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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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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흔은 이렇구나’ ‘내 쉰은 이렇구나’ 하며, 차곡차곡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예습도 복습도 없는 한 번 뿐인 생. 그 중간 어디이자 반복되지 않을 내 57세를, 살며 느끼며 걸어가고 있다. 삶이 이어진다면 일흔도 여든도 그러할 것이다. 내 생애의 다른 시기와 비교가 불가능하며, 다른 인생들과의 비교는 더구나 저울질 할 일이 아니다. 일반적이니 보편적이니 하는 말들은 믿지 않은지 오래다. ‘너도 나이 들면 다 똑같아진다’는 말은 이제까지 살아본 바로는 협박에 불과하더라. 길지 않은 글이니 남들의 관점에 관해서는 대체로 생략한다.

 

두 달 전부터 새치 염색을 하지 않고있다. 만 57세의 나이라면 ‘새치‘보다는 ’흰 머리‘라는 표현이 맞겠다. 주로 얼굴 주변에 많이 나던 흰 머리가 스스로 추레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에 얼굴 주변으로만 염색을 했었다. 얼굴 뒤나 위의 흰 머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건 보이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두 달 전에 노인들이 수강생으로 참여하는 모 신문사와의 ’자서전 쓰기‘ 강좌를 수락하면서, 그 김에 차일피일 미루던 ’염색 그만’을 실행했다. 흰 머리가 ’추레함’보다는 ‘동질감‘으로 느껴지겠다는 생각에서다. 보는 사람이 여전히 추레하게 본다면, 그 것 역시 보는 사람의 일이다.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은, 조작된 이데올로기다.

 

피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오는 “나이듦”에 대해, 불호(不好)를 논할 일이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최대한 즐기든가, 그게 안 되면 오는 대로 겪으며 견딜 일이다. 어차피 미래란 불확실한 것. 온갖 변수들을 끄집어 불안해하며 종종대봤자, 삶만 어수선해진다. 몇 가지의 대비들이 쓰잘 데 없다고야 할 수 없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대비는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를 명확히 하며, 그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으면 된다. ‘자급하며 소신을 품고 실천을 나누는 삶’이, 예나 지금이나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하더라. 소박한 일상과 자존감을 다치지 않을 만큼만의 물질이, 그 자체로도 단출하고 소신과 실천에도 도움이 되더라. 지금처럼 살고 있으면, 나이는 오는 대로 먹어질 테고, 그에 따라 늙음과 질병과 장애도 따라와서 나를 이룰 것이다. 그 끝에 죽음이 올 테고, 그 다음은 이승의 일이 아니다. 죽음 이후는 차치하고, 이승의 남은 삶도 궁금하지 않다. 오는 대로 최선을 다할 작정만 한다.

 

미래란 과거의 연장이며, 차곡차곡 온다. 나이듦도 질병도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다. 장애와 죽음은 갑자기 닥치기도 하던데, ‘내 차례려니’ 할 일이다. 친구들이 먼저 만난 장애를 나는 뒤늦게야 만나는 것뿐이며, 57세의 죽음은 이미 요절도 아니다. 죽음의 순간 혹 의식이 있다면, 스스로 ‘그럭저럭 잘 살았구나’ 싶으면 족하다.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급사한다면, 더없는 복이어서 또한 족하다. 혹 먼저 정신을 놓쳐버렸을 때를 대비해, 연명치료거부와 시신기증의 공적 절차를 시간을 내서 해두어야겠다. 몸과 정신이 자존을 다하여 ‘여기까지다‘ 싶을 때, 스스로 문을 열고 죽음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산 속이나 바다 속 생명들에게 꺼져가는 몸을 보시하는 사람들. 죽음의 방식 또한 각자의 몫이기도 하다.

 

황망하고 기막힌 죽음들이 널려있는 요즈음, 함께 살던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 서서히 죽음에 닿아가는 제주도의 늙은 진돗개 ’별’의 모습은, 내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일주일만 더 같이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아빠(내 페이스북 친구)의 마음을 아는지, 물만 겨우 축이며 가끔 눈을 떠주며,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있다. 다음 주에는 별이 평안히 죽음에 닿기를....

 

‘모든 나이는 살아볼만 하더라’는 것이 육십을 삼년 앞둔 나의 생각이다. 혹 구십이 온다면, 내 구십의 호기심과 욕망이 궁금하다. ‘늙어 요양원에 가서도 불량식판 사진 찍어 노동조합으로 보낼 사람’이라는 요양보호사 친구들의 농담이 사실인지 두고 보자. 요양원 노인들의 조직 활동도 부탁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과 기억력이 줄어들고, 대신 통찰력과 관계맺기가 한결 나아진 느낌이다. 노안과 관절염 등 퇴행성 증상들이 시작되니, 눈과 관절연골을 아끼며 눈 운동과 근육운동을 일상에서 수시로 한다. 호기심과 욕망은 여전하고, 늘 그랬듯 무엇을 선택할 지가 과제다. 체력과 정신력의 조건이 달라지고 살아갈 날이 짧아지면서, 선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담론에 관한 공부를 상당히 줄였다. 연구 활동가가 아닌 지역 속에 들어온 진보정치 활동가로서, 이미 머릿속에 있는 담론들만으로도 동네 사람들과 나누기에는 부족함이 별로 없다. 새롭거나 미처 모르는 담론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이나 연구 활동가들에게 기댈 생각이다. 꺼내 쓸 시간이 줄어드는 마당에, 집어넣는 일에 시간을 쓸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유난히 재미난 일이라면 몰라도.

 

“나이듦”을 불호(不好)를 너머 두려워하고들 있다. 두려움의 뒷면은 혐오다. 대체로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은 “낯섦”이지만, 나이듦은 널려있으니 낯설 것도 없다.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은, 실체 없이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이다. 소문의 발원지는 자본주의다. 효율성과 정상성과 미모와 강함과 물량 등에 관한, 편향되고 조작된 이데올로기다. 나이듦과 죽음은, 호·불호(好· 不好)의 여지를 떠난 시간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과 그 일부인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은, 소문에 속는 일이다.

 

두려워하든 맞서든, 상대를 분명히 하자. 상대의 실체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널려있는 빈곤과 소외, 그리고 불평등하거나 과잉된 의료다. 여전히 자본주의의 문제며, 그에 대한 각자의 태도의 문제다. 흉흉한 소문에 겁이나 적(敵)과 아(我)를 혼돈해 버리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오지도 않은 귀신에 뒷덜미를 잡혀 우물에 빠져 버린다. 게다가 노년은 막장이어서, 싸우다 죽기에도 좋은 시절이다.

 

나혜석과 권하자와 김○○

 

“사람은 저항함으로써만 자신을 확정해 나간다. 시시한 물건 따위에 만족하지 말고 스스로의 사상과 행동을 결정하는 주인이 되라.”고 말한 리영희는, 정신적·육체적 기능저하로 절필을 선언한 지 4년만인 2010년, 81세의 나이로 죽었다.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매일 정면으로 모욕당했던 나치 시절이, 가장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어 가장 자유로웠다”고 말한 사르트르는, 95세의 나이로 1980년 죽었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스승이라고들 한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한 나혜석은, 행려병자로 길거리에서 발견되어, 시립자제원에서 63세의 나이로 1949년 죽었다. 그녀의 신분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신원미상 무연고자 영양실조 실어증 중풍”이었다. ‘내 방식대로 남은 삶을 살겠다’던 ‘맥도날드 할머니’ 권하자는 암이 복막까지 퍼져 행려병자들을 위한 병원에서, 73세의 나이로 2013년 죽어 화장되었다. 마포구의 여성독거노인이자 와병환자인 김○○(84세)은 봉사자가 ‘던져놓고 가는’ 행복도시락을 냉동실에 얼리고 있다. “기어서라도 쫓아가서 던져주고 죽을란다”던 그녀는, 혼자 살아 좋단다. 불행한 말년이라고들 한다.

 

타인에게서 무엇을 보는가는 자신의 문제다. 리영희와 사르트르에게서 저항과 자유를 보는 눈으로, 나혜석과 권하자와 김○○에게서, 외로워서 더 처절한 저항과 자유를 본다. 그 눈으로 나를 본다.

 

나이듦과 죽음이든 빈곤과 질병과 소외든, 두려울 때, 자신의 정체를 직시할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가 보여야 무엇을 할지가 보인다. 모든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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