하다. 여성주의 운동은 여자도 데이트 비용을 내야 한다는 20년 전의 논쟁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총여학생회의 의견을 표명하는 대자보들은 찢기기 마련이고, 포스터를 붙이고 있으면 “여성주의는 여성 우월주의”라며 낄낄거리는 학우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한양대의 총여학생회는 3년간 한 번도 예산과 사업 보고안을 전학대회에서 인준 받지 못했다. 올해의 경우 총여학생회에서 일 할 집행부마저 인준 받지 못했다. 정말 눈치라도 보고 “남학생들과 함께하는 총여학생회입니다."라는 말을 붙여가면서까지 살아남지 못하면 다음 해에 총여학생회가 설 수 있을지에 대해 가늠을 할 수도 없다. 이미 많은 학교에서 그렇게 총여학생회가 없어져 갔다.

 

 

“페미니즘의 위기? 학생회의 위기?”

 


 물론 비단 이것은 총여학생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전락하고 취업은 어려워지면서, 학생들은 더욱 원자화되었다. 학생들이 행사에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학생회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졌다. 심지어 학생회비 납부율마저 점점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50%를 넘지 못하게 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점점 줄이고 있다. 게시판을 없애고 학생 자치공간을 없애서 상업공간을 들인다.

 

 학생회가 주최하는 새내기 배움터를 해당 단과대학의 학생처 주관으로 옮겨 장소나 음주 여부를 지정하거나, 축제 때 음주문화를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동아리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인 부스 수를 줄이기도 한다. 여학생 휴게실을 시험기간에 개방하는 것을 두고 학교에서는 “학교는 재워주는 곳이 아니다”, “여학생들은 밤늦으면 집에 갔으면 좋겠다“, “학교가 공식적으로 그런 공간을 개방해서 여학생들이 외박을 하는 핑계가 되면 어떡하느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유독 그중에서도 총여학생회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생존이 어려워지면서 폭력의 희생양을 찾는 것과 연관이 있다. 또 학생들이 원자화되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던 언어 성폭력의 경험 등의 여성 이슈들은 더욱 묻혀간다. 당장 취업이 중요하고 집세 내기도 어려운 입장에서 여성주의를 설명하고, 당신이 받고 있는 것이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내면서 피곤하게 살 이유는 없다. 성평등이 실현되거나 여성 상위시대가 된 것이 아니다. 차별은 오히려 보이지 않게 감춰지고 있다. 취업을 위한 교육 때 “성희롱을 당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좋게 얘기해서 넘어간다”는 답변이 명답이라며 치켜세워졌던 것처럼. 여성주의는 교양이나 에티켓이 아니라 ‘마니악’ 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총여학생회는 복지만을 위한 기구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언어에 말려드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을 위한 복지라는 것은 결국 왜 여학생들만을 위해서 돈을 쓰느냐는 ‘언어’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쉬운 길을 택하지 않기 위해 논리를 세우며 고민을 거듭할수록 그 고민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적어져 간다. 

 

 지난해 총여학생회를 하면서 가장 성과 있고 뜨거웠던 경험은, ‘여학생 체육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모두들 상금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학내에서 여학생이란 정체성으로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에 환호했다. 이런 경험, 계속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눈치 볼 필요도 없는 방식으로 드러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 부디, 학내 여성주의는 살아남아야 한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즐겁게’ 고민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계속해서 균열을 만드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것. 여성주의가 가진 힘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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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위원회나 성평등위원회는 주로 총학생회 산하기구로 들어가게 되므로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받기 힘들다. 한양대학교의 경우 2003년 여성위원회의 장을 총학생회에서 임의로 임명하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자 사용하던 공간을 비우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2004년 총여학생회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